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툭-.
힘을 잃은 소리가 땅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안 돼!!”
“으아아악!”
“으어어어어!”
각자 목소리는 달랐지만 그 모든 소리는 단 한 가지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슬픔이 고통이란 이름으로 변해 갔다.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친구의 죽음을…….
“민섭아…… 민섭아…….”
“미안해….”
아이들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 누군데 내 친구들을 울린 거야.”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강직하면서도 올곧고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아이들이 잘 아는 목소리였다.
아이들의 눈이 떠졌다.
민섭이의 모습이 보였다.
무사했다.
살아…… 있었다.
아이들은 민섭의 목이 잘려 버린 줄로만 알았다.
천사의 검이 민섭의 목을 베었으니까.
눈으로 좇지 못했지만, 분명 천사의 손은 움직였고, 민섭이 목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으니까.
아이들의 시선이 땅으로 향했다.
그곳엔.
민섭의 목이 아닌.
금색 검을 꽉 쥐고 있는 보라색 팔이 보였다.
아이들의 온몸을 지배했던 두려움과 공포가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변해 입 밖으로 뛰쳐나갔다.
“최한!”
“최한이 왔어!”
“살았다…….”
그러나.
모두들 최한의 얼굴을 보고 다시 입을 뗄 수 없게 되었다.
언제나 웃고 있었다.
몬스터들과 싸울 때조차 분노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최한이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이 정도로 화난 최한의 얼굴을 보는 것은…….
천사의 앞을 막아선 인간.
천사의 목소리가 최한에게 향했다.
“너, 어떻게 인간 주제에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거냐. 천사의 팔을 자를 수 있는 인간이 있을 리 없다. 네 녀석 정체가….”
두근! 두근!
눈을 마주쳤다.
아니, 눈을 마주쳤을 뿐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들릴 리 없는 심장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감정은…….
천사의 눈동자가 떨렸다.
“물었잖아. 너 누구야!”
맹수.
아니, 악마였다.
분노의 이름을 한 ‘악’이 최한의 표정을 타고 흘러나왔다.
천사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모두 움직일 수 없었다.
“인간 주제에 어째서 그분과 같은 마기를…….”
“야.”
천사의 시야의 어느새 최한의 얼굴만이 가득 찼다.
움직일 수 없었다.
천 년을 넘게 살아오는 동안 자신의 거리를 빼앗긴 적 없던 천사였다.
본능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을 만한 거리를 계산해 스스로 그 거리 안에 그 어떤 존재도 들이지 않았었는데….
변방에 있는 이름 없는 신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가…….
‘나였는데.’
천사의 얼굴에 비통한 표정이 지어졌다.
“하등한 인간 주제에! 어디 신의 사자에게 이런 굴욕을 주는 것이냐!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최고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분을 모시며, 천사로 군림하고 있는 이 티리얼 님에게!”
남아 있던 천사의 왼손이 높게 들려졌다.
찰나의 순간 주먹에 정체불명의 검은 마력이 모여들었다.
“인간 주제에! 인간 주제에!!!”
천사의 주먹이 최한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펑!!!!
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강한 폭발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는 보라색 살가죽들이었다.
천사의 왼팔이 사라져 있었다.
“묻는 말만 대답해.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양팔이 사라진 천사가 광기에 물든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어째서… 예언의 반역자…. 주위에 저런 강한 힘을 가진 인간이…….”
최한의 시선이 민섭을 향했다.
최한과 눈이 마주친 민섭이 작게 미소 지었다.
“난 괜찮아…. 아이들을 구해줘….”
최한의 눈이 감겼다.
“역시… 안 되겠다.”
펑!!!!!
또다시 폭발음이 들렸다.
“으아악!!!!”
천사의 비명이 들렸다.
지금까지 참았던 고통이 배가 되어 입을 뚫고 나왔다.
천사의 두 다리가 사라져 있었다.
이제는 얼굴과 몸통만 남아 버린 모습이었다.
최한을 뒤따라오던 오지훈 센터장이 이제야 아이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에고… 뭐야 저건…. 몬스터인가요?”
옆에 있던 장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몬스터가 아니라… 천사…. 자신의 입으로 천사라고 했어요…. 신이 보낸… 천사라고….”
천사라는 단어에 오지훈 센터장의 얼굴에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이 지어졌다.
“천사라……. 예언의 날이 다가오고 있나 보군요….”
오지훈 센터장의 목소리에 몸뚱이만 남아 있던 천사가 기분 나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인간 주제에…… 예언의 날을 알고 있다니……. 이게 다 그 망할…… 유다 때문에…….”
오지훈 센터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유다라…. 신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모두 유다라는 이름을 붙이는 군요…. 가짜들 주제에…….”
공간이 뒤틀렸다.
“이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이냐…. 어째서 천 년 전, 그 일까지 알고 있는 것이냐!”
몸통만 남아 있던 천사의 주위에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이 주위의 모든 것을 먹어 치워 갔다.
공간을 일그러트린 검은 기운이 천사에게 모여들었다.
검은 구체의 모양으로 변한 기운이 폭발하듯 굉음을 내며 먼지를 일으켰다.
쾅!!!!!
흙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군. 싹을 자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예언의 반역자와…… 천 년 전 그 일을 알고 있는 인간이 함께 있을 줄이야…….”
슈우웅-.
강한 바람이 일었다.
그 바람은 자욱하게 내려앉은 흙먼지를 날려 버렸다.
천사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 모습은 전설에서 나오는 그것을 닮아 있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똑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드…래곤….”
드래곤.
전설에 나오는 용.
