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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414화 (414/430)

 414화

[32회차] 이 마기는?

“아빠가 지구에?”

“이게 장인어른 짓인지는 아직 몰라.”

나는 비겁한 마누라의 판단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내가 판타지아 차원에 납치된 이후, 지구에 오늘 처음 와보는 건 아니다.

잠깐, 아주 잠깐 약올리는 맛보기처럼 하루 머문 적이 있었다.

...하루도 아니었나.

“남편님이 뿌린 마기일 수도 있다는 거야?”

“그래.”

나의 노후를 위해 마기로 지구의 지배층엥 접근했다.

내가 직접 한 건 아니고, 당시에 마기로 타락시킨 지구인들에게 그리 명령해놨었다.

거기까진 완벽했거늘...

“아하! 노후자금을 써보지도 못하고 다시 죽어서 귀여운 아기님으로 환생했구나?”

“그렇지.”

이게 참 애매했다.

당시에 가짜였던 나는 진짜 마왕이 됐고, 지구 기준으로 20년 넘게 명령을 회수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 명령이 지금도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무슨 뜻이냐?

회춘약.

이게 내 명령에서 비롯된 어떤 악마의 충심에서 비롯된 짓일 수도 있다는 거다.

“말도 안 돼. 나는 두 번째 악마인걸! 내가 마기를 못 알아볼 리 없어!”

“소량이니까.”

나도 이 회춘약을 보기 전까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마기의 주인인데 왜?

그래서 ‘내 소행’이라고 여전히 단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변질됐네.”

“맞아. 이건... 그렇군. 예전에 악마대공C가 마왕 페도나르에게서 독립하려고 마기를 변용했던 때와 매우 흡사해. 이쪽이 완성도가 훨씬 높긴 하지만.”

“그것도 말이 안 돼. 지구의 악마는 20년도 안 됐잖아. 이렇게 정교한 마기의 운용은 나도 불가능해. 아빠가 아니고는... 어?”

“장인어른이라...?”

그렇군.

실종된 장인어른이 지구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열렸다.

“너희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지금은 알약의 출처보다 동생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엄마 말이 틀렸어?”

굉장히 불쾌하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군.

일단은 내 가정의 평화부터 되찾아야겠다.

“어머니.”

“왜?”

“정말 사랑합니다. 아버지도 덤으로요.”

“갑자기 뭔... 응?”

나는 최초의 악마에게 가업을 물려받은 정통 마신(魔神).

문제의 원인이 마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처리는 매우 간단하다.

스르르...

마기를 준 악마를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대가’를 억눌렀다.

그 부작용을 아예 없엘 수 있다면 좋겠지만, 중독성이 전혀 없는 편리한 마약은 없잖은가?

내 추측이 맞다면...

“.아들.”

“네.”

“어깨 주물러.”

“네.”

“25년 만에 돌아오면서 어떻게 선물도 안 사올 수 있니? 마음 같아서는 테니스라켓으로 그 인정머리 없는 머리를 냅다 후려갈기고 싶지만, 귀여운 손자 앞이라서 참는 줄 알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어머니.”

“흐응~ 아들이 크니 좋네. 예전에는 밋밋했는데, 힘이 세져서 어깨의 뭉친 근육이 확실히 풀리는 느낌이야...”

“자주 해드리겠습니다.”

“이상하네. 머리도 좀 맑아진 기분인걸? 기분 탓이겠지?”

“기분 탓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모자(母子)의 훈훈한 시간에 감히 끼어들지 못한 쏘시아는 설거지를 돕는다더니...

“몰랑아.”

몰랑몰랑~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마스터 몰랑을 부려먹는 만행을 저질렀다.

진짜 비겁한 악마로군!

“...아들.”

“네.”

“미안.”

“뭐가 미안하십니까?”

“알면서 묻지 마.”

“네.”

“둘째가 가출한 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리 호들갑을 떨었는지... 내 아들이라면 어디서든 잘 살겠지. 안 그래, 장남?”

“지당하십니다, 어머니!”

그렇다.

이게 내가 알던 어머니다.

예전처럼 테니스라켓부터 쥐는 일은 없어지셨지만, 분위기나 말투는 바뀌지 않으셨다.

아차차. 선물을 준비 안 해서 섭섭하다고 하셨지.

절대 흘려들어선 안 된다.

어머니의 말씀은 RPG 게임의 숨겨진 떡밥처럼 포착해서 반드시 해소해드려야 한다.

안 그러면 두고두고 아들을 예뻐해 주시지...

“인정머리 없는 아들이 어깨는 잘 주무르네.”

