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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12화 (13/211)

12화

아이들이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친구의 죽음, D급 던전에 나타난 강력한 히든 몬스터…….

“그래, 절망해라! 내 이름은 라리아! 인간들의 절망이 곧 내 피가 되고 힘이 되니까. 그래도 너무 많이 울지 말거라, 한 방울이라도 더 많이 먹고 싶으니까. 흐흐흐….”

꼬리를 만지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히든몬스터의 귀로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

웃고 있던 몬스터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몬스터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로 향했다.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왜소해 보이는 인간 남자는 너무도 약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어째선지 동족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동요하던 D반 아이들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민섭의 눈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눈물보다 다른 것에 눈길을 빼앗긴 아이들이었다.

처음이었다.

그 착한 민섭이가 이토록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던 적은.

잔뜩 구겨진 표정.

그것은.

민섭의 얼굴에 처음으로 지어진 살기 어린 분노였다.

“왜…. 대체 왜 나타난 거야. 여기는 D급 던전인데…. 좋았는데……. 처음으로 우리 반이…… 능력자도 아닌 우리가 처음으로… 처음으로 이겼는데…. 왜 나타나서 우리의 행복을 방해하고…. 왜… 왜…….”

민섭의 눈동자가 히든 몬스터의 시선을 잡아먹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쯤은 민섭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부기의 시체를 밟고 도망가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용기를 내 외쳤다.

목숨을 걸고.

“왜… 친구를 죽인 거야!”

히든 몬스터 라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믿지 못할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한쪽 발이 뒤처져 있는 것을.

‘설마 내가 뒷걸음질을 쳤다고? 이 몸이… 흡혈의 왕이라 불리었던 내가…?’

“훗! 흐하하하! 나약한 피라미 녀석인 줄 알았더니…… 용의 새끼인가 보구나…. 하지만 아직…….”

민섭의 시선에서 히든 몬스터의 모습이 사라졌다.

“용이 되진 못했나 보구나.”

온몸의 소름이 돋았다.

귓가에 울린 그 작은 음성에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찰나의 순간, 민섭은 죽음을 직감했다.

히든 몬스터의 꼬리가 민섭의 목숨을 빼앗으려 움직였다. 꼬리에 달린 긴 바늘이 민섭의 눈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마음속으로나마 소리쳤다.

‘젠장!’

민섭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파악!

“꺄아악!”

비명이 들렸다.

민섭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옴과 동시에 그의 시선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히든 몬스터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향했던 바늘이 힘을 잃고 땅으로 처져 있었다.

누군가의 손에 잡힌 꼬리가 뭉개져, 바늘로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넌 대체 뭐야…. 어째서 이런 힘이…. 인간 주제에 어째서 이런 강함…….”

누군가가 고통스럽게 말을 이어가고 있는 히든 몬스터의 목소리를 잘랐다.

“어째서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왜…. 부기를 구하지 않은 거야!”

민섭이 몬스터의 꼬리를 잡고 있는 최한을 보며 소리쳤다.

“이렇게 빠르면서! 너라면…… 분명 너였으면 부기를 구할 수 있었잖아!”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민섭은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은 이 순간이 부기가 공격받았던 아까의 순간보다 더 빠르고, 긴박했다고.

대답 없이 멍하니 굳어 버린 최한과 뿌연 시야로 그런 그를 노려보고 있던 민섭이었다.

가운데 있던 히든 몬스터의 얼굴에 분노가 들끓었다.

“너희 나를 가운데 두고… 무슨 헛소리. 읍!”

최한의 손이 히든 몬스터의 양 볼을 움켜쥐었다.

“맞아, 구할 수 있었어.”

최한의 목소리에 민섭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최한의 멱살을 잡았다.

“이 나쁜 놈아! 할 수 있었잖아! 할 수 있었으면서…. 너밖에 없는데…. 너만 그렇게 강한 힘이 있는데…. 왜… 대체 왜……. 내가 그런 힘이 있었으면… 있었으면…….”

툭.

민섭의 머리에 작은 손길이 느껴졌다.

마치 나비가 앉듯 부드럽게 떨어진 그 손은 너무도 따스해서, 눈물과 슬픔, 분노를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그런…….

어릴 적 엄마의 손길 같았다.

“켁! 커억!”

바닥에 쓰러져 있던 부기의 입에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구했어.”

* * *

“괜찮아? 부기야?”

거친 기침을 내뱉으며 깨어난 부기에게 민섭이 자세를 낮춰 다가갔다.

묘하게 파리해진 부기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와 확연히 차이 나는 피부색.

분명 죽은 줄 알았다.

온몸의 피를 다 뺏겨 과다출혈로 인해 목숨을 잃은 줄로만 알았다.

작은 움직임조차 없었으니까.

핏기없는 얼굴과 그 상황은 분명 부기를 죽은 것으로 오해하기 충분했었다.

“대체 어떻게 내가 살아 있는 거지…….”

내뱉는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기의 단단하고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부기 자신도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얼떨떨해 하고 있는 부기의 가슴팍으로 민섭의 얼굴이 파고들었다.

“이 바보야! 진짜… 진짜 죽은 줄 알았잖아!”

민섭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장부기였지만….

무슨 이유인지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민섭아.”

부기가 자신의 가슴팍에 안겨 있는 민섭을 끌어안았다.

