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07화 (407/430)

 407화

[30회차] 몰랑소프트의 주인

“역시, 예상대로군.”

이렇게 말하면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나는 일리나의 가슴 속에서 로맨티넘을 뽑아냈다.

“히익-?!”

그녀는 자신의 ‘진짜 가슴’에서 연분홍색의 젤리 같은 게 튀어나와서 식겁했다.

“괜찮아.”

“내 가슴이...!”

“그건 걱정하지 마. 예전 크기로 돌아갈 일은 없으니까.”

일리나의 소원에 소모된 로맨티넘의 양은 적지 않았다.

차원 5000개 분량...

그냥 성형수술을 추천하고 싶을 만큼 비효율적의 극치!

로맨티넘의 사용처를 잘못 선택한 탓이다. 스포츠카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려고 하면 제대로 나아갈 리 없잖는가?

물론, 이렇게 설명하는 나도 로맨티넘에 관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다.

촌놈의 한계랄까...

“흠. 이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알 수가 없네.”

그래서 어떤 신들의 메시지를 통해서 필요한 정보를 모아보기로 했다.

『어떤 수신이 배꼽의 주인을 찾습니다』

『느긋한 어떤 천신이 자기 배꼽을 확인합니다』

『어떤 신이 잃어버린 배꼽의 가격을 묻습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꾸벅꾸벅 좁니다』

...도움이 안 되네.

계속 정신 사납게 할 거면 다른 곳에서 놀아줬으면 좋겠다.

『어떤 신이 졸부라고 슬쩍 알려줍니다』

“호옹...”

그래도 양심적인 어떤 신이 하나 있었군?

친구들을 위해 부지런히 팝콘을 튀기면서 내 행동을 챙겨본 모양이다.

로맨티넘.

이건 판타지아 교육장의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순수한 잉여자원이다.

내가 판타지아 교육장 시스템의 장부를 뒤져봤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로맨티넘 산출을 위해 판타지아 교육장을 세운 교장 파르마엘조차 몰랐던 진짜 보물.

크기는 탁구공이랑 비슷했다.

“아, 안 돼! 내 가슴이 저만큼 줄어들었다는 소리잖아! 돌려다오! 얼른! 이 사악한 도둑놈아!”

“안 줄었으니 보채지 마. 그리고 도둑 아니거든? 판타지아 교육장 전체가 내 소유야.”

“...내가 용사들에게 배운 단어가 있지. 중2병. 행성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남의 소중한 가슴을 떼간 너는 중2병이 틀림없다.”

“거참...”

카이사도 있어서 웬만하면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이해하기 쉽게 이 자리에서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용사』

신격이 좀 더 전문화되면서 범용성과 기능이 축소됐지만, 애초에 내 신격은 자유도가 높았다.

가령, 나는 진정한 용사로서 ‘동료’를 무한정 소환할 수 있다.

그 동료의 기준은?

판타지아 차원에 있는 존재라면 누구나 된다.

뿅! 뿅! 뿅! 뿅!

가슴 커진 일리나의 클론 군단을 눈 깜짝할 사이에 생성하는 것도 내게는 손쉬운 일이다.

“이, 이건 대체...”

“좌에서부터 일리나A, 일리나B, 일리나C, 일리나D. 전부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지만, 가슴 크기가 전부 다르지.”

“아...?”

“용사로 소환된 나는 사악한 마왕의 사위가 되어 가업을 물려받고, 추악한 여신을 처치한 후, 그들의 힘을 손에 넣었지. 일일이 설명하기 귀찮으니 나중에 네 부모님에게 물어봐라. 이 일만 끝나면 바로 보내줄게.”

일리나는 가슴의 변천사를 보여주듯 일렬로 가만히 서 있는 자기 클론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지켜보던 카이사도 상당히 충격받은 얼굴.

그나마 이 둘은 기억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평행세계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봤다면 공황에 빠졌으리라.

“쏘시아 님께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내 상상을 훨씬 초월하지 않았는가...”

“이해했으면 이만 가.”

“어디를...”

번쩍-!

대답해주기도 귀찮다.

나는 용무가 끝난 일리나를 페스티벌 차원으로 보냈다.

예전 같으면 이 일련히 작업들이 쉽지 않았겠지만, 차원이 통합된 현재는 달랐다.

거리낄 게 없다고 할까!

“저기, 한수 씨?”

“말해.”

