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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27화 (28/211)

27화

선혈이 낭자했다.

분수처럼 하늘로 치솟았던 붉은 피들이 바닥으로 힘을 잃고 떨어졌다.

너무도 빨랐다.

인간의 눈으로 그의 검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할 일을 마친 검이 검집으로 들어가고, 검의 주인이 몸을 돌리며 낮고 차가운 음성이 이어졌다.

“이단의 시체를 불에 태워 버려라. 신성한 바티칸에 이단의 묘 따윈 없으니까.”

이단의 숙청을 끝낸 팔라딘이 걸음을 옮겼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기사단의 무리 속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팔라딘의 얼굴이 굳어졌다.

분노의 감정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부정이었다.

‘그럴 리 없다. 분명 베는 감촉이 있었다. 검이 목에 닿는 순간까지 이 두 눈으로 확인했는데….’

팔라딘의 몸이 돌아섰다.

“사람 말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얘기도 듣지 않고, 이단이라 하고 바로 목을 베냐? 너 정신병자지?”

최한을 발견한 팔라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엑스칼리버가 놈의 목을 베었어야 했다.

금색 날이 놈의 목에 닿았던 것을 확인하고 눈을 감았다.

이단, 몬스터, 악마.

그들의 목숨을 거둘 때에도.

기도는 빼먹지 않으니까.

목숨을 뺏는 그 순간에 언제나 신께 기도드리는 팔라딘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살아 있는 것이냐!”

팔라딘의 분노와 함께 그의 마력이 방출되었다.

거센 바람이 몰아쳤다.

주위에 있는 일반인들은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고, A급의 힘을 가진 기사단과 윤강산 조차 자세를 낮춰 넘어지지 않는 것이 고작이었다.

최한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팔라딘을 향해 던졌다.

툭-.

힘을 잃은 물체가 팔라딘의 발 앞에 떨어졌다.

“이건….”

검붉은색의 고깃덩이였다.

우리가 흔히 보던 종류의 고기는 아니었고, 인간이 아닌 생명체의 일부분이었다.

팔라딘의 표정을 확인한 최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살라만더의 사체야. 몸통인지, 다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건 그렇고 신을 지킨다, 어쩐다 하는 거치고는 너무 허술한 거 아니야?”

팔라딘의 떨어진 고개가 들려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몬스터 고기 썰어 놓고는 ‘이단의 시체를 불태워라, 성스러운 바티칸에 이단의 묘는 없으니까’는 무슨! 확인도 안 하고 해치운 줄 안 거야?”

최한이 고개 숙인 팔라딘을 보며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그럴 리가 없다…. 엑스칼리버가 목에 닿는 것을 확인했는데…. 분명 이딴 것 따위 손에 들려 있지 않았는데….”

혼잣말을 하며 계속해서 모든 것을 부정하는 팔라딘이었다.

주위에 있는 누구도 끼어들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신의 가호를 받은 팔라딘이 실수를 하고,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여겨지던 성기사…….

그가 어린아이들처럼 놀림을 당하고 있었으니까….

정점에 있던 자일수록 자신의 몰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직도 인정 못 한 거야? 휴…… 너무 오만한 거 아니냐? 약한 주제에.”

최한의 목소리가 들리고, 팔라딘의 세상이 멈췄다.

인간의 모든 감정이 얼어붙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만 배는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

처음이었다.

이런 치욕을 겪는 것은…….

“이단 주제에…. 신을 능멸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팔라딘인 이 몸까지 부정하려 드는구나. 약하다고? 그렇다면 제대로 보여 주마…….”

팔라딘의 몸에서 금빛이 퍼져 나오고 있었다.

강력한 마력 방출에 대지가 흔들리고, 공간이 뒤틀려갔다.

팔라딘의 등에서 하얀 날개가 뻗어 나왔다.

마력을 둘러 온몸이 금색으로 변한 팔라딘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의 모습이었다.

“모든 힘과 마력을 끌어낸 전투형태…. 이 모습을 보이는 것은 두 번째다. 첫 번째는 자신을 천사라 칭하는 몬스터와 싸울 때…….”

