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FFF급 관심용사-430화 (외전2) (430/430)

 430화

[외전] 어머니! 보고 싶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대규모 외계인 공습이 있었습니다. 연방정부는 상급 용병 다수를 파견하였지만, 민간인 사상자의 발생을 막지 못...

삑-

앵무새처럼 매일 비슷한 뉴스만 떠드는 텔레비전을 리모컨으로 끈 여인은 소파에 드러누운 채 외쳤다.

“아들~!”

“네!”

“그냥 불러봤어.”

“...네.”

지금쯤 아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툴툴거리고 있겠지만, 첫째가 말도 없이 실종된 이후부터 그녀는 이렇게 둘째를 부르곤 한다.

물론, 지금은 첫째가 어디서 싸돌아다니는지 안다.

판타지아 차원.

공부할 필요 없는 세계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살고 있다.

“내가 섭섭하게 했었나...?”

대다수 실종자가 3년 내외로 귀환한 점을 고려하면, 10년 넘게 안 돌아오는 아들은 문제가 있었다.

무능해서?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즉, 마왕이란 양아치를 못 쓰러트렸을 리 없으니, 집에 돌아오기 싫어서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봐야 했다.

딩동-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수시로 둘째가 있는지 확인하는 그녀지만, 현관문을 여는 잡일까지 시키진 않는다.

공부해야 하니까!

그러니,

“사랑하는 여보~!”

“요리 중.”

“응...”

앞치마를 두른 남편이 부엌에서 짤막한 거부 의사를 보내왔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소파에서 어슬렁어슬렁 일어섰다.

“누구세요?”

현관문 너머로 대답이 들려왔다.

“오늘 캔 당근을 좀 나눠주려고 왔습니다.”

“아! 코치님.”

그녀에게 테니스를 ‘제대로’ 가르쳐준 선생님.

그전에도 못 쳤던 건 아니지만, 테니스동호회로 알게 된 이 코치에게 배우고부터 실력이 부쩍 늘었다.

취미는 당근 농사.

...직업처럼 보일 때가 많지만, 그의 테니스 실력은 국가대표라고 소개해도 믿어질 정도다.

“어서 들어오세요!”

“괜찮습니다. 당근을 나눠주려고 잠시 들른 거라서... 화요일에 테니스장에서 뵙지요.”

“네. 바쁘시면 어쩔 수 없죠.”

“...실종된 첫째 걱정입니까?”

“잘 살 거예요. 그냥... 제가 섭섭하게 해줘서 안 돌아오는 걸까? 이 생각이 계속 맴돌아서요.”

“그건 아닐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건 위로가 아닌 진심입니다. 한진 어머니의 순진한 테니스라켓 스윙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호호! 애 키우는 일이 테니스경기처럼 시원시원하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늦는 게 분명합니다. 그러니 너무 괘념치 마시고 이 당근으로 힘을 내세요.”

“늘 고마워요, 코치님.”

“그러면 이만.”

끼익-

얼마 전까지 총알이 난무하는 치열한 전장에서 구르다가 온 용병처럼 생겼는데, 속은 참 깊다.

거기까지 생각한 여인은 당근 상자를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탁탁탁탁.

식칼로 도마를 두드리던 남편이 힐끔 그녀를 돌아보며 묻는다.

“또?”

“응. 당근이야.”

“이러다가 시력이 2.0을 돌파할지도 모르겠군...”

“도와줄까?”

“아니.”

“그러지 말고...”

“내 아내의 요리 실력이 일류 쉐프 못지않다는 걸 잘 알지. 그러니 이 남편을 믿고 거실에서 기다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뭔가 말이 이상한데...”

“기분 탓이야.”

“음... 응.”

마음에 안 내키면서도 그녀는 순순히 부엌에서 나왔다.

남편의 칭찬처럼 요리 실력이 특출나지만, 아주 가끔 손이 미끄러지면서 실수하니까.

그때, 남편이 말했다.

“방금 받은 당근을 볶으려고 했는데 기름이 부족해. 슈퍼마켓에 가서 참기름 좀 사와.”

“오케이!”

굉장히 심심했던 그녀는 남편이 준 임무를 냉큼 수락했다.

그리고 덤으로...

“아들, 공부하느라 바빠?”

어두컴컴한 방에 틀어박혀 있는 둘째를 불렀다.

“...바빠도 따라가야죠.”

“귀찮으면 안 따라와도 돼. 이 엄마는 정말 괜찮아. 앞으로는 테니스도 엄마 혼자 칠게.”

“제발 따라가게 해주세요...”

“그래!”

저렇게 부탁하는 아들을 놔두고 갈 수 없었던 그녀는, 둘째의 손을 꽉 잡고 함께 장을 보러 나왔다!

*

“음... 들기름도 살까?”

“엄마의 깊은 뜻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아빠가 참기름만 필요하다고 한 이유가 조금은 있을지도 모른다고 소자는 생각합니다...”

