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천사가 죽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전투 중에 가장 급박하고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최한의 승리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미안해…… 민섭아…… 미안해…… 내가 D급이 아니었더라면…. 조금 더 강한 힐러였다면…….”
전지현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민섭의 옆에 주저앉아 멈추지 않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민섭이 표정을 보이지 않은 채 대답했다.
“난 괜찮아…. 지혈해줘서 고마워, 지현아.”
민섭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침묵이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훈련은 중지야.”
천사를 물리친 최한이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민섭의 팔로 향했다.
모두들 알고 있었다.
친구의 꿈이 부서졌는데, 친구의 미래가 사라졌는데.
훈련을 진행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모두…… 나 때문이야. 너희들과 함께 있었어야 했는데…. 내 자만심 때문에… 너희들을… 너희들을….”
흔들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토록 강직하던 목소리가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약해져 있었다.
최한이 고개를 숙였다.
최한을 보고 있던 D반 아이들의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아이들이 전부 입을 가린 채 고개를 숙였다.
인간을 넘어선 강함, 언제나 우직하고 당당한 모습만 보였던 최한이었다.
천재. A급. S급.
그런 범주가 아니었다.
괴물, 신.
인간을 아득히 넘어서는 강함을 가진…….
절대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존재.
그것이 최한이었다.
하지만.
처음이었다.
이토록.
인간적인…….
‘우리와 같은 모습의 최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쳐줄게. 꼭 그 팔… 내가 고쳐줄게…….”
최한을 보고 있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모두들 묻지 않았다.
최한의 스킬.
지난번 던전에서 싸울 때 본 적 있었다.
조일환 선생님의 스킬을 100배로 사용했던 것을.
100배의 힘을 낼 수 있는 스킬이라면…….
모두들 거기에서 그만두었다.
깨달았기 때문에.
D급인 지현의 힐 스킬을 100배로 늘려봤자 민섭의 팔을 고칠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최한이 저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SSS급.
신의 힘을 가진 남자.
그럼에도 지켜주지 못했으니까.
“이 일은 최한 군 때문이 아닙니다. 저희 브로스 길드의 책임입니다.”
오지훈 센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한의 시선이 오지훈 센터장에게 향했다.
“저희의 실수입니다. 아마 천사의 힘이 강해, 센터의 방어벽과 결계가 소용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만하고 있던 것은 저였습니다. 저의 두뇌만을 믿고…….”
입술을 질끈 깨물던 오지훈 센터장이 말을 이어갔다.
“오는 길에 길드장님께 보고했습니다. 길드장님은 학생들의 피해와 모든 것을 우리 쪽에서 제대로 보상하라고 하셨습니다.”
어딘가로 시선을 옮긴 오지훈 센터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민섭이 팔은! 민섭이 팔은 어떻게 보상할 건데!!!!”
지금까지 꾹 참고 있던 부기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붉어진 얼굴에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민섭이 팔은! 내 친구 팔은, 내 친구 꿈은 대체 뭐로 보상할 건데! 으……으…….”
소리친 부기가 주저앉아 흐느꼈다.
“한 명 있어…. 단 한 명. 죽은 자도 살릴 수 있다고 전해지는 힐러.”
모든 시선이 장미에게 쏠렸다.
“전 세계의 단 한 명뿐인 S급 힐러. 바티칸에 있는 성녀…. 마리아.”
오지훈이 이어 말했다.
“그녀라면 고칠 수 있겠군요. 저희 길드에서 할 수 있는 도움은 모두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오지훈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성녀는 바티칸 중앙 십자기사단의 본부… 교황청에 머물러 있습니다. 교황청 소속 길드인 중앙 십자기사단은 세계 몬스터 동맹국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여 외부와도 단절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그것밖에 없어요.”
장미의 목소리에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 오지훈 센터장이었다.
“바티칸이라고 했지? 다녀올게. 민섭아, 괜찮지?”
최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와 다른 목소리. 그의 목소리가 예전처럼 강직해져 있었다.
최한을 바라보고 있는 민섭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웅. 난… 최한을 믿어.”
아이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져갔다.
“안 됩니다! 그곳에 마음대로 갔다간 이단이라며 공격당할 수도 있고… 자칫 일이 커지면 한국과의 외교적인 문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예전의 교황청이 아닙니다. 사랑과 평화 따윈 이제 옛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소란을 피웠다간 지구에 있는 S급 중 가장 강하다는 팔라딘에게….”
오지훈의 시선이 최한의 얼굴에서 멈췄다.
“하…….”
어이없다는 표정.
실소를 내뱉고 있는 그 표정은 딱 어이없다는 것을 가장 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그런 표정이었다.
오지훈 센터장의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죄송합니다. 깜빡했군요. 지구에서 가장 강한 인간을 앞에 두고.”
부기가 민섭을 껴안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넌 꼭 될 수 있을 거야. 세상에서 가장 강한 서번트가…….”
민섭의 남아 있는 손이 부기의 등에 얹어졌다.
“응. 아직 할 수 있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최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지훈 센터장이 최한에게 다가왔다.
“우선… 출발하기 전에 드릴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예언의 날에 대해서…….”
* * *
100년 전.
로마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된 석판으로 인해 전 세계의 종교인들이 집단 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후.
그것은 특정 종교를 가장한 이단의 소행이라는 기사화 함께 사건은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날의 진실은 교황청만이 알고 있다.
석판은 지금도 교황청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다고 한다.
# # #
예언이 있었다.
신과 악마 그리고 인간의 전쟁.
신을 끌어내릴 인간이 태어날 것이다. 그는 신을 하늘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니라.
