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15화 (415/430)

 415화

[32회차] World of Magic(魔)

“김 대리. 일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결혼하면 다야? 인생 끝났어?”

“죄송합니다, 부장님.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여...”

“허!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오늘부터 철야를 해서라도 다시... 다시...”

“부장님?”

“...찾아야 해.”

“네?”

“찾아야 해. 그분이 내게 동생을 찾으라고 속삭이셨다.”

“예에?”

“김 대리. 지금부터 나와 함께 그분의 동생을 찾으러 간다. 이번에도 변명하면 철야로 안 끝날 줄 알아.”

“예에에-?!”

“하하! 박 부장이 옳은 소리를 다 하는군. 나도 간다!”

“사장님까지?!”

지구에 사는 수많은 악마숭배자들이 내 지시를 받았다.

그들 대다수는 마기가 아닌 회춘약으로 착각해서 본의 아니게 중독됐겠지만, 그건 판타지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마기인 줄 알면서 복용하는 자는, 정신보호계 스킬을 키웠거나 정말 벼랑 끝에 몰린 막장뿐.

아무런 대가 없이 마기로 회춘한 그들에게 내가 바라는 주문은 딱 하나.

“찾아라. 나의 동생을.”

지구에 숨어있다면 분명히 잡힐 것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이나 해저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그건 찾아내기 더 쉽다.

분홍색 구슬이 잔뜩 든 유리병에서 붉은색 구슬을 찾는 건 어려운 반면, 새하얀 모래상자 안에 든 붉은색 구슬은 수색범위가 좀 넓긴 해도 눈에 확 띄어서 찾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런 이치.

이마저도 내가 직접 하지 않는다.

“사회선생.”

뿅!

나의 정체를 알고 갑을(甲乙) 관계에 있는 교사를 소환했다.

“부르셨습니까, 총장님.”

베이커리 교장에게 시달려서 홀쭉해진 사회선생이 공손히 내게 인사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차원이 하나로 줄어들어서 훨씬 편해진 거 아니었나?

“예전보다 힘든 모양이네. 청원할 거 있으면 해봐. 베이커리에게는 비밀로 해줄게.”

“헉!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어. 나도 부려먹을 생각이니까.”

“네. 자기가 세상의 주인공이란 맛에 살던 용사들은 차원이 통합되면서 다시 평범해졌습니다. 용사가 용병보다 많아졌으니...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도퇴됐고, 저는 사회에서 도망친 그들을 위로해줄 애완동물을 키우느라 정신 없습니다...”

자초지종은 잘 알겠다.

중2병이 골수까지 차올랐던 용사들이 다시 사회부적응자로 돌아왔다는 모양.

그거 참 난감하군.

“그 부분은 조만간 베이커리 교장이랑 상의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가 내 본론이다. 가족이 실종됐다.”

“헛! 그런...”

“사람 찾는데 특화된 애완동물이 있으면 좀 빌려줘.”

“정말 큰일이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총장님이 수많은 교사 중에서 저를 고른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사회에 도태되어 숨어버린 사람을 찾는 것도 제 일이니까요.”

“...너, 엄청 유능하구나?”

사회부적응자와 관련된 일에서는 만능에 가까운 듯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 한시가 급한 일이니 바로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뿅! 뿅! 뿅!

사회선생이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애완동물을 소환했다.

“Maaang!”

“Gaaang!”

나도 잘 아는 멍멍이였다.

사자갈기처럼 머리 주변에 각각 붉은색, 푸른색 화염이 휩싸여 있는 검은색 늑대.

덩치는 흑우(黑牛)만하다.

“이건... 장인어른이 키우던 지옥의 개네.”

“맞습니다. 다 지났기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그분도 제가 도와드렸습니다. 감금생활이 길어지면서 정신적으로 지치셨거든요. 그래서 애완동물을 추천했습니다. 현재는 주인을 잃고 떠도는 이 둘을 제가 다시 돌보는 중입니다.”

“Maaang!”

“Gaaang!”

두 멍멍이가 꼬리를 흔들면서 애교를 부렸다.

“거참.”

예전에는 나의 경험치 공급원이었기에 감회가 새롭군.

