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민섭이 고블린에게 쫓기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평지로 가면 방망이에 맞아 죽는다고!”
최한이 민섭을 보며 소리쳤다.
“아… 아니! 그건 알고 있는데. 왜 도와주지 않는 거야!”
최한이 나뭇가지 위에 쪼그려 앉아, 태평하게 코를 팠다.
“내가 왜?”
최한의 표정을 보고 하얗게 상기된 민섭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으악!”
쓰러진 민섭의 주위로 고블린 세 마리가 모여들었다.
“끼긱!”
“끽!”
먹잇감을 잡아 신이 났는지, 고블린들이 발을 높게 들며 춤을 추는 시늉을 했다.
민섭의 시선으로 고블린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뭉툭한 코를 씰룩거리며 뱀 같은 혀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민섭아 조심해라. 걔네 배 많이 고픈가 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이게 할 말인지, 민섭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던 최한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무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다른 사람인 것 같았다. 정말 고블린에게 팔이 뜯기고 살점을 물어 뜯겨도 전혀 구해주지 않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서 냉담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고블린들이 일제히 방망이를 높게 치켜올렸다.
민섭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미노타우로스 앞에서 친구들을 지키려 소리칠 때도,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는 맛보았다.
하지만.
그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다.
그때는 자신도 모르게 용기가 샘솟았다.
바보 같던 지난날의 자신을, 겁쟁이였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진짜로 죽음과 가까워지는 상황까지 자신을 몰아붙였던 것뿐이었다.
그때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살고 싶었다.
아니, 죽기 싫었다.
이 고블린들은 정말 자신을 죽일 것 같았다.
방망이가 민섭의 머리를 향해 일제히 떨어졌다.
“바보야! 정신 차려!”
날이 선 목소리가 민섭에게 향했다.
정신을 차린 민섭이 눈도 뜨기 전 빠르게 몸을 뒤로 굴렸다.
고블린들의 방망이가 방금까지 민섭이 주저앉아 있던 땅에 꽂혔다.
민섭의 시선으로 거대한 팔이 나타났다.
회색의 돌들이 촘촘하게 이어져 거대한 무기로까지 보이던 그 주먹이 세 마리의 고블린에게 직격해, 고블린들을 저 멀리 날려 버렸다.
끽.
하는 비명만을 남긴 채 고블린들이 풀숲 너머로 날아갔다.
“고… 고마워.”
민섭의 시선에 장부기가 있었다.
뒤로 묶은 긴 머리를 반대로 넘기며, 마력을 사용해 거대해진 오른 주먹에 묻은 고블린의 보라색 피를 바닥에 털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진짜 죽고 싶어!”
미간이 구겨지도록 소리치는 부기의 얼굴이 어째선지 예전과 달랐다. 돈을 뺏을 때의 부기가 아니었다. 친구들 앞에서 무시를 줄 때의 부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얼굴이, 그 표정이 바뀌었다 해도.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변했다 해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거의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민섭이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한의 목소리가 땅에 내려앉았다.
“오! 이번 건 좋았어. 내 미끼 작전이 통했구만!”
장부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팀장이라는 놈이 뭐 하는 거야! 민섭이 진짜 죽을 뻔했잖아!”
장난기 넘치던 최한의 표정이 일순간에 무표정으로 돌아섰다.
“그게 뭐.”
무섭도록 시린 목소리에 부기와 민섭의 표정이 사라졌다.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이건 실전이야, 전장이라고.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놈들 다 나와.”
최한이 올라가 있던 나무 뒤쪽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머지 팀원들이 어두운 표정을 하고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너희들, 왜 이 수업을 듣고 있는 거냐?”
최한의 목소리에 아래 모여 있던 아이들이 말없이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장부기가 최한을 보며 소리쳤다.
“얘들은 능력자가 아니야! 다들 강하지 않다고!”
엄청난 능력 차이.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같지 않았다.
다른 생명.
다른 존재.
D반 아이들이 최한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너희들, 정말 속으로 내가 모두 해결해 주길 바란 거냐? 몬스터들을 없애주고, D급 보스 몬스터의 부산물만 꿀꺽하고 싶던 거냐….”
