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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426화 (426/430)

 426화

[33회차] 용사의 자질

“후배에게 용사의 재능이 있다면 수월하게 쓰러트릴 수 있을 거야.”

“그걸 말이라고 해요?! 이미 레벨부터 상대가 안 되는데...!”

마룡왕 로리코스트의 능력치를 확인한 후배가 사색이 된 얼굴로 부당하다고 항의했다.

왜?

▷종족: 데모닉 드래고니안

▷레벨: 15308

▷직업: 폭군(폭력=지배↑)

▷스킬: 마력ZZZ 마법ZZ

폭력ZZ 마성ZZ 지배Z…

▷상태: 변신, 병신, 골절, 공포

“녀석의 상태를 봐. 툭 건드리면 죽을 만큼 위태롭다구?”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허리디스크와 목디스크로 전투력이 99.999%쯤 하락했다.

나도 무턱대고 후배를 사지로 던져넣는 건 절대 아니란 말씀!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히익?! 귀여운 황제 용사님! 제발 살려주세요...!”

“어허! 나를 살용마(殺龍魔) 취급하지 마. 아직 안 죽였어.”

“곧 죽이실 거잖아요~?!”

미소녀들을 납치할 때는 위풍당당하던 녀석의 꼬락서니가 참...

강약약강(强弱弱强).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성질.

어느 세계에나 흔하게 있다.

비난하겠다는 건 아니다. 강자에게 덤벼서 개죽음당하는 게 칭찬받을 일은 아니니까.

내 1회차 동료들처럼.

“자자,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말자구?”

“으으...”

“내가 왜...”

정의로운 전직 용사님은 불만투성이 용왕과 인간을 살살 달래서 원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마룡 vs 용사

자고로 용사라면 사악한 도마뱀 한두 마리쯤은 처치한 경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예쁜 아가씨. 살살 부탁해요...”

“저야말로 살려주세요...”

의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후배가 나뭇가지를 들고 돌진했다.

굉장히 허술한 움직임.

사악한 용은커녕 고블린도 잡기 힘들어 보였다.

번뜩.

그것을 눈치챈 로리코스트가 본성을 드러냈다.

방금까지 엄살떨던 녀석의 눈빛이 한순간 돌변하면서, 애용하는 전매특허 마법이 발현됐다.

말랑?

말랑말랑?

말랑!!

로리코스트의 호주머니에서 말랑한 슬라임들이 쏟아져 나왔다.

예전에는 공간이동마법으로 대량의 슬라임을 소환했었는데, 나의 섭리로 시간과 공간계열 힘이 차단된 이후부터 편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압축.

이것도 공간을 조작하는 마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 간섭하면 판타지 세계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이 없을 것이다.

“어...? 꺅?!”

수많은 슬라임의 출현에 당황한 후배는 괜히 멈칫했다가 허무하게 당해버렸다.

말랑말랑~

말랑~

슬라임식 변기에 쓰이는 똑똑한 슬라임들이 후배의 몸을 아주 깨끗하게 닦아줬다.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훈련이 잘됐네.”

못 배운 슬라임들은 후배의 변변찮은 몸뚱이까지 녹여버렸겠지만, 이것들은 상당히 똑똑했다.

겸사겸사, 구석구석 제모(除毛)까지 해주면서 머리카락은 구분해서 남길 줄 아니까.

“으흐흐. 제가 키우는 슬라임들에게 걸리면 그 어떤 도도한 미소녀라도 금방 이상해져 버리죠.”

“아으읏...!”

“자!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소녀 용사님. 딱히 관심도, 원한도 없지만, 이대로 이상해져 버리세요!”

“이 꼬맹이가...!”

“나의 이름은 꼬맹이가 아니라 마룡왕 라코스트. 아름다운 공주를 납치했다는 이야기에는 모두 제 이름이 들어갑니다. 즉, 용 중에서 가장 유명한 용입니다.”

승패가 결정된 듯했다.

후배가 접근만 성공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지만, 말랑한 슬라임들에게 파묻힌 그녀는 꼼짝달싹 못 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내 외모가 어때서! 이 변태 꼬맹이가...!”

마룡왕 로리코스트의 발언에 발끈한 후배가 수풀에 떨어진 돌멩이를 간신히 쥐고는 힘껏 던졌다.

톡.

그리고 닿았다.

피할 가치를 못 느낀 마룡왕 로리코스트가 가만히 맞아준 덕분이기도 했지만, 슬라임들 탓에 정신없는 와중에 저만한 적중률을 보인 후배의 실력도 제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룡왕을 상대로 이런 공격이 통할 것 같나요? 진짜 웃음밖에 안 나오네요.”

“윽...!”

“하하하! 하하- 커어억?!”

허리를 젖히며 웃던 로리코스트가 발작하듯 쓰러졌다.

그렇다. 허리.

