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12화 (412/430)

 412화

[31회차] 몰랑한 군신

굉장히 특이한 남자였다.

오른쪽 어깨에는 견장처럼 까마귀가 앉아있고, 왼쪽 어깨에는 마스터 몰랑이 몰랑거리고 있다.

동물조련사 같다고 할까?

그리고 가출선배와 묘하게 닮은 얼굴.

더 잘생겼냐고 묻는다면, 그 반대라고 하겠다.

둘이 혈연이라면, 분명히 마누라가 천하절색이라서 유전자가 개선된 게 틀림없다.

그가 말했다.

“계약이 갑자기 끊어져서 손자가 죽은 줄 알았지. 그러면 유품이라도 회수해주자는 마음으로 급히 찾은 거다만...”

“까악.”

“이 까마귀는 신경 쓸 것 없습니다, 젊은 용사님? 이 녀석은 애완동물 2호 같은 거니까.”

몰랑몰랑~

“그리고 이쪽은 1호 겸 비서. 저 먹보랑 달리 매우 유능한 친구입니다.”

나는 가출선배의 경추 6번과 7번 사이를 거머쥔 채 고개만 돌려서 그자의 얘기를 들었다.

“당신의 손자?”

“그렇습니다. 대략적인 상황을 보고 미리 변명하자면, 수많은 자손 중 하나입니다.”

“그러면 수많은 자손 중 하나쯤은 죽어도 괜찮지 않으신지?”

“하하! 이거, 대단히 큰 오해를 하신 모양이군요.”

“......”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솔직히 말하면, 상대의 거대함에 질린 상태.

『행운』 『불패』 『몰랑』 『팝콘』 『응징』 『마계』 『검식』 『춘장』 『이상』 『지혜』 『하렘』 『탄생』 『창조』 『군단』 『사랑』 『후추』 『추종』 『영광』 『날씨』 『갈치』 『교육』 『행성』 『섬멸』 『게임』 『야삽』 『양파』 『당근』 『피망』 『팬티』 『수은』 『친구』 『강철』 『구리』 『백금』 『혈통』 『과학』 『육아』 『방송』 『후원』 『도박』 『감자』 『해골』 『고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섭리의 숫자에 질려 벌렸다.

어이없는 것들도 은근히 많았지만, 그렇게 쌓인 힘의 총량은 내가 비벼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싸우면 어떻게 해볼 틈도 없이 가루처럼 바스러지리라.

저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이건 신경쓰지 마십시오. 섭리에 도달한 어떤 신들의 힘을 합쳐놓은 것뿐입니다.”

“......”

“저 개인은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보유한 섭리는 끽해야 셋. 숫자가 능력의 척도는 아니지만, 하나인 당신이랑 별 차이 없습니다.”

자신의 섭리는 셋이고 나머지는 아니라고 말하는 남자.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어깨 위의 애완동물 말고, 당신은 누구입니까?”

“사령관. 보통은 대장이라고 불립니다. 마치 골목대장 같지 않습니까? 하하하!”

“......”

“쩝. 농담이 안 통하는 분이시군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지도 모르고. 저는...”

『아주 몰랑한 어떤 군신이 씨익 웃습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붕붕 손을 흔듭니다』

『매우 조급한 어떤 마신이 시큰둥합니다』

“이런 존재입니다.”

“워...”

나머지 둘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모르지만, 우주에서 가장 강하다는 3대 신이 모였다.

눈앞의 존재는 그 중 하나.

그래서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저는 총사령관. 어떤 신들에게 위임받은 섭리를 행사하여 우주에서 벌어지는 큼직한 사건들을 처리합니다. 손자의 문제는... 먼지처럼 아주 작은 일에 속하죠.”

“당신에게 큰 일은?”

“500억 인류가 사는 행성이 블랙홀에 빨려들기 전에 구해서 안전한 은하계로 옮긴다던가?”

“......”

스케일이 너무 바보 같아서 말문을 잃고 말았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 저에게는 매우 사소합니다. 불행한 극소수에게 신경 쓸 시간도 없지만,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안 할 만큼 숫자감각이 마모되버렸거든요.”

“......”

“이거 참... 넋두리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당신을 보면서, 젊은 시절의 패기 넘치던 제가 떠오른 모양입니다.”

어떤 군신의 얘기를 들으면서 소름이 쫙 돋았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내가 1회차 때부터 추구했던 ‘용사의 삶’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 규모가 국가에서 우주로 크게 확장됐을 뿐.

“당신은...”

“얘기하십시오.”

“아니. 아무것도.”

도저히 물어볼 수 없었다.

인간적으로 어딘가 망가져버린 현재의 자신에 만족하느냐고.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손자의 문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우으...?!”

“그래. 이 할아비가 모를 리 없잖느냐. 내 비서가 얼마나 유능한지는 너도 잘 알 터.”

