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11화 (411/430)

 411화

[31회차] 강림

“공정한 심판을.”

섭리가 발동되면서 전투가 대폭 편해졌다.

우선, 이 행성을 판타지아처럼 내 통제 아래로 흡수했다.

어디까지나 전진기지, 임시처소 같은 개념이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진 못하지만, 외부의 간섭을 차단할 수 있다.

이젠 어떤 신들도...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순진하게 빼꼼합니다』

『매우 성급한 어떤 마신이 성급하게 착석합니다』

정말 너무하네.

개인적인 용무가 있다고 칸막이까지 쳤는데, 그걸 저리 간단히 비집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그래도 괜찮다.

가출선배에게 신격을 공급해주는 어떤 신이 직접 찾아오지 않는 한, 이건 유효하니까.

이것으로 정의로운 용사의 심판장이 완성됐다.

“뇌비우스.”

뿅.

분노의 활화산을 억제하며 소환 대기 중이던 친애하는 전우를 불렀다.

몰랑스타 대신 뇌비우스 군단을 소환했다면 전투가 좀 더 수월하게 풀렸을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건 내가 한 약속을 이행하는 거고, 뇌비우스가 폭주해버릴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러나 군단이 아닌 하나라면.

“뭘 해야 하는지 안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진짜 연인’을 본 사령탑 뇌비우스가 낮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

“그래. 너는...”

“친구의 학살로부터 에르단티를 지키는 것.”

“어... 그렇지.”

이건 학살이 아닌 정의로운 심판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해주고 싶지만, 성황이 여의치 않았다.

선배의 친위대가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으니까.

『용사』

전방으로 날아갔다.

신격 행운과 불패를 두른 가출선배의 인생은 소설 속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순간만은 내가 주인공이다.

용사니까.

가출선배가 ‘불패’였다면, 절대적인 악(惡)을 심판하는 지금의 나는 ‘필승’이다.

의심? 그런 건 없다.

그것이 섭리일지니.

“우습지도 않군.”

“꺄윽?!”

우득.

내게 삼지창을 들이밀며 돌격해온 친위대A의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를 붙잡고 돌려줬다.

방어? 회피?

섭리가 발동한 지금의 내게는 불필요한 행동이다.

이건 전투가 아니니까.

심판.

죄인들을 처벌하는 시간이다.

단, 나의 독단적인 판결에 저항할 방법이 하나 있다.

“너희는 변호사(공범)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자살)을 행사할 수도 있다.”

“......”

목이 예쁘게 꺾인 죄인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괜찮은 답이야.

우드득.

가녀린 목을 쥔 손아귀를 움켜쥐자 친위대A의 몸통과 머리가 분리됐다.

“잘도 언니를...!”

“가져.”

“엇?!”

나는 친위대A의 긴 머리채를 움켜쥔 후, 거의 도달한 친위대B를 향해 철퇴처럼 휘둘렀다.

서걱.

하지만 생각처럼 그리 간단히 풀리진 않네?

친위대B는 당황하지 않고 ‘언니’ 타령하던 여인의 머리통을 분쇄하고 내게 계속 접근해왔다.

그것도 좋지.

지금처럼 가출선배의 수집품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영원한 안식에 드는 편이.

그러나 틀렸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냐?”

“신(神)... 꺅-?!”

“틀렸다. 용사다.”

심판이 떨어지기 전까지 마음대로 죽을 수 없다.

친위대A의 죽음은 육체 활동의 정지일 뿐,

그녀의 영혼은 온전히 존재하며, 정의로운 용사의 공정한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다.

푸욱-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가 친위대B의 가슴을 꿰뚫었다.

“우엑!”

챙그랑.

피를 토한 친위대B의 손에서 칼이 떨어지고, 나는 그녀의 빈손을 붙잡았다.

그 후, 끌어당겼다.

“이리 온. 오고 싶었잖니.”

“아악...!”

드르륵.

척추와 갈비뼈가 갈리는 진동이 날개를 타고 내게 전해져왔다.

나는 그녀를...

“저런.”

정의로운 용사님의 넓은 가슴에 안기고 싶어 했던 친위대B는 그 괘씸한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신체활동 정지.

슝! 슝!

탕탕!

멀리서 친위대C가 부지런히 활시위를 놓고, 그녀 옆에서 친위대D가 현대식 라이플의 총구를 내게 향한 채 방아쇠를 당겼다.

멀리서 찔끔찔끔!

