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 * *
내 꿈은 서번트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웅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을 괴롭히는 괴물이 나타나면, 어딘가에서 등장해 괴물을 물리쳐주는 멋진 영웅.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가졌던 유일한 꿈이었다.
당연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평범하게 보낸 것 같다.
반에서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에게 주목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공부를 잘하거나, 싸움을 잘한 적도, 말썽을 부린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이게 평범의 기준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아주 평범하고 순탄하게 흘러가는 학창 시절이었다.
그러다.
던전과 능력자가 등장했다.
연이어 보도되는 던전과 새로운 능력자의 탄생.
그리고 평범한 생활을 한순간에 뒤바꾼 기적 같은 등급.
백수로 지내다 A급 능력자가 되어 일확천금을 손에 넣고.
공부만 해오던 청소년이 B급의 능력자가 되어 트럭을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신체 능력이 발달하게 되기까지.
매일 유X브에 나오는 유명 능력자들을 보며, 그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나도 그들처럼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나도…….
찬란한 스포트라이트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좋은 일을 하고 박수를 받고 싶다.
내 꿈.
영웅이 되고 싶다.
마음속 깊숙이 숨겨 놓은 꿈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발을 능력자 검사소로 이끌었다.
처음으로 보육원 원장님에게 떼를 썼다.
능력자 적합 검사를 받게 해달라고.
그 당시는 능력자가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기라 검사 비용이 꽤나 비쌌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것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대에 부풀었다.
아니, 망상에 젖어 있었다.
B급이 나오면 어떡하지? 학교 바로 때려치우고 산으로 훈련하러 들어가야 하나.
아니,
어쩌면 A급이 나올 수도 있잖아.
A급 정도면 훈련 따위는 필요 없겠지.
미친 듯이 강할 테니까.
아직도 검사를 받았던 그 순간이 생생히 떠오른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던 그 순간.
이제 몇 초 뒤면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뀔 거라고,
지금처럼 하루하루 지루하지 않을 거라고.
이제부터 영웅이 될 거니까, 한시도 쉬지 말고 사람들을 구하자고…….
그리고.
이 지옥 같은 보육원에 돈다발을 던져 주자고….
[ 검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귀하의 등급은……. ]
“100만 원이 장난이야! 어? 난 또 뭐 있는 줄 알고 여기까지 따라왔네. 에이 시벌, 돈 아까워 죽겠네! 넌 일주일 동안 저녁 없다.”
절망.
처음으로 신을 부정했다.
아니, 처음으로 악마에게 기도했다.
착하게 살아왔는데.
힘들어도 버티고,
날 버린 부모 원망도 한 적 없고, 보육원에서 매일 맞아도 참아내면서.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그렇게 애썼는데….
“왜 나만 안 되는 거야! 저놈들은 대체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 대체 뭘 했길래 저렇게 행복을 타고나고! 난 왜! 대체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거야!”
난 착하지 않았다.
아니, 난 쓰레기였다.
나 자신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며 그렇게 위안받으려 했었다.
난 착하니까.
꼭 보상받을 거야.
난 이렇게 참고 견디니까
꼭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개뿔.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언제나 정당한 대가가 따르리라는 말은 성공한 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처럼 실패한 인생은.
아무것도 받지 못한.
패배자는.
그들이 말하는 운이 좋아서 성공했어요.
여러분도 꿈을 찾아 노력하세요. 같은 더러운 거짓말을 보고.
욕이나 하고, 댓글을 싸지르는 병신이 되면 된다…….
패배자 김민섭.
그게 나다.
* * *
“왜 민섭이 팔을 자른 거야!”
절규.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온몸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깊은 곳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에 부기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갔다.
“말했잖아. 이 공룡 새끼 때문에 빗나간 거라고.”
이제는 사체가 되어 버린 폭군 도마뱀의 머리를 발로 툭툭 치고 있는 남자였다.
남자.
인간인지 몬스터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그의 성별이 남자인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민섭을 끌어안고 있는 부기의 목소리가 더욱 커져 갔다.
“이 미친놈아! 넌 대체 뭐야! 어디서 나타난 거야!”
인간인지 몬스터인지 알 수 없는 그 존재가 손가락을 들어 오른쪽 귀에 가져다 댔다.
“아… 시끄러워…. 인간 주제에 어디 천사에게 소리를 지르는 거야? 죽여 버리고 싶게.”
공포.
아이들의 사고가 정지했다.
생각이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자신의 감각을 모조리 빼앗겨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모든 감각 기관을 지배당하는 기분.
그가 자신을 천사로 지칭한 것은 중요치 않았다.
아이들의 뇌리에 박히는 것은 단 한 가지.
모두 이 느낌을 받은 적 있었다.
‘최한.’
이 괴물에게서 최한과 같은 느낌이 난다….
아이들이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작은 목소리가 아이들의 굳어 버린 정신을 일깨웠다.
“난 괜찮아…. 그러니까…. 도망가…….”
침착하려 애쓰는 민섭의 목소리가 아이들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어떡해!”
“으아아!”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져 갔다.
‘벌을 받는 건가…. 악마에게 기도해서….’
민섭이 시선을 내려 자신의 사라진 오른팔을 눈에 담았다.
‘이제 헌터도… 서번트도 되지 못하는 건가…. 난 또… 그때와 똑같이… 영웅이 되지 못하는 건가….’
이제야 벌을 받는 것인가.
