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10미터가 너는 거대한 몸길이를 자랑하는 폭군 도마뱀.
6,500만 년 전에 살았다는 티라노사우루스와 매우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근데 가까이서 보니 진짜 무섭게 생겼다.”
첨병 역할을 맡은 홍철이 폭군 도마뱀이 잠들어 있는 풀숲 바로 앞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너무 가까이 가지는 말고, 폭군 도마뱀의 배만 잘 보이는 곳이면 돼.]
홍철이 들고 있는 휴대폰에서 장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보여. 그러니까… 배에 붉은 모양이…….”
홍철의 시선이 나무들을 지나쳐 폭군 도마뱀의 배로 향했다.
하얀 가죽을 드러낸 채 자고 있는 폭군 도마뱀의 배 쪽에 붉은 점이 보였다.
“점은 보이는데… 아직 무슨 모양이라고는 못 말할 거 같은데….”
[됐어. 그 정도면 돼. 붉은 점이 나타났으면 이제 소화액이 나오고 있다는 뜻이야.]
홍철의 미간이 구겨졌다. 걱정 어린 목소리가 새어나갔다.
“소화액이 나오면 이미 늦은 거 아니야?”
[걱정 마. 소화액 조금 나왔다고 죽진 않아. 부기도 분명 마력으로 몸을 보호했을 테고…. 그것보다 이제 슬슬 서둘러야 해. 붉은 점의 모양이 세모로 변하면, 폭군 도마뱀의 위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거야.]
위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즉, 다시는 부기가 돌아오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홍철의 표정에 긴장감이 물들어 갔다.
뚝-.
뚜뚜뚜뚜.
전화를 끊은 장미의 주위로 D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면서, 왜 네 시간이나 기다리고 작전을 실행하는 거야?”
지현의 물음에 장미가 멀리 보이는 폭군 도마뱀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말했다.
“폭군 도마뱀은 말이야, 배 속에 음식이 들어오면 소화가 끝날 때까지 풀숲에 몸을 숨기고 있어. 적에게 공격당하지 않기 위해.”
“적이라고?”
“최한도 말했잖아. 우리에게는 실전의 감이 없다고. 야생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알아?”
“…….”
지현이 갑자기 터진 장미의 지식에 난해한 표정을 보였다.
“바로 생존. 살기 위해 먹고…… 먹히지 않게 조심하는 것. 저 폭군 도마뱀들은 말이야. 수면욕이 강한 것도 있지만, 음식물을 소화시키려면 무조건 잠을 자야 해. 그런데 쟤들도 바보가 아닌지라,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은 수면을 취하진 않아. 그런데…… 아주 짧은 시간.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지는 순간이 있지…….”
지현뿐 아니라 아이들 전부 장미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오랜만에 음식을 먹었을 때. 최소 5일에서 열흘 사이 정도…. 그리고 위액이 위에 담긴 음식을 녹이고 내려보내기까지…….”
아!
아이들의 표정이 모두 같아졌다.
“대박.”
“진짜 이 정도면 천재 아니냐?”
“장미야, 넌 진짜 브로스 길드도 절하고 모셔가야 할 정도인데?”
장미의 얼굴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지어졌다.
“작전은 완벽해. D급 능력을 받은 아이들로 팀을 꾸렸고, 그 무시무시한 이빨을 보고도 입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단 한 명. 우리 반에서 가장 용기 있는 민섭이까지…. 그저….”
말끝을 흐리는 장미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폭군 도마뱀을 깨우지만 않으면 되는데….”
장미의 걱정 어린 목소리를 지우는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가 울렸다.
“에이.”
“걱정도 많다.”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든다며? 큰 소리를 내서 깨우기야 하겠어? 바보도 아니고….”
장미의 시선에 폭군 도마뱀에게 다가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다행인데….”
같은 시각.
드디어 부기를 구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홍철의 손짓에, 뒤쪽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종훈과 아진이 발소리를 죽인 채, 홍철의 곁으로 다가왔다.
종훈이 마른침을 삼켰다.
“우와…… 막상 바로 앞에서 보니… 이빨 너무 큰데…….”
아진이 뒤이어 말했다.
“저 이빨 사이에 들어가야 한다고? 돌아가면 두고 보자, 장미….”
날카로운 이빨 하나, 하나가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와보니 표정을 타고 긴장감이 더욱 짙게 나타났다.
