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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급 관심용사-429화 (외전1) (429/430)

 429화

[외전] 귀여운 황제

“공주님을 정중히 모시라는 폐하의 명이 있었습니다. 그분의 호의를 무시한다면, 당신의 조국도 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배 속의 아기는요?”

“더러운 망국의 핏줄. 태어나자마자 죽겠지요.”

“그럴 수가...”

신흥강자로 떠오른 신생제국과 군신의 황금색 골렘에 맞서기 위해 동맹국과 정략혼을 맺었다.

하지만 동맹국은 1년도 안 지나서 멸망 당했고, 피신하던 도중에 왕족들은 몰살.

공주가 아직 살아있는 건, 순전히 북대륙 전역에 널리 알려진 그녀의 미모 덕분이다.

“순순히 따라오십시오. 공주님의 몸에 생채기라도 생기면, 저희도 폐하를 뵐 면목이 없습니다.”

“다, 다가오지 마세요.”

“포기하십시오. 왕족을 호위하던 기사들도 모두 처리했습니다. 당신을 구해줄 원군은 없습니다.”

“흑!”

절망적인 상황.

공주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변변찮은 동맹국 왕자와 결혼하고 잠자리를 함께할 때까지만 해도 살고 싶은 마음이 뚝뚝 떨어졌었다.

그러나 배 속에 새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하고부터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 아이를 위해.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태어날 이 아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자고 결심했다.

“공주님. 저희는 나쁜 제안하는 게 아닙니다. 고대의 마도제국처럼 북대륙을 통일하고 지배할 위대한 지배자의 아이를 갖는 영광입니다. 지금 품고 계신 비루한 혈통하고는 격이...”

펄럭~

신생제국의 기사는 말을 하다 말고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런 의문이 든 공주는 뒤따라 위를 올려다보고는, 처한 상황도 잊은 채 넋을 놔버리고 말았다.

아름답다.

고귀하다.

공주도 태어난 순간부터 이러한 칭찬들을 듣고 자랐지만, 저 존재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여신님...?”

판타지아 세계를 창조했다는 여신님의 모습이 딱 저렇지 않을까.

백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하늘에서 천천히 하강한 여인은 주위를 슥 둘러보고는 한마디 했다.

“위험할 뻔했군요.”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쏙쏙 박히는 목소리.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예술이었으며, 타고난 왕처럼 좌중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 정체를 밝혀라!”

당황한 기사가 공주에게서 한걸음 물러나며 질문했다.

저 한마디는, 이곳에 모인 모두의 의문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대답해줄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황제가 비루한 노예를 상대해주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그 여인은 친절했다.

“알 필요가 있을까요?”

제대로 답해주진 않았지만, 상대해준 것만으로도 감격이 휘몰아친다.

어딘가 부조리하면서도 수긍되는 이상한 상황 속에서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선두의 상급기사였다.

“저 여인도 생포하라!”

충성심 하나만은 으뜸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엡!”

“네, 남작님!”

공주를 포위하고 있던 그 이하의 기사와 병사들이 거리를 좁혔다.

신생제국의 주무기는 골렘.

하지만 북대륙의 모든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신생제국은 전선이 매우 넓기에 이런 ‘사소한 취미’에 할애할 골렘이 없다.

하지만 기사라면 넘쳐난다.

인생역전을 위해 신생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자들이 많고, 국기 빼면 용병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이 순간에도 속속 합류하고 있으니까.

“곤란하군요. 하지만...”

뿅!

맨손이었던 여인의 손에 괴상한 디자인의 지팡이가 소환됐다.

마법의 촉매인 마법 구슬 대신, 아름다운 요정 여인의 머리가 첨단에 매달려 있었던 탓.

방금까지 여신 같았던 이미지가 단번에 마녀로 바뀌었다.

그리고 지팡이를 향해 말했다.

“싸우세요.”

대단히 괴상한 요구.

지팡이 첨단에 매달린 요정 머리가 대답했다.

“내가 왜?”

“말다툼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니면 이대로 파괴되든가요.”

“팔다리도 없는 이런 몸으로 어떻게 싸우라는 거야...”

팟! 팟! 팟! 팟!

