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 잘 들리냐?]
아이들은 전자음과 섞여 나온 남자의 목소리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 최한 목소리인데?”
“어디야?”
“어디서 들리는 거지?”
아이들이 최한의 모습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그렇게 찾아도 난 거기 없어. 너희가 있는 곳은 연구센터에서 만든 인공 섬이야. 능력자들의 훈련을 위해 만들었다는데, 진짜 대단하긴 하다. 그 섬 곳곳에 몇천 대가 넘는 CCTV와 음성 회로가 설치되어 있어, 그리고 난 그걸 보고 너희들에게 얘기하고 있는 거고.]
장부기가 소리쳤다.
“갑자기 왜 우리를 여기로 보낸 건데! 너는 왜 여기로 안 오고!”
[오! 좋은 질문이야. 내가 그랬잖아, 실전 감각을 키워주겠다고. 너희에게 제일 부족한 그 감각을 키워주려면…… 말 그대로 실전이 최고지. 3일……. 딱 3일 동안 그곳에서 살아남아 봐. 먹고 입고 자는 것까지, 모든 게 훈련이야.]
“뭐?”
“뭐라고?”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지현이 인상을 구기며 성을 냈다.
“야, 잠깐만, 최한! 갑자기 이런 게 어디 있어? 훈련은 그렇다 치더라도 밥이랑 잠자는 것까지 우리가 알아서 하라니!”
[강해지고 싶다며. 너희들 항상 말해왔잖아. 서번트가 되고, 헌터가 되고 싶다며. 강해지려면 그만한 대가가 필요해. 그러니 어떻게든 3일 동안만 살아남아라. 맞다 참고로 거기에 늑대나 맹수들도 많이 있다니까…… 죽지 마라. 그럼 행운을 빈다.]
뚝-.
전자음이 끊기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에게 들리던 최한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야 최한! 진짜 어떻게 하라고.”
지현이 신경질적으로 땅을 찼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아이들의 얼굴에 근심이 쌓여만 갔다.
어려운 훈련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야생에 버려질 줄 몰랐다.
먹고 입고 자는 것까지
그야말로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훈련…….
아니, 실전이었다.
던전을 클리어 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이것은 모든 선택을 자신들이 해야 하는, 그야말로 진짜 목숨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때.
숲속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렇게 된 거 해보자! 분명 생각이 있으니까 이런 일을 벌인 걸 거야. 난 최한을 믿어, 분명 이 시련을 극복하면 우린 강해질 거야.”
모든 시선이 민섭에게 쏠렸다.
긴장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눈만은 강직했다.
민섭도 두려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최한을 믿었다.
그는 우리 반을 사랑하니까.
분명 지금 이 훈련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이끌어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뭐 죽기야 하겠냐? 우리가 놀러 온 것도 아니고 훈련하러 온 건데, 열심히 한번 강해져 보자!”
장부기가 민섭의 옆에 서서 크게 외쳤다.
아이들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래! 우리 수학여행 온 게 아니라, 전지훈련 온 거잖아!”
“맞아, 원래 훈련 하러 왔는데 뭐. 그래도 다 같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될 거야.”
“던전도 아니고, 몬스터도 없는데. 이 정도면 훈련이 아니라 캠핑 수준이지.”
“3일만 버티자!”
아이들이 민섭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모두…….”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맞다. 깜빡하고 말 안 한 게 있는데….]
아이들이 있던 자리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이들 전체를 지우는 큰 그림자.
[거기 이번에 처음으로 몬스터들도 넣어놨다니까…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라. 아무것도 못 먹어서 큰 목소리 내면 모여들 수도…… 어라…. 벌써 왔네….]
“꾸에에엑!”
티라노사우르스의 모습을 한 몬스터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으아악!”
“도망쳐!”
“최한, 이 나쁜 놈!”
몬스터의 울음소리를 지우는 아이들의 비명이 이어지고, 아이들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엑!”
쾅쾅쾅.