몰랑몰랑~

마스터 몰랑의 할아버지뻘 되는 무지갯빛 슬라임이 군신의 어깨 위에서 몰랑거리셨다.

교황 몰랑이.

정말 멋진 몰랑거림이다.

“하지만 손자의 잘못은 우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매우 사소한 축에 속합니다. 녀석이 여성 편력이 좀 심하긴 했어도, 정치력은 썩 훌륭한 편이었습니다. 은하계 하나를 평화롭게 운영한 실적은 잘못을 덮고도 남을 수준이었죠.”

“그래서 용서해달라?”

“아아, 재차 말씀드리지만, 오해하지 마십시오. 은하계를 운영할 수 있는 후보는 많습니다. 똑똑한 몰랑이, 순진한 몰랑이, 친절한 몰랑이, 영리한 몰랑이. 정직한 몰랑이, 냉철한 몰랑이 등등. 찾아보면 더 있을 겁니다.”

“과, 과연...”

마스터 몰랑의 형제들이 우주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제가 알면서도 굳이 손자를 가만히 놔둔 건, 녀석보다 더한 수십억 폭군도 함께 처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손자만 처벌한다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리고 몰랑이가 다스리는 완벽한 세상에서는 당신 같은 새로운 신이 절대 태어나지 않습니다. 난세가 영웅을 낳는 법이니까요.”

“기괴한 방침이네.”

새로운 신을 탄생시키기 위해 고의로 방치했다니?

“공정한 인신이여. 당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강한수란 이름을 쓰던 1회차 때, 무난하게 판타지아를 졸업했다면 지금처럼 강해질 수 있었겠습니까?”

“......”

그건 모른다.

하지만 아닐 확률이 높다.

잃어버린 1년이란 시간은 아깝지만,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회적으로 크게 대성했을 것이다.

특히, 운동선수.

혼자서 올림픽 금메달을 싹쓸이할 수 있으리라.

월드컵? 축구도 골키퍼와 감독 없이 11대 1로 경기해도 얼마든지 이길 자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용사’는 없다. 진절머리쳤겠지.

“저는 당신처럼 훌륭한 신이 태어난 것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당신이 왜?”

“제가 모든 신의 총사령관이 된 이유는, 우주에서 가장 강한 적에 맞서기 위함입니다. 이름은 솔로(Solo). 먼 과거, 모든 신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서 승리한 절대신입니다. 그리고 저는 솔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를 대비하여 신들의 연합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신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솔로...”

굉장히 고독할 것 같은 이름의 절대신이군.

몰랑몰랑~

“제 비서가 당신에 대해 조금 조사해봤는데, 정말 화려한 전적이더군요. 판타지아 교육장은 신(神)이 될 길을 완벽히 차단한 세계였습니다. 틀에 짜인 주입식 사상으로는 자주성이 발현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당신은 고작 200년만에 3등성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진흙 위에 핀 연꽃 같은 반발심리가 당신을 키워낸 걸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없군요.”

“어? 어라?”

분명히 내 손아귀에 있었던 가출선배가 사라졌다.

“못난 손자는 제 명예를 걸고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판콘형 100년.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녀석의 가장 큰 죄는 제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시킨 겁니다.”

“뭐...”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만?

나도 비겁한 마누라에게 밤마다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생긴 용사님과 함께 밤을 보낼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여기라고.

예전에는 쏘시아가 코방귀꼈었는데, 요즘은 잘 먹혀서 내 주문을 뭐든 들어준다.

“그러면 이만.”

“까악!”

“...먹보야. 분위기 깨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아주 몰랑한 어떤 군신이 작별인사를 건냅니다』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붕붕 손을 흔듭니다』

『매우 조급한 어떤 마신이 손을 휘휘 젓습니다』

“까악! 까아악!”

“아, 좀...!”

팟-!

아주 몰랑한 어떤 군신은 까마귀와 투닥거리며 떠났다.

그리고 나는?

“거참...”

『공정한 어떤 인신이 난감해합니다』

정말 제멋대로네!

손자를 직접 처벌한다고 데려간 거는 아무래도 좋다.

그가 정말로 처벌할지는 내 관신 밖이니까.

애초에 목표로 했던 절친 뇌비우스의 약속은 무사히 완수했으니 말이다.

문제는 따로 있다.

“언제나 뒷수습이 문제군.”

서로 빼앗고 뺏기는 전쟁의 결말은 절대 허무하지 않다.

귀찮을 뿐이지.

몰랑?

몰랑?

몰랑?

“...어라?”

어떤 군신의 어깨 위에 있었던 교황 몰랑이가 아니었다.

이 몰랑이들은 사무원 같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친우여. 하늘을 봐라.”

“하늘?”