툴툴거리는 지팡이의 주변에 기하학적인 마법진이 떠올랐다.

고대의 마법.

능력치로 제공되는 ‘마법’에 의존하지 않는 ‘진짜’였지만, 그걸 알아볼 수준의 식견을 가진 마법사는 이 자리에 없었다.

“마법이다!”

“조심...!”

펑! 퍼엉! 펑! 펑!

마법진에서 튀어나온 불덩이가 기사와 병사들에게 쏘아지고, 전원이 숯덩이로 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명을 빼고.

“폐하께 어서 이 사실을...!”

혼란을 틈탄 상급기사가 뒤돌아서서 줄행랑치고 있었다.

여인이 지팡이의 요정 머리에 재차 요구했다.

“마무리하세요.”

“어려워. 저 기사, 항마력이 높아서 나의 정통마법으로는... 꺄앗?!”

부웅-

지팡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날개를 휘저으며 앞으로 쏘아져 나간 여인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캉!

“크억~?!”

사람의 머리와 판금 갑옷이 충돌했는데, 어째선지 묵직한 둔기로 후려친 소리가 났다.

실제로, 지팡이로 맞은 기사의 등쪽 판금은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적어도 척추가 박살 났으리라.

“꾸르르르... 콜록!”

낙마한 상급기사는 300레벨에 가까운 높은 능력치에도 불구하고 곧 숨이 멎었다.

“아...”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공주는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녀의 정신을 깨워준 건, 둔기처럼 휘둘러진 지팡이의 머리였다.

“이 여자가! 내가 누군 줄 알아? 전설적인 요정, 3대 요정왕 엘브하임 칸 라누베르크가 내 오라버니...”

“관심 없어요.”

“내가 비록 골렘의 몸이 됐지만, 그래도 영혼만은...”

“조용히 하세요.”

“잘 들어. 승자라면 패자에게 아량을 베풀 줄 알아야...”

“얼굴을 땅에 묻어드릴까요?”

“......”

수다스러운 지팡이를 향해 냉랭한 어조로 윽박지른 여인이 천천히 공주를 돌아봤다.

표정이 겨울에서 봄으로.

아직 부풀어 오르지 않은 공주의 배로 향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호했다.

망국의 마지막 혈통인 배 속의 아이에게?

아니면 순수하게 임산부를 걱정해서 한 소리일까?

이유가 뭐든 간에 공주로서 안도감부터 느꼈다.

“당신은 누구세요...?”

“히프리아입니다.”

“히프리아...”

이렇게나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이 대륙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실제로 떨어졌으니 아주 틀린 추측은 아니리라.

“당신은 천사인가요?”

등의 날개로 봐서는 천사가 틀림없지만, 그래도 당사자에게 듣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었다.

천사를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그 고귀한 종족이 아주 오랜 옛날에 자취를 감춘 탓이다.

“당신과 똑같은 인간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그렇군요.”

할 말이 궁색해진 공주는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시체, 시체, 시체, 시체...

지팡이의 마법 공격으로 모든 추적자가 전멸했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두려움에 덜덜 떨며 헛구역질을 했겠지만, 좋든 싫든 살을 섞었던 남자가 눈앞에서 잔인하게 살해되는 광경을 본 이후부터는 무감각해졌다.

“적대적인 자들이 눈치채기 전에 자리를 옮길까요?”

“아.... 네!”

두 여인은 불타버린 어느 숲에서 자취를 감췄다.

*

인상 깊었던 첫 만남 이후부터 그들은 쭉 함께했다.

곧장 조국, 친가로 돌아가서 의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타국에 시집가면 그 뒤부터는 남남이다.

하물며 망국의 왕자비.

정략혼의 도구로 또 쓸 수 없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히프리아 님.”

그렇기에 공주가 의지할 존재라고는 이 천사밖에 없었다.

“몸이 안 좋은가요? 다리가 또 부었나요?”

“아니요. 어제보다는 붓기가 많이 가라앉았어요.”

“다행이네요. 자연적인 현상은 제 치유력으로 어쩌지 못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히프리아 님이 안 계셨다면 저와 아기님은 지금쯤...”

배 속의 아기는 특수한 마법으로 살해되고, 자신은 신생제국 황제의 노리개로 전락했으리라.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던 공주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스윽.

