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준 사건들은 지금껏 많이 있었다.
전쟁, 과학의 발전, 인터넷의 등장 등등.
하지만 그 어떤 것들보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은 바로 던전과 능력자들의 등장이었다.
전 세계 곳곳에 등장한 던전과 미지의 탑들.
그리고 던전 속에 있는 몬스터들과 그 부산물들은 현대 사회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목이 마른 사람들이 물가로 모여들듯, 부와 명예를 추구하는 모든 인류는 던전으로 향했다.
2016년.
처음으로 던전이 세계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의 국가들은 미지의 던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현대 과학의 힘과 군사력을 빌려 탐사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을 즈음 전 세계의 국가들은 세계 전역에 나타난 던전과 미지의 탑에 대해 알아낸 정보를 공개했다.
어떠한 이유로 등장한 것인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던전과 미지의 탑 속은 다른 차원이라 생각될 만큼 크고 지구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공간이 형성되어 있다.
각 던전은 그 형태도 각기 다르다.
던전에는 각각 다른 몬스터가 살고 있다.
그들을 죽이면 신비한 보석들과 아이템이라 불리는 물건들을 얻을 수 있다.
……라는 기본적인 정보의 공개였다.
하지만 던전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크게 다가온 이슈가 하나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능력자.
소수의 인간들에게서 발견되기 시작한 이 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하게 늘어났다. 많은 수의 인간들이 이전과 다른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어느 무리에서건 서열은 존재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능력자들에게도 등급이 생겨나게 되고, 강한 존재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신에게 버림받은 D급.
서울대보다 C급.
공무원보다 B급.
건물주보다 A급.
신보다 높은 S급.
능력자들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보다 더 높은 인기를 누리며 하나의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스레 능력자들로 이루어진 팀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들을 사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길드도 생겨났다.
뭐, 여기까지는 던전과 몬스터가 나타나기 전 영화와 웹소설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허나 소설과 현실 세상은 엄연하게 다르다.
현실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은 능력자들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다. 그러면서도 능력자가 아니면서도 능력자와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서번트.
파티를 맺어 던전과 탑을 클리어하는 능력자들의 옆에서 그들을 보조하고 도와주는 직업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들과 함께하고 그에 따른 이익을 분배받을 수 있는, 연예인의 매니저 같은 직업이다.
이 서번트라는 직업은 웬만한 직장인들보다 돈을 많이 번다. 그렇기에 사회에서 바라보는 시선도 꽤 괜찮다.
그래서 요즘은 ‘샐러리맨보다 서번트’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던전과 탑, 능력자들의 등장에도 사회는 잠깐 놀랐을 뿐 그에 발맞춰 그것들을 이용하고 또 하나의 사회적 변화로 받아들이며 적응해 갔던 것이다.
적어도 5년까지는.
2021년.
던전과 능력자가 등장한 지 5년이 지난 현재, 세상은 또 한 번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 * *
“여기는 브로스 길드 A – 31번 서번트 지원 바란다. A급 던전, 보스 몬스터 크라켄 가평 JK-1170 지점에 출몰했다! 다시 한번 전한다. 여기는 브로…….”
서번트인 한 남자, 그의 손목에 있던 장치에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브로스 길드입니다. 현재는 업무량이 많아 통화가 지연되는 점….”
자신의 손목에 대고 소리치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옆에 있던 차량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에이, 시벌!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쥔 남자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들의 시선이 모인 곳.
가평역.
그 건물이 거대한 문어 다리에 의해 반쯤 무너지고, 다른 문어발에는 그들이 타고 왔던 경전철이 장난감처럼 들려 있었다.
문어는 크라켄이었다.
대체 왜 크라켄이 여기에 나타났는지 모두 이유를 알지 못했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허탈한 표정으로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에게 날 선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쳐다보지만 말고 얼른 사람들이나 대피시켜!”