팔라딘의 목소리에 최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윤강산의 뒤에 몸을 숨기던 민섭이 소리쳤다.

“잠깐만요! 우리는 적이 아니에요! 우리도 그 천사라던 존재를 만났어요! 싸우지 말고 얘기를 해봐요.”

민섭의 외침에 잠자코 있던 윤강산도 소리쳤다.

“최한 군도 그만 자극하고. 친구 치료하러 온 거잖아! 목적을 잊었어?”

최한의 시선이 민섭의 팔로 향했다.

아무리 강한 힘이 있더라도… 지켜주지 못했다.

그렇기에….

책임을 져야 한다.

최한이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미안하다. 갑자기 공격해오니까, 나도 모르게 심하게 반응한 거 같아. 우리는 이단 같은 게 아니라, 내 친구 민섭이 팔을 고치기 위해 성녀를 만나러….”

“닥쳐!”

팔라딘이 최한의 말을 잘랐다.

“성녀란 단어를 입에서 꺼내지 마라. 이단 주제에…. 그리고 성녀의 힘은 네 친구의 팔 따위를 고쳐주려고 있는 힘이 아니다.”

두근두근-.

처음이었다.

두려움이란 감정을 느껴본 것은.

팔라딘의 모든 감각이 한 남성에게 붙잡혀 있었다.

“사과 따위 안 받아줘도 상관없었어. 네놈의 입에서 어떤 욕이 나와도 싸움을 멈추려 했어…… 그런데…… 이젠 안 될 것 같다.”

팔라딘의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온몸에 수천 마리의 벌레가 붙어 기어 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신앙심을 초월한 단 한 가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이단 주제에…. 이단 주제에! 나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한 거야!”

팔라딘이 괴성을 지르며 엑스칼리버를 뽑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안 됩니다, 길드장님!”

“모두 사람들을 지켜라!”

기사단원들이 주저앉아 있는 일반인들의 몸을 감쌌다.

큰 폭발에 대비하기 위해서….

“죽어라, 이단!”

엑스칼리버가 사선을 그리며 허공을 갈랐다.

금빛의 마력이 폭발하듯 주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두려움을 간직한 긴박한 숨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감싼, 기사.

노부부를 끌어안고 있는 기사.

민섭을 끌어안고 있는 윤강산 까지….

금빛의 마력이 이끌어낼 폭발을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다.

.

.

.

“이게… 네가 약한 이유야.”

폭발 소리가 아닌, 최한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그 어떤 강하고 큰 폭발 소리보다도 팔라딘의 귀를 먹게 하기 충분했다.

쨍-.

높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신호 가호를 받은.

전설급 아이템.

엑스칼리버가 두 동강 나, 땅에 떨어졌다.

기사들은 자신의 눈을 믿지 못했다.

폭발이 일어난 것보다 더 엄청난 일이 일어났으니까.

“분노에 잡아먹혀 주위에 있는 일반인뿐 아니라, 부하들까지 죽이려 하다니…. 넌 내가 알고 있는 리더 중에 가장 쓰레기야.”

최한의 목소리에도 팔라딘은 아무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내 친구한테 사과는 안 해도 돼. 대신… 천국에서 사죄해라.”

최한의 주먹이 당겨졌다.

활시위처럼 몸 뒤로 당겨진 최한의 팔이 공기를 찢고 팔라딘을 향해 날아갔다.

“아…멘…….”

모든 것을 포기한 목소리와 함께 팔라딘의 눈이 감겼다.

주먹이 날아오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주먹이 자신의 목숨을 끊을 것임을.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죽음은 오지 않았다.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팔라딘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분명 그 사내는 자신의 목숨을 가져갈 듯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사내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저.

멍한 표정을 한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들.

사내의 동료로 보이던 이들의 놀란 표정이었다.

민섭이 혼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최…한이…… 사라졌어….”

* * *

“아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방금까지 팔라딘이랑 싸우고 있었는데….”

최한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었다.

분명 팔라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팔라딘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높게 보이던 하늘도 보이지 않고, 아까까지 있던 건물들과 상점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곳은 완전 다른 장소였다.

“설마… 내가 소환당한 건가…. 아! 안 돼! 또 이세계로 소환된 건 아니겠지? 싫어!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아!”