“사냥개 혈통이라서 무언가를 찾는 건 기똥찹니다. 단, 공간도약은 흔적이 끊어지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군.”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발자국은커녕 머리털 하나 안 남기고 사라진 인간을 무슨 수로 찾겠는가?

그런데 이 멍멍이들은 ‘시간이 걸린다.’라고 했다.

공간도약해서 도망친 대마법사도 찾아낼 수 있다는 뜻.

그야말로 판타지 세계에 특화된 사냥개였다.

“동생분의 소지품을 주시면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제가 아닌 망구와 강구가 고생하지만요. 아! 붉은색이 망구, 파란색이 강구입니다. 전 주인은 고집스럽게 계속 이상한 이름으로 불러서 통제를 제대로 못 했지요.”

“그렇군.”

나도 이 녀석들이 단순히 900레벨대 애완동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원래는 사회선생이 극도로 훈련한 사냥개인데, 장인어른이 이름을 똑바로 안 불러줘서 활용하지 못한 모양이다.

“Maaang~”

“Gaaang~”

“오! 총장님께서 풍기는 마기가 좋은 모양입니다. 전 주인의 향기와 흡사하니까요. 녀석들의 이름을 부른 후, 찾으려는 자의 소지품을 코에 대면 알아서 수색을 시작할 겁니다.”

“똑똑하네.”

“최고의 품종에 최고의 훈련사가 붙었으니까요.”

사회선생의 말투에서 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찾게 되면 업무조정 외에도 꼭 포상하도록 하지.”

“주인 잃은 그 녀석들을 돌봐주시면 정말 기쁘겠습니다. 이번에 데리고 다니시다가 영 마음에 안 드시면 돌려주십시오.”

“고단수네.”

정든 애완동물을 매정하게 쳐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하하하! 그러면 이만.”

뿅.

멍멍이 2마리를 남긴 사회선생은 판타지아로 돌아갔다.

정말로 바쁜 모양이네.

“Maaang.”

“Gaaang.”

“...흠. 망구, 강구.”

“Maaang!”

“Gaaang!”

나는 사회선생이 가르쳐준 대로 녀석들의 코에 동생놈이 자주 쓰던 모자를 내밀었다.

킁킁.

킁킁.

그것의 냄새를 맡은 두 사냥개는 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도시 밖으로...

“아차! 여긴 해상도시인데, 어쩌려고...”

풍덩! 첨벙첨벙!

풍덩! 첨벙첨벙!

개답게 개해엄으로 태평양을 횡단할 모양이다.

웬만하면 육지까지 옮겨주고 싶었는데, 헤엄치는 속도가 제법 빨라서 저대로 가만히 놔둬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남편님.”

“말해.”

“이럴 거면 처음부터 망구와 강구만 동원해도 됐던 거 아니야? 괜히 지구인들의 일상을 방해한 게 아닌가 싶어서.”

“천만에.”

악마추종자들이 사방에서 들쑤시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그러면 동생은 은신처 같은 곳에서 나오기 힘들어지고, 이러면 추격전이 아닌 단순한 숨바꼭질이 된다.

“그렇구나.”

“가출한 공주를 찾아달라는 국왕R의 의뢰를 받았을 때 써먹은 방법이지.”

“그래서 찾았어?”

“당연하지. 안 들키려고 고급여관에 틀어박혀 있더군.”

“애처롭네.”

1억 명의 술래와 2마리 멍멍이에게 일을 맡긴 나는, 어머니와 한 약속시간보다 일찍 귀가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빨리 왔네.”

테니스복장을 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던 탓이다.

“응당 그래야죠.”

“눈치가 아직 살아있구나?”

“그 덕분에 판타지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이다.

어머니께 배운 눈치 보기 능력이 아니었다면 1회차 때 진즉 고꾸라졌을 것이다.

강하면 장땡?

처음부터 강한 자는 없다.

강자의 눈치를 보면서 차근차근 성장해가는 것이다.

“기대해도 되려나?”

“하하. 이젠 안 집니다.”

뿅.

나는 허공에서 테니스라켓을 소환했다.

내가 지구에서 고등학생 시절에 쓰던 녀석의 복제품.

기억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자신만만하네.”

“어머니. 체력 저질이었던 학창시절의 아들을 떠올리시면 곤란합니다.”

