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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11화 (12/211)

11화

네 개의 다리가 눅눅한 땅을 짓눌렀다.

늪지대에서 기어 나온 거대한 도마뱀들이 코를 자극하는 먹잇감의 냄새를 찾아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두 개로 갈라진 긴 혀를 빠르게 ‘낼름’거리며 늪지 옆에 있던 큰 바위 아래로 도마뱀들이 모여들었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바위의 꼭대기 정중앙에 앉아 있는 최한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지어졌다.

“우선 최고의 미끼 출격!”

최한의 목소리에 바위 위에 있던 한 남학생이 도마뱀들이 우글거리는 아래로 점프했다.

이미 색을 잃은 나뭇잎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본래의 생기를 띤 나뭇잎이 아닌, 늪지대 특유의 습기를 먹은, 죽은 나뭇잎들이 남학생의 발아래서 비명을 질렀다.

바위 아래 모여 있던 도마뱀들이 일제히 몸을 뒤로 돌렸다.

땀으로 젖은 앞머리를 툭툭 털며, 안경을 고쳐 쓰고 있는 남학생의 시선으로 10마리가 넘는 도마뱀들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이 머… 머저리 도마뱀들아! 너희들 따위 하나도 안 무서워! 느림보 땅딸이 자식들아! 나 잡아봐라!”

민섭이 몸을 반쯤 돌려 자신의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최한이 몸을 뒹굴며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좋아! 그거야, 민섭아! 더 약 올려!”

얼굴이 빨개진 민섭이 눈꼬리를 치켜올려 최한을 노려보았다.

“최한 나빠!”

괴성인지 비명인지 모를 요상한 고함을 치며 민섭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도마뱀들을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분명 자신들을 놀리는 인간의 목소리를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눈앞에 있는 먹잇감에 흥분한 도마뱀들이 좀 전보다 빠르게 발을 움직여 민섭을 쫓았다.

“으아아악!”

10마리가 넘는 도마뱀에게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민섭이 늪지대 옆 작은 공간을 이리저리 도망 다녔다.

“잘하고 있어, 민섭아! 빨리 달려 안 그러면 잡아먹힌다!”

태연하게 말하고 있는 최한의 목소리 뒤로 날 선 음성이 이어졌다.

“야, 최한! 진짜 어쩌려고 그래! 몬스터가 저렇게 많은데 민섭이 하나만 달랑 보내서 어쩌자는 거야! 저 녀석들한테 민섭이 잡아먹히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부기였다.

미간이 찌푸려지다 못해, 코에 난 점까지 크게 움직임을 보일 정도로 얼굴을 구기며 최한에게 화를 표출하고 있었다.

“어이, 장부기. 갑자기 왜 우디르급 태세 전환이냐? 네가 언제부터 민섭이 신경 썼다고….”

“어? 그게 아니라….”

최한이 팔짱을 끼며 부기를 올려다보았다.

“너라면 할 수 있겠냐?”

“뭐?”

“너라면 저 좁은 공간에서 저렇게 많은 몬스터들에게서 도망칠 수 있겠냐고.”

최한의 물음에 부기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잘 들어. 저게 바로 민섭이가 가진 능력이야. 민섭이는 저렇게 많은 몬스터에게 둘러싸여도 얼어붙지 않고, 도망 다닐 수 있어. 너희들이 항상 말하는 D급 능력도 받지 못한 평범한 일반인의 몸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부기가 바위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바로 앞까지 따라온 도마뱀을 피해 점프하고, 주위에 있는 바위에 올라가 도마뱀들을 유인한 다음 다시 점프해 도망치는, 민섭의 모습이 보였다.

늪에는 들어갈 수 없으니, 인간인 민섭이에게 불리한 지형인데도 불구하고 그 좁은 평지를 자유자재로 누비며 10마리가 넘는 도마뱀 몬스터들에게 잡히지 않고 있었다.

“이게 민섭이가 가진 가장 강한 능력이야. 바로 용기라는…….”

이렇게 멀리서도 보였다.

부기의 시선에 민섭의 강한 의지가 담긴, 용기가 담긴 눈동자가 똑똑히 보였다.

언제나 무시하고 괴롭혔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어쩔 수 없었던 행위더라도….

그럴 때마다 반항은커녕 꿈틀대지도 않았던.

민섭이.

지금은 자신보다.

