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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427화 (427/430)

 427화

[33회차] 귀여운 황제의 혈통

로리왕들을 보면 알겠지만, 용들은 제멋대로 변신할 수 있다.

수컷, 암컷, 중성, 양성, 꼬마, 노인, 오크, 요정...

완전히 새로운 종족을 창조하진 못하지만, 실존하는 생명체라면 그 무엇으로든 형태를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쑥떡은?

“아버지의 제자 분이라고요?”

“네. 어쩌다가 인연이 돼서... 그런데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쑥떡이요.”

“애칭 말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저에게 지어주신 본명입니다.”

“그, 그렇군요.”

과거에는 꼬맹이였지만, 장남으로서 동생들보다 어린 외모는 얕잡혀 보일 거라 여긴 걸까.

현재는 어엿한 20대 초중반의 외모를 하고 있다.

“쑥떡아. 여긴 무슨 일이냐?”

“죽음의 바다를 함께 모험한 뒤부터 종종 산적왕을 만나러 와요. 음... 주로 판타지아1 동대륙 숲의 환경보존문제를 논의해요.”

“그렇군.”

내 섭리를 활용하면 황무지도 순식간에 밀림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런 인위적인 방식은 옳지 않다.

파르마엘과 라누벨이 인위적으로 용사의 모험을 제한했듯이...

“아버지가 갑자기 오셔서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

“준비?”

“대화에 방해되는 환경을 개선해야죠.”

그렇게 말하면서 산적왕을 포함한 주변인들을 쓱 보는 쑥떡.

내 후배를 바라보는 시선도 썩 곱진 않았다. 후배는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하지만.

“대충해도 돼.”

“아버지. 얼마나 시간이 되세요?”

“왜? 상담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딱히 그런 건... 아! 사탄이란 용사를 기억하세요?”

“기억하지.”

6차 교육과정의 처음이자 마지막 졸업생이니까.

쑥떡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힘들었겠지만, 편법이든 뭐든 내 옥좌까지 도달한 시점에 졸업을 인정해줬다.

현재는 교생 실습 중일 텐데?

“계속 귀찮게 합니다.”

“네가 좋은 모양이지.”

“아버지의 위대함을 잘 아는, 마음이 통하는 친구로 쭉 남으면 좋을 텐데, 자꾸 선을 넘으려고 해요.”

“흠...”

쑥떡도 어느새 그런 걸 고민할 나이가 됐군.

용이라서 빨라도 수천 년 뒤에나 겪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고도 없이 말랑하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사탄이 누구예요? 남자 이름 같은데, 여자?”

너 같은 애란다, 후배!

생각해보니, 그 사탄이란 녀석도 꽤 깨어있는 편이었다.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동료들을 처리하고 홀로 도전했지만, 사탄은 끝까지 함께했다는 점이 다르달까.

“서두르지 말고 지켜봐.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거나 재촉한다면 고작 그런 인연이겠지.”

“......”

“왜?”

“아버지는 사탄이 꽤 마음에 드신 모양이네요.”

“단순한 상대평가야. 라누벨의 딸보다는 100배 나으니까. 내가 웬만하면 족보를 안 따지는데, 이건 도저히 그냥 못 넘기겠더라.”

“그, 그렇군요.”

“...음?”

“아무것도 아니에요,”

판타지아 세계의 종말 만큼의 불온한 조짐을 감지한 것 같았는데, 내 기분 탓이었나?

후배가 또 끼어들었다.

“선배님. 오붓한 부자(父子)의 대화 중에 죄송한데, 아드님께 저도 소개해주세요~”

“...안 했었나?”

“네.”

그랬군.

“쑥떡아, 소개할게. 평범하게 생긴 이 아가씨는 아직 이름도 모르는 내 후배야.”

“아앗...”

아직 통성명조차 안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후배가 낭패감이 깃든 표정을 지었다.

간혹 유명인들이 그녀와 비슷한 실수를 한다.

상대방이 당연히 나를 알 거라고.

주로 왕족과 고위귀족들이 저지르지만, 용사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쑥떡이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알아요.”

“그래...?”

정말로 나만 모르는 유명인이었나...!

“몰랑폰 커뮤니티에서 소란을 일으켰던 용사. 이름이...”

“아리스예요!”

“네. 그 이름이었어요.”

“와아! 그런데 어떻게 저인 줄 아셨어요?”

지옥에서 천국으로 넘어온 얼굴이 된 후배가 던진 예리한 질문.

쑥떡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답했다.

“아버지의 아들이니까요.”

“예?”

“뛰어난 용사의 아들은 무엇이든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어머!”

의문이 해소되긴커녕 더욱 의심스러운 대답을 들었는데, 새빨개진 뺨을 양손으로 가린 후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했다.

그 뒤, 이런저런 얘기로 시간을 보낸 나와 후배는 산적왕의 소굴을 빠져나왔다.

“아...”