다수를 상대로 자주 싸워본 자라면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원거리 딜러가 싫다.

이게 만약 전투였다면.

퐁, 푸둑, 툭...

친위대C와 친위대D의 비열한 화살과 총알은 내게 닿지 못하고 급격히 추진력을 잃으며 땅에 떨어졌다.

“뭐지?”

“보호막?”

“어리석은 말랑이들아. 이게 정의라는 것이다.”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정의의 첨탑에 미개한 화살과 총알 따위가 도달할 리 없잖은가?

공간을 접으며 그녀들 뒤편으로 접근한 나는 꼬리뼈를 힘껏 걷어찼다.

“꺅~?!”

“아악~?!”

이건 정의로운 용사님의 힘찬 발길질이다.

재기할 수 없을 만큼 골반이 바스러진 그녀들은 손에 쥔 활과 총을 떨어트리고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았다.

“안일하군.”

용사는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

몸이 하나라서 차별적으로 구원해주는 자기만족형 위선자는 용사라고 할 수 없다.

휘릭~

“당신이야말로 안일하- 꺄악?!”

“건방지고.”

동료들이 당하는 틈에 내 목에 투명한 와이어를 감으려고 시도한 친위대E.

정말 오만하다.

진정한 GGG급 용사님에게 사각지대 같은 게 있을 리 없거늘.

얄팍한 무기 하나만 믿고 승리를 기대한 게 어이없다.

쫘악.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에 아랫배를 꿰뚫린 친위대E가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다.

이 용사님이 도와줄게!

물론, 유료서비스다.

주르륵.

수고비로 그녀의 소장(小腸)을 끄집어낸 후, 다시 선물로 돌려줬다.

“친환경적인 목도리야!”

“아, 아아...!”

감격한 친위대E가 말문을 잃더니 그대로 까무러쳤다.

이 용사님이 친히 목도리를 감아주려고 했거늘!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에.

“다음은... 없나? 없네.”

가출선배의 친위대는 여전히 바글바글했지만, 올곧은 정의에 감히 저항하려는 자는 없었다.

“으으...”

“딸꾹!”

“이, 이건...”

우매한 말랑이처럼 겁에 질린 그녀들은 뒷걸음쳤다.

보통은 이 시점에 주인된 자가 다그쳐야 하지만, 가출선배도 이미 반쯤 넋을 놔버린 상황.

그가 쥐어짜듯 말했다.

“우세했던 보리스가 어떻게 당했는지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싶었는데... 네놈. 미녀를 몬스터 죽이듯 살해하고도 아무렇지 않은가? 온전히 생포해서 소유하고 싶지 않나? 아니면 이미 미녀가 넘쳐서 그런가?”

이 선배가 갑자기 뭐래?

“적을 처단한다. 그 단순명료한 논리에 무슨 사족이 필요한지 의문이군요.”

“누굴 바보로 아는가! 논리는 논리일 뿐. 나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거다!”

“선배야말로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현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미녀? 하하! 인생을 영화처럼 사셔서 그렇습니까? 흙먼지 뒤집어쓰면 남자든 여자든 외모는 구분이 안 됩니다. 복장으로 피아식별한 적과 아군만 존재하죠.”

“대체...”

“꽃길만 걸으셔서 현실을 잘 모르시는 모양입니다? 인생을 정말 헛사셨네요.”

내 1회차는 난장판이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꿈과 희망만 노래하지 말고 멈춰서 뒤를 돌아보면 알 수 있는 현실.

육체적으로 우세한 남자들에게 지기 싫어서 검술에 젊음을 투자한 미모의 영예가 있었다.

조건은 검희와 거의 동일.

둘의 차이는?

검희는 실수해도 스스로 무마할 수 있을 만큼 강했고, 그 영예는 그렇지못했다.

“저는 혼기를 놓치지 말고 집에 돌아가서 결혼하라고 권했죠. 반면에 동료들은 남자들에게 지지 말라고 그녀를 응원했습니다. 결론은 후자였지요.”

나 빼고 훈훈하게 헤어졌다.

“후배여.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저는 잊지 않고 2년 뒤에 정보상인에게 의뢰해서 그 영애의 소식을 조사해봤습니다. 어떻게 나왔을 것 같습니까?”

“남자에게 꿀리지 않는 훌륭한 검객이 됐겠군.”

“병신이 됐습니다.”

“......”

용사의 동료들에게 칭찬받고 오만해진 그녀는 거친 용병들과 시비가 붙었고, 목숨처럼 소중한 오른팔을 잃고 말았다.