홍철이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장미가 보내준 자료 확인만 하고 가자.”
폭군 도마뱀 (tyrannosaurus)
수각류. 30cm에 달하는 이빨을 가진 육식 공룡의 모습을 하고 있다.
5톤이 넘는 무게를 자랑하는 공격 집중형 몬스터.
# # #
이름 : 폭군 도마뱀 (tyrannosaurus)
나이 : ???
성별 : 남
종족 : 공룡형
능력치
근력 : B
민첩 : C
내구 : D
체력 : D
마력 : D
SKILL
[ 육식의 제왕 ]
살아 있는 생명체를 물 때, 최대 1톤이 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수면욕 ]
수면을 취하면 취할수록 강해진다.
폭군 도마뱀이 1만 시간 수면을 취하면 진화한다.
최종 등급 : C
# # #
더욱더 표정이 상기 된 종훈이 입을 뗐다.
“이거 보니까, 더 힘 빠지는데…. 저 이빨에… 1톤이 넘는 힘이라….”
홍철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걱정 마. 최대한 저 몬스터가 깨어나기 전에 마무리하면 되니까. 그리고 지현이가 멀리서 우리에게 마력 전달 스킬을 사용해 줄 테니.”
“그럼 해보자.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
아진이 몸을 세워 자리에서 일어났다.
홍철이 어딘가를 보고 손짓했다.
조금 더 멀리서 몸을 숨기고 있던 민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홍철과 종훈, 아진이 최대한 기척을 숨긴 채 잠들어 있는 폭군 도마뱀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폭군 도마뱀의 얼굴 앞에 도착한 세 사람이 서로의 눈을 한 번씩 마주치고는 말없이 행동을 취했다.
사람 몸집보다 더 큰 얼굴을 바닥에 옆으로 누인 채 깊게 잠들어 있는 몬스터.
홍철이 제일 먼저 입 안으로 들어갔다.
피비린내와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작은 신음도 내지 않은 채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이어서 아진과 종훈도 몸을 웅크려 폭군 도마뱀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날카로운 이빨 사이사이에 발을 끼우고, 최대한 찔리지 않게, 이빨 틈에 손을 끼워 넣었다.
민섭이 목젖을 때리고 정확히 5초.
5초만 버티면 된다.
아직 소화되지 않은 부기가 식도를 역류해 튀어나올 때까지.
홍철과 종훈, 아진이 준비를 마치자, 그들의 몸에 신기한 변화가 깃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입을 열지 않았지만, 서로의 놀란 표정과 눈빛을 보고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것이 마력이구나.
원거리에서 D급 힐러인 지현이, 체력과 자신의 마력을 조금 방출해 세 사람에게 보내고 있었다.
힘을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신체 능력이 확연하게 올라갔음을. 자신들의 몸 주위를 갑옷처럼 감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의 흐름을.
마력이란 것을 처음으로 몸소 느껴본 아이들이었다.
‘전지훈련이 끝나고 돌아갈 때까지 꼭… 마력을 개방하겠어. 그렇게 되면… 우린 강해질 거야.’
홍철과 종훈, 아진의 마음속에 깊은 불꽃이 타올랐다.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그곳엔 비장한 표정을 한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민섭의 얼굴이 보였다.
이빨 사이에 껴있는 자신들도 이렇게 무서운데, 입속 가장 끝.
목젖과 그 끝부분을 때리기 위해 혀 위를 기어들어 가야 하는 민섭의 마음과 두려움은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도.
믿는다.
민섭이는 D급도 못 받은 일반인이지만.
우리 D반에서 가장 용감한 녀석이니까.
민섭이 준비를 마친 아이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섭이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작전 개시….”
정적이 흐르고.
민섭이 단번에 달려 나갈 힘을 얻기 위해, 용수철처럼 몸을 웅크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띠리리리!
정적을 깨는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몸을 웅크렸던 민섭이 당황해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휴대폰을 꺼낸 민섭이 빠르게 종료 버튼을 눌렀다.
[ 알람 : 한약 먹을 시간. ]
소리가 잦아들고 민섭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근육이 사라지고, 피가 모두 아래로 쏠리는 기분.
입속에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파리해진 얼굴.
그들의 입은 꾹 닫혀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절망.
두려움.
그런 이름을 가진 여러 종류의 것들이 눈동자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굳어져 버린 아이들을 지나치자….