“그딴 말 하지 마….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너일 텐데…. 친구를 두고 도망가란 소리 하지 마! 이 바보야!”
민섭을 껴안고 있던 부기가 소리쳤다.
민섭의 시야에 부기의 얼굴이 들어왔다.
이렇게 슬퍼해 줄 수 있구나.
민섭이 고개를 돌려 아이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친구란 이렇게 자신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존재였구나…….
대신 울어주는 친구덕분에 그동안의 삶이 위로되는 민섭이었다.
“용기 안 내도 된다고! 강한 척 안 해도 된다고!”
부기가 더욱 강하게 민섭을 껴안았다.
민섭이 악마에게 했던 기도가 떠올랐다.
운이 좋아서 등급을 받은 능력자들….
사람을 괴롭히는 양아치였지만, 등급을 받고 몬스터를 죽이며, 돈을 벌고 영웅으로 추대받는 저놈.
A급을 받았지만, 유X브나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욕을 하고, 자신은 돈을 벌기 위해 몬스터를 죽인다고, 사람들을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약한 놈들은 방구석에서 덜덜 떨면서 키보드나 두드리고 구독이나 누르라고… 하던 그놈….
자신의 자리에 감사할 줄 모르는 더러운 저놈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저 더러운 욕망덩어리들…….
“다치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 꼭 자신의 자리에 대한 감사함을 배우고… 사람들을 구하는 멋진 영웅이 되게 해주세요….”
나의 몫까지.
민섭의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참아 왔던…….
눈물이 이제야 흘러내렸다.
“나…… 서번트도 못 되는 거야?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제야 내가 잘하는 걸 찾아냈는데!”
민섭의 절규에 아이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까지의 감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그 슬픔 때문에 자리에 있던 아이들은 더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의 것이 아닌, 제각각의 많은 발소리가 다가왔다.
“민섭아!”
“어떻게 해!”
“선생님도 연락이 안 돼. 어떻게 해?”
저마다의 걱정을 실은 목소리가 민섭의 귀로 들어왔다.
“아파…. 너무 아파……. 도와줘… 얘들아…. 죽고 싶지 않아….”
무리에서 장미가 달려 나왔다.
“지현아! 어서 지혈!”
초점이 없던 눈동자에 색이 칠해졌다.
장미의 목소리에 겁에 질려 있던 전지현이 민섭의 곁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마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모든 것을 쏟아내 상처를 치료했다.
A급의 힐러였다면 잘려 나간 팔만 있었어도 고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바티칸에 있는 S급 힐러인 성녀라면 팔이 없더라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현은 D급.
그런 강한 치료 스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기에서 마저도.
친구가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D급은….
D반은 무력했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조금 더 높은 등급이었다면…. 미안해 민섭아…. 미안…… 미안해….”
눈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눈물범벅이 된 지현이었다.
“이 괴물새끼가!”
부기의 오른손에 마력이 깃들었다.
분노에 휩싸인 부기가 천사에게 달려들었다.
부기의 주먹이 천사에게 닿기 직전.
“괴물이 아니라 천사라니까.”
천사와 눈이 마주친 부기의 온몸이 굳어 버렸다.
그리고.
“으악!”
부기의 비명이 들렸다.
온몸이 땅바닥에 붙어 버린 부기였다.
아니.
무거운 무언가가 부기의 몸을 짓누르듯 땅바닥에 깔려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으아악!”
“캬… 기분 좋아.”
장부기의 눈동자가 색을 잃어 갔다.
이미 초점이 나간 눈동자는 그가 얼마나 강한 고통을 받고 있는지 짐작하게 해주었다.
“지금까지 나타난 모든 몬스터의 정보는 내 머릿속에 있어. 그런데 너는… 처음 보는 종족 아니, 존재…. 몬스터가 아니라면… 너는 뭐지….”
비장한 표정을 한 장미가 목소리를 내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천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몇 번이나 말하게 하는지…. 뭐, 천국으로 안내하기 전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지. 내 이름은 클레이 티리얼. 신의 사자이자 대리인. 너희 인간 그리고 몬스터 같은 하등한 존재들과 다른 높은 존재. 인간들이 부르는 이름은… 천사, 성령… 다양하지. 난 그중에서 천사가 맘에 들어.”
믿지 못했다.
천사라니.
신이라니.
아무리 몬스터와 능력자가 나타난 세계라 해도….
신의 존재를, 천사의 존재를 한 번에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신의 사자라면! 천사라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이게 무슨 천사야! 우리가 아는 신은 정의롭고 착한 존재라고! 천사도…… 하얀 날개를 가진…… 착한 존재…여야 하는데…. 넌… 넌… 누가 봐도 악마잖아!”
장미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과학이라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과학적 근거도, 사실도, 증명도 필요 없었다.
어쩌면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소리쳤는지도 모른다.
어째서.
신이… 천사가….
우리의 눈앞에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난 건지….
“악마 본 적 있어? 본 적도 없으면서, 악마 새끼들이랑 비교하지 마. 이 몸은 성스러운 존재니까. 이제 잡담은 그만하지.”
아이들의 시야에서 천사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색이 칠해졌다.
이미 그곳에 무언가 있다고 감지했을 때에는 너무 늦었다.
주저앉아 있는 민섭의 앞에 천사의 모습이 나타났다.
“죽어라, 불온한 존재여. 그것이 신이 바라는 평화. 인간이 존재하려면 네가… 죽어야 해.”
천사의 손에 나타난 검이 민섭의 목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