그 누구보다 강한 용기를 내고 있었다.

왜 일찍 보려 하지 않았을까. 왜 이렇게 늦게 알아차렸을까.

‘나도 용기를 낸다면 앞으로가 달라질까…….’

부기가 더는 민섭의 얼굴을 담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최한이 몸을 일으켰다.

“그럼 미끼는 잘 뿌려졌으니…… 잡아야겠지? 사격조 준비!”

최한의 목소리에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이 전부 앞으로 나왔다. 전부 자신의 얼굴만 한 돌덩이를 들고 있었다.

최한이 휘파람을 강하게 불었다.

도망 다니던 민섭이 다시 바위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최한이 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잘 들어. 저 도마뱀들의 약점은 목 뒤쪽에 있는 붉은 혹이야. 강한 힘 따윈 필요 없어. 정확히 저 혹만 노리면 돼.”

팀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기는 처음으로 그들의 얼굴에 깃든 믿음이라는 이름의 무기를 발견했다.

“해진, 병현, 석민, 재윤, 지호, 나은, 장미! 준비하시고 쏘세요!”

최한의 신호에 아이들이 일제히 자신이 맡은 방향으로 돌을 던졌다.

강한 힘 따위는 필요 없었다.

높은 바위에서 돌을 떨어트리는 세기만으로도 충분히 도마뱀들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콱!”

“꾸엑!”

괴성을 난발하며 돌에 맞은 도마뱀들이 배를 보이며 몸을 뒤집었다.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지며 생기가 돌았다.

일반인인 아이들이 처음 자신의 손으로 몬스터를 잡았다.

수업 시간에 모두 함께 잡은 적은 있었지만, 자신의 손으로 한 마리의 몬스터를 잡은 것은 처음이었다.

최한이 빠르게 지시했다.

“아직 남았어! 한 방 더, 준비하시고 쏘세요!”

아이들이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돌을 던졌다.

“꾸엑!”

나머지 도마뱀 몬스터들도 전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집었다.

모든 도마뱀 몬스터가 뒤집힌 것을 확인한 민섭이 바위 위쪽을 보며 만세를 했다.

“진짜… 진짜로 우리가 해냈어!”

“우와와!!!”

아이들의 함성이 일제히 쏟아졌다.

불가능하다 생각했다.

자신들은 헌터는커녕 서번트도 되지 못하고, 이 길을 포기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처음으로 희망을 보았다.

1팀과 다르게, 최한을 제외하고 2팀에 있는 능력자는 부기 혼자였으니까.

언제나 뒤에서 지켜만 보았다.

던전에서 싸우는 것은 상상조차 못 했었다.

2팀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언제나 나서지 않고 뒤에서 지켜만 보던 그런 아이들이었으니까.

눈물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기는 아무리 최한이 있다고 해도, 대체 조일환 선생이 무슨 생각으로 이 일반인 아이들만 2팀에 보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선생님은…….’

생각에 잠겨 있는 부기의 어깨 위로 최한의 팔이 올려졌다.

“봤지? 능력자의 힘없이도 몬스터들을 물리칠 수 있잖아. 일반인이건, D급 능력자건 다 상관없어. 우린 D반이야, 힘을 합쳐 앞으로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어.”

웃고 있는 최한의 얼굴로 자신의 지난날이 겹쳐지듯 보였다.

‘나도 용기를 내면 강해질 수 있을까? 함께… 나아갈 수….’

민섭에게 시선을 옮겼던 부기가 빠르게 바위 아래로 떨어지듯 점프했다.

웃고 있던 최한이 부기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부기가 민섭을 감싸듯 껴안고 있었다.

부기의 행동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맛있어. 인간의 피 맛은 언제나 최고야.”

정적을 깨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부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부기의 등에 긴 바늘 같은 물체가 꽂혀 있는 것을 발견한 민섭이 점점 붉어지는 바늘에 시선을 빼앗겼다.

피.

그것은 분명 피였다.

장부기의 피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떨고 있는 민섭의 어깨에 부기의 얼굴이 힘없이 기대어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조금만 용기를 내볼걸…. 미안해… 민섭아…. 미안해… 얘들아….”

부기의 몸이 힘을 잃고 땅으로 쓰러졌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민섭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고개만 저었다.

“왜…. 네가… 대체 왜….”

2팀의 모든 시선이 향한 그곳.

처음으로 D반의 일원이 된.