그걸 추워서 떤다고 착각한 히프리아가 얇은 담요를 그녀의 어깨 위에 덮어줬다.

그러면서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로 괜찮나요?”

“네. 괜찮아요. 그리고 괜한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천만에요. 당신과 아이의 안전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어째서요?”

출산이 임박한 탓일까.

공주는 지금까지 쭉 가져왔던 의문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자신은 망국의 왕자비.

배 속의 아기는 망국의 왕손.

남아(男兒)인지 여아(女兒)인지 아직 모르지만, 비참한 삶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아이와 함께 자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그날, 천운이 따라서 신생제국의 추적을 뿌리쳤더라도 얼마 못 가서 잡히거나 죽었을 것이다.

임신만으로도 벅찬데, 그녀는 힘든 육체노동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이 곱게 자란 공주님이었으니까.

히프리아가 곁에 없었다면 지금까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잘 들으세요. 당신의 아이는 이 세상을 바꿀 존재입니다.”

“말씀만으로도 힘이 나네요.”

“정말입니다. 저를 못 믿나요?”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주제넘어서 죄송합니다.”

“그, 그렇게까지 사과할 문제는 아니니 고개를 얼른 드세요. 제가 감당하기 힘듭니다.”

“네...”

그런 일이 있고부터 며칠 뒤, 산고(産苦)가 운명처럼 찾아왔다.

“응애...!”

굉장히 열악한 환경 속에서 그 아이는 기적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하지만 출산을 견디지 못한 공주는 죽었다.

그리고 마족으로 회생(回生).

“다시 태어난 걸 축하해요. 몸은 좀 괜찮나요?”

“히프리아 님!”

“우선은 치마라도 걸치세요.”

“그보다 아기는…. 아!”

태어나자마자 자기 발로 우뚝 선 자신의 아기를 본 공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주인님. 탯줄만 자르고 바로 이동하셔야 할 것 같아요. 자세한 내용은 가면서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아서….”

“응애.”

“아…. 너무 귀여우신 거 아니에요?”

유일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언니 같은 존재는 격정에 사로잡혀서 그녀와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쪽쪽!”

“대폭발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깨어났을 때는 눈앞의 소녀 뱃속에 주인님이 계신다는 사실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을 뿐이죠. 저기, 주인님? 즐거운 식사에 방해되신다면 나중에 천천히 말씀드릴까요?”

“쪽쪽. 응애.”

“네. 그녀는 동맹국의 공주였습니다. 군사원조를 대가로 이웃국의 망나니 왕자랑 정략결혼하고 주인님을 잉태하게 됐는데, 그 나라가 전쟁에서 대패해서 멸망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망국의 왕자비가 된 그녀도 도망자 신세가 됐습- 주인님? 후후! 편안히 주무세요.”

“응애….”

막 태어난 아기가 공주의 젖을 열심히 빨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히프리아의 시선이 공주에게로 향했다.

“정말 수고했어요. 당신은 이 세상을 구한 거예요.”

“예? 예.”

공주는 그 아기가 3살에 신생제국을 밀어내고 북대륙을 통일한 초대 황제가 될 때까지만 해도 그 의미를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때, 히프리아가 말한 ‘이 세상’은 좀 더 큰 의미였다.

지금은 안다.

“멍하니 무슨 생각 중이에요?”

“아! 히프리아 님.”

그녀는 조용히 자책했다.

공무로 바쁜 히프리아 님이 애써 시간을 내서 함께 테니스를 쳐주는데 한눈팔다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제 말이 맞죠?”

하지만 히프리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웃는 얼굴로 묻는다.

“히프리아 님은 쉽게 제 생각을 읽으시네요.”

“매일 똑같은 생각만 하니까요.”

“그, 그렇진 않아요. 음... 하여간 지금은 그렇네요. 정말 대단한 아기를 낳은 것 같아요.”

“후후후! 한 판 또 하죠. 패배한 채로 끝내면 찜찜하잖아요?”

“네! 히프리아 님!”

타앙-

여기는 판타지아8 북대륙의 응애교 대성지(大聖地).

이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황제를 낳은 여인이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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