D반 아이들의 눈이 더는 높은 곳을 바라보지 못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헌터가 되고 싶다며! 서번트가 되고 싶다며! 언제까지 자신을 약자라 생각할 거야! 자신이 약하다면 강해지려 노력해야지. 혼자서 안 된다면 옆에 있는 동료와 함께해야지! 능력 없는 게 자랑이냐! 언제까지 뒤에서 숨어만 있을 거야!”
같은 공간 안에.
서로 다른 존재였던 그들은… 이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숨지 말고, 함께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 * *
“우선 종훈! 홍철! 빠르게 고블린들을 떨어뜨려!”
조일환 선생의 목소리가 울렸다.
선두에 있던 두 명의 남학생이 고블린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평범한 인간의 속도가 아니었다.
종훈과 홍철 그들은 D반에서 몇 안 되는, D급을 받은 능력자들이었다.
종훈과 홍철이 온몸을 던져, 뭉쳐 있던 네 마리의 고블린 중, 두 마리를 껴안고 풀숲으로 날아갔다.
“지현이는 종훈이와 홍철이 상태 체크! 아진! 남아 있는 두 마리 중, 한 마리 처치하면 1학기 수행평가 만점 주마!”
조일환 선생의 긴박한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남아 있던 고블린이 있는 자리에 짙은 그림자가 생겨났다.
발밑에서 점점 커지는 그림자에 고들린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알아차려도 이미 늦었어!”
떨어지는 화살처럼, 아진이 고블린의 머리통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끼긱!”
몸을 옆으로 날려, 간발의 차로 아진의 공격을 피한 고블린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방망이를 아진에게 던졌다.
바람을 가르는 굉음을 내며 날아오던 방망이가 아진의 눈앞에서 멈췄다.
“휴… 수행평가 만점은 날아갔네…. 뭐, 그래도 이 정도는 예상했다고!”
아진이 손에 들고 있던 방망이를 고블린이 있는 방향으로 던졌다.
고블린들이 자신의 위쪽으로 한없이 벗어나는 방망이를 보며 키득댔다.
그때, 가지들이 쓸리는 소리와 함께, 풍성한 나뭇잎들 사이에서 손이 뻗어 나와, 방망이를 움켜쥐었다.
이 순간을 위해 나무 꼭대기에 숨어 있던 남학생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아래로 몸을 날렸다.
“뚝배기 샷!”
꽈직!
남학생의 혼신을 다한 일격이 고블린의 머리에 직격했다.
하지만.
부러진 것은 고블린의 뚝배기가 아니라, 남학생의 손에 들려 있던 나무 방망이였다.
방망이가 반으로 쪼개지며, 힘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어라라….”
고블린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두 개로 갈라진 뱀의 혀가 입맛을 다셨다.
위급 상황이었다.
방망이로 일격을 가했던 남학생의 이름은 이재민.
D급도 받지 못한 일반인이다.
어릴 적, 기계 체조를 했던 경험을 살려, 조용히 나무 꼭대기에 숨어 있긴 했지만….
곁에 있던 고블린 한 마리가 다가와 도망가지 못하게 재민을 포위했다.
목숨이 걸린 긴박한 상황이었지만, 어째선지 남학생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일반인인 내가 네놈의 그 단단한 뚝배기를 깨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고. 고블린의 약점은 다리니까.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쉬이이이이!
바람을 가르는 찰진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있던 작은 풀과 젖은 나뭇잎이 무언가에 쓸리듯 목숨을 잃고 비명을 내질렀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고!”
축구선수들의 태클처럼 몸을 낮춰, 바닥과 한 몸이 된 아진이 고블린들에게 돌진했다.
고블린의 시선이 아진에게 닿기도 전, 두 마리의 고블린이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진과 재민이 마주 보며 손뼉을 쳤다.
“예이!”
종아리가 말 그대로 두 동강이 난 고블린 두 마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천천히 다가온 조일환 선생이 박수를 치며 칭찬했다.
“언제 작전을 짰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건 칭찬해주마. 너희는 팀을 이루는 전투에서 더 빛이 나는군.”