“...하하! 이 1등급 효자가 선물을 준비 안 했을 리 없잖습니까? 어머니의 분위기가 워낙 심각하셔 서 꺼내기 민망한...”

“엄마 잘못이다?”

“그, 그럴 리가요. 그냥 나중에 보여드리려고 했습니다.”

“흐응~”

“지금 꺼내겠습니다.”

여기서 스톱!

마스터 몰랑의 가르침으로 뇌를 활성화하고, 신력으로 흐르는 시간을 대폭 늦췄다.

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손자를 안겨드린 게 가장 큰 선물이지만, 씨드엘을 낳는다고 고생한 건 내가 아니라 비겁한 마누라이기에 소용없다.

어떤 선물이 좋을까?

“남편님. 그게 태양계의 시간을 통째로 멈춰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야?”

내 사도라서 영향을 받지 않은 비겁한 마누라가 묻는다.

“당연하지. 애초에 말이다. 네가 선물은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진즉 준비했어.”

“그, 그거야 어머님의 분위기가 워낙 안 좋아서...”

“알아. 그냥 핀잔 주고 싶었어.”

“너무해!”

“흠...”

쏘시아의 변명을 들으니, 좀 수상하긴 하네.

마기에 중독되면, 마기가 더 많은 대상을 본능적으로 따르게 되니까.

그런데 어머니는 둘째놈을 맹목적으로 보호하려고 했다.

“동생을 의심하는 거야?”

“그래.”

마기의 중독현상에서 해방된 어머니는 ‘독립할 자신 있으니 가출했겠지!’라고 아주 대범하게 넘어가셨다.

하지만 이젠 개인적인 용무로 둘째놈을 찾아볼 생각이다.

확인하기 위해.

“동생이 어머님의 무의식을 지배했다는 거야?”

“그게 판타지아 악마들의 전형적인 수법이지.”

“예전에 만났을 때는 평범한 인간이었는데...”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것도 악마들의 수법이잖아.”

“저기, 남편님? 자꾸 잊는 모양인데, 나는 두 번째 악마야. 내 앞에서 악마란 사실을 감출 수 있는 악마는 없어.”

“네가 나태해진 탓이겠지.”

“웃...”

아니라고 딱 잘라 부정하지 못한 쏘시아가 매우 분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은 뭐가 좋을까나...”

가장 좋은 선물은 ‘로맨티넘 합금 테니스라켓’이지만, 그걸로 맞고 싶진 않기에 패스.

고민이 깊어져만 갔다.

“용(龍)은 어때?”

“날도마뱀?”

“남편님이 판타지아 생활에 익숙해져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지구인들이 상상하는 판타지아는 용들이 날아다니는 중세시대야.”

“그건... 흠. 그래서?”

“괜찮은 용을 선물로 드리면 이래저래 체면치레도 될 거야. 나를 봐. 우주마(宇宙馬) 덕분에 어딜 가던 어깨 펴고 다니는걸!”

“Seeeex!”

“과연...”

이해했다.

주차장에 날아다니는 자동차까지 구비해놓은 어머니가 혹할 만한 선물은 흔치 않다.

하지만 용이라면?

지구에서 절대 구할 수 없는 비매품이다.

“어때? 내 생각이?”

“...좋아! 그걸로 채택!”

판타지아에 귀속되지 않은 용(龍)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녀석들의 의사와 삶도 중요하기에 내 임의로 강요할 순 없잫은가?

그래서 무시해도 괜찮은 녀석으로 골랐다.

*

“정말로 괜찮을까?”

성장이 매우 느린 아들 씨드엘을 어머니께 맡겨둔 게 불안해서 묻는 게 아닐 것이다.

원인은 아마도,

“슬레이로리?”

“그 이름은 좀... 아무튼, 너무 불량한 용을 어머님께 선물로 드린 것 같아서 걱정 돼.”

“괜찮아. 슬레이로리가 좀 말랑하긴 하지만, 어머니가 몰랑하게 교육해서 잘 키우실 거야.”

“그렇다면야...”

어머니는 내 선물을 살펴보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그 덕분에 ‘저녁식사 전에 돌아올 것’이란 약속을 하고 밖에 나올 수 있었다.

무려 250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마기중독에서 자유로워진 어머니는 내 기억 그대로였다.

테니스라켓을 즉흥적으로 휘두르시지 않게 된 것만 빼고!

그래서 어리광부리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구쳤다.

그래도 나는 집 밖으로 애써 나왔다.

“슬슬 찾아볼까.”

부모님의 정신에 간섭한 이 빌어먹을 부효자식을 반드시 찾아서 척추를 아작 내주리라!

