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내가 D반에 있으면 너희들은…… 올해 안에 모두 죽게 될 거야.”
나지막이 울리는 최한의 목소리에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알고 있었다.
모두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S급 던전 사건을 겪으며 모두 깨달았다.
최한의 힘은, 최한이 살고 있는 세상은 자신들이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닿을 수 없는 높은 곳.
아무리 원하고, 아무리 손을 뻗어도 잡을 수 없는…….
주인공의 자리라고.
그리고
언제나 주인공의 곁에는 강한 동료들만이 자리할 수 있다고.
모두 생각했다.
절망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조일환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아이들의 감정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학교 측에서 최한을 A반으로, 반을 옮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자신들의 생각이 모두 맞아떨어지자, D반 아이들의 고개가 모두 아래로 떨어졌다.
심각해진 분위기보다, 자신들이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아이들의 표정이 더더욱 어두워져 갔다.
“정말…… 가는 거야? A반으로……?”
지현의 떨리는 목소리가 최한의 귀로 들어왔다.
“나는…….”
우당탕!
강렬한 소리가 울리고, 모두의 시선에 넘어진 의자 하나가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처럼 약한 놈들하고는 못 있겠다는 거잖아. 저번처럼 매일 구해주는 게 귀찮다는 거잖아! 뭘 그렇게 돌려 말하는 거야!”
떨리는 주먹으로 책상을 때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부기가 소리쳤다.
친구들에게 미안했다.
어리석은 행동으로 대장 노릇 했던 지난날을 이제야 되돌릴 수 있게 되었는데….
최한과 함께라면 D반 전체가 더욱더 하나 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최한이 차분하게 이어 말했다.
“난 그런 뜻으로 얘기한 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위선자처럼 행동하지 말고! 그냥 우리 같은 쓰레기 따위 신경 쓰지 말고 A반으로 꺼져 버리라고!”
잔뜩 붉어진 얼굴보다, 핏기가 서려 충혈된 장부기의 눈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최한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무엇을 말하건 변명일 뿐이었고, 그 어떤 것을 말하건, D반이 약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이제 막 서로를 믿고, 모두가 달라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가지 마, 최한!”
울음 섞인 외침이 D반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민섭이었다.
안경 속으로 보이는 그의 눈망울에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최한이 대답 없이, 민섭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쳐도 최한은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민섭의 눈에서 눈물이 속절없이 흘렀다.
옆에 있던 조일환 선생은 그저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너도 봤잖아. 우리가 처음으로 도마뱀 몬스터를 잡는 걸…. 우리가 함께라면 해낼 수….”
“시끄러워!”
장부기의 목소리가 민섭의 음성을 잘랐다.
고개 숙인 장부기가 민섭에게 말했다.
“그깟 도마뱀 몬스터 몇백 마리 잡아도…. 아무리 우리가 지금보다 강해져도…. 최한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붙잡고 싶었다. 함께 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용기를 가르쳐준, 최한과 함께 하고 싶기에 민섭은 어리광 같은 이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싫어…. 싫단 말이야….”
울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렇게 고함을 치며 소리치고 있던 장부기도, 억지 부리던 민섭이도 어린아이처럼 울고 있었다.
책상 위로 떨어지는 부기의 눈물이, D반 교실 전체에 전염이라도 되듯 퍼져 갔다.
“가지 마, 최한.”
“우리가 약해 빠져서….”
“D반이라 미안해.”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교실 곳곳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그 이름 모를 바람은 아이들의 눈물을 하나씩 머금고 자신의 몸을 칠해갔다.
아이들의 마음으로 몸을 색칠한 바람이, 교실의 가장 앞쪽으로 날아갔다.
기분 좋은 바람에 지금껏 꾹 다물었던 입술에 미소가 지어졌다.
언제나 바랐었다.
자신에게도 친구가 생기기를.
“지구를 지키는 것보다, 영웅이 되는 것보다,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나는….”
최한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교탁으로 향했다.
최한의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조일환 선생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D반을…. 교실을 하나로 만들 방법이… 이거였구나. 역시 교사를 선택하길, D반을 맡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얀 이가 전부 보이도록 최한이 큰 웃음을 짓고 있었다.
“너희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하고 모두 함께 졸업하는 것이…… 내가 가장 바라는 일이야. A반 따위 안가. 난 언제나 D반이야.”
D반 아이들의 마음이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최한은 알고 있었다.
정말 욕심낸다면….
자신이 D반에 있는다면……
D반 아이들이 모두 죽는다는 자신의 말이.
올해 안에 죽는다는 그 말이.
현실이 될 것임을….
* * *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브로스 길드의 본사.
길드장의 방에 새로운 얼굴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기사와 언론 쪽은 어떻게든 막았지만,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될 겁니다.”
“대통령님도 사실을 은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SSS급 능력자를 공개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SSS등급 능력자의 등장은 세계적으로도 큰 이슈가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 한국은 앞으로의 산업과 외교에 더욱더 강한 입장을….”
테이블에 앉아 떠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표정과는 다르게 브로스 길드의 길드장, 최수혁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SSS급 능력자가 한국에서 나온 것까지는 좋은데…… 너희들이 봤냐고. 그 녀석을 앞에 두고도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나 보자.’
브로스 길드 그리고 정부와 손잡고 있는, 언론사의 사장과 대통령 직속 담당관, 힘을 보태주고 있는 국회의원까지.