시선을 옮긴 조일환 선생이 고블린의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깔끔하게 잘린 단면.
힘을 분산시키지 않고 한 점으로 모아, 마치 칼로 자른 듯했다.
‘한 달 전에는 자르는 건 고사하고, 뼈도 뚫지 못했는데….’
살짝 숙인 조일환 선생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조일환 선생의 눈앞으로 어제의 기억이 동영상을 튼 것처럼 재생되었다.
같은 장소 다른 것은 A반이라는 클래스뿐.
마력을 사용해 너무도 쉽게 고블린들을 찢어 죽이고, 마치 학살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던 A반 학생들.
그들에게 물었다.
‘이렇게 죽이기만 한다면, 지난날과 다른 게 무엇이냐? 이 수업이 너희에게 준 발전은….’
‘수업을 떠나서 저에겐 발전 따윈 필요 없어요, 선생님. 이미 이렇게 강한 힘이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요? 뭐, 그래도 이 수업이 저에게 준 발전은 하나 있네요. D급 던전 최소 시간 클리어.’
너무도 강해져 버린 아이들.
아니, 나약한 정신에 깃든 너무도 강한 힘….
‘나의 능력으로도 A반 아이들에게 진정한 힘의 사용법을 깨우쳐주지 못했다.’
“쌤… 쌤!”
아진의 목소리에
생각에 잠겼던 조일환 선생이 정신을 차렸다.
“어… 미안하다. 잠시 딴생각을 했나 보군.”
허공을 맴돌던 시야를 아진의 얼굴로 옮겼다.
“쌤답지 않게…. 그건 그렇고! 아까 말씀하신 고블린 한 마리 잡으면 주신다 했던 수행평가 점수는?”
조일환 선생이 고블린의 사체를 한 번 내려다보고, 몸을 돌렸다.
“내가 말한 건 분명 고블린 한 마리다.”
한없이 차가운 목소리와 자비 없는 뒷모습에, 풀이 죽은 아진이 다리가 풀리듯 주저앉았다.
“그런 억지가…. 쌤 나빠….”
재민이 아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그녀를 위로했다.
1팀의 팀장인 지현이 아이들과 함께 조일환 선생에게 다가왔다.
“홍철과 종훈이가 풀숲으로 끌고 갔던 고블린을 나머지 팀원들과 힘을 합쳐 해치웠습니다. 홍철이는 고블린과의 전투 중 상처를 입었지만, 깊지 않은 상처기에 제가 바로 치료했습니다. 등급이 없는 팀원들도 이번 모두 한 대씩이라도 고블린에게 모두 공격 포인트를 따냈습니다. 이 정도면 지금까지 중 최고의 성과로 봐도…. 저기 쌤, 지금 듣고 계시는….”
조일환 선생이 고개를 들어 울창한 수풀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작은 빛을 바라보았다.
“내가 말 한 고블린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를 잡았으니까. 김아진 너만이 아니라….”
아진의 고개가 들려졌다.
“김아진, 이재민! 너희 둘은 1학기 수행평가 만점이다.”
조일환 선생이 발걸음을 옮겼다.
주저앉아 있던 아진의 곁으로 1팀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축하해!”
“이야! 축하한다!”
그저 그런 빈말이 아니었다.
진심 어린 축하.
그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기쁜 목소리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으며 조일환 선생이 앞으로 나아갔다.
“빨리 안 오면 두고 간다.”
아이들이 빠르게 조일환 선생의 뒤를 따라갔다.
* * *
같은 시각.
브로스 길드의 연구소.
전자기기로 가득 찬 어두운 방안에 붉은빛이 번져 갔다.
화면 중앙 위험을 알리는 붉은 글자와 함께 귀를 찌르는 사이렌 소리가 방안을 가득 채웠다.
“소장님! A 337 – 281 지점에 지정 수치를 초과한 강한 마력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이 정도 수치면 A급 던전이 나타나는 것보다 더 강한….”
긴박하게 울리던 연구원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그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왜 보고를 멈추는 거야!”
“그게… A급 던전 아니, 더욱 강한 반응이 나타난 A337 - 281 지점이… 미림 고등학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