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19화 (419/430)

 419화

[32회차] 우주에 이런 일이...?

가칭, 판타지아8.

파릇파릇한 8학년을 위한 이 판타지아 차원은, 내 신격이 5%나 들어간 무지막지한 곳이다.

아무렇지 않게 밟는 잔디마저 5레벨 이상이라면 이해하겠는가?

숨만 쉬어도 강해질 것 같은 판타자아8은 지형지물이 튼튼해서 잘 파괴되지 않고, 복구속도 또한 비정상적으로 매우 빠르다.

그렇지 않으면 행성이 못 버티니까.

“Bluuuuuu!”

“Greeeeee!”

“Siiiiiiiiiiil”

용들이 번성한 판타지아8의 하늘을 가만히 올려다보면, 다양한 용들을 참새처럼 흔하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용을 공격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안 봐도 훤하다.

“낯선 용사를 보고도 무시하는 소년A여. 길 좀 물읍시다.”

“켁켁?!”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정의로운 A급 용사A입니다. 그럴싸한 맛집을 추천받고 싶으니, 협조해주시면 유혈사태는 없을 겁니다.”

“모, 목부터 놓고...!”

새로운 지방과 문화를 아는데 그곳 음식만큼 좋은 것도 없다.

맵다, 짜다, 싱겁다, 달다, 자극적이다, 시다, 느끼하다...

이러한 음식 스타일은 원주민들의 성격부터 환경까지 다양한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무척 말랑한 맛이군!”

소년A에게 추천받은 맛집의 요리들은 말랑한 맛이었다.

용족은 고룡(古龍)부터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아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요리 실력이 형편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

그래도 놀랍다.

용들은 다른 종족을 노예로 삼아서 요리를 시키긴 해도, 직접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수호자’ 혹은 ‘재앙’ 취급받는 용들이 판타지아8에서는 평범한 원주민이니까.

그래서 다른 종족을 노예로 두는 특권의식도 없다.

“여기에 음식점을 차리면 대박이 나겠군.”

도덕 아가씨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는, 나의 원대한 계획은 바로 철회.

물론, 포기한 건 아니다.

판타지아8에 용족이 많이 사는 건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다른 종족이 안 사는 건 아니니까.

아무튼,

『용사』

든든하게 배를 채운 나는 도덕 아가씨의 위치를 살폈다.

흠. 생각보다 머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눈깜짝할 사이에 갈 수 있지만, 그러면 너무 속물적으로 보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이동을...

“안녕하세요, 용사님?”

“아, 뇌비우스가 여기에 살았군.”

나의 친애하는 전우 뇌비우스 당사자가 아니다.

하지만 바늘 가는 곳에 실이 따라가는 법.

성룡왕 에르단티.

그녀가 여기에 있다면, 당연히 뇌비우스도 이 근방에 있을 터.

...발밑이군.

발밑이 어두워서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8학년 용사의 시작지점은 뇌비우스의 등짝 위에 지어진 고산도시.

이 친구는 그새 덩치가 더 커졌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뇌비우스와 에르단티의 두 딸이 우아한 몸짓으로 인사했다.

구면인 그 둘의 인사를 적당히 받아준 나는 에르단티를 돌아봤다.

“잘 합쳐진 모양이네.”

“그렇긴 한데... 오래전에 끝났기에 쉽게 말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이해해.”

가출선배에게 붙잡혀서 애완동물처럼 사육된 진짜.

뇌비우스를 만나서 두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산 가짜.

완전히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인격이 하나로 합쳐졌다.

가볍게 웃고 넘겼을 리 없다.

“그런데 이젠 학생도 아니신 용사님이 여긴 무슨 일이세요? 복학하실 분은 아닌데요.”

“시찰.”

“아! 건물주로서 입주자들이 잘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중이시군요?”

“비슷해.”

그 뒤, 나는 공명정대한 GGG급 건물주로서 VVIP 입주자에게 불편한 점이 있는지 물었다.

에르단티는 고민에 잠기더니 이윽코 답했다.

“뇌비우스 님의 흥미를 자극할 강자가 왔으면 좋겠어요. 주무시는 그분도 멋지지만, 5000년은 너무하다는 생각이 좀 들거든요.”

“그렇군.”

이 친구는 마누라와 자식을 등짝 위에 올려놓고 5000년 동안 퍼질러져 자고 있는 모양이다.

억지로 깨울 생각은 없다.

뇌비우스가 갑자기 일어나면, 그의 넓은 등짝에 세워진 고산도시가 무너지고 말 테니까.

