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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413화 (413/430)

 413화

[32회차] (구)마왕의 흔적

사춘기의 아이들이 가출하는 건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내 동생은 그 시기가 좀 빠르게 오긴 했지만, 어머니가 예전부터 조숙하다고 칭찬한 녀석이라서 그 또한 놀라울 것 없다.

문제는...

“어째서 그게 내 잘못처럼 엮이냐는 거지!”

지구와 판타지아의 거리는 계산하는 게 멍청할 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 내가 왜?

이게 다 비겁한 마누라의 입방정 탓이다.

“어... 따져보면 그렇긴 한데, 나는 좋은 소식을 어머님께 알려드리려고 했지. 갑자기 찾아가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서프라이즈~! 몰라?”

“남편님을 강도로 착각한 어머님의 테니스라켓에 맞고 싶으면 뭔들 못해.”

“......”

딱 잘라서 ‘내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을 못 알아볼 리 없어!’라고 부정하고 싶지만, 자신 없는 내가 정말 싫군.

떨어진 세월이 무려 25년이나 되고, 내가 체감하는 시간은 얼추 200년이 넘으니까.

이 불효자는 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우주에서는 불효자식을 팝콘형에 처하지만, 지구에는 그런 법이 없잖아?”

“어제도 들었는데, 팝콘형이 대체 뭐야?”

“말 그대로. 팝콘으로 만드는 형벌이지.”

“...뭐?”

“죄인의 몸에 버터를 바르고 초대형 후라이펜에 튀겨. 체험자들 말로는, 1초가 1년 같은 환상적인 경험이래.”

“그렇군...”

척추도 마음도 착한 이 후배만 안 건드렸어도 떵떵거리며 잘 살았을 텐데...

가출선배의 신격 ‘행운’은 짝퉁이었던 모양이다.

명복을 빌어주자. 몰랑.

“그래서 잘생긴 남편님. 오랜만에 고향별에 돌아가는 심정이 어때?”

“흠... 그다지? 내가 살던 동네도 아니고.”

세월이 무상했다.

유복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던 우리 가족.

정든 테니스 동호회 때문에 부모님이 절대 이사 안 가실 줄 알았는데, 25년이나 흐르면 그것도 바뀌는 모양이다.

하물며 육지도 아니다.

바다 위.

일명, 해상도시.

비겁한 마누라의 설명에 따르면, 지구의 최상류층만 사는 대단한 곳이라고 한다.

“좀 많이 안다?”

“당연하지. 씨드를 낳고 한동안 지구에서 보냈는걸.”

“애취.”

젖꼭지 장난감을 빨고 있던 아들 씨드엘이 재채기했다.

...나를 닮아서 귀엽군.

“아들아. 지구의 매연에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 애취!”

“풋!”

“웃지 마. 쩝. 내 머릿속의 지구는 이렇지 않았는데. 너무 그리워서 미화된 건가...?”

예전에 잠깐 맛보기로 지구에 들렀을 때도 바다 위에 무언가를 건조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외계인들이 육지만 공격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바다 위에 군수공장을 지었다면, 현재는 그게 확대되어 주거용 도시가 되었다.

지구에서 가장 안전한 터전.

우리가 방문한 해상도시의 이름은, 펙토리아 알파 시티(Factoria-α city).

지구 굴지의 초대기업 펙토리아가 태평양 위에 건조한 첫 번째 해상도시다.

“남편님. 이게 뭔 줄 알아?”

“시커먼 카드네.”

“후후! 내 여권이야. 원래는 입국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나는 VVIP라서 제외. VIP는 본인만 되지만, 이건 VVIP라서 동행도 면제란 말씀!”

“......”

판타지 야만인 출신의 마누라가 나보다 지구에 익숙하다는 사실이 무척 분했다.

위이잉-

위잉-

곳곳에 배치된 감시카메라가 우리를 쫓는다.

판타지아 졸업생들이 능력치를 활용해 무단입국하는 걸 경계한다는 게 느껴지는 빼곡한 배치.

또한, 알파 시티는 계획도시답게 도로가 반듯했고, 건물들도 분위기가 통일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와! 굉장한 미인이다...”

“애가 있는 거로 봐선, 옆에 흑곰이 남편이겠지?”

“전혀 안 어울리는 커플이네.”