“그거야 게임을 해보면 알지 않겠니.”

“지당하십니다.”

적당히 상대해드리기로 했다.

빛도 잡아내는 육체능력을 가진 내가 질 가능성은 한없이 0%에 수렴하니까.

오랜만에 추억에 잠겨보자.

*

“내가... 졌다고?”

나는 효자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져드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참혹한 패배는 전혀 상정하지 않았는데?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저질 같았던 몸이 확실히 좋아졌네.”

“어머니. 조금 좋아진 정도가 아닌데요...”

“하지만 이 엄마를 이기려면 100만 년은 일러. 후후후♪”

“......”

물론, 양심적인 선에서 플레이하긴 했다.

그래도 어머니보다 모든 면에서 월등할 텐데, 결과는 참패.

할 말이 없었다.

“게임이 끝났으니, 이 아빠가 조언 하나만 하자면, 네 움직임은 너무 정직해.”

“제가요...?”

손자 씨드엘과 놀아주고 계시던 아버지의 충고.

말도 안 된다.

나는 척추 잡는데 실패한 적이 없을 만큼 변칙적으로 움직이는데 특화되어 있다.

그런데 정직하다고?

부정하고 싶지만, 이미 패배한 직후이기에 할 말이 없었다.

“아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중2병이니. 25년 동안 너만 성장한 줄 알면 착각이야.”

“그런...”

어머니의 핀잔에 말문이 막혔다.

나도 안다.

남들도 성장했겠지.

판타지 세계에선 마왕님이 전혀 성장하지 않고 기다려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가 성장한다.

용사는 경험치 5배 직업특전 덕분에 남들이 제자리걸음하는 것처럼 굼뜨게 보이지만, 그래도 모두가 성장한다.

혹은 퇴보하거나.

멈춰선 존재는 없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250년을 살아온 내 성장이 압도적인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결과는 대체...?

“테니스는 몸만 좋다고 이기는경기가 아니란다. 굉장히 심오한 스포츠지.”

아버지가 재차 충고하셨다.

“글쎄요. 무릎 연골이 닳으신 분들은 은퇴해서 배드민턴으로 빠지시던데요.”

“그건 논외고!”

뭐가 됐든 패배는 패배.

움직임이 정직하다는 충고를 곱씹던 나는 찬찬히 실내테니스장을 둘러봤다.

예전에 부모님과 다니던 야외테니스장과 격이 다른 인테리어와 시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은 어디든 비슷했다.

“어머. 한진 엄마. 한진이가 가출해서 우울해하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야?”

“첫째가 돌아왔거든요. 저기, 흑곰처럼 생긴 녀석이 제 아들이에요.”

“어머나. 둘째와 인상이 너무 달라서 못 알아봤네. 나는 또 팔촌쯤 되는 줄 알았지.”

“호호호! 나중에 시간 되면 한 번 쳐주세요. 중학생 때부터 제가 테니스를 가르쳐서 제법 해요.”

“그래? 바로 시험해볼까?”

이미 한 번 패배한 탓에 만만하게 보인 모양이다.

나는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과 테니스 경기를 여러 번 했다.

그리고 완승!

패배를 곱씹으며 성장했거나 신력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어머나. 엄마처럼 아들도 정말 잘 치네.”

“아쉽구먼. 내가 한 10년만 젊었어도...!”

“하하! 이 사람아, 건강도 실력이지! 그냥 칭찬해.”

“이번에는 방심해서 그래. 다음에 또 치자.”

오랫동안 테니스를 안 쳐서 기술은 다소 부족하지만, 압도적인 신체능력과 ‘저 공을 벤다!’라는 마음가짐으로 Z급 검술을 적당히 버무려서 해결했다.

그런데 왜 어머니에게는 패했는가...

“희한하군.”

하여간 장남(중요)이 완승해서 기분 좋으신 어머니는 ‘우리 아들이 일류대학에 갔어요!’라고 자랑하듯 들떠계셨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나는 실종된 동생에게 빼앗긴 내 입지를 하나씩 되찾아갔다.

“아주 좋아.”

판타지 세상을 100번 구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사명이다.

그렇게 닷새쯤 지난 날,

‘Maaang!’

‘Gaaang!’

사회선생에게 빌린 두 멍멍이가 신호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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