땅을 울리는 몬스터의 발소리가 들렸다.
작은 포탄 소리와도 맞먹는 그 소리는 아이들의 모든 감정을 공포로 몰아넣기 충분했다.
아이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달렸다.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모든 신경을 집중해 도망치고 있었지만, 자신들을 집어삼킨 몬스터의 그림자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 미치겠네! 저렇게 큰데 왜 이리 빠른 거야!”
선두에 달리던 지현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저 몬스터의 이름은 ‘폭군 도마뱀’이야. 백악기 타운이라는 C급 던전에 출몰하는 녀석이지. 큰 몸집에, 상당히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어서, 지능이 거의 없는 몬스터치고는 높은 등급을 받았어.”
장미가 눈도 뜨지 못한 채 달리며 소리쳤다.
“뭐! C급!!!”
“C급 던전 몬스터면 우리 반 능력자 전체가 달려들어도 못 이기겠는데!”
폭군 도마뱀과의 간격이 전혀 벌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한 부기가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이대로라면 다 죽게 될 거야. 그러니까….”
퍽!!
뭉툭한 소리가 들리고, 이어 몬스터의 괴성이 이어졌다.
“끼에엑!”
아까와 확연히 다른 울음소리.
아이들을 감쌌던 몬스터의 그림자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감지한 지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이…… 미친놈아!”
지현의 입에서 나온 욕설에 함께 달리고 있던 아이들의 고개가 일제히 뒤를 향했다.
그곳엔 마력을 개방해 거대한 주먹을 높게 들고 있는 부기의 모습이 보였다.
단지…….
“안 돼! 부기야!”
“뭐 하는 거야!”
“피해!”
그 당당한 뒷모습과는 다르게, 부기에게 처한 현실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크기였지만….
“쿠아아악!”
아이들에게 쏠린 관심을 돌리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D급의 능력자가 C급 던전에 살고 있는 몬스터를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한 가지.
부기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뒤를 잘 부탁한다. 전지현! 나 소화되기 전에 구하러….”
쾅!!!!
부기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 날카로운 이빨이 부기의 모습을 지웠다.
굉음과 함께 피어난 자욱한 연기 속으로 보였다.
인간의 그림자가 거대한 입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부기의 몸이 거대한 폭군 도마뱀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 돼!”
한 방향으로 달리던 무리에서, 이탈자가 발생했다.
잔뜩 성나 있는 표정을 지으며, 일행의 반대 방향으로 몸을 튼 한 남성.
민섭이었다.
민섭이 자욱한 흙먼지 속, 거대한 몬스터의 그림자를 향해 달려갔다.
“내 친구 뱉어 내!”
객기.
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능력이 없는 일반인이 낼 수 있는 힘 따위….
그것밖에 없었다.
스스로 불에 몸을 던지는 불나방처럼 보일지라도, 이것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친구를 구할 수 있는 용기라는 이름을.
민섭이 흙먼지 속으로 주먹을 날렸다.
슈우욱-.
민섭의 발이 땅에서 멀어지며, 자신의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양어깨에서 느껴지는 악력을 알아챘다.
타인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
부기를 삼킨 몬스터의 모습이 멀어져 갔다.
자신에게 일어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민섭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튀어나왔다.
“무… 무슨 짓이야! 이거 놔! 어서 부기를 구해야….”
짝.
찰기 어린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민섭의 얼굴이 고통에 구겨졌다.
“정신 차려! 김민섭!”
화살처럼 날아든 여성의 목소리에,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분노가 쓸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민섭의 시선으로 지현의 얼굴이 보였다.
“지… 지현아….”
달리고 있는 전지현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들고 있는 두 남성의 모습도 확인했다.
종훈과 홍철.
D급을 받은 반 아이들이 자신을 어깨에 짊어지고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흥분한다고 다 해결되지 않아. 가끔 보면 넌 너무 목숨을 쉽게 여겨!”
민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맞다.
힘도 없는 주제에, 항상 몸이 앞선다.