머리를 부여잡은 채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 대는 최한이었다.

“저…기…….”

“싫어! 이제야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는데! 또다시 100년이나 갇혀 있고 싶지 않아! 살려줘! 으아! 신이든 뭐든 좋으니 제발! 날 현실 세계로 보내줘!!”

“저기….”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있는 것을 감지한 최한이 몸을 일으켜 주먹을 치켜들었다.

최한의 몸이 순식간에 돌아서며 주먹이 날아갔다.

“꺄아악!”

최한이 비명의 주인을 발견하고는 날아가던 주먹을 멈췄다.

“뭐야…… 너 누구야….”

구석에 주저앉아 몸을 떨고 있는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 눈동자를 간직한 여성의 눈망울에는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만 같은 눈물이 고여 있었다.

“저… 저는 헤네시 그로리아입니다. 자… 잘 부탁합니다.”

착한 건지 멍청한 건지, 지금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한 건지.

눈물을 참으며 순순히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최한의 느끼기에 엉뚱하게까지 보이는 그 여성은 보라색 머리칼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외국인이었다.

…….

“뭐야? 너 왜 우리 말 할 줄 아냐? 아니… 잠깐…… 이거….”

여전히 몸을 웅크린 채 떨고 있는 여성이 대답했다.

“아… 네. 이것은 제 스킬입니다. 어느 생명체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교감이라는 스킬입니다.”

“그렇다면…… 설마 네가…….”

파란 눈망울에 여전히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여성의 얼굴에는 조금 전과 달리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신의 은총을 받아 모든 이를 구원하라는 사명을 받은 S급의 힐러… ‘마리아’입니다.”

…….

최한의 눈동자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보라색 머리칼을 가진, 파란 눈의 외국인…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작았다.

심하게….

그리고…….

“초……초딩이 성녀라고!!!!”

“초딩이라뇨! 이래 보여도 20살입니다!”

“에?”

최한이 다시 성녀를 바라보았다.

꾹꾹 눌러 담듯, 성녀의 외형을 자세히 눈에 새겼다.

아무리 그래도.

“아, 어떻게 봐도 초딩이잖아!”

너무 어렸다.

두세 살 어려 보이는 정도가 아니었다.

동안도 동안 나름이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그냥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다.

“저 성인이라고요! 이렇게 여자를 부끄럽게 하는 남자랑은 결혼하지 말라고 아빠가 그러셨어요!”

소리치던 성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뭐야, 갑자기. 그런 표정을 지어야 할 사람은 나라고. 왜 날 이리로 소환한 거야?”

성녀가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하… 그게…. 하하하… 싸… 싸움은 나쁜 것이라 아빠가 그랬어요.”

“아니 그러니까 왜 나를 소환 했냐고! 싸움은 그쪽에서 걸었다고! 그 팔라딘인지 뭔지 하는 재수 없는 놈이 시비만 안 걸었어도.”

“미… 미안합니다. 토티를 대신해서 사과할게요. 토티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 착하고 신앙심이 깊어서 가끔 남의 말을 안 듣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그게 나쁜 거야! 사람이 말하면 들어야지. 뭐만 하면 이단, 이단 거리고! 아… 열 받아….”

“친구분에 대해 그렇게 말한 것은 제가 사과드릴게요. 토티의 감정이 많이 격앙되어 있었어요. 그건 저 때문이기도 하니까…… 제가 사과드릴게요.”

여전히 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최한을 올려다보고 있는 성녀였다.

최한이 자세를 낮춰 성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착한 녀석이구나, 너 마음이 눈에 비쳐.”

성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빠도 예전부터 그러셨어요. 저는 감정을 못 숨긴….”

최한의 목소리가 성녀의 말을 잘랐다.

“너… 나 때문에 무서워서 울려고 한 게 아니었네. 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성녀의 고개가 떨어졌다.

“이곳에 혼자가 아니게 돼서 울었던 거지?”

뚝뚝-.

바닥이 젖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으아아앙!”

오랫동안 갇혀 있던…….

긴 시간 참아왔던….

눈물이 처음으로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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