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드래곤.
신비한 마력이 있어 그 피를 뒤집어쓰는 것만으로 불사신이 된다고 전해지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그 존재 자체를 신화나 설화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말이다.
드워프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고풍적인 자태를 자랑하던 마을은 불에 휩싸여 쑥대밭이 되었고, 거리에는 온통 드워프들의 시체와 고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드워프 중 소수의 강한 전사들이, 자신들이 만들어낸 무기들을 이용해 마을을 침략한 드래곤과 대치하고 있었다.
마을에 쳐들어온 드래곤의 숫자는 단 한 마리.
문제는 그 한 마리의 드래곤이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로 여겨지던 ‘이큘러스’라 불리던 드래곤이라는 것이다.
‘이큘러스’는 자신의 동족인 드래곤을 잡아먹으며 강해졌다.
많은 종족들이 살고 있는 이세계의 정점에 서고 싶어서.
신이 되기 위해서.
이큘러스는 가장 약한 인간의 마을부터 엘프의 마을에 이르기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살육을 저질렀다.
이미 이 세계에서 이큘러스는 신도 한 수 접어줄 정도의 악명과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악마의 이름 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신의 축복이라 일컬어지는 손재주를 가진 드워프, 그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실력을 가진 이 드워프 마을을 없애고 진짜 신이 되려 하고 있었다.
이 마을의 드워프들이라면 언젠가는… 자신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기에.
동족의 피로 얼룩진 드래곤의 다리 위로 드워프들이 총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뼈를 사용해 만든 망치도 드래곤의 비늘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위도 자를 수 있던 강도의 검도 무참히 동강 나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위에 널브러진 동족의 시체를 보며 분노하던 드워프들의 얼굴에도 이제는… 포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드워프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대대로 전설의 용사들 그리고 다른 차원의 신들에게 축복의 아이템을 만들어 주던 그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착한 존재는 아니지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악한 존재들과는 다른, 이로운 존재라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악에 굴복하는 자신들이 너무도 한심스럽고 억울했다.
자신들이 만든 모든 무기가 통하지 않자, 드워프들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마지막은 떳떳하고 싶었다.
후세에 자랑스럽게 기억되고 싶었다.
드워프들은 들고 있던 무기를 버리고,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 땅에 내려놓았다.
“신께 받은 능력이 약해서 진 것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이 부족해서 진 것이 아니다. 그저…….”
드워프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너 같은 악마를 없애 줄 용사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기에 우리가 진 것뿐이다!!!”
피로 얼룩진 이큘러스의 이빨이 드러나며 뱀 같은 목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원래 나약하고 약한 자들일수록 자신이 못 한 것을 남에게 쉽게 떠넘기지. 하지만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진실 같은 것들이 있지. 그것이 바로 이 몸이다. 나를 죽일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그러니 편히 죽어라.”
이큘러스의 발톱이 하늘로 높이 치켜 올라갔다.
마지막인 것을 알고 있음에도 드워프들의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었다.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았다.
그저 이 악마를 막지 못한 것이 아쉬웠을 뿐.
하늘 높이 올라간 발톱이 드워프의 몸을 찢기 위해 아래로, 아래로 빠르게 떨어졌다.
쿠와와앙!!!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발톱이 박힌 땅에서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얼핏 폭발음 같은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뒤이어 이큘러스의 웃음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으하하하! 이제 이 세계에서 날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
그때였다. 이큘러스의 기고만장했던 목소리가 돌연 잦아들었다. 이큘러스의 붉은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어째서…….”
이큘러스의 발톱이 박혀 있던 땅에서 서서히 먼지구름이 걷히고 있었다.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분명 드워프들의 시체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이큘러스의 발톱. 그 단단하다는 다이아몬드조차 가루로 만들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있었으니까.
시체는커녕 자신의 눈앞에 일어난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이큘러스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
자신을 공격하던 검이 동강 나 땅에 떨어진 것처럼, 그 어떤 것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던 자신의 발톱 하나가 부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 엄청 찾아다녔잖아!”
아직 영글어지지 않은 미성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이큘러스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지로 옮겨졌다.
인간…… 남자.
그간 자신에게 도전했던 용사들과 달리 갑옷도, 무기도 들지 않은 모습.