그들에게 소리친 사람은 수아였다. 그녀는 분홍색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순간 공중으로 점프했다.
그것은 분명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수아가 도약하기 위해 발을 디딘 콘크리트 바닥은 힘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이 조각났고, 그녀의 몸은 이미 전봇대의 꼭대기 부분을 한참 치고 올라가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수아의 모습을 보고도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머리를 움켜쥐고 있던 한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난 힐러라고. 사람들을 대피시키려면 나보다 네가 더 낫지. 괜히 지가 싸우고 싶으니까 내 핑계 대는 거면서…….”
“강산이 형. 본부도 연락 안 되니 우선 저희가 할 수 있는 걸 하죠. 어서 사람들부터 대피시켜요.”
“그래, 한다, 해! 수아, 넌 나중에 두고 보자. 다쳤을 때 고쳐주나 봐라!”
힐러 남자가 박수를 한 번 치자, 초록색 빛이 온몸을 감쌌다. 그 빛이 서번트 남자에게까지 옮겨가 그의 온몸을 보호막처럼 감쌌다.
강산과 서번트는 가평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분홍색 머리칼을 휘날리던 수아는 크라켄의 머리에 곧장 발차기를 날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크라켄의 머리가 움푹 파였다.
“끼이이이익!”
의미 불명의 비명을 지르며 크라켄이 들고 있던 전철 한 량을 수아에게 던졌다.
“그딴 공격이 이 S급 최강의 딜러에게 통할 것 같으…….”
하지만 수아는 채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전철을 바라보던 수아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 비겁한 문어 새끼!”
날아오는 전철 속에 타고 있는,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본 것이다.
수아는 양팔을 벌려 날아오는 전철을 감싸 안았다.
콰과과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뿌연 먼지가 일었다.
전철과 함께 수아는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만족했는지 크라켄이 괴성을 내지르며 춤추듯 다리를 움직였다.
땅으로 곤두박질쳤던 수아가 찰진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개, 아닌 문어 XXX 대가리야!!”
사람들이 최대한 다치지 않게 받아내는 것 따위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빡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오늘이 바로 그토록 고대하던 첫 생일 여행이었다는 것. 그래서 친구들과 예약해 놓은 가평 펜션에 가는 중이었다.
“이 문어 새끼! 내 생일을 방해해? 넌 오늘 반드시, 다코야키 해 먹고 만다!”
그래도 사람들의 피신이 먼저였다.
수아는 전철의 문을 양손으로 뜯어냈다. 잔뜩 겁에 질려 비명을 질러대던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뛰쳐나왔다.
“어서 도망쳐요. 어서!”
수아 덕분에 사람들은 무사히 모두 도망쳤다.
수아가 양손을 내려 무릎을 두 번 내려쳤다.
치이이익! 콰과광!!
번개가 번쩍였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에 100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무릎 아래로 생겨난 번개 부츠. 마력을 사용한 그녀의 능력이었다.
“이 문어 새끼! 곱게 다져 밀가루에 버무려주마!”
수아가 크라켄의 머리통을 향해 점프했다.
아까하곤 확연히 다른 속도였다. 그녀가 디딘 땅에는 마치 싱크홀이 생긴 듯 깊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A급 던전 보스 몬스터라면 A급의 능력자들이 레이드를 이루어서 잡아야 할 만큼 강하다 여겨진다.
허나 그것은 평범한 A급 능력자에 한정되는 말일 뿐이었다.
현역 대한민국 S급 딜러 중 최강이라 불리는 그녀이자, 자연계 마력 스킬을 가진 그녀라면 A급 보스 몬스터를 혼자 잡는 것도 전혀 불가능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적을 발견한 크라켄이 두 개의 다리를 들어 자신의 얼굴을 방어했다.
“겨우 그 정도로 괜찮겠어? 이 몸의 능력치는 올 S인데?”
쾅! 치이익!