“어떻게?”

“그 회춘약을 제조한 제약회사부터 가봐야지. 여기서 멀지도 않거든.”

“은하계도 횡단하는 우리에게 거리가 중요한가?”

“...이 마누라는 쓸데없는 부분에서만 예리하네.”

“잘생긴 남편님. 아내를 순수하게 칭찬 좀 해봐! 우리를 힐끔거리는 저 사람들처럼.”

“별로.”

판타지아에선 평균보다 살짝 나은 쏘시아의 외모를 찬양하는 지구인들은 무시하자.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한 법.

척추가 아름다우면서 외면의 아름다움은 따라오게 되어있다.

“강한수 씨!”

제약회사 앞에서 어떤 여자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나를 아는 척해왔다.

“저기, 누구시더라?”

“첫마디가 진짜 너무한데요?! 저를 벌써 잊으신 건가요! 당신의 아내가 될 뻔한 여자인데!”

“그런 착각을 하는 여자가 매년 몇 명씩 튀어나와서.”

“...예전에 봤을 때는 남녀문제로 이렇게 오만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래서 누구시더라?”

내 질문에 대답해준 건 당사자가 아니라 쏘시아였다.

“반가워, 빅토리아. 온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용케 우리를 찾아냈네.”

“어머님께 들었어요. 곧 강한수 씨가 온다고...”

두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침 깨달았다.

“아아, 팩토리아였군! 진즉 그렇게 말할 것이지.”

“제 회사 간판을 보고 기억난 척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름은 그전에 이미 언급했잖아요!”

“빅토리아는 모르겠고, 팩토리아가 내 동생의 아내가 되겠다고 말한 건 기억이 나.”

“아앗...”

“그래서 넌 누구?”

“...팩토리아에요. 호호호...”

내 옆에서 쏘시아가 너무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마음에 안 드는 동생놈의 아내 후보라면 이 정도 시집살이는 각오해야지~

“너의 제약회사에 볼일이 있어.”

“제가 운영하는 제조공장은 많은데, 여길 콕 찍어서 오셨다는 건, 회춘약 때문이겠죠?”

“맞아.”

이게 평범한 약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기가 들어있다.

그게 문제.

이 마기를 어디서 구했을까?

판타지아 세계에서는 재료A와 재료B를 섞고 공정C를 가하면 마기가 생성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공정방법은 애초부터 재료에 마기가 깃들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단순히 추출한 것뿐.

만든 게 아니다.

모든 마기는 예외 없이 ‘마왕’에게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20년도 더 된 과거에 아주 조금, 지구에 뿌린 뒤에 공급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 제약회사는 어디서 그 많은 마기를 조달한 걸까?

“그런... 죄송합니다. 저도 이 약의 성분이 마기인 줄 몰랐어요. 알았다면 저부터 먹는 걸 자재했을 걸요.”

쏘시아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펙토리아가 호주머니에서 그 회춘약을 꺼내며 증명해보였다.

본인도 팽팽한 피부와 튼튼한 척추를 위에 틈틈이 챙겨먹는 중이라고...

“공급처가 어디야?”

이 제약회사의 공장설비들을 보고 있자니 웃음밖에 안 나왔다.

희석한 마기에 비타민을 섞을 뿐인데, 현대의 연금술처럼 요란한 공정을 거치고 있었다.

뭐, 투자자들이 시찰 오면 그럴싸하게 보이긴 하겠군.

“잠시만요.”

펙토리아가 관계자들을 호출해서 핵심 소재인 마기의 출처를 확인했다.

그런데 대답이 영 시원찮았다.

일찍감치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나는 되물었다.

“불확실하다고?”

“그게... 네. 저도 이게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제 회사에서 이런 일이...”

펙토리아의 얼굴은 창백했다.

다른 건 몰라도, 시중에 잔뜩 풀린 회춘약이 마기란 사실이 알려지면 끝장이니까.

지구에서 마기란?

마왕을 무찌른 판타지아 졸업생들에 의해 ‘매우 해로운 마약’이란 편견이 박혀있다.

그걸 팔았으니...

기업이 통째로 공중분해돼도 할 말이 없다.

“팩토리아. 입단속 잘 해.”

“네... 하지만 괜찮을까요? 마기에 지배받는 건...”

“어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야 대단한 용사님... 아...”

“부업이 마왕이다.”

내게 복종하지 않는 마기는 이 세상에 없다.

“수상한 동생아. 꼭꼭 숨어라, 마기가 보일라♪”

즐거운 숨바꼭질을 시작하자.

술래가 1억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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