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 * *
최한과 민섭이 바티칸에서 돌아온 뒤 첫 등교 날.
“민섭아!”
장부기의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지고, D반 교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앞문으로 향했다.
“안…녕…… 얘들아.”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고 있는 민섭이 보였다.
“걱정 많이 했어!”
“우와! 진짜 팔 다시 생겼네.”
“다행이야, 정말!”
“성녀 예쁘냐?”
아이들이 민섭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많은 물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민섭이의 팔을 만져보는 아이도 있었고, 계속해서 성녀가 예쁘냐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몇몇은 눈가에 눈물이 고여 민섭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각각의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도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는 감정은.
역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민섭아.”
민섭을 와락 끌어안고 있는 장부기의 모습이 보였다.
민섭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부기를 시작으로 많은 아이들이 민섭이를 껴안기 시작했다.
“좋아! 이걸로 우리 반 모두 최상의 컨디션으로 체육 대회에 나갈 수 있겠어!”
전지현의 목소리가 울리고, 아이들의 얼굴에 큰 웃음이 지어졌다.
그리고.
그 광경을 눈에 담고 있는 한 남학생이 있었다.
“역시…… D반을 선택하길 잘했어.”
창문에 걸터앉아 있는 최한의 시선으로 전보다 더 단단해진 D반의 모습이 보였다.
“근데…… 얘들아…. 수… 숨 막혀…….”
민섭의 얼굴에 고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턱-.
그때, 민섭의 머리 위로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사각사각 머리털이 쓸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 어떤 말보다 민섭의 턱 끝을 떨리게 만드는 인사가 전해졌다.
민섭의 시선으로 작게 미소 짓고 있는 조일환 선생의 얼굴이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선생님.”
D반 교실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의 향기에 모두 움직임을 멈추고 순간을 만끽했다.
연구소 지하에서 겪었던 악몽이 치유되고 있었다.
“그럼 이쯤하고… 자리에 돌아가 앉아라. 이제 방송이 시작될 거다.”
앞문에 모였던 아이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창문에 걸터앉아 있던 최한이 내려와 자리로 돌아갔다.
조일환 선생이 교탁으로 가기 전 교실 앞쪽에 있는 스위치를 눌렀다.
지이이이잉-.
작은 기계음이 울렸다.
천장에서 화이트 스크린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앞쪽에 있던 초록색 칠판을 완전히 가릴 정도로 큰 스크린이었다.
스크린이 모두 내려오자, 천장에 달려 있던 빔프로젝터가 켜졌다.
그리고.
“우와아!!!!”
“대박 사건!”
“저거 우리 방송실 맞지?”
“진짜 우리 학교에 온 거야? 브로스 길드장이?”
D반뿐 아니라 학교 전체에서 아이들의 감탄사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축구 경기에서 골이 들어가 온 아파트에 함성과 환호가 울려 퍼지는 것처럼.
함성과 환호가 한순간에 폭발하듯 미림 고등학교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미림고 학생 여러분. 브로스 길드의 길드장인 최수혁입니다.」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며 파란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있는 남자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지금까지 봐왔던 D반 아이들의 눈빛이 아니었다.
동경. 경외.
모든 능력자들의 우상이자, 타고난 리더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남자의 등장에 들뜬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단 한 명만 빼고.
“왜 인기 많은 거지? 파랭이 자식….”
최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두 전달받으셨겠지만, 오늘은 ‘선배와의 대화시간’이 있는 날입니다. 미림고를 졸업한 브로스 길드의 길드원들이 반별로 들어가 헌터의 실무적인 부분과 실제 던전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알려주는, 일종의 재능 기부를 하는 날입니다.」
“우리 반은 누가 들어올까?”
“설마 마수아가 들어오는 거 아니야?”
“야야…… 우리 D반이야…….”
아이들의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뭐…. 자세한 얘기는 반별로 배정된 능력자들에게 들으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림고에 재학 중인 여러분들이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최수혁의 한쪽 눈이 감겼다 떠졌다.
“우와아아아!”
“꺄아악!”
“멋져요! 푸름 화염!”
“길드장님!”
D반 교실이 아닌 모든 교실에서 최수혁을 찬양하는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미친놈…. 윙크는 왜 한 거야…. 속 안 좋아졌어…….”
최한이 인상을 구긴 채 고개를 저었다.
화면이 사라졌다.
칠판을 가렸던 화이트 스크린이 제자리로 올라가고 있었다.
잠시 옆으로 나와 있던 조일환 선생이 교탁에 자리했다.
“뭐… 브로스 길드장의 간단한 인사말이었고… 조금 있으면 브로스 길드에서 길드원이 올 테니까, 떠들지 말고 졸지 마라.”
조일환 선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의 손이 번쩍 들렸다.
“쌤! 쌤! 우리 반에는 누가 와요?”
“마수아 보고 싶어요, 쌤!”
“A급 능력자로 불러주세요!”
평소보다 들뜬 목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안타깝지만 마수아 헌터는 3학년 A반으로 갔다.”
조일환 선생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렀다.