장부기의 마지막…….

미소가 보였다.

* * *

“뭐라고? 매달 돈을 걷으라고?”

“귀먹었냐? 뭘 자꾸 물어?”

까무잡잡한 거구의 남학생이 부기를 쏘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춘식아. 그건 좀….”

“어이 장부기, 많이 컸네. 얻다 대고 말대답이야?”

부기의 고개가 떨어졌다.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고 우리가 친구는 아니잖아? 그리고 이 학교에서 너는 D반이고 난 C반이야. 네 애비가 우리 아빠한테 주인님이라 부르는 것처럼.”

부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퍽!

춘식의 발길질에 부기가 바닥을 뒹굴었다.

“표정 관리하랬지!”

배를 움켜쥔 부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병신 새끼. 매달 돈 걷어 와라.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나서서…….”

“아니야…… 내가 할게……. 우리 반은 내가….”

-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D반이 나처럼 지옥에 살지 않도록….’

* * *

흙에 반쯤 파묻혀 버린 얼굴 사이로 지금껏 보지 못했던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기뻐 보였다.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지어준 적 없던 표정.

자신도 이 표정을 지을 수 있을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대로 사과해야지…. 네가…. 네가….”

끓어오르는 분노가 슬픔이 되어 흐르고, 절규가 되어 메아리쳤다.

“안 돼! 죽지 마! 죽지 마, 제발! 네가 왜 나를 구해주다 죽는 건데!”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 나왔다.

무거웠다.

이토록 무거운 눈물은 태어나서 처음 흘려 보았다.

부기의 등에 박혀 있던, 바늘처럼 생긴 긴 물체가 빠르게 뽑혔다.

“다른 사람에 비해 양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뭐, 그래도 오랜만에 인간의 피 맛을 보니 너무 흥분되는군.”

목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우면서도 가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릴 리 없는 곳에서 들려왔다.

민섭의 시선이 배를 까고 죽어 있는 도마뱀 몬스터에게로 옮겨졌다.

분명 도마뱀 몬스터는 숨이 다해 죽어 있었다.

어떠한 움직임도 느끼지 못했고, 어떠한 낌새조차 없었다.

그러나.

부기의 등에 꽂혀 있던 긴 바늘은 분명 도마뱀의 배를 뚫고 이어져 있었다.

푸아악!

도마뱀의 배가 폭발하듯 찢어졌다.

너덜너덜해진 가죽과 잘게 찢어진 내장들이 주위로 흩뿌려졌다.

“하필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의 뱃속으로 이동되다니…. 날개가 다 젖었잖아.”

인간으로 따지자면 여성 쪽에 더 가까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작은 몸을 가지고 있었다.

얼핏 본다면 동화에 나오는 요정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50cm도 안 되는 작은 몸집의 그것은 인간처럼 머리와 몸, 팔다리를 완벽하게 가지고 있었고, 요정처럼 등 뒤에 아름다운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단지.

그것이 요정이 아닌, 악마…… 몬스터라는 것을 그 자리에 있던 D반 아이들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긴바늘이 달린 꼬리부터 물기를 털고 있는 날개, 그리고 누구라도 반할 만한 아름다운 얼굴까지…….

꼬리에서부터 시작된 붉은색이 온몸으로 퍼져 가고 있었다.

부기의 피가 몬스터의 온몸에 퍼지고 있었다.

바위 위쪽.

최한의 뒤쪽에 서 있던 장미가 소리쳤다.

“어째서 저 몬스터가 D급 던전에 있는 거지? 저…… 몬스터는 A급 던전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히든 몬스터인데….”

주위에 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부기의 죽음에 불안과 슬픔 그 경계선에 있는 감정이 표정에 드러났었던 아이들의 얼굴이 이제는 장미의 목소리로 인해 한 줄기의 희망도 없는 두려움의 색으로 칠해져 갔다.

D반 14번 장미.

D급도 받지 못한 일반인의 몸이지만, 그녀는 천부적인 재능 아니, 남들과 다른 그녀만의 특이한 능력으로 미림 고등학교에 들어왔다.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라면 미림 고등학교 수석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났다.

그런 그녀의 말이기에, 아이들의 두려움은 더더욱 커져만 갔다.

“히든 몬스터가 대체 왜….”

“우린 다 죽을 거야.”

“왜 계속 우리 반에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아이들이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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