“쯧. 여자가 아깝다.”

우리를 보면서 수근거렸다.

“흠...”

판타지아 차원에서는 내가 초절정 미남이고, 쏘시아는 평범한 아낙네 취급이었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정반대!

참으로 부조리했다.

“후후후! 예전에는 두 번째 저주 덕분에 미녀 취급받는 줄 알았는데, 지구에 와보니 그게 아니더라고~”

씨드를 안고 있는 쏘시아가 우쭐댔다.

“킁. 잘도 좋겠다.”

판타지아 남대륙 끝자락에서 밭일하는 아가씨를 데려와도 지구에선 여배우 확정!

판타지 야만인들이 지구인보다 유전자가 뛰어난 게 아니라, 태아 때부터 능력치의 보정을 받으며 성장한 덕분이다.

그 결과, 판타지아에선 외모가 상향평준화됐다.

“집은 저쪽이야.”

“알면 곧장 갔어야지. 사람 많은 거리는 왜 왔냐?”

“후후♪”

이 비겁한 유부녀는 지구인들에게 주목받는 이 분위기를 즐기는 듯했다.

“기분 좋냐?”

“응응! 판타지아에서 죽은 자신감이 살아나는걸!”

“오냐.”

“잘생긴 남편님. 잠깐만.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갈 거야?”

“......”

이 비겁한 마누라가 질문하는 의도를 파악하지 못해서 한순간 멈칫했다.

내 복장이 뭘?

용사로 복직하긴 했지만, 견장과 망토를 두른 중세시대 용병 같은 차림은 아니다.

말끔한 검은색 가죽옷.

내가 아무리 오랜만에 고향별에 왔어도 현실감각마저 떨어진 건 아니다.

이 MAX급 남편님을 너무 얕잡아보는 거 아니야?

“여긴 태평양 한복판이야. 고온다습이라고.”

“그래서?”

“잘생긴 남편님은 괜찮을지 몰라도, 남들 눈에는 엄청 덥고 답답해보여. 그리고 등짝. 날개 때문에 개방해놓은 모양인데, 지구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그러면 변태 소리 들어.”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쏘시아가 팔짱 끼고 끌어당기는대로 질질 옷가게에 따라들어갔다.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어서 오세- 히익?!”

“남편이 계절 감각이 없어서 시원한 옷을 좀 보려고 하는데요.”

“가, 강도인 줄... 어흠.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름 신상품을 보여드릴게요.”

손님에게 뭐라는 거야?

굉장히 불친절한 종업원이다.

그래도 반팔, 반바지로 갈아입은 내 우람한 팔뚝과 허벅지를 보더니 태도가 싹 바뀌었다.

“와... 아내분. 밤마다 행복하실 것 같아요.”

“아주 죽어나요~♪”

“어머어머!”

날씨가 어떻든 오랜만의 재회인데, 너무 가벼운 차림 아닌가? 동생도 실종된 상황이고.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쏘시아. 얼른 가자.”

“응. 그런데 남편님. 늘 고향별을 그리워한 것치고는 주위에 관심이 없네.”

“...낯서네.”

너무 많이 변했다.

심지어 이 해상도시는 내가 살던 땅도, 하늘도 아니라서 추억을 더듬을 게 전혀 없다.

“애취.”

매연 빼고.

쏘시아는 해상도시의 중심부 번화가로 나를 안내했다.

딱 봐도, 이 도시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노른자땅.

여기에 카페를 차리면 발로 운영해도 성공할 것 같다.

“저 건물이야.”

“좋은 곳에 사시네.”

이 비싼 땅에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으로 살고 계셨다.

차원을 소유한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게 대체 얼마야?

“잘생긴 남편님의 며늘아기를 사칭하던 빅토리아란 영국계 여자가 마련해준 거야. 지금은 도련님을 노리더라고.”

“내 동생?”

“응. 그런데 실종돼서 그쪽도 비상인 모양이야.”

“그렇군.”

이 도시에 깔린 감시카메라 숫자는 비정상적으로 많다.

하기야 지구의 알짜배기 부자들만 사는 곳이니 치안에 신경을 안 쓸 수 없겠지.

그런데 내 동생은 이 감시망을 뚫고 실종된 듯하다.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일반인이라면.

“...녀석, 뭔가 있군.”

내게서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았을 때부터 의심스러웠다.

