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09화 (409/430)

 409화

[31회차] 엘브하임 가족

내가 관리하는 판타지아와 페스티벌 차원의 생명체는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다.

진실 or 거짓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내 차원 밖에서도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지, 그 여부로 결정된다.

존재하면 진실.

아니면 거짓.

하지만 차원은커녕 행성의 대기권 밖조차 나갈 일이 없는 절대다수의 생명체에게 이러한 판단기준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아주 중요하지.”

온 세상에 단 하나뿐인 줄 알았던 마누라가 클론처럼 더 존재하고, 심지어 다른 남자와 잠자리까지 함께한다고 상상해보라.

그건 꽤 견디기 힘들 것이다.

정말로 사랑한다면.

“생명의 녹색용, 에르단티는 우연히 만났다. 파르마엘의 신격에 시간이 되감기면서 기억이 엉망진창이 됐을 때였지.”

이대로 계속 시간을 빼앗기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뇌비우스는 모습을 감췄다.

인간사회 속으로.

모든 비극의 원흉인 ‘최초의 용사’도 이때 만났다.

그 당시에 이미 ‘최초의 성녀’로 활동 중이던 에르단티와 만난 건 필연 아닌 필연이었던 셈.

그 뒤는 알려진 이야기대로다.

에르단티가 뇌비우스를 짝사랑하기 시작했고, 이에 질투한 가출선배가 함정을 팠다.

그리고 공공의 적으로.

이때, 수많은 용과 모험가들이 뇌비우스에게 죽었다. 하지만 지쳐버린 그는 파르마엘에게 들켜서 생포되고 만다...

우울하구먼.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미약한 희망과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붙잡고 싶군. 나의 부질없는 미련이겠지만.”

“친구여! 가자!”

“...고맙다.”

부끄럼이 많은 친애하는 전우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은 거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의욕만으로 될 만큼 우주는 만만한 동네가 아니다.

넓어도 너무 넓으니까!

“쏘시아. 이걸 주소라고 가르쳐주냐?”

“하지만 정말인걸.”

몰랑소프트의 정보력까지 갈 것도 없이, 우주의 검색엔진을 활용하면 ‘가출선배 집 주소’가 바로 나왔다.

A소우주 B은하 C태양계 D행성 E대륙 F지역 G도시...

이걸로 어떻게 찾아가?

처음 듣는 소우주의 이름 단계에서부터 막혀버렸다.

“진지하게, 네비게이션이 필요한 순간이군...”

“그건 걱정하지 마.”

“Seeeeex!”

섹시하게 우는 가오리가 위풍당당하게 울부짖었다.

“잘생긴 남편님. 성공한 아내들만 보유한 우주마의 능력을 보여줄게. 주소를 우주마에게 보여주면 알아서 그곳으로 안내해줘.”

“정말로?”

세상에 그런 편리한 스포츠카가 있다고?

“직접 보는 게 빠를 거야.”

“Seeeex~”

가오리 주제에 총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우주마가 비겁한 마누라의 스마트폰에 적힌 주소를 보고는 긍정했다.

오! 맙소사!

성공한 아내들의 필수 아이템이란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주소를 찍으면 우주 어디든 자동주행으로 모셔다 준다니?

그야말로 꿈의 자가용이다.

“그러면 쏘시아. 가오리 좀 빌릴게.”

“어? 나는?”

그거야말로 안 될 소리다.

쏘시아는 당연히 모르지만, 나는 카이사에게 데이트를 약속해놓고 일하는 중이다.

여기서 다른 마누라랑 데이트갔다가는 천벌 받는다.

카이사는...

유감스럽게도 ‘진짜’는 페도나르에게 사망. 내 카이사는 ‘가짜’라서 차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지.

“집 보고 있어.”

“남자 둘이서 뭘 하려고?”

“뭔 둘? 뇌비우스는 엄연히 중성인데. 그리고 나는 정의로운 용사야.”

도덕과 양심에 어긋나는 그릇된 짓은 않는다!

“용사라서 의심하는 건데...”

“그건 용사가 아니야!”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몸과 가정이 평화로워야 나라도 평화로운 법이니까.

안 그러면 가출선배처럼 말년이 고달파진다.

“뭐, 아무튼 잘 다녀와.”

쏘시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가오리를 넘겼다.

그러자 옆에서,

“나의 폐하, 한수 씨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요. 이번에는 또 얼마나 걸릴지 세면서.”

카이사가 새침한 눈으로 나를 흘겨보며 뼈가 있는 말을 했다.

척추가 다 얼얼하군...

몰랑~

“어이쿠! 마스터 몰랑. 배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황송할 데가.

촌놈인 나는 잘 모르지만,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의 슬라임이시란다.

남들은 마스터 몰랑의 위대함을 몰라봤지만, 나는 이분이 몰랑할 때부터 알아봤지.