정체 모를 인간의 옆에는 자신이 죽이려고 했던 드워프들이 있었다. 그것도 멀쩡하게.
“대체…… 응?”
이큘러스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인간 남자의 손에 들린 것. 그것은 바로 자신의 발톱이었다. 부러진 자신의 발톱이 거기에 있었다.
“이놈! 감히…….”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이큘러스의 얼굴에 드러난 분노를 감지했으면서도 인간 남자는 오히려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인간 남자가 말했다.
“아, 미안, 미안.”
마치 별거 아니라는 듯이.
“드워프들만 구한다는 게…… 이렇게 돼버렸네. 한데 드래곤의 발톱이 너무 약한 거 아냐? 걸리적거려서 툭 쳤는데 이리 부러지는 건 뭐야?”
“우오오!!!”
이큘러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괴성을 내지르며 포효했다.
그래도 인간 남자는 태평했다.
목덜미를 긁적이며 자신의 손에 들린 발톱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뭘 그리 화를 내냐? 다시 붙여줄까?”
“감히 하등한 인간 주제에 나를 상대로 장난을 치려하다니! 인간 따위가 내 발톱을 부러뜨리는 건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래, 인간 주제에 나를 진심으로 화나게 만든 것은 인정하마. 그러니 곱게 죽을 생각은 버리는 것이…….”
“장난 아닌데.”
인간 남자의 작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작은 소리에 이큘러스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이세계에 있는 종족 중 가장 약한 종족인 인간 주제에! 머리통을 터트려야 네놈의 입이 다물어지겠구나!”
집채만 한 날개를 펼친 이큘러스가 단숨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모습이 작아 보일 정도까지 하늘 높이 솟은 이큘러스가 공중을 한 번 선회하더니 다시 빠르게 땅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인간 아니, 그 어떤 종족의 눈으로도 포착하기 힘들 정도였다.
“죽어라! 하등한 인간!”
이큘러스의 입이 쩍 벌어져 있었다. 한입에 인간 남자를 잡아먹으려는 것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는 긴박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이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 찰나의 순간조차 인간 남자에게는 꽤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건…… 돌려줄게.”
콰지지직-!!
순간, 폭발이라고 믿을 정도의 큰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먼지구름이 천천히 걷히고 드워프들의 시선이 모였다.
드워프들이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드래곤의 비늘은 그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동족을 잡아먹은 이큘러스의 비늘이라면 그 어떤 무기로도 상처조차 낼 수 없을 것이다.
분명 그럴 터인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이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
신이 되려던 존재.
이큘러스의 거대한 몸이 반으로 잘려 있었다. 마치 칼로 잘라낸 듯이 깔끔하게.
머리부터 꼬리까지 갈라진 이큘러스의 시체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마, 말도 안 돼!”
“이, 이큘러스가 어떻게……!”
드워프들은 이큘러스의 반으로 갈라진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무엇인가가 궁금해졌다.
드워프의 시선이 순간 거의 동시에 인간 남자에게 돌아갔다.
“…….”
“……!”
“……!!”
그리고 드워프의 누군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전설의 시작…….”
아니, 새로운 신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신, 인간 남자는 기쁨의 웃음도 환희의 목소리도 드러내지 않았다. 어이없게도 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튜토리얼 퀘스트 NO. 665
마물 이큘러스를 처단하라.
보상
경험치 + 187,263,337
이큘러스의 날카로운 손톱
이큘러스의 질긴 가죽
획득 칭호
드래곤 슬레이어 (SSS)
왕의 자격 (SSS)」
남자의 시야로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상태창이 떠올라 있었다.
이어서 들리는 익숙한 소리.
띠링!
띠링!
…….
[퀘스트 완료]
[보상이 진행됩니다.]
[경험치 + 187263337]
[이큘러스의 날카로운…….]
[드래곤 슬레이어 (SSS) 칭호를 획득합니다.]
[왕의 자격 (SSS) 칭호를 획득합니다.]
남자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번엔 다르길 바랐다.
지금까지 수백 번도 넘게 겪었던 그 상황과 다르길 바랐다.
[보상 획득 완료.]
[다음 퀘스트가 진행됩니다.]