나는 완전히 녹아내린 에르단티의 잘록한 허리를 한 팔로 끌어안고 있는 뇌비우스의 말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허탈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몰랑함대.

그 본함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많은 몰랑로이드가 우주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깡촌이라서 참 좁군요. 하지만 이렇게 금방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또 너냐?”

“지칭대명사는 좋지 않습니다. 용감한 몰랑이 일병. 사령부로부터 행성복구사업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군신...”

뒷수습까지 완벽하다니...

심지어, 나처럼 직접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우수한 수하를 많이 거느리고 있다.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용사의 모습.

이대로 저 남자의 발자취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인가.

“관계자인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행성복구작업을 지켜보시겠습니까?”

“내가 백수인 줄 아니? 당연히 돌아가야지.”

GGG급 용사님은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

“Seeeeeex~!”

나는 섹시하게 우는 가오리를 타고 빠르게 귀가했다.

몰랑소프트의 간섭이 사라지면서 드디어, 드디어 온전히 나만의 판타지아가 됐으니까.

이젠 잘되면 내 덕, 못 되면 마누라 잘못이다.

“잘생긴 남편! 그건 너무 불합리하잖아?!”

“그러면 두 번째 마누라가 되시던가.”

“진짜 비겁해!”

“흥! 첫 번째 마누라를 아무나 하는 줄 하냐?”

“아우으으...”

내 달변에 쏘시아가 분통을 터트렸지만, 마법의 단어인 ‘첫 번째’에 결국 굴복했다.

첫 번째에 한이 맺힌 ‘두 번째 악마’다운 결정이로군!

그때, 쏘시아가 말했다.

“이제 막 돌아온 남편에게 조금 미안한 얘기인데, 본가(本家)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장모님께?”

“아니. 딸에게서 사위를 빼앗으려는 엄마는 알 바 아니야. 잘생긴 남편님의 집.”

“흠...”

지구 기준으로 내가 없었던 약 25년 동안 괜찮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문제가 터진 걸까?

“이걸 봐.”

나는 쏘시아가 내민 몰랑폰의 메신저를 읽었다.

⤷나: 어머님! 아주 기쁜 소식이 있어요! (오전 1:04)

-----2050년 9월 17일-----

⤷어머님: 문자가 밤에 와서 확인이 늦었네. (오전 7:04)

⤷어머님: 아가야. 그래서 무슨 기쁜 일이니? 두 번째 손자라도 생겼어? (오전 7:05)

⤷나: 하던 일이 잘 풀려서 조만간 남편도 지구에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전 7:08)

⤷어머님: 그래? 잘 됐네. 요즘 내 문자를 자주 무시해서 살짝 화가 났었거든. (오전 7:09)

⤷나: 그랬나요. 남편이 잘못했네요. 조만간 함께 찾아뵐 테니 그때 혼쭐을 내주세요. (오전 7:11)

“...마누라야. 더 읽어야 하냐? 아니면 네 골반부터 당장 혼쭐을 내줄까?”

“더 아래야, 아래.”

나는 찔끔한 쏘시아의 말에 따라 문자를 쭉 아래로 내렸다.

⤷어머님: 아가. 오기 전에 꼭 연락하렴. (오전 9:24)

⤷나: 네. 어머님. (오전 9:25)

-----2050년 9월 17일-----

⤷어머님: 큰일 났어! 이걸 어쩌지? (오전 6:31)

⤷나: 어머님. 갑자기 무슨 일이신데요? (오전 6:38)

⤷어머님: 형이 온다는 말을 들은 둘째가 가출했어. 한수가 동생에게 심한 말을 한 걸까? 만나면 죽인다고 했다던가. (오전 6:39)

⤷나: 설마요. 그이가 척추와 골반을 막 만지긴 해도 가족은 끔찍하게 아끼는걸요. (오전 6:41)

⤷어머님: 여전히 안 돌아와. 못 찾겠어. 혹시 누군가에게 납치된 걸까? 어쩌지? (오후 4:04)

⤷나: 걱정하지 마세요. 분명히 괜찮을 거예요. 남편이 돌아오는데로 얘기해볼게요. (오후 4:06)

“동생 녀석이?”

“응. 잘생긴 남편님. 혹시, 동생에게 심한 협박 문자를 보낸 적 있어?”

“아니.”

웬지 정이 안 가서 문자를 주고받은 적도 없다.

녀석도 나를 피하는 눈치였고.

그런데 동생이 가출한 원인으로 내가 의심받고 있었다.

가출한 타이밍이 절묘한 탓이다.

“어떻게 할래?”

“당장 가봐야지.”

만나자마자 어머니의 테니스라켓에 처맞을 것 같은 이 상황에 느긋하게 일할 순 없었다.

이유가 좀 어이없지만...

매연으로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고향별 지구로 드디어 돌아가게 됐다.

용사님의 귀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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