“남편님. 저기를 봐.”

“야. 저기라고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아...”

핀잔을 주던 나는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아들? 안 본 사이에 정말 많이 변했네?”

“어머니...”

건물 2층 테라스에서 어머니가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

좀 더 감동스러운 재회를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가출한 동생 녀석만 아니었다면 분명히 그랬으리라.

“좀 때려주고 싶지만, 둘째가 실종된 심각한 상황이라서 참는 줄 알아.”

“네...”

강해지면 뭐하는가?

어머니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잘 돌아왔다.”

“아버지... 변함없으시네요.”

요리 잘하시는 어머니 대신 앞치마를 두른 아버지가 부엌에서 짧게 인사를 건네셨다.

그 며늘아기 사칭범 때문에 잘 산다고 들었는데, 가정부를 쓰지 않는 모양이다.

“기다려라. 그 서구식 판타지 세계에서 못 먹어봤을 요리를 해줄 테니.”

“네.”

유감스럽게도 그런 음식은 없습니다, 아버지.

몰랑폰으로 지구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날부터 내 식탁은 다채로워졌다.

인터넷에 다양한 요리 레시피가 깔려 있으니까.

...그렇지.

“저도 지구에 없는 요리를 선보이겠습니다.”

탁.

손가락을 튕기자 테이블에 판타지아풍 요리들이 쫙 깔렸다.

복제품.

하지만 영양성분이나 맛은 원본이랑 약간의 차이도 없다.

“아들. 용사가 됐다더니 마법요리사가 됐네.”

둘째를 찾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불만 가득한 어머니의 말투는 굉장히 쌀쌀맞으셨다.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군...

이게 다 동생놈 탓이다.

“용사는 뭐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보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전혀 안 늙으셨네요. 어머니는 아예 역주행 중이시고.”

“요즘 나오는 약이 좋거든.”

“약... 제가 없는 사이에 불로장생의 묘약이 개발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시간이 그만큼 지났단다. 네 동생이 태어나서 대학에 들어갔을 만큼.”

“그, 그렇죠.”

어색하다! 미치겠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상쇄하고 싶지만, 중간에 낀 보이지 않는 동생놈 때문에 무슨 대화를 해도 진전이 없었다.

다음은 무슨 말을 해야...

“그 약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성분이 궁금합니다.”

“봐서 뭐하게? 동생 찾는데 도움이 돼?”

“......”

당연히 아니다.

그리고 대화하면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음을 실감했다.

나이.

부모님이 나보다 어리다.

판타지아와 지구의 시간축이 달라서 생긴 현상.

씁쓸했다.

내가 원해서 판타지아 차원으로 가출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지구로 돌아오고자 목숨 걸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 상황을 보라.

가출한 동생놈 탓도 있지만, 내게 ‘수고했다.’는 한마디 빈말조차 없으시다.

나는 그런 부모님을 이해했다.

낳고 기른 자식이 실종됐으니 초조하고 불안하시겠지. 내가 실종된 25년 전에도 이러셨으리라.

여기서 내가 어리광을 부리면 싸움이 나겠지.

“남편님...”

쏘시아가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본다.

괜찮다.

1회차 때, 동료들은 이보다 더 모질게 나를 시험하곤 했었다.

“일단 밥부터 먹은 후, 동생 녀석은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녀석이 아니라 한진이야. 강한진.”

“네. 제 역량을 총동원해서 한진이를 찾아보겠습니다.”

내 대답이 그래도 마음에 드셨던 걸까?

어머니가 호주머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내게 내미셨다.

“자.”

“...뭡니까?”

“회춘약을 보여달라며.”

“그런 의미가... 일단은 맞긴 하지만, 잠시만요.”

나는 어머니께 받은 캡슐 형태의 회춘약을 부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굉장히 시커먼 가루.

굉장힌 친숙한 색이다.

손에 묻은 그것을 살짝 입에 대서 맛을 본 후에 확신했다.

굉장히 희석해놨지만, 나를 속일 순 없다.

“남편님. 그건 설마...?”

“그래. 이건 회춘약 같은 편리한 보조식품이 아니야.”

모를 수가 없다.

지금은 나의 힘이 된 것.

그 정체는,

“마왕 페도나르의 마기다. 많이 먹으면 악마가 돼.”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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