그 어떤 무기로도 뚫을 수 없는 비늘을 가졌으며 그 어떤 생명체도 파괴할 수 있는 브레스를 쏠 수 있는 존재.
육체적인 힘만으로도 한 세계를 지배할 수 있고,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서클의 마법을 술식 없이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강한 존재.
“천사의 정체가 드래곤이었다니……. 사람들은 저런 녀석들을 신으로 받들고 살고 있는 건가…….”
장미의 몸이 떨려왔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가.
신이라 칭하고 있는 존재가.
드래곤이라니.
“아니, 아닙니다. 저들은 신이 아닙니다. 신 같은 건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눈앞의 저것은…… 저것들은 분명한 가짜입니다.”
오지훈 센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라색 드래곤으로 변한 천사가 입을 열었다.
“이 모습을 보였으니, 너희들 모두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다.”
드래곤의 입이 크게 벌려졌다.
그리고.
“피해! 브레스를 쏘려는 거야!”
오지훈 센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도망칠 곳 따윈 없었다.
드래곤의 브레스는 이 공간을 통째로 날려 버릴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이도 저도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천사니 신이니… 예언의 날이니…. 이상한 개소리 늘어놓지 말고. 묻는 말에만 대답해.”
최한이 드래곤으로 변한 천사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천사의 사악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인간 주제에 어떻게 그런 힘을 가지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본 모습으로 변한 이 몸을 이길 순 없을 것이다. 티리얼 님에게 굴욕을 준 것을 죽음으로 갚아라!”
드래곤의 입에 보라색 구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력한 마력이 응축된 그 구체는 점점 더 자신의 크기를 키워가더니 구슬이 깨지듯 작은 금이 감과 동시에 최한을 향해 발사되었다.
콰과과광!!!!!
강한 힘에 공간이 일그러지고, 허공을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둥보다도 큰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발사된 브레스가 최한을 집어삼켰다.
공기마저 태울 것 같은 마력에 오지훈 센터장과 아이들은 모두 땅바닥에 몸을 엎드린 채 뒤이어 터질 큰 폭발을 기다렸다.
정적.
고요했다.
10초가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폭발은커녕 무언가 터지는 작은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후폭풍으로 올 것 같던 강력한 바람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지훈 센터장과 아이들이 고개를 살짝 들어 브레스가 발사된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 큰 구덩이가 생겨 있을 줄 알았다.
최한이 당했을 리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어쩌면 S급 던전 몬스터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졌을 드래곤의 브레스 공격이라면 분명 거대한 흔적을 남겼을 터.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일반인이 보아도 그렇게 강력한 마력과 공격력을 가진 그 브레스였는데.
폭발.
아니, 바닥 전체를 뚫고 큰 싱크홀을 만들 줄 알았는데
깨끗했다.
“말도 안 돼. 이 힘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이 힘은 티르 님의 것인데…….”
“마지막으로 물을게. 왜 민섭이의 팔을 자른 거야.”
최한의 목소리가 공간을 지배했다.
물음.
대답을 기다리는 물음이 아니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이의 눈이 저럴 리 없으니까.
“어서 죽여라! 아무리 네가 강하다 해도 진짜 신들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내가 팔을 자른 저 녀석…… 저 녀석을 죽이기 위해 다른 천사들이 계속해서 올 것이다. 어쩌면…… 악마들도 찾아올 수 있겠군. 흐흐…… 흐하하하하!”
“아까부터 왜… 묻는 말에 대답 안 하고 개소리만 지껄이냐. 짜증 나게…….”
최한의 오른손이 들렸다.
“민섭이를 노리는 이유는 다음 녀석한테 물어봐야겠다. 그럼… 어이 거기…. 너, 보고 있지?”
“지금 누구한테 하는 소리….”
최한이 천사의 말을 잘랐다.
“이 녀석 눈을 통해 보고 있겠지? 그럼… 잘 들어. 난 예언의 날이건, 신이건… 악마건…… 아무 관심도 없어. 그런데 말이야… 내 학교 생활과… 우리 반 친구들 건드리는 건 못 참을 것 같아. 너희들이 어떤 이유건 계속해서 내 친구를 죽이러 오겠다면…….”
최한의 오른손바닥 중앙에 검은 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검은 점은 끝없는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각오하도록 해. 난 인간이지만…… 신을 죽이는 게, 처음은 아니거든.”
거대한 드래곤의 몸이 최한의 손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신의권능(복제) - 스킬 빼앗기 LV 100
신의 권능
모든 만물의 제약을 없애고, 시전자가 눈으로 본 모든 능력을 자신이 사용할 수 있다.
100배의 힘까지.
???
???
………………….
………………….
??? ⇒ #&&&*※§☆&*#&@*
스킬 개방
신의 권능(나락) - 풍혈 LV 100
신의 권능
우주의 있는 모든 공간과 단절된 어둠뿐인 공간에 가둬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간 동안 벌을 받게 된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Cool. 재사용 대기시간 24H]
* * *
“각오하도록 해. 난 인간이지만…… 신을 죽이는 게… 처음은 아니거든.”
다른 이의 눈을 통해 최한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의자에 앉아 최한의 모습을 눈에 담고 있었다.
“저 녀석…… 티르의 힘을 가지고 있잖아? 티르 이 자식, 또 인간 세상에 내려가 여자를 탐한 것이냐!”
분노 담긴 목소리에 건너편에 앉아 있던 이가 목소리를 내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아버님. 티르는 요 100년간 요툰하임에서 전쟁을 치르는 중입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존재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럼… 저 녀석은……. 재미있군. 신의 힘을 가진 인간이라…. 어쩌면 저 녀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