모두 서울에 나타난 S급 던전 사건이 조용히 묻히도록 도와준 장본인들이다.
“휴…….”
최수혁이 땅이 꺼질 듯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것보다 SSS급 능력자가 왜 미림 고등학교에 가 있는 겁니까? SSS급이면 바로 실전에 투입되어도 충분할 텐데?”
뼈를 때리는 질문에 최수혁이 조금 뜸을 들이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가 원했으니까요. 100년 동안을 이세계에서 보내면서 학교가 그리웠나 봅니다. 그리고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 한들 그 힘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테니까요.”
들떠있던 표정들이 일순간에 지워졌다.
“자네 말은 SSS급 능력자가……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인가….”
“그의 선택에 달렸지요….”
* * *
4월의 화창한 봄날.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고, 향긋한 꽃내음이 거리마다 가득했다.
미림 고등학교로 향하는 길 곳곳에 벚꽃이 만개했다. 바람이 휘날릴 때마다 떨어지는 벚꽃 잎은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를 가져다주었다.
햇볕의 따스함과 싱그러운 봄바람.
완연한 봄이었다.
그리고.
그 봄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만끽하는 이가 있었다.
“아따, 날씨 좋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손바닥에 모으며 걷고 있는 최한의 모습이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학교로 향하는 학생들 속에 홀로 등교하고 있었다.
“이세계에 있을 때는 꽃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는데. 하아! 너무 행복하다!”
이세계에서 꽃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었겠나.
먹지 못하는 것은 밟고 지나가고, 먹을 수 있다면,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입으로 욱여넣었다.
꽃뿐 아니라 모든 것이 그랬다.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모든 것은 끌어안았고, 독이 되는 것은 죽이고, 없애 왔다.
그런 100년이었다.
그렇기에.
같은 곳을 거닐고 있어도, 최한에게는 이 모든 것이, 이 평범한 등굣길이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쌍꺼풀 없는 눈을 가늘게 뜨며 온몸을 떨어 행복을 표현했다.
“쟤인가 봐.”
“2학년 D반에 왔다는 전학생?”
“웃겨. D반 주제에 엄청 휘젓고 다닌다더만?”
“D반 주제에 일진 흉내 내는 거야?”
“B급 보스 몬스터 잡았다고 소문내고 다니던데?”
“근데 왜 저래? 꽃 들고 있는데? 미친 거 아니야?”
주위를 걷고 있던 학생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D, D, D, D.
‘그놈의 D.’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 보다, D반이라는 이유를 들먹이며, 안 좋게 얘기하고, 사람을 낮게 보는 그 인식이 최한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걸음을 멈춘 최한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았다.
잔뜩 찡그린 얼굴과 눈빛에서 느껴지는 경멸감.
똑같은 사람을 어떻게…….
저런 눈을 하고.
저렇게.
하찮게 바라볼 수 있을까.
“다 들었나 봐?”
“뭐 어때, D반인데. 뭐, 우리한테 시비라도 걸까 봐?”
“학생회 입회도 거절했다던데?”
“야, 그것도 거짓말이야. 학생회장 강진철을 뭐로 보고. 2학년 A반 한재석도 못 받았는데 무슨….”
“보나 마나 D급 받고 신나서 주제 파악 못 하고 왕 노릇 하는 놈이겠지. 어차피 사회 나가면 우리 시중이나 드는 서번트밖에 못 될 텐데.”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학생.
포마드 헤어스타일을 한 남학생.
교복 단추를 모두 푼 남학생.
슬리퍼를 신은 여학생.
모두 다른 생김새, 다른 모습, 모두 다른 개성을 뽐내고 있었지만,
D반을 생각하는, D반을 바라보는 눈빛은 모두 똑같았다.
정말 인간에게도 계급이 존재하는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
최한이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바라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이딴 학교 다 부숴 버릴까…….”
그때.
최한의 어깨로 무언가 얹어졌다. 처음 느껴보는 무게감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시야를 반쯤 가리던 빛 사이로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부수긴 뭘 부수냐?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학교인데.”
코에 난 점과 한쪽만 올라가는 입꼬리. 그리고 여자보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학생의 얼굴이 보였다.
“뭐야. 장부기… 너….”
부기를 보던 최한의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반대쪽에서 어깨를 밀치며 다가온 남학생의 얼굴이 보였다.
“다른 반 애들이 하는 말 듣지 마. 쟤들은 D반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야.”
민섭이었다.
일자로 된 앞머리와 맞닿은 눈썹을 씰룩이며, 밝은 표정으로 최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최한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다.
우린 D반이다.
미림 고등학교에서 가장 약한 D반.
다른 반 아이들이 무시하는 D반.
하지만.
이곳이 최한의 자리였고,
이곳이 인류의 구원보다 더 중요한 자리였다.
최한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양옆으로 두 명의 친구가 함께 발을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조금 있으면 쟤들 입 뻥끗 못 하게 될걸?”
부기의 목소리에 박수를 치며 민섭이 이어 말했다.
“맞네. 오늘 신체 검사 날이지? 드디어 D반의 무서움을 보여줄 날이군. 흐흐흐.”
“최한의 무서움을 보여주마. 다른 반 녀석들 놀라는 표정이 벌써부터 상상되는데? 헤헤헤.”
기분 나쁜 웃음을 보이며, 민섭과 부기의 얼굴에 장난스러운 악마의 표정이 지어졌다.
“신체 검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