몰라앙...

쑥스러우신지 쏘시아의 누추한 가슴골 사이로 숨어버리셨다.

그럼, 나도 떠나볼까.

“그렇게 오래 안 걸릴 거야. 가오리야. 가자.”

“Seeeeex!”

“...요놈 참 한결같이 섹시하게 우네.”

두근두근.

내 심장이 막 뛰기 시작했다.

200년 만의 탈출.

차원이 합쳐지면서 내가 공급해줘야 하는 신력이 대폭 줄어든 덕분이다.

【용사】

【용사】

나 대신 판타지아에 신력을 공급하도록 쏘시아와 카이사를 ‘사도’로 임명.

예전에는 이 정도로 턱없이 부족했지만, 수십만에서 하나로 줄어들면서 차원의 유지비가 대폭 낮아진 현재는 가능했다.

“아... 그렇지.”

가는 길에 페스티벌 행성도 들러야겠다.

거기에도 마누라가...

“Sex?”

“쉿.”

“Seeeeeex~”

정의로운 용사님은 눈치 빠른 가오리를 타고 판타지아 행성을 나섰다!

*

“...친구여. 약속을 바로 이행해준다고 해서 의아했었는데, 할 거 다 하고 출발하는군.”

“하하하.”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

가출선배처럼 ‘모든 마누라를 공평하게 사랑하리라!’라고 할 생각은 없지만, 기본적인 안전책은 제공해줘야 옳잖아?

내가 없는 틈에 누군가 쳐들어와서 아내를...

그러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응징!”

“응징!”

...두 쌍둥이 자매를 보면 괜한 기우 같지만!

【응징】

【응징】

내가 힘들게 구한 로맨티넘이 탁구공 크기인데, 두 딸은 69% 합금이긴 해도 베개 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푹신해 보이는 저 로맨티넘 베개에 맞으면 태양이고 신(神)이고 남아나지 않으리라.

이놈의 세계는 어떻게 돼먹은 건지 모르겠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쌍둥이를 뿌듯하게 바라봅니다』

『어떤 신이 정말 감사하다고 합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빵긋 미소 짓습니다』

팝콘 뜯던 다른 신들은 다 떠났는데, 이 순진한 여신은 아직도 따라오고 있네.

『어떤 신이 자손들의 행복을 부탁합니다』

『항상 공정한 어떤 인신이 눈살을 찌푸립니다』

『어떤 신이 뻔뻔하고 약해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항상 공정한 어떤 인신이 고민하는 척합니다』

내가 페스티벌 행성에서 유감스러운 엘브하임 가족을 만난 이후부터 등장한 어떤 신.

메시지를 보면, 엘브하임 일가의 조상신쯤 되는 것 같았다.

부탁이고 뭐고...

“어머니! 어떻게 나를 버리고 혼자만 아버지랑 시시덕거리며 놀 수 있는가?! 내가 어머니를 찾는다고 판타지아를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알기나 하는가?!”

“어머? 왜 그랬니?”

“왜?! 지금 왜라고 했는가?!”

“일리나,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엄마를 찾니? 너도 네 남자를 찾아서 독립했어야지.”

“기껏 걱정해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나의 고지식한 딸. 이복언니에게 남자 뺏기고 엄마에게 화풀이하면 곤란해요~”

“아, 아니다!”

흠. 무척 평화롭군.

엘브하임은 아내와 딸의 말싸움을 말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매우 바빴으니까.

“셀레니스, 셀비너스. 이 힘없는 할아비와 놀지 않으련?”

“할아버지 약해!”

“맞아! 무지 약해!”

“하하하! 힘도 가슴도 강한 손녀들이 이 할아비의 몸을 걱정해주니 정말 기쁘구나!”

“할아버지는 대단해.”

“맞아. 대단히 긍정적이야.”

“그것이 이 할아버지의 유일한 장점이란다! 자, 들어보렴. 이번에 몰려든 용사 중에 요정들로 하렘을 차리려는 자들이 있더구나. 그건 문제가 아닌데, 너무 무분별하게 침을 발라서 자식 가진 부모들의 민원이 폭주하고 있단다.”

“용사 강해?”

“강하면 상대해볼게.”

“그건 모르겠다. 소문이 허풍인지 과소평가됐는지 모호한 게 용사라서. 이름만 우선 알아두렴. 제우스, 지크, 릴리스, 시바.”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하렘의 응징을 바랍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전폭적으로 지원합니다』

우우웅-

두 쌍둥이가 껴안고 있는 베개가 더욱 강해지는 게 느껴졌다.

저기서 더 강해졌다고...?

페스티벌 차원을 부숴버리지 않을지 심히 걱정스럽다.

“...갈 길이 멀군.”

우주에서 가장 강하다는 3대 어떤 신의 지원은 확실히 달랐다.