늪지대에 두 남학생의 울음소리만이 한동안 울려 퍼졌다.

조금 진정되자 민섭이 최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최한, 고마…. 아니, 미안해. 역시 네가 친구를 죽게 할 리 없지……, 그런데 진짜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니…. 넌 대체…….”

어이없는 웃음이 최한의 입술을 뚫고 새어 나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신이냐? 죽은 사람을 살리게?”

“그럼 어떻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피를 뺏어가게 뒀지. 저 몬스터 입으로도 그랬잖아, 다른 놈들보다 피가 적다고…. 내가 그 이상 못 뺏어가게 힘을 쓴 것도 모르고 말이야.”

“왜…… 처음부터 구해주지 않은 거야?”

“뭐…… 그냥 부기와 너는 이런 극적인 상황이 필요했을 뿐이지.”

최한이 얼굴 가득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눈물지으며 서로를 껴안고 있는 걸 알아차린 민섭과 부기가 짧은 비명과 함께 서로 멀어졌다.

부기와 민섭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긴박한 상황은 모두 잊은 채 아이들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어…….”

“무슨 일이야!”

바위 위에 있던 아이들이 비명과 함께 주저앉았다.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지진이 난 듯, 땅이 요동치고, 늪지가 파문을 일으켰다.

“으아악! 지진이다!”

아이들이 한데 모여 몸을 웅크렸다.

최한의 시선이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향했다.

“시간이 되었나 보군.”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피어난 목소리가 들렸다.

최한의 손에 잡혀 있던 히든 몬스터가 자신의 손으로 목을 잘랐다.

피가 솟구침과 동시에 최한의 손에 몬스터의 얼굴만 달랑 들려 있었다.

“으…… 미친 몬스터. 어떻게 자기 손으로 목을 잘라 자살을 하냐…….”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은 최한이 손바닥을 펴, 손안에 남아 있는 몬스터의 얼굴을 확인했다.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인간. 이 몸이 겨우 머리 하나 잘린 것으로 죽을 것 같으냐?”

날아든 목소리에 놀란 최한이 고개를 들었다.

최한의 앞으로 머리 없이 날고 있는 히든 몬스터의 몸뚱이가 보였다.

“겨우라니…. 머리 잘리면 원래 다 죽거든? 너 때문에 손 다 더러워졌잖아. 이 미친 자살 몬스터야.”

“너희 같은 하등한 존재들과 비교하지 마시지.”

히든 몬스터의 온몸을 감쌌던 붉은색이 위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파악!

히든 몬스터 라리아의 얼굴이 다시 솟아나고 꼬리가 재생됐다.

“네놈 손에 잡혀 보니 알겠더군. 네 허리춤에 감춘 그 강한 기운……. 너구나, 우리를 여기로 부른 이가.”

최한이 옷 속에 감춰진, 드워프가 만들어준 무기를 내려 보았다.

‘이게 뭐라고. 저번부터 자꾸 몬스터들이 이걸 노리고 나타나는 것 같은데…….’

“어! 그것보다 우리라고?”

땅을 울리던 지진이 잦아들었다. 파문을 일으키던 늪지대에서 물이 샘솟기 시작했다.

솟아오르던 물을 뚫고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걸어 나왔다.

말이 코끼리지, 과거에 살았던 매머드와 더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였다. 발에 치이기만 해도 온몸이 바스라질 것 같았고, 땅을 딛기만 해도 무게를 이기지 못한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매머드 몬스터가 강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이유는…….

“으아악!”

“사람 살려!”

매머드 몬스터의 다리 아래에서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1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가장 뒤에서,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는 조일환 선생의 모습도 보였다.

아무리 아이들을 지키며 싸운다 한들, A급을 가진 능력자의 힘이 통하지 않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니던 1팀의 시선으로 최한이 보였다.

지현을 필두로 1팀 아이들이 하나둘씩 최한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최한의 앞에 도착한 지현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야! 뭘 보고만 있어! 빨리 싸워! 선생님 힘이 통하지 않아!”

최한이 코를 파며 대답했다.

“아니, 갑자기 나타나서 뭘 싸우래. 여기도 한 마리 있다고.”

지현의 시선으로 히든 몬스터 라리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꺄아악! 진짜 이게 뭔 일이야! D급 던전에 왜 이리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난 거야!”

지현의 목소리를 듣고, 히든 몬스터 라리아가 대답했다.

“D급 던전이라…… D급 던전이었겠지. 우리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야. 우리가 나타난 이상 이제 여기는 D급 던전이 아니야. 너희 인간들이 부르기를…… 이곳은 이제 S급 던전이다.”

S급 던전.

전 세계적으로 따져도 발견된 수가 열 손가락도 넘지 않는 아주 희귀한 던전이다.

일반 몬스터마저 B급 보스몬스터와 비교 불가할 정도로 강하다 알려졌기에, 웬만한 A급 인원들로 팀을 꾸려도 클리어하지 못하는 난이도 최강, 극악무도한 던전이라고 알려져 있다.

라리아의 목소리에 지현의 몸이 굳어졌다.

“잘 보거라, 아직도 이곳이 D급 던전처럼 보이는지. 우리를 포함한 많은 몬스터들이 이곳에 온 이상 너희는 절대 살아서 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나와 같은 힘을 가진 몬스터들이 적어도 10마리는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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