허리 상태가 매우 위태로웠던 로리코스트는 웃다가 자멸했다.

“이 변태 꼬맹이. 이 누나 앞에서 얼른 또 웃어봐.”

“자, 잠시만요...!”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피부에 달라붙은 몰랑한 슬라임들을, 알몸 위에 옷처럼 걸친 후배가 질질 끌다시피 이동했다.

그리고는 수풀에 널브러진 마룡왕의 허리 위에 오른발을 올렸다.

“저기, 아주아주 예쁜 누나? 장난이었어요. 그러니 용서를... 아아아악?!”

“닥쳐.”

후배가 발뒤꿈치로 로리코스트의 허리를 질끈질끈 밟았다.

한순간에 상황이 역전됐군.

저 멍청한 도마뱀이 웃다가 자멸한 건 예상 밖이었지만, 이유가 어쨌든 후배가 이겼다.

“거참...”

다시 승자가 뒤집힐 일은 없다.

마룡왕 로리코스트.

미소녀를 납치하는 고약한 취미가 있는 이 마룡은, 절대로 여자에게 상처 입히지 않는다는 나름의 철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게 아니었다면 ZZ등급의 마법으로 진즉, 내 후배를 불태우거나 얼려버렸을 것이다.

“......”

“어, 어라? 장난이지? 허리 좀 밟았다고 죽을 리 없잖아?”

“......”

“말도 안 돼...”

극악무도한 마룡을 토벌한 후배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넋을 놓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방금까지 1레벨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녀에게는 ‘첫 살해’였을 것이다.

충격적이겠지.

나도 처음에는 그랬었다.

“잘했어.”

나는 그런 후배에게 다가가서 순수하게 칭찬해줬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요추(腰椎) 4번과 5번 사이를 공략했다면 더 쉽게 토벌했겠지만, 3번과 4번 사이도 나쁘진 않아.”

“요추?”

“허리 쪽의 척추. 학교에서 안 배웠어?”

“그게 아니라... 너무 뜻밖의 단어가 튀어나와서 그래요. 아니, 그보다 이 꼬맹이, 정말로 죽은 건가요?”

“네 레벨을 봐.”

“...헛!”

▷종족: 엘리트 휴먼

▷레벨: 3071

▷직업: 영웅(경험치 200%)

▷스킬: 가학S 피학S 통역A

매력B 체력C…

▷상태: 경악, 말랑

후배의 직업이 용사였다면 레벨이 더 껑충 뛰었겠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

그래도 이미 1학년 기준으로는 레벨이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흠. 이건 나도 예상 밖인데.”

후배가 허리를 밟지만 않았어도 이리 허무하게 죽진 않았을 것이다.

끽해야 무승부?

로리코스트가 웃다가 자멸해버릴 줄 몰랐지만, 그때까지 버틴 후배의 근성도 알아줘야 한다.

『느긋한 어떤 천신이 누군가를 높게 평가합니다』

『어떤 음신이 공감합니다』

『문란한 어떤 음신이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어떤 신이 앙코르를 외칩니다』

“...하여간 잘했어.”

열정으로 판타지아 교사가 된 어떤 신들이 이 후배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건 길조인가, 흉조인가.

시간을 조종하는 나도 모르겠다.

“조작이에요?”

“일단 옷부터 입어.”

“앗?!”

여태 알몸이었다는 사실을, 말랑한 슬라임들 덕분에 깜빡한 후배는 허겁지겁 옷을 입었다.

내가 건네는 옷?

아니다.

치이이이...

시체를 남기지 않고 자연으로 흩어진 로리코스트가 남긴 옷.

소년 체형에 맞춰져서 가슴과 엉덩이가 끼긴 했지만, 알몸보다는 나았기에 후배는 망설임 없이 입었다.

나름의 보상도 있었다.

말랑~

말랑말랑~

마룡왕 로리코스트가 취미생활을 위해 키운 말랑한 슬라임들.

녀석들은 주인이 바뀐 옷의 호주머니 속으로 얌전히 들어갔다.

무시하면 안 된다.

▷종족: 지니어스 슬라임

▷레벨: 1540

▷직업: 암살자(야간→잠복↑)

▷스킬: 안마SS 탈의S 잠복A

압축A 부식A…

▷상태: 압축, 잠복

판타지아1 기준으로는 최상위권 포식자에 해당하니까.

성녀의 시험만 통과하면 누구에게나 지급되는 성검보다 훨씬 막강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안마도 해주고.

내가 현역 시절에 히프리아에게 매일 같이 받아봐서 아는데, 피로 해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선배 아저씨.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벼워요.”

“레벨이 올랐으니까.”

단숨에 1레벨에서 3000레벨이 됐으니까.

체감 안 될 리 없다.

“갑자기...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에 휘말린 기분인데요.”

“그야말로 기분 탓이네. 네 몰랑폰이나 챙겨. 잃어버려도 용사지원센터에서 재발급해주긴 하지만, 이건 공짜가 아니니까.”