민섭은 마주할 수 있었다.
진정한 공포라는 것을.
아니, 죽음이라는 이름의 그것을.
크게 떠진 폭군 도마뱀의 두 눈이 민섭을 향하고 있었다.
“최한…… 살려줘….”
* * *
“에… 엣취!”
최한이 코를 만지며 고개를 저었다.
“뭐죠? 봄 감기라도 왔나요?”
오지훈 센터장의 물음에 최한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봄 감기가 어디 있어요? 진짜 아저씨 말투….”
“헤헤헤….”
또 바보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는 오지훈 센터장이었다.
“근데…… 왜 둘 다 나온 거지? 이런 만담 보여주려고 나온 건가?”
굳은 표정으로 최한과 오지훈 센터장을 바라보고 있는 최수혁 길드장이었다.
오지훈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 아닙니다. 하하…… 배웅해 드리려고 나왔죠. 조심히 가십시오, 길드장님.”
고개를 끄덕인 최수혁이 푸른 머리칼을 넘기며 최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까지 배웅을 나올 줄 몰랐군. SSS급.”
최한이 코를 파며 대답했다.
“뭐… 난 너 배웅하러 나온 건 아닌데. 못한 말도 있고 해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길드장이었다.
“뭐지? 못한 말이란 게.”
최한이 턱을 긁으며 뜸을 들이다 말했다.
“고… 고맙다. 이렇게 좋은 시설 빌려줘서. 우리 반 친구들한테 큰 도움이 될 거야…….”
최수혁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몸을 돌려 준비된 차에 몸을 실었다.
잠시 뒤 창문이 열렸다.
“감사해야지.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설을 마음대로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최한이 생색내는 최수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음 주에 보자. SSS급.”
최수혁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차가 출발했다.
슈우웅-.
“뭐? 다음 주? 야! 파랭이! 다음 주에 우리가 왜 봐! 야!”
이미 멀어져 버린 차량에 최한이 애꿎은 땅에 화풀이했다.
“뭐라는 거야. 저렇게 궁금하게 하는 말 들으면 짜증 나는데, 난….”
작은 웃음을 보이며 오지훈 센터장이 최한에게 말했다.
“아마 다음 주에 미림고에서 있을 ‘선배와의 대화시간’ 때문일 거예요.”
“선배와의 대화시간? 그게 뭔데요?”
“미림 고등학교를 졸업한 유명한 헌터들이나 서번트들이 학교로 찾아가 아들과 대화하는, 뭐… 작은 재능 기부 행사라고 봐야죠.”
“근데 저 파랭이가 왜 와요? 미림고 생긴 지 3년도 안 됐는데.”
“뭐, 길드장님이 졸업생은 아니지만, 미림고를 졸업한 유능한 졸업자들이 모두 브로스 길드로 오니까요. 또…….”
“또…?”
“아마 당신을 보러 가는 거겠죠.”
“재수 없는 놈. 일주일에 한 번씩 보면 내 눈이 못 버틸 텐데. 참나.”
오지훈 센터장이 입을 가린 채 웃었다.
“당신은 정말 재밌는 사람이군요. SSS급…. 어쩌면 신에 필적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최한이 기지개를 켜며 몸을 돌렸다.
오지훈 센터장이 최한에게 물었다.
“그것보다 아이들 걱정은 안 됩니까? 장부기란 학생, 잡아먹힌 것 같던데.”
최한이 작은 미소를 보였다.
“당연히… 걱정 안 되죠. 전 우리 반 애들을 믿어요. 아까 잠깐 보니까, 장미가 작전도 잘 세운 거 같고.”
오지훈 센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 학생이라면… 저도 놀랐습니다. 그 정도 지식은 억지로 외운다 해도 외워지는 게 아닐 텐데. 그 어린 나이에….”
“어때요? D반도 대단하죠? 나중에 장미 이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던데.”
오지훈 센터장이 미소를 보였다.
“장미 양 같은 인재라면 전 두 팔 벌려 환영입니다.”
최한과 오지훈 센터장이 미소를 숨긴 채 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위이이이이잉!
[ 경보! 경보! 센터 내 침입자 발생! ]
위이이이이잉!
[ 현장에 있던 ‘초병’ C급 능력자 3명 사망. 침입자 현재 지하로 이동 중! ]
최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이들이 위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