“우리 아들은 참 의젓해. 그래서 좀 섭섭하기도 하고.”

“그, 그래서 엄마라고 부르잖아요.”

“그건 기본이고!”

“......”

모자(母子)는 정답게 장을 보고 귀갓길에 올랐다.

바로 그때, 공포에 젖은 시민들의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공습이다!”

“오! 신이시여!”

“도망쳐~!”

위이이이잉-

한 박자 늦게 사이렌이 울고, 방금까지 평화로웠던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전쟁이 10년도 더 됐으면 슬슬 이런 삶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자기 목숨이 걸린 문제에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외계인의 침공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시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신안(神眼)의 용사 나로또가 왔습니다!”

“국산 100% 칠흑(漆黑)의 용사 오한우도 있습니다!”

“저는 펙토리아 펙토리에서 파견 나온 용사 피오라! 여기는 저에게 맡겨주세요!”

......

외계인이 침공해오길 학수고대하던 용사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그들은 홍보하듯 자신의 이름을 부지런히 외치며, 외계인이 부리는 안드로이드를 향해 돌격했다.

펑! 퍼엉! 펑!

아스팔트 도로가 파괴되고, 방금까지 멀쩡했던 콘크리트 건물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꺼져! 여긴 내가 먼저 왔어!”

“뭐래? 침 발라뒀냐?”

“먼저 온 사람이 임자지!”

그들은 지구의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자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라는 건 명분일 뿐.

평상시에는 ‘법’으로 엄격히 금지된 판타지 능력치를 자유롭게 쓸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많아도 열흘에 한 번?

숨 쉬듯 매일 같이 사용하던 판타지 세계와 비교하면 무척 답답하다.

이건 그 결과.

퍼엉!

콰아앙-!

콰직!

과잉진압이란 말이 있다.

행성 파괴가 아닌 점령이 목적인 외계인들은 정치인, 군사시설, 교통요충지만 집중적으로 노린다.

그들에게 힘은 수단일 뿐.

지구의 용사들처럼 쓰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건 아니다.

“엄마. 휘말리기 전에 여기서 얼른 피해야 해요.”

“아들은 내가 지켜줄게!”

“그럴 필요... 네.”

외계인의 침공이 흔해진 현재는 대피소와 방공호도 많이 변했다.

과거에는 구색만 맞춘 세금 도둑이었다면, 현재는 나름대로 실용성을 갖추고 있다.

시민의식도 마찬가지.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 대피소’의 위치는커녕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는데, 현재는 5살짜리 어린애도 알고 있다.

콰앙!

우르르...!

휘말려서 죽기 싫다면.

하지만 대피소의 위치를 알더라도 운이 나쁘면 죽는다.

악마의 손이라도 빌리지 않는 한.

“...막아라.”

“뭘 막아?”

“콜록콜록!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얼른 대피소로 가요, 엄마!”

“그래.”

손을 잡고 달리는 모자(母子)의 뒤편으로 시커먼 날개가 달린 인간들이 쏙쏙 튀어나왔다.

콰직!

우드득!

방금까지 평범한 민간인 틈에 섞여 있었던 그들은 강철보다 단단한 안드로이드를 맨손으로 파괴했다.

“......”

“......”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도처에 깔린 감시카메라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 관리자도 동료이기에.

“음? 엄마. 그 테니스라켓은 어디서 나셨어요?”

“아들을 지켜주려고!”

“제 말뜻은 그게 아니라...”

모친에게 손이 잡힌 채 끌려가다시피 하던 소년은 말끝을 흐렸다.

시간을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복장을 한 사내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탓이다.

코스프레?

대략 10년 전이라면 그렇게 단정했겠지만, 현재는 아니다.

“나는 왕자...”

“비켜!”

“...곧 식민지가 될 별의 하찮은 암컷이 누구에게 감히 명령- 꾸엑?!”

부우웅~~

시원시원한 테니스라켓 스윙에 안면을 얻어맞은 사내가 훨훨 날아갔다.

“아들! 얼른 가자! 저런 정신병자를 상대할 틈이 없어!”

“...예?”

“얼른 대피소로 가자고!”

“그럴 필요가 방금 없어진... 아니, 네. 얼른 가요!”

“겁먹을 거 없어! 이 엄마가 아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줄게!”

겁에 질린 아들을 안도시키기 위해 여인은 애써 환한 미소를 지었다.

“......”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더욱 겁에 질린 아들은 대피소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 없었다.

그리고 모자가 간신히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민 여러분! 용사들이 외계인들을 무찔렀습니다! 곧 복구반이 투입될 예정이며, 실종된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찾지 말고 곧바로 구조반에 신고해주십시오!

상황이 종료되어 있었다.

“저기, 엄마?”

“왜, 아들?”

“조금 전에 그... 정신병자의 머리통을 후려친 테니스라켓은 어디에 두셨어요?”