후배는 무척 아쉬워했지만, 쑥떡과 몰랑폰 연락처를 주고받은 선에서 일단은 만족했다.

너무 노골적이잖아.

“내 아들 쑥떡이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네? 네! 최고예요!”

곤란하군.

아무리 사랑에 국경과 종족이 없다지만, 양성을 좋아한다니...

그래도 쑥떡을 보기 전까지 비협조적이던 후배의 태도가 싹 바뀐 것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다음은 북대륙이야.”

“거긴 또 왜요?”

“판타지아의 대중종교인 몰랑교 성지가 있거든. 용사와 신앙은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지.”

“아직도 제 자질을 시험해보시는 거예요?”

“그래.”

“훌륭한 며느릿감이라서?”

“그건 아니야. 진짜 아니야.”

“아, 왜요~?!”

거기서 쑥떡을 만난 건 우연이었다.

이렇게 척추가 변변찮은 아가씨를 아들에게 소개해줄 리 없잖아?

안 되고말고.

“연애는 네가 노력해서 쟁취해.”

“그러면 여기서 이만 헤어져요. 저는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동대륙에 남겠어요.”

“곧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또 연기할 거예요. 고향에는 쑥떡 씨 같은 훈남이 없거든요. 아버지, 라고 부를 때 짓던 쑥떡 씨의 미소가 아직도 제 머릿속에 맴돌아요.”

“거참...”

협조적으로 바뀐 줄 알았는데, 그 반대가 돼버렸네?

며느릿감 후보라고 거짓말했다면 잘 풀렸겠지만, 거짓말은 내 척추에 맞지 않는다.

어쩌면 좋을까... 아!

“그러면 아저씨, 잘 가세요. 이틀 동안 나름 감사했어요.”

“다른 아들이 북대륙에 살아.”

“......”

“쑥떡은 용(龍)이라서 잘 풀리더라도 나중에 종족장벽에 막힐 거야. 하지만 차남(次男)은 척추까지 인간이지.”

“잘생겼어요?”

“너는 외모로 상대를 평가하냐?”

“외모지상주의처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외모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야죠. 쑥떡 씨처럼 취향을 저격해버리면 얘기가 다르지만.”

“흠...”

이런 면은 나하고 똑같군.

나도 여자를 볼 때, 척추는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니까.

“그래서 북대륙에 산다는 아드님은 잘생겼어요?”

“...그건 잘 모르겠네. 척추 빼고는 아내를 닮았거든.”

“기대되네요!”

“무슨 의미야?”

“아내라며 보여준 사진 속의 여성분들은 전부 미인이었으니까요.”

“킁.”

성격을 알면 실망할걸?

내 머리 위에서 잠자코 듣는 마약정령은 벌써 어깨를 들썩이며 ‘히히히!’ 웃고 있었다.

“얼른 가요!”

“오냐.”

내가 판타지아 세계에 납치된 원인을 규명하는 여행이었는데?

어쩌다가 아들을 소개해주는 자리가 됐는지 모르겠다.

삑-

이번에도 콜택시를 불렀다.

마치, 이 근방에 숨어서 기다렸다는 듯이 20초도 안 지나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비행선이 도착했다.

자외선 차단용 헬멧을 쓴 흡혈귀가 정중히 물었다.

“용사님. 어디로 모실까요?”

“북대륙의 마법제국, 제2 황궁 몰랑나서스로.”

카이사와 크리스를 만나러 가보자.

*

북대륙 마법제국.

내가 장인어른을 쓰러트리고 회귀하면서 싹 사라졌다.

현재는 생활기록부에만 ‘존재했었다.’라고 명시되어있다.

그런데 나의 아들 크리스가 ‘어머니 생신 선물’이랍시고 제국을 떡하니 건국해서 선물했다.

똑같이 재현해서.

“와아...”

“...후배. 촌년같이 왜 그래? 마법 처음 봐?”

“아저씨- 어흠. 선배님은 매일 봐서 익숙하겠지만, 이런 광경은 중앙대륙에서 보지 못했다고요.”

“마법제국이니까.”

내가 귀여운 황제였을 때 세웠던 마법제국을 최대한 복원했다.

이건 내가 시스템에 간섭한 게 아니라, 크리스가 자기 어릴 적 기억을 토대로 따라 한 것이다.

건국신화부터 쭉.

마법왕국에서 정략혼으로 팔려간 공주님이 마구간에서 초대 황제를 낳았다는 대목은 각색됐지만, 나머지는 제법 잘 구현해냈다.

나를 위해?

크리스 본인을 위해.

귀여운 황제가 3살 때, 모친의 죽마고우이자 호위기사였던 검희와 얼레리꼴레리를 해서 태어났다.

사라진 과거.

사라진 출생기록.

그것을 크리스는 인위적으로 복원한 것이다.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규모로.

“선배님.”

“호칭이 또 바뀌었네.”

“사소한 문제는 그냥 넘어가요. 아드님이 북대륙의 황제예요?”