“귀찮게 물어보면 저도 어딘가로 추방할 건가요?”

카이사의 예리한 질문에 무심코 찔끔하고 말았다.

내가 정말로 귀찮았다면, 그녀를 어딘가로 보내기보다는 시간을 잠시 멈춰두는 방법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런 짓은 하지 않아.”

지금의 나는 판타지아 차원 내에서라면, 생각하는 무엇이든 현실로 구현해낼 수 있다.

태양도 복사할 수 있는 내게 인간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순전히 그 편리함이란 마약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다.

“신혼여행은요?”

“진담. 이것만 챙기고 정말로 신혼여행을 만끽할 예정이었어.”

“그 몰랑하게 생긴 분홍색 물질이 뭔데요? 사람도 복사할 수 있는 한수 씨가 중요하게 여길 만큼 대단한 건가요?”

“맞아. 하지만 질문은 나중에 해줘. 시간이 별로 없거든.”

쏘시아가 완벽하게 시간을 끌고 있었더라도 몰랑소프트에서 눈치챘을 것이다.

시간이 없군.

사용법은 어렵지 않다.

일리나가 간절히 빌어서 가슴을 얻었듯, 나도 정신을 집중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강력한 무기. 내 신격에 적합한 무기로 변해다오!’

원래는 여기에 다른 금속을 섞어서 합금으로 사용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꿀꺽.

탁구공 크기의 로멘티넘을 입에 넣고 삼켰다.

『어떤 신이 깜짝 놀랍니다』

『어떤 검신이 당황합니다』

『느긋한 어떤 천신이 바보냐고 묻습니다』

『어떤 신이 어디 아프냐고 걱정스럽게 묻습니다』

나는 지극히 멀쩡하다구?

그래서 생각했다.

판타지아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마음대로 복사할 수 있는 내게 ‘진짜 나’란 무엇일까?

결론은 하나.

섭리로 발전한 내 힘으로도 복사할 수 없는 무언가로 ‘진짜 나’를 표시해두는 것이다.

『용사』

막 삼킨 로맨티넘은 나의 뼈에 합금처럼 스며들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일리나의 가슴처럼 평범한 뼈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몰랑하게, 몰랑하게, 몰랑...”

1회차 때부터 위기마다 나를 구해줬던 마법의 주문.

소유자의 감정에 따라 성질과 강도가 변하는 로맨티넘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야 한다.

결과물?

뭘 알아야 기대하지!

단, 잘난 신조차 복사할 수 없는 ‘유일한 몸뚱이’란 고유성에 의미가 있다.

“...한수 씨.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중인가요?”

“나도 몰라.”

“예?”

“정말로 몰라.”

“......”

“그렇게 봐도 모르는 건 어쩔 수 없어. 세상은 상대평가니까. 내가 얼마나 어떻게 변했는지 알려면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어.”

“그거야... 그렇죠.”

“가자.”

“또 일인가요?”

“그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노는 것도 일이니까. 그래서 안 따라올 거야?”

나는 카이사에게 손을 내밀며 질문했다.

그리고 그 손을 붙잡은 그녀가 어이없다는 어조로 답했다.

“신혼여행 중에 정말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군요.”

“하핫!”

어설픈 웃음으로 싸한 분위기를 대충 넘어간 나는 카이사와 함께공간을 도약했다.

우주로.

이 싸움을 끝내기 위해.

***

“잘생긴 남편. 잘생기면 다야? 양심 어디?”

“흠흠.”

“마누라에게 어려운 일을 부탁한 후, 본인은 다른 아내랑 데이트하는 경우는 무엇?”

“크흐음!”

디스코와 몰랑로이드를 상대로 힘들게 협상을 질질 끌고 있을 줄 알았던 쏘시아.

하지만 그녀는 위성A에서 느긋하게 다과회를 즐기다가 나를 발견하자마자 쓴소리를 날렸다.

뭐, 그녀처럼 편파적인 시각으로 해석하면 뺨을 맞아도 할 말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래서 성과는?”

“받아.”

“뭘?”

“옜다, 선물.”

『용사』

평소에 추한 질투심으로 가득한 마누라를 남편님의 첫 번째 사도로 임명합니다!

“어, 어어-?!”

“비겁한 마누라는 보아라. 나는 과거의 장인어른이랑 비교가 안 되는 고위급 신이 되었노라!”

“내가 첫 번째...!”

“......”