28번째 인간의 왕이 나타나면, 세계를 끝낼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 유다 -
# # #
“우선 점심도 거르셨을 텐데, 식사하면서 들으시지요.”
오지훈 센터장의 나긋한 목소리가 울렸다.
지하에 있던 인공 섬에서 이동한 D반 아이들은 바로 센터 내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김민섭만이 치료를 위해, 센터 내에 있는 B급 힐러를 만나고 조금 늦게 돌아왔다.
때마침 도착한 민섭의 곁에는 조일환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표정은 담담한 척하고 있긴 하나, 잔뜩 충혈된 그의 눈은 숨길 수 없었다.
비상 사이렌이 울렸을 때 지하로 향하던 최한 일행과 만난 조일환 선생은 오지훈 센터장의 부탁으로 사상자들의 처리를 도왔다.
힐러들이 있는 센터 내 구급반에서 민섭을 만나 함께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민섭과 조일환 선생이 오지훈 센터장이 말하고 있는 자리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았다.
잘린 팔을 치료하고 붕대를 감고 나타난 민섭이었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부기가 숟가락에 밥을 올려 민섭의 입에 들이밀었다.
“괘… 괜찮아. 왼손으로 먹으면…… 읍!”
벌려진 입에 무작정 숟가락이 들어왔다.
“시끄럽고. 내가 먹여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 왼손으로 잘도 먹겠다.”
부기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긴장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
오지훈 센터장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래요. 드시면서 편하게 얘기를 들어주세요. 원래는 최한 군만 따로 불러 얘기하려고도 했습니다만, 최한 군과 함께 있는 여러분도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모두를 부른 겁니다.”
식당의 앞쪽.
그러니까 오지훈 센터장이 서 있던 벽면에 화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100년 전 발견 되었던 석판입니다. 로마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된 이 석판에는 두 가지의 큰 내용과… 이 글을 썼던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석판에는 알아볼 수 없는 검은 글자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어로 된 이 석판의 내용은 ‘예언이 있었다. 신과 악마 그리고 인간의 전쟁. 신을 끌어내릴 인간이 태어날 것이다. 그는 신을 하늘에서 끌어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니라. 28번째 인간의 왕이 나타나면, 세계를 끝낼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을 쓴 사람의 이름은… 유다.”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유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아까 그 천사도 유다 어쩌고…했는데….”
수군거림 속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나, 유다 알아! 교회에서 들었어!”
종훈의 목소리에 몇몇 아이들이 무언가 알아낸 듯 자신 있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이야.”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라고 나와!”
고개를 끄덕이던 오지훈 센터장이 말을 이어갔다.
“맞습니다. 성경에 나온 그 유다……. 바티칸은 아니, 그러니까 교황청은 이 석판을 이단의 공작이라 말하며 가짜라고 세상에 공표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있던 수도원 사람들이 모두 흔히 말하는 이단 종교 소속이었거든요.”
아이들이 처음 듣는 이야기에 빠져 밥 먹는 것도 까먹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고 신문 한 장이 나타났다.
“전 세계 뉴스에 이렇게 소개되었습니다. 유다가 썼다는 가짜 석판을 발견한 수도원의 이단 광신도들 50여 명 자살……. 이것이 세상이 알고 있는 사실이고…… 진실은…….”
화면이 넘어갔다.
믿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시체들이 보였다.
모두들 하나 같이 뒷목이 찔려 죽어 있었다.
“이것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진실입니다. 이단이라…. 세상에 자신의 뒷목에 칼을 찔러 자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손이나 몸통을 찌르는 게 더 빠를 테니까요.”
조용히 있던 최한이 입을 뗐다.
“살려 달라고 빌고 있는 사람들을 죽인 거군.”
오지훈 센터장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답입니다. 교황청은 이미 세상에 저 석판이 알려진 일을 무마하기 위해 일부러 신도들을 죽이고 그들을 이단으로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실이 담긴 석판을 아직까지도…… 지하 깊은 곳에 보관 중이죠. 예언의 날이 오게 될까 벌벌 떨면서….”
최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다라…. 그건 이미 종교의 가치를 잃었는데….”
“그렇죠. 하지만 그들은 세상에 알려지는 게 두려웠을 겁니다. 생각보다 많은 신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요…. 그런 바티칸을 가려고 하는 겁니다, 최한 군은….”
“뭐, 원로들이나, 높은 자리에 있는 썩은 것들만 그런 거겠지만… 좀 더럽네. 종교는 자유라 배워왔는데….”
“그렇죠. 뭐, 이제 그럼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볼까요? 이 석판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화면에 그림 한 장이 나타났다. 식사를 하고 있는, 아주 오래전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그림.
“어… 저거 본 적 있는데? 최후의 만찬인가?”
“맞아. 나도 본 적 있어.”
“저거 우리 집에 있는데?”
아이들의 웅성거림을 잠재우는 목소리가 울렸다.
“신의 배신자로 낙인 찍혔던 유다가 실은…… 인간의 편에 섰던 유일한 존재였다면?”
오지훈 센터장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표정에 경악스러움이 묻어났다.
“신들만 알고 있는 그 예언을 인간에게 알려준 유다……. 그가 배신자가 된 이유가 이것이라면…… 진짜 나쁜 쪽은 신일까요…… 배신자라 불리는 유다일까요……?”
아이들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려운 얘기였지만, 종교를 모르는 아이들조차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신을 땅으로 끌어내릴 인간. 그 존재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신들은… 그를 찾아 죽이고 싶을 겁니다. 자신들을 더 이상 높은 곳에 있을 수 없게 하는 존재니까요….”
오지훈 센터장이 김민섭에게 다가갔다.
“석판에 나온 예언의 존재. 신을 땅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인간이… 바로 당신입니다…… 민섭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