“아…… 최강 딜러 마수아 실물로 보나 했는데…….”
“A반 부럽다…….”
풀이 죽은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조일환 선생이 말을 이어 갔다.
“마수아 헌터나 A급 헌터가 들어오는 것은 너희한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조일환 선생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너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은 마수아 헌터나 A급 헌터가 아니야. 바로 너희들의 입장에서 얘기해주고, 너희들이 있는 자리에서 성공을 이룬 사람이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에 사뭇 진지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똑똑-.
앞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왔나 보군.”
드르륵.
앞문이 열리며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 D반으로 들어왔다.
떡 벌어진 어깨, 군인처럼 짧게 자른 머리.
조일환 선생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교탁에 자리 잡은 남성이었다.
웅성대는 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최한이 갑자기 시끄러워진 분위기에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돌리다 무언가를 발견한 최한이 움직임을 멈췄다.
최한의 시선으로 멍하게 굳어 있는 민섭의 얼굴이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올해 미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브로스 길드에 들어간 손대영…… 서번트입니다.”
딱딱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짝짝짝짝-.
곧이어 모두 짜기라도 한 듯 박수 소리가 D반을 가득 채웠다.
박수가 사라지자 장부기가 손을 들었다.
손대영이 장부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사인이 전해지고 장부기가 즉각 입을 뗐다.
“마수아팀 서번트 맞으시죠?”
부기의 물음에 다른 아이들의 표정도 부기와 비슷하게 변했다.
긴장이 흐르는 표정.
그와는 다르게 거의 표정 변화가 없는 손대영이었다.
“네. 맞습니다.”
손대영을 향한 아이들의 눈빛이 더욱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까지 치고 있었다.
D반 아이들 모두 손대영을 아는 눈치였다.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선지 낯이 익다 생각했는데 이세계에서 돌아올 때 보았던 마수아팀의 서번트였다.
“자, 그럼 먼저 D반을 졸업한 선배로서 여러분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뭘까, 나름대로 생각을 해봤습니다.”
손대영이 분필을 집어 들고 칠판에 글자를 적어 내려갔다.
- 서번트란? 필요한 자질?
- D급 헌터?
- 던전이 아닌 현실에 나타나게 된 몬스터.
분필을 다시 내려놓은 손대영이 몸을 돌려 다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우선 할당 시간인 50분 안에 여러분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만 간추려 봤습니다. 우선 이야기를 해드린 후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창가 쪽에 서 있던 조일환 선생의 눈에 아이들의 표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수아, 마수아 거리더니…. 짜식들…. 진지한 얼굴이 됐구나.’
단단한 어조로 손대영이 말했다.
“첫 번째로 서번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서번트는 한 마디로 보조입니다. 3명에서 4명의 능력자로 이루어진 파티가 던전을 공략할 때, 몬스터를 잡는 것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입니다. 뭐, 일반인들은 우리를 씨X바리다 뭐다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본 서번트는 던전과 전장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는 하나의 직업입니다.”
아이들이 경청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내용으로 그럼 서번트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몬스터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합니다. 상성과 약점을 알고 있어야 빠르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빠른 판단력과 대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던전 공략은 연습이 아니라 실전이거든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최한의 귀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두 눈에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는 민섭이 보였다.
“용기.”
민섭의 입에서 작게 새어 나온 그 말이 손대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용기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대부분의 서번트는 D급 능력자이거나 일반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팀은 C급일 수도 있고 A급 능력자들로만 된 상위 클래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B급 던전이나 A급 던전에도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의 등급에 맞게 던전을 선택하는 능력자들과 다르게 서번트는 언제나 자신의 힘이 통하지 않는…… 한 방만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는 던전에…… 매일매일 죽음을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는 거죠.”
아이들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알고 있었다.
강한 팀의 서번트가 되면 덩달아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지만….
그만큼.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그래도…… 보람찹니다. 제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 살아서 돌아올 때면…… 그 만족감은 다른 능력자들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다가옵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먹구름이 지워졌다.
서번트만이 느낄 수 있는 만족감.
다른 능력자들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다가오는 감사함과 직업에 대한 행복감.
“그럼 두 번째로 D급 헌터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서번트가 되지 않고 D급 헌터로 활동하는 능력자들도 소수지만 있습니다. 길드에 가입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죠.”
잘 알려지지 않은 업계의 이야기에 아이들이 새로운 표정으로 시선을 모았다.
손대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D급 헌터로 활동 하고 있는 분들은 서번트가 되는 것을 거절한 사람들뿐입니다. 일부는 정말 서번트를 그저 시X바리 정도로 생각해서 거절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아주 일부긴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가진 분을 직접 만나도 봤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은 담담했다.
학교에서도 느꼈으니까.
서번트가 그리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사회적으로 서번트가 헌터보다 인식이 좋을 순 없겠지만, 길드입장에서는 아무리 헌터라도 서번트가 아닌 이상 돈을 주고 D급 헌터를 고용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유는 여러분도 알고 계실 겁니다.”
알고 있다.
길드에서 D급 헌터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
정적 가득한 D반 교실에 최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약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