“강자라면 조금만 더 기다려. 판타지아 꿈나무들이 열심히 올라오는 중이야. 다른 건?”

“음... 아! 이 아이들도 입학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면 좋겠어요.”

“그런가.”

남편 다음은 자식 생각인가?

최초의 성녀가 이런 의미는 아니지만,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성품의 소유자인 것 같다.

흠. 그렇지도 않나.

가족을 ‘남’에 넣을 순 없으니까.

하여간 에르단티의 희망사항은 잘 알겠다.

“특혜는 못 주지만, 입학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야.”

“감사합니다!”

“감사받을 일은 아니고.”

“오신 김에 식사라도 하고 가시는 게 어떠세요? 지난번의 패배한 설욕을 갚아드리겠습니다.”

“나야 좋지.”

용족은 요리를 못 하지만, 인간사회에 찌든 용들은 예외다.

예를 들어,

미소년으로 변신해서 여자들을 낚는 북대륙의 마룡왕 로리코스트.

미소녀로 변해서 초식남만 노리는 서대륙의 암룡왕 암스테로리.

사막 한복판에 노천탕을 만든 남대륙의 빙룡왕 슬레이로리.

선량한 신도들의 신앙심을 이용하는 서대륙의 신룡왕 로리마니아.

죽음의 바다에 영웅들을 가두고 사육하는 사룡왕 로리트론.

무한의 바다에서 다양한 촉수를 연구하는 해룡왕 크라운로리.

...위에 6마리가 겉보기에는 인간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중상급의 네임드 용왕이다.

그 위도 마찬가지.

광룡왕 로리칼리버, 천룡왕 로리나로크, 폭룡왕 드레드로리.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용들은 나잇값을 못한다.

이들의 위?

모든 용왕의 힘을 합친 것보다 강한 망룡왕 뇌비우스!

나의 절친이 군림하고 있다.

“이름은 제가 아는 거랑 많이 다르지만, 취미생활과 별호는 같네요. 그 용왕들은 인간이 많이 사는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어요.”

“그랬겠지.”

녀석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다.

동족들에게 분노한 뇌비우스가 몰살시켰을 때, 인간사회에 몸을 숨긴 어린 용들이 현재의 용왕.

젊은 시절을 인간사회에서 보내는 바람에 사고방식도 인간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다소 삐뚤어지긴 했지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말씀을 못 드렸지만, 그 변태 괴물의 마수에서 구해주셔 정말 감사합니다.”

“천만에.”

나는 에르단티의 집에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거하게 대접받았다.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먹다가 도중에 남겼을 것이다.

“쑥떡이 좀 와주면 좋겠는데...”

“나중에 같이 오지.”

“감사합니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입주민의 청원도 들어준 후, GGG급 건물주는 도덕 아가씨를 찾는 여정을 떠났다!

...참고로.

저 로리왕들은 다른 판타지아 차원에서 악명을 떨치며 용사들과 피 터지게 싸우고 있다.

*

판타지아 차원의 모든 생명체는 내 관할 아래에 있으며, 죽으면 윤회의 순환고리로 들어간다.

물론, 전부 그런 건 아니다.

저 9마리 로리왕들처럼 용사들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훌륭한 교보재들은 100년의 휴식기를 주고 다시 부활시킬 예정이다.

이러면 (구)교장 파르마엘의 치세 때와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나는 기억을 봉인해서 재활용하는 끔찍한 수를 쓰지 않는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자율.

모든 교육과정을 학생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길 생각이다.

그 판단의 대가도.

“마약용사!”

뿅! 뿅! 뿅! 뿅! 뿅!

땅, 불, 바람, 물, 마음.

5가지 정령왕을 이끌고 나타난 마약정령이 내 머리 위에 폴싹, 누추한 총배설강을 깔고 앉았다.

“오랜만이네.”

“왔으면 왔다고 나에게 말해야 할 거 아니냐. 섭섭하다!”

“그야...”

“섭섭하다!”

“......”

“히히히! 하여간 오랜만이다, 마약용사. 귀여운 씨드엘을 추한 조카가 빼앗아가서 어쩔 수 없이 잠시 아이들을 돌보러 판타지아로 내려갔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차원분열에 고스란히 휩쓸려버렸다. 히히히.”

“어이. 그건 옆집 놀러간 것처럼 가볍게 할 말이 아니잖아?”

진짜 괴물은 따로 있었군...

평소처럼 평범하게 얘기하지만, 눈앞의 이 마약정령은 수만 년 만에 나를 만나는 것이다.

수만 년...

수명의 제약을 벗어난 내게도 아직은 까마득한 시간인데, 이 정령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이 정령왕들도 포함해서!