번개를 감싼 수아의 발이 크라켄의 다리에 닿자마자 오징어 굽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고는 크라켄의 다리 두 개가 땅으로 뚝 떨어졌다.
“끼이이이이익!”
다리가 잘린 고통에 괴성을 내지르던 크라켄이 더욱 요란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나머지 다리를 이리저리 사납게 휘두르며 건물을 파괴했다.
“햐, 곱게 죽을 것이지 난동을 부리겠다? 그럼 이번엔 머리통을 작살 내 줄게. 죽어라, 다코야키!”
수아가 공중을 발판 삼아 다시 한번 도약했다.
그런데 그때,
찌지지직!!!
“……?”
크라켄의 머리 위의 공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흰빛에 둘러싸인 포털이었다.
“저게 갑자기 왜……?”
수아는 크라켄에 대한 공격마저 멈추고 포털을 주시했다.
잠시 후, 포털 안에서 뭔가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수아의 눈빛이 긴장감으로 빛났다.
그러나…….
“엥?”
포털에서 나온 뭔가는 바로 사람이었다. 그것도 하얀 거적때기 같은 옷을 걸친 남자였다.
그 남자가 나오자마자 포털은 신기하게도 금세 사라졌다.
그렇게 툭 떨어진 남자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바로 크라켄의 머리 위에서 말이다.
수아는 순간 구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남자의 얼굴을 보니 또 밝게 웃고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다.
그 상황이 너무 어이가 없으면서도 좀 웃겼다.
그런데 남자의 그다음 말, 괴성 같은, 아니, 환희에 찬 것 같은 목소리를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 돌아왔다!!! 드디어… 드디어 돌아왔다!!!”
“……?”
“만세! 만세!! 만세!!!”
남자는 양팔을 허공으로 들어 올려 만세를 불렀다.
“저… 저 인간… 뭐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갑자기 포털에서 툭 튀어나오더니 다코야키의 머리 위에서 만세 삼창?
남자, 그는 최한이었다.
최한은 너무 감격하여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토록 바랐던 것이었다. 그것도 백 년 동안.
늑대의 울음소리에 잠 못 들고, 몬스터의 공격에 수천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그는 오직 한 가지만을 바랐었다.
현실 세계로의 귀환.
“흐흐흑흑! 드디어 돌아왔어! 끄흐흐흑!”
감격에 겨워 최한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어이없는 상황에 수아는 잠시 크라켄과의 싸움을 잊을 정도였다.
“포털 속에서…… 웬 미친놈이 나온 건가?”
하지만 지금은 현실적인 문제, 크라켄의 처지가 먼저였다. 그리고 겁도 없이 크라켄의 머리 위에서 소리치고 있는 미친 인간의 목숨도 위험했다.
“야! 위험해!”
헉!
수아는 깜짝 놀라 다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크라켄의 다리가 슬금슬금 미친 남자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도망쳐! 이 미친놈아!!”
수아는 빠르게 크라켄의 대가리를 향해 날아갔다.
아무리 미친놈이라고 해도 일반인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아주 오랫동안 꿈속이 뒤숭숭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늦었어!”
한발 늦었다.
쾅-!
문어의 다리가 그대로 미친 남자를 덮치고 만 것이다.
“아, 하필이면 왜 내 눈앞에서 죽는 거냐. 하아-.”
크라켄의 머리를 부숴 버릴 듯 날아가던 수아는 허공에서 멈칫하며 멈췄다. 그런데 그때, 요란한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쾅!!!
푸아악-!
“응?”
수아의 두 눈이 화들짝 놀라 커졌다.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뜻밖의 상황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해했다.
“분명…… 분명히…….”
크라켄의 토막 난 다리들이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
그녀의 눈에 한 사람이 보였다.
“……미친놈.”
여전히 저 미친놈은 양팔을 쭉 뻗어 올린 채 만세를 소리치고 있었다.
미친 남자가 소리쳤다.
“돌아왔다!!! X발, 학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