“휴우-. 이것도 아닌 건가? 대체…… 대체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남자가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고 흔들어댔다.
드워프들은 남자의 이상한 행동에 서로 눈빛을 부딪치며 남자를 지켜보았다.
실성한 듯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드워프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다.
그리고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자신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감사를 표하지 않는 것은 드워프 종족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기에.
“저…… 목숨을 구해주어서…… 고맙소.”
덥수룩한 붉은 수염을 가진 드워프가 대표로 말했다.
가까이서 본 인간 남자는 상당히 어려 보이는 외모였다. 그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맙소”라고 끝을 바꾸었다.
드워프의 목소리에 인간 남자는 별거 아니라는 듯 굳은 얼굴로 고개만 끄떡였다.
많은 종족 아니, 다른 차원의 신까지 만나본 드워프였다.
하지만 처음이었다.
이렇게 무서운 눈빛을, 온몸이 굳어 버리게 만든 눈빛을 지닌 생물을 만나는 것은.
드워프의 표정을 감지한 인간 남자가 경직된 표정을 풀며 말했다.
“너무 감사해하지 않아도 돼요. 난 어차피 저 녀석을 잡으러 온 거였으니까.”
그 말을 남기고 인간 남자가 홱 몸을 돌렸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이큘러스, 이놈도 아니면…… 난 대체 뭘 해야 돌아갈 수 있는 거야…….”
그때,
“저, 저것은!”
“이, 이런 곳에 포털이 나타나다니…….”
인간 남자의 귀로 드워프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남자는 발걸음을 멈추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찌지직-.
작은 전류가 요동치며,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포효하고 있었다.
띠링!
[마지막 퀘스트가 시작됩니다.]
“드디어….”
달랐다.
또렷이 보이는 Last.
튜토리얼 퀘스트 NO. 666
Last
미림고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선물해 줄 검집을 찾아내어 죽여라.
(Time out - 000)
보상
경험치 + 1,187,263,337
검집의 심장 (EX)
획득 칭호
####(EX)」
“오-!”
순간 인간 남자가 온몸을 떨며 전율했다.
쉼 없이 찾아다녔다.
이세계로 온 100년 전부터. 미친 듯이.
타원형 모양의 빛!
인간 남자는 한눈에 알아보았고 직감했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살던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간 남자는 홀린 듯 포털을 향해 걸어갔다.
‘드디어 돌아갈 수 있다! 드디어 다시…… 다시 내가 살던 그곳으로….’
그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그의 몸이 포털에 닿기 바로 직전,
“잠깐!”
붉은 수염의 드워프가 남자의 팔을 붙잡았다.
“……?”
인간 남자가 뚱한 눈빛으로 붉은 수염의 드워프를 바라보았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이대로 보낼 수 없잖소. 가더라도 선물이나 받아주시오.”
붉은 수염 드워프가 손짓하자 다른 드워프가 재빨리 이큘러스의 대가리에 박힌 손톱을 뽑아서 가져왔다.
이큘러스의 손톱을 가운데 두고 드워프들이 둥그렇게 서서 알지 못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드워프들의 머리 위로 각각의 빛이 피어올랐다.
‘호-!’
그 빛을 보는 순간 인간 남자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저 보기만 해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빛이었다.
잠시 후, 드워프들의 빛이 사라졌다. 그들은 꽤 많은 힘을 소진했는지 엉덩이를 땅에 찧으며 바닥에 풀썩풀썩 쓰러졌다.
그중에는 붉은 수염의 드워프도 있었다.
하지만 붉은 수염의 드워프는 곧 몸을 일으켜 힘겹게 인간 남자에게 다가갔다.
“이걸… 받아주시오. 신이 되려 했던 마물의 손톱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강한 무기일 것이오. 이 정도면… 다른 차원의 신들에게 준 무기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오….”
이큘러스의 손톱은 작은 단검으로 변해 있었다. 단검에는 작은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고, 고마워요.”
인간 남자는 단검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러고는 재빨리 포털로 몸을 던졌다.
남자의 모습이 포털로 사라지고, 포털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붉은 수염의 드워프가 작게 중얼거렸다.
“어디로 가든지… 당신이 그 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그곳의 신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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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00일
‘최한’
이세계 생활을 끝내고 현실로 귀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