요즘은 좀 잠잠해진 줄 알았는데, 첫 번째에 유독 집착하는 성향은 그대로였다.

그녀는 ‘항상 공정한 어떤 인신’의 사도가 된 것보다, 첫 번째 사도라는 게 마음에 든 걸까.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제각각이니 따지지 말자.

그렇게 쏘시아는 얼렁뚱땅 잘 넘어간 것 같고...

“그러면 한수 씨. 제가 두 번째인가요?”

“잠깐! 아주 잠깐만! 한수 씨라고?! 방금, 내 남편을 네가 그렇게 부른 거야?!”

“네. 무슨 문제라도?”

“문제가 많지!”

첫 번째라는 키워드로 꺼져가던 추악한 질투의 불꽃 위에 카이사가 휘발유를 들이부었다.

우려했던 대로, 쏘시아는 첫 번째 사수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대도 만만치 않다.

“한수 씨를 한수 씨라고 부르는 게 어때서요? 그리고 한수 씨랑 연애를 시작한 순서로 따지면 제가 먼저인데요?”

“그, 그건 나도 알아!”

“그러면?”

“비겁하잖아!”

“네?”

“어떻게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그리 살갑게 남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 이상해! 나는 하려고 해도 도저히...”

“한수 씨~♡”

“비겁해! 그런 엉큼한 잔기술로 남편을 홀리는 건 반칙이잖아! 능력으로 겨루란 말이야!”

“이것도 능력입니다만...”

만나자마자 두 마누라가 화려하게 충돌했다.

몰랑소프트는 상대하던 중인 상황이라서 금방 잠잠해졌지만, 나중에 2차전이 예상됐다.

이거 참...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하렘을 싫어합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하렘은 나쁘다고 합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굉장히 불편해합니다』

내 가족관계가 매우 마음에 안 드시는 순진한 여신님도 한 분 계시고.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이 무서워서 며느리는 한 명만 소개해드리고 싶었는데, 야만적인 판타지 세계에 살면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자! 그러면 거래를 시작할까!

“총장님? 잠깐 안 본 사이인 아주 많이 변하셨네요...”

“그래. 진정한 용사라면 위기 속에서 성장하는 법이지.”

『어떤 사신이 누군가의 변화에 경악합니다』

『항상 공정한 어떤 인신이 콧대를 높입니다』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보다 격차가 심해졌다.

내게 디스코는 먼지 중의 먼지, 행성에 사는 주민A나 다름없었다.

내 사도로 전직한 쏘시아나 카이사랑 붙으면 그럭저럭 막상막하의 승부가 될 것 같다.

디스코가 말했다.

“인정합니다. 당신은 제 주인님을 만날 자격이 있으십니다.”

“헤에~”

드디어 보스의 등장인가?

하지만 미리 말해둘 사안이 있다. 엉덩이 무거우신 분이 괜히 헛걸음해서 좋을 거 없으니까.

“디스코. 이쯤에서 단념하는 게 좋아. 너희가 놀리는 로맨티넘은 내가 다 먹었거든. 그러니 헛수고하지 말라고.”

“그건 주인님이 판단하실 문제입니다.”

“그러면 빨리 전해.”

“이미 듣고 계십니다.”

“음?”

“저는 주인님의 비서 겸 애완동물. 주인님의 곁을 단 한 순간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경건한 마음으로 위대한 존재를 알현하시기 바랍니다.”

척척척!

우리 주위에 포진하고 있던 모든 몰랑소프트가 디스코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보스가 등장했다.

애완동물의 검은색 드레스로 반쯤 가려진 깊디깊은 가슴골 사이에서 빼꼼.

“저, 저것은...!”

“호호! 촌놈인 당신은 모르시는 것 같으니 친절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분은 가장 존엄한 몰랑이의 손자이자 몰랑소프트의 회장이신 위대한 몰랑이입니다.”

몰라아앙~

디스코의 양팔에 안긴 무지개색 슬라임이 몰랑거렸다.

『몰랑』

『군단』

『행운』

“.......”

보자마자 할 말을 잃었다.

섭리가 무려 셋!

신(神)이 아닌 사도임에도 나를 간단히 압도하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그렇게 승리를 장담했던 용사님이 혼란에 빠진 순간!

몰랑?

비겁한 마누라의 가슴골에서 위대한 존재가 나오셨다.

“스승님...!”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란 이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몰라아앙?!

내 예상대로 몰랑소프트 회장이 당황하며 격하게 몰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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