그녀는 100번 싸워서 99번 이겼으나, 1번의 패배로 모든 걸 잃었다.

도도했던 자존심은 땅에 처박히고, 그녀의 외모를 찬양하던 사내들도 하나둘 고개를 돌렸다...

그게 인생이다.

“가출한 딸이 5년 만에 팔을 잃고 돌아온 모습을 본 부인은 앓아누웠고, 영주는 딸이 자결할 것 같은 분위기라서 말도 못 거는 상황이었죠.”

“......”

“다시 말씀드리죠. 누구에게나 공평한 전장에서는 성별과 외모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걸 따지는 선배가 이상한 겁니다.”

“정말 웃기는군. 딱 봐도 네 잘못이지 않은가?”

“뭐... 동료들의 훼방이 있긴 했지만, 그건 변명일 뿐. 설득에 실패한 제 잘못이긴 하죠.”

“아니. 잘못 짚었다.”

“......”

가출선배에게 지적받은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무의미한 대화?

그렇지 않다.

나의 절친 뇌비우스가 열심히 에르단티를 설득하고 있었다.

쉽게 생각했었는데, 가출선배에게 오랫동안 붙잡혀있었던 그녀의 상태가 많이 안 좋은 듯했다.

아무튼,

“후배여. 예시로 든 그 영애의 비극은 전부 네 잘못이다.”

“들어보죠.”

“내가 왜?”

“......”

진심으로 혈압이 올랐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면 납득하지 못하겠지. 상식이 부족한 후배에게 선배로서 가르쳐주마.”

“들어보죠.”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지만, 내심으론 살짝 긴장됐다.

섭리.

그것은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여기서 가출선배의 지적에 내 ‘정의’가 흔들리면 섭리도 깨져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아예 안 듣고 무시할 순 없다.

그건, 패배를 시인하는 거나 다름없기에.

피할 수 없는 도전.

정면으로 맞부딪히리라!

“잘 듣도록.”

“네.”

“애초에 그 영애를 네 여자로 만들었으면 팔을 잃고 좌절할 일도 없었다.”

“...하아?”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거 맞나?

“한심한 후배여. 네 잘못을 이젠 알겠- 꾸엑?!”

“됐습니다.”

내 섭리가 MAX를 뚫고 우주를 관통할 만큼 창대해졌다.

불패? 행운?

전부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정의’로 충만했다.

이 틈에 확실하게 끝내주지.

“말씀드리죠. 애초에 이 질문은 함정이었습니다.”

“커억-!”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턱주가리를 날린 후,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로 복부에 구멍을 내줬다.

그러며 대화를 이었다.

“그 영애는 제가 즉석에서 만든 허구가 아닌 실존인물이고, 팔이 잘린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성별과 외모를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고.”

“아아악...!”

다음은 척추다.

“다시 만났을 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가출영애도 있었죠. 즉, 모든 건 선택에 따른 결과입니다. 굳이 미녀를 예로 든 건, 순전히 가출선배의 대응을 알고 싶어서 찌른 노림수였습니다.”

그랬는데 기대 이상의 궤변을 들어서 섭리가 MAX마저 돌파해버렸다.

이건 절대로 못 막는다.

섭리와 신력의 차이?

겉보기에는 똑같으나,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방어력을 무시한 고정피해에 있다.

애초에 방어력과 저항력이 없다시피 한 상대라면 둘의 차이가 없는 거나 다름없는 셈.

하지만 가출선배는 섭리에 버금가는 사기적인 신격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 섭리가 그것을 완벽하게 뛰어넘었다.

의도한 것 이상으로.

“가출선배. 추태는 그만 부리고 이만 뒤지십시오.”

“아으으으...”

까칠하게 굴던 에르단티는 뇌비우스가 다짜고짜 입술을 틀어막자마자 간단히 제압됐다.

진즉 저럴 것이지!

그리고 가출선배는 내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에 갈기갈기 찢겨서 죽기 직전이다.

여태 버티고 있는 건?

【행운】

【불패】

두 신격이 악착같이 그의 목숨줄을 붙들고 있는 덕분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

“잘 가십시오.”

“잠깐.”

등 뒤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아...”

나는 무심코 묻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건 모를 수가 없었다.

『행운』

『불패』

유감스러운 가출선배에게 신격을 준 진짜가 강림했다.

몰랑몰랑~

...마스터 몰랑도 계셨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