부비적부비적.

인사는 마약정령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내 겨드랑이와 사타구니로 곧장 기어들어왔다.

“야. 너희들. 꿈과 희망을 가득 품고 정령을 소환하는 용사들에게 미안하지 않냐?”

판타지아 차원은 8개로 나뉘었지만, 마약정령을 포함한 정령왕들은 모든 차원을 통틀어서 속성별로 하나씩만 존재한다.

즉, 정령왕들이 내게 달라붙어서 안 떨어지면, 정령친화력이 아무리 높아도 정령왕을 절대 소환할 수 없다는 소리.

너희들, 업무태만이잖아. 양심 어디?

부비적부비적.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다.

자유로운 정령들에게는 직장과 월급 개념이 일절 통하지 않기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마음대로 해라.”

“그런데 비겁한 마약용사. 어디로 가는 거냐?”

“도덕 아가씨- 어흠! 이곳을 시찰하는 중이다.”

“질투심 많은 추한 아내가 셋이나 되면서 이렇게 외도하면 안 된다. 천벌 받는다!”

“외도라니! 큰일날 소리!”

나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못다한 우정을 이어가려는 것뿐이다.

그리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만난 인연의 순서로 따지면 쏘시아보다 교생 아가씨가 먼저다.

“검희는?”

“1회차는 논외로 칩시다.”

마약정령의 지적대로 그때부터 인연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연인이 아니라 원수였다.

“동생은 찾았느냐?”

“너, 휘말린 것치고는 모르는 게 없네.”

“히히히! 마약용사. 잊으면 곤란하다. 나는 최초의 정령! 나의 귀여운 아이들이 물어오는 정보의 양은 방대하다!”

“과연...”

마약정령의 정신구조가 어떻게 되먹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판타지아에서 가장 많은 것을 아는 총배설강임은 틀림없었다.

“뭐든 물어봐라!”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마약정령이 당돌하게 외쳤다.

궁금한 점이라...

도덕 아가씨가 무슨 생각 중인지가 가장 궁금하지만, 그건 마음의 정령이 나서도 무리일 것이다.

그러면 뭘 물어보는 게... 아!

“마약정령, 네가 보기에는 교육장 상황이 어때?”

“혼돈이다!”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

“하지만 정말이다! 용사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운다. 그중에서도 제우스와 시바가 가장 소란스럽다. 둘이 만날 때마다 싸우는데, 파괴의 정령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다.”

“제우스, 시바. 내게도 익숙한 이름이네.”

인간의 이름에 관심 없는 마약정령이 기억할 정도라니?

뭘 하는지 조금 궁금하다.

“그런데 마약용사. 동생이 여기에 있다고?”

“어.”

“이상하다. 몰랑폰으로 나도 동생의 얼굴을 몇 번 봤지만, 비슷한 인간은 본 적 없다.”

“에이. 그럴 리가.”

이상한 소리를 하는 마약정령에게 피식 웃어보인 나는, 미아처럼 판타지아8을 돌아다니는 동생놈을 모니터링했다.

...어라?

녀석은 몸도 마음도 예쁜 어떤 아가씨와 대화 중이었다.

‘메두사를 탈 때는 고삐를 당기는 손놀림이 중요합니다. 녀석은 겉보기와 달리 매우 민감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저... 메두사가 그냥 겁먹어서 억지로 따르는 걸로 보이는데요...’

‘예? 하하! 기분 탓입니다. 아! 사막을 횡단하실 거면 함께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메두사 모는 실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남쪽으로. 남쪽 끝에 사는 옛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러 갑니다.’

‘큰 잘못을 저지르신 모양이죠?’

‘네. 그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았거든요.’

‘저런... 힘내세요. 저는 가는 길이 달라서 이만 여기서 헤어질게요. 대화해서 즐거웠어요.’

‘아름다운 숙녀분.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급한 볼일이 아니라서 천천히 가도 됩니다. 가까운 곳까지 메두사로 태워드리겠습니다.’

‘안 그러셔도...’

‘하하! 사양하지 않으셔도 됩- 꾸엑?!’

공명정대한 GGG급 용사님의 판타지아8 모험은 여기까지!

지금부터는 이 음흉한 악마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릴 차례다.

“동생놈아.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누구에게 쩝적대는... 음?”

“이런...”

내게 등허리를 얻어맞고 훨훨 날아간 동생놈이 낭패감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떨떨하긴 나도 마찬가지.

동생놈의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후려칠 때 느낀 손맛.

이 척추, 내 기억에 있다.

“장인어른...?”

몰랑이시여. 이게 참말입니까?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