나약한 주제에….
민섭의 표정을 알아챈 지현이 또다시 소리쳤다.
“풀 죽으라고 한 소리 아니거든!”
민섭의 귀로 이번엔 따스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행동 다 이해해.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내는 것도 대단하다 생각하고. 하지만….”
지현의 표정 속, 그 감정을 발견한 민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우린 약해. 최한처럼 친구를 구해줄 수 없어….”
민섭이 입술을 깨물었다.
맞다.
강함이 동반되지 않는 용기 따위…….
상황을 해결할 힘도 없는 용기 따위….
그저 약자의 아우성일 뿐이다.
최한은 힘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모든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힘이 있기에 그가 빛난 것이다.
민섭의 턱밑이 떨렸다.
.
.
.
“하지만! 아무리 약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아!”
민섭의 시선으로 지현뿐 아니라 반 아이들의 얼굴이 들어왔다.
절망 따위 보이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표정.
기대에…….
자신감에 차 있는 표정…….
최한의 표정이었다.
“최한에게 배웠잖아? D반도 할 수 있단 걸. 혼자 힘으로는 절대 이기지 못해. 그렇다면…….”
지현의 목소리 뒤로 장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힘을 합쳐야지. C급 몬스터라도 약점은 있는 법. D급이 C급 던전을 클리어하긴 어렵지만, C급 몬스터 한 마리라면… 도전해 봐야지.”
민섭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얘들아…….”
“부기가 바보도 아니고, 무작정 먹혔을 리가 없어. 마력을 써서 몸을 보호했겠지. 그렇다면…….”
쉬지 않고 달리던 아이들의 걸음이 멈췄다.
부기를 먹어 치운 폭군 도마뱀이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몸을 낮춰 숨었다.
“폭군 도마뱀의 특성과 일주일 동안 제대로 된 육식을 하지 못한 것을 종합해 보면…….”
반 아이들의 신경이 온통 장미의 목소리에 집중되었다.
“네 시간 반. 그 안에 부기를 구해야 해. 그래서 말인데, 내게 좋은 작전이 하나 있는데…… 민섭아…….”
* * *
네 시간 후.
“그러니까… 좋은 작전이라는 게…… 내 목숨 담보로 거는 거였냐!”
“쉿!”
종훈과 홍철의 손이 동시에 민섭의 입을 막았다.
“조용히 해, 김민섭. 저 폭군 도마뱀인지 뭐시기 깨면 어떡하려고 해?”
민섭이 손을 들어 보이며 사과했다.
장미의 작전.
그것은 반에서 민섭만이 실행할 수 있는 작전이었다.
[들려?]
홍철의 핸드폰에서 장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홍철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네가 얘기해 준 대로 진짜 입 벌리고 자고 있는데?”
풀숲에 자신의 몸을 숨긴 채 잠들어 있는 폭군 도마뱀의 모습이 보였다.
[폭군 도마뱀은 던전 안에서도 거의 자고 있다가, 적이 아주 가까이 접근했을 때야 전투에 임할 정도로 수면욕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어.]
“오… 역시 장미. 진짜 몬스터에 대해 모르는 게 없네….”
[암튼. 시간이 얼마 없으니, 얼른 움직여야 할 거야. 아까 말해준 작전, 제대로 기억하지?]
“그럼. 나랑 종훈이 그리고 아진이가 녀석의 입 사이에 들어가서 절대 다물지 못하게 버티고…… 원거리에서 지현이가 마력으로 힐이랑, 체력 보충해주고….”
[맞아. 마지막으로 민섭이가 그 입 사이로 들어가서 저 녀석의 목젖을 주먹으로 시원하게 때려주면 돼. 일명 오바이트 작전!]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오는 장미의 흥분에 민섭이 고개를 저었다.
[암튼 계획은 완벽해. 깨지 않게만 조심하면 무조건 성공할 거야. 행운을 빌어.]
뚝.
“그럼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