“그렇지.”

대견하다고 말할 순 없다.

자기 출생기록을 복원하기 위해 전쟁도 서슴없이 벌인 녀석이니까.

내가 그랬듯이 기존의 북대륙 강자와 국가들을 차례차례 무릎 꿇리고, 황권에 저항하는 귀족과 암흑상회를 박멸하다시피 했다.

검희를 닮아서 폭력적이란 말이지!

자식들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할 마음은 없지만, 크리스를 떠올릴 때마다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 종족이 이제야 이해되네요.”

“웬 종족?”

“로열 휴먼이요.”

“아아, 내 종족.”

이런 조그마한 땅덩이의 주인이란 의미는 아니었지만, 아귀가 대충 맞으니 그냥 넘어가자.

“200년 넘게 용사로 활동하면 집안이 빵빵해지는 모양이네요.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어요.”

“뭔데?”

“아내가 총 몇 명이에요? 100명? 200명?”

“자릿수가 너무 엇나갔잖아. 나는 가출선배처럼... 하여간, 공식적으로는 셋. 비공식까지 포함하면 넷이야.”

“비공식? 아아.”

“갑자기 뭘 아는 척이야?”

“그거잖아요. 혈기왕성한 왕이 시녀를 몰래 건드렸다는 전개.”

“아니거든?”

히프리아는 아내란 틀로 묶어두기에는 호주머니 속 핫팩처럼 너무나 가까운 존재다.

아무튼, 칼질 잘하는 마누라의 집 앞에서 다룰 주제는 아니다.

마법제국 황궁 몰랑나서스.

최대규모를 자랑했던 서대륙의 흡혈귀 제국 ‘영원한 밤의 제국’ 수도가 판타지아7로 완전히 이전하면서 명실공히 세계 1위가 됐다.

규모, 국력, 권위, 문화...

수도의 크기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1위이며, 그 황제는 지나가던 말랑한 슬라임도 움츠리게 할 정도로 그 위세가 대단하다.

“이미 결혼한 건 아니죠? 애인이 있다거나?”

“있으면 안 돼?”

“절대로! 첩이나 두 번째는 진짜 사절이거든요?”

“잘생긴 남편이 여럿인 거는?”

“그, 그건 고민 좀...”

내가 관찰해본 수많은 여성 용사처럼 후배도 행복한 상상에 빠졌다.

사악한 마룡 로리코스트를 웃겨서 처치한 그녀의 레벨이라면, 단순한 망상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리라.

물론, 바라는 남편 수준을 높게 잡으면 하렘은 힘들 것이다.

“들어가자.”

“그런데 왜 도둑놈처럼 침입해요?”

우리는 당당히 정문으로 입장하지 않고 성벽을 넘었다.

마법제국의 수도답게 마법진이 감시카메라처럼 쫙 깔려있었지만, 내게는 애들 장난이었다.

굳이 능력을 쓰지 않더라도 이 정도는 경험만으로 어떻게든...

삐이--

“침입자 발견! 침입자 발견!”

“294지점으로 이동!”

“얼른 포위해!”

“침입자들은 항복하라!”

...들켜버렸네?

내 뒤만 부지런히 쫓아왔으면 안 걸렸을 텐데, 후배가 한눈팔다가 이상한 샛길로 빠진 탓이다.

“이래서 촌놈, 촌년들은...”

『매우 성급한 어떤 마신이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합니다』

누가 이 마신 좀 안 데려가나?

“선배님. 마법제국 황제의 아버지라면서요? 대우가 영 아닌데요.”

“어허! 기다려봐. 경비병A가 뭘 알겠냐? 곧 아들놈이...”

팔랑~

위험했다.

반응이 살짝이라도 느렸다면 머리카락이 아니라 경추(頸椎) 6번과 7번 사이가 잘렸으리라.

“오셨습니까, 아버지.”

비겁하게 사각에서 기습해온 청년이 뻔뻔하게 인사했다.

“크리스. 인사가 참 살벌하다?”

“새 여자와 뻔뻔하게 나타나신 아버지가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만.”

“아니야!”

이 자식!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칼질부터 했다는 거네!

검희의 핏줄답다.

“하긴. 아버지의 여자 보는 눈이 낮아지셨을 리 없죠.”

“맞는 말이지만, 초면에 척추부터 때리지 마.”

“그것도 아버지가 하실 말씀은 아닙니다만? 그리고 당사자는 전혀 신경 안 쓰는 것 같은데요.”

“뭐?”

힐끔 돌아본 후배의 표정은 또 이상해져 있었다.

“와아... 와아...”

“후배야, 괜찮니?”

“전혀 안 괜찮아요.”

“어. 그러냐.”

이거 중증이로구먼!

남정네 손 한 번 못 잡아본 사회부적응자라서 용사님으로 선별된 게 아닐까?

나는 진지하게 그 가능성을 검토해봤다.

“...설마.”

나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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