몰랑한 몰랑소프트 회장도 그렇고, 내 딸들도 그렇고...

분명히 사도인데, 웬만한 신(神)보다 강했다.

어린 딸들에게 꿀리지 않으려면 더욱 강해져야겠군.

엘브하임이 나를 돌아봤다.

“하하! 용사님. 몸은 빈약해도 마음만은 풍부한 제 딸과 보낸 밤은 즐거우셨습니까?”

“하루 동안 사위를 투명인간 취급한 장인이란 놈의 첫마디가 그거냐.”

“하하하! 사고뭉치 용사들을 잔뜩 보내주셔서 살짝 심통이 났지 뭡니까. 손녀들이 깨끗이 청소해둔 집에 쓰레기가... 실례. 하여간 그렇습니다. 하핫!”

“조금만 참아.”

“조금? 그러면 100년 안에 해결해주시리라고 믿겠습니다.”

“그래.”

인간이었다면 1년 안에 해결해달라고 생떼 부렸을 텐데.

인간사회에 물들어서 다른 요정보다는 덜하지만, 엘브하임도 시간에 참 관대했다.

그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용사님. 조심하십시오.”

“뭘?”

“용사님께서 밤새 셋째를 생산하느라 여념이 없는 동안, 뇌비우스에게 슬쩍 들었습니다. 그 친구를 조지러 간다고.”

“그게 위험한 일인가?”

“최초의 용사. 그는 인간적으로는 하자가 많지만, 힘이나 운명에선 양파 같은 남자입니다. 행운의 여신이 늘 함께하는 것처럼 까도 까도 계속 나오지요.”

“흐음...”

일단은 새겨듣기로 했다.

특히, 우주의 총애와 깊은 연관이 있는 ‘행운’이란 단어가 심히 거슬렸다.

지나치게 강해진 지금의 내게는 그 총애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행운은 큰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매우 컸다.

“Seeeex?”

“그래. 이젠 정말로 가자.”

“잘 가! 아빠!”

“또 와! 아빠!”

나는 손을 좌우로 붕붕 흔들며 배웅하는 두 쌍둥이 딸에게 알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니 베개는 살살 휘두르렴.

하렘을 잡으려다가 행성이 부서지는 수가 있다.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드디어 가는가?”

하루 동안 기다려준 뇌비우스가 날카로운 어조로 질문했다.

나도 받아쳤다.

“친우여. 고향별에 왔는데 기분이 좋지 않아?”

“그다지. 좋았던 기억을 상쇄할 만큼 안 좋은 기억이 많은 장소라서 말이다.”

“그, 그렇군.”

괜히 말을 꺼내서 본전도 못 건졌다.

“Seeeex!”

“오냐. 알겠으니 그만 보채.”

정의로운 용사님은 친우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출발했다!

“Seeex~”

“매우 가까웠군.”

수십 광년 거리라고 했던 것 같은데, 출발을 외치고 10분만에 도착할 줄 몰랐네.

행성 왕궁(王宮).

그 이름 그대로 행성 하나가 통째로 가출선배만을 위한 궁궐이자 하렘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왔는가. 건방진 후배여. 오늘은 비겁하게 몰랑이를 대동하지 않았겠지?”

가출선배가 옥좌가 아닌 밖에 마중 나와 있었다.

어떻게 눈치챘지?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나는 아니라고 합니다』

『매우 성급한 어떤 마신이 히쭉히쭉 웃습니다』

...딱 봐도 알겠군.

하지만 좋다.

선배가 먼저 전투태세에 임해주면 나로선 편하니까.

『용사』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우리의 싸움은 순식간에 끝나리라.

“섭리인가...”

“호오? 이게 보여?”

“후배여. 이 선배를 그렇게 얕잡아보면 곤란하다.”

【불패】

【행운】

뭔가 터무니없는 성능의 신격이 출현했다.

“진짜로 양파였냐...?”

“위선적인 할아버지의 힘은 죽어도 쓰기 싫었지만, 정말로 죽게 생겼으니 어쩔 수 없지.”

“금수저였습니까?”

이건, 신(神)-수저라고 해야 하나?

“혈통 없이 단시간에 이만큼 강해졌을 리 없잖은가.”

“저는 아닙니다만?”

“아니. 네가 모를 뿐이다.”

“......”

말이 안 통하네.

싱겁게 끝날 줄 알았던 싸움이 의외로 흥미로워졌을 뿐.

그때, 가출선배가 단언했다.

“후배여. 네가 정말로 재능충이라면 여기서 죽을 것이다.”

“이겨 보죠.”

“그러면 혈통충이고.”

“뭡니까, 그 불합리한 논리는.”

팟.

그렇게 어처구니없다는 식으로 선배의 말을 받아치며 기습!

전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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