“굉장히 튼튼하네요.”

“용이 밟아도 멀쩡한 소재로 만들어져 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시스템으로 ‘파괴 불가’이 걸려있다.

이 점을 이용해서 방패 대용으로 활용하는 녀석들이 있다는데, 막을 수 있는 면적이 작기에 아무나 가능한 묘기는 아니다.

“좀... 난감해졌어요.”

“뭐가?”

“센터에 연기신청 한 귀환 날짜가 되면 고향으로 냉큼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이 세계에 아주 조금 흥미가 생겼어요.”

“몸이 이상해져서?”

“아니거든요?!”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악마와 천사도 이상하니까.”

“어젯밤에 말씀하셨던 비겁한 아내라는...?”

“한 명은 아내고, 한 명은 먼 친척이지.”

두 번째 천사 우유엘은 파르마엘의 친딸이니까.

족보로 따지면 친척이 맞다.

“그런데 아저씨는 언제까지 저를 따라오실 거예요?”

“너에게 용사의 자질이 정말로 있는지만 확인하고 바로 떠날 거야.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마누라가 셋이나 되는 유부남이야. 그러니 작업 걸 생각은 하지 마.”

“자뻑하는 아저씨.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이거든요?”

“자화자찬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나는 미남이다만.”

“이 세계의 미적 기준이 이상한 거예요! 아저씨의 첫인상은 딱 산적두목이거든요?”

“하아... 따라와.”

“이번에는 또 어디로 절 납치해가려고요?”

“후배가 대단히 큰 착각하는 것 같아서. 진짜 산적두목을 보여줄게.”

“그걸 꼭 봐야 알아요?”

“안 보면? 죽을 때까지 편견과 망집에 사로잡힌 산송장이나 다름없지. 아직 젊은데 벌써... 쯧쯧.”

“아씨! 가요, 가!”

마룡왕 로리코스트를 쓰러트린 용사 일행은 동대륙으로 이동했다.

산적왕의 소굴로.

*

마음 같아서는 정의로운 용사의 날개를 활용하고 싶지만, 의심은 피하고 싶어서 택시를 이용했다.

“판타지 세계에 콜택시라니...”

“이상한가?”

“엄청 이상하죠! 핸드폰이 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만, 연락하자마자 비행선을 탄 흡혈귀가 날아와서 바다를 건너게 해주다니...”

“그러면 어떻게 해야 판타지다운 방법인데?”

“그, 글쎄요.”

“말랑한 후배야. 잘 들어. 자기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무조건 이단으로 모는 사고방식은 좋지 않아.”

“칫. 이론만 빠삭한 선생님처럼 말씀하시네요.”

“이건 경험담이다만?”

“뭐든 안다는 태도의 아저씨가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해본 말이에요.”

“하핫!”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웃겨요?”

“후배의 말을 듣고, 나도 어느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게 꼰대란 건가?”

“정확히 몇 살이신데요?”

“몰라. 100살 뒤부터는 꼼꼼하게 세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다 왔으니 정신 똑바로 차려. 한눈팔면 속옷까지 탈탈 털리는 곳이니까.”

“여긴 궁전이잖아요?”

“이런 얘기 못 들어봤어? 붙잡히면 산적이고, 아닐 때는 돈벌이야. 그래서 사업이 잘 풀리면 칙칙한 동굴 대신 이런 근사한 집에서 살 수 있지.”

“뻔뻔해...”

몰랑폰을 총괄하는 대현자 섹스피어가 운영하는 콜택시에서 내린 우리 앞에 목적지가 있었다.

산적왕의 소굴.

여기에 하렘까지 차린 가장 산적다운 녀석이 살고 있다.

나를 알아볼지 모르겠군.

“누구... 헉?!”

입구를 지키는 졸개 중 하나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몇 초 뒤, 옛 동료였던 산적왕이 맨발로 뛰쳐나왔다.

“용사님께서 이 누추한 곳에 무슨 일로 왕림하셨습니까?!”

“산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는 후배가 있어서.”

“그, 그렇습니까.”

참고로, 산적왕은 요정과 인간의 장점만 물려받은 혼혈이다.

후배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백마 탄 왕자님...?”

“산적두목이야.”

“말도 안 돼!”

후배에게 판타지 세계의 상식을 가르쳐줄 수 있어서 뿌듯하군.

그나저나, 산적왕이 내 앞에서 이렇게 쩔쩔맬 줄은 몰랐다.

우리가 이런 사이는 아니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아버지!”

“어?”

쑥떡이 있었네?

“자, 잠깐만요! 저 녹색 머리의 왕자님이 아저씨의 아들이에요?”

“그런데?”

“전혀 안 닮았... 호호호!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훌륭한 선배님께 이것저것 배우고 있어요!”

“......”

후배의 태도가 굉장히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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