“주운 거라서 바로 버렸는데?”

“......”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 하하...”

다정한 엄마와 아들은 슈퍼마켓에서 산 참기름을 들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갔다.

*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음... 자존심이? 들기름을 참기름으로 착각해서 남편에게 혼났어.”

“그, 그러셨군요. 안 다치셔서 다행이에요, 선배.”

“후배도 건강해 보이네.”

그녀는 오랜만에 대학교 후배를 만나서 가장 최근에 겪은 억울한 사연을 들려줬다.

둘이 선후배 관계이긴 하지만, 학번은 띠동갑에다가 전공과목도 전혀 다르다.

그녀는 체육과.

후배는 교육학과.

그런데도 둘이 시공을 초월해서 친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대학교 동아리가 같았던 덕분이다.

“선배는 전혀 안 늙으셨네요.”

“후후! 그렇게 보여? 요즘 몸에 좋은 약을 챙겨 먹고 있거든. 그러는 후배야말로 학창시절이랑 전혀 다르지 않은데? 같은 걸 먹나?”

“저는... 음... 예전부터 동안(童顔)이란 소리를 자주 들었으니까요.”

“결혼은?”

“아, 아직...”

“정말 아쉽네! 내 첫째 아들놈이 실종되지만 않았어도 후배에게 소개해줬을 텐데.”

“괜찮아요.”

“이미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네...”

후배가 카페 머그잔을 만지작거리며 수줍은 얼굴로 답했다.

그런 후배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이 가늘게 뜨여졌다.

“설마... 현장학습 때 잠깐 마주쳤다는 소년을 아직도 찾는 거야?”

“......”

“어머! 어머! 너, 대단한 순정파였구나? 부럽네. 나도 남편이 무릎 꿇고 애걸복걸하지만 않았어도 사랑의 추적자가 됐을 텐데.”

“선배는 결혼 잘하셨죠. 그런 미남을 어디서 또 구해요?”

“살인마도 울고 갈 것처럼 생긴 내 남편이 미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후배뿐일 거야. 신혼여행 때, 주민신고로 경찰서에 몇 번이나 끌려간 줄 알아? 들으면 깜짝 놀랄걸?”

“선배 같은 미인을 지키려면 남자가 좀 듬직해야죠~”

“하아... 생각할수록 아쉽네. 내 첫째가 남편 붕어빵인데. 웃을 때는 나를 닮았지만.”

“죄송해요.”

“진짜 철벽이구나?”

두 미녀는 인적이 드문 카페에서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렇게 얼마 동안 이야기했을까?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본 후배가 먼저 일어섰다.

“이만 가볼게요.”

“오늘은 일찍 가네. 아! 아직도 교생 실습 중이니?”

“네.”

“진짜 나쁜 학교네! 이렇게 예쁘고 훌륭한 며느릿감을 아직도 교생으로 썩히다니!”

“하, 하하... 말씀만으로도 힘이 나네요. 하지만 괜찮아요. 정말 멋진 학생을 담당하고 있거든요~”

“잘생겼어?”

“네.”

“그러면 엄청나게 못생겼겠다는 뜻이네. 후배의 심미안은 이상하니까.”

“.......”

“왜?”

“절세미남이랑 결혼한 선배가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아서요. 배가 아주 부르셨어요.”

“어머! 우리 후배, 삐졌구나?”

“이만 가볼게요, 흥!”

“후후후! 그래, 다음에 또 보자!”

본의 아니게 카페 매상을 올려줬던 두 미녀는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현재는?

『너무 순진한 어떤 여신이 흥미진진하게 바라봅니다』

『매우 성급한 어떤 마신이 빠른 진도를 희망합니다』

어떤 신(神)만이 알 것이다.

저자의 말

안녕하세요. 파르나르입니다.

길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독자님들 덕분에 이번 작품을 1년 넘게 집필할 수 있었고, 무사히 완결할 수 있었습니다.

[FFF급 관심용사]는 섬나라 라노벨과 도덕경의 이상론을 현실에 대입하여 접근한 작품입니다.

그 의미가 독자분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됐는지는 모르지만, 도덕책처럼 지루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유쾌하게 읽히셨길 바랍니다.

신작은 예고대로 ‘무협’이며, 수위는 아쉽게도 전체연령입니다!

처녀작 [무림백서] 이후로 6년 만에 다시 무협으로 돌아온 만큼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FFF급 관심용사]는 이후에 팬픽 형식으로 주1회, 웹툰에 맞춰서 ‘외전’만 연재할 계획입니다.

마무리가 아쉽다는 의견은 작가도 공감합니다.

쉴 새 없이 달리던 강한수에게 브레이크를 거니 어색하더군요. ^^;;

그 아쉬운 부분은 외전에서 조금씩 풀도록 하겠습니다.

[FFF급 관심용사]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께 감사드리며, 외전과 후속작에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몰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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