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나약해서라…… 왜 그런 답이 나온 거죠? 에스…… 아니, 최한 학생?”
D반 아이들의 시선이 최한에게 쏠렸다.
손대영 서번트가 최한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작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최한의 입에서 나온 ‘나약해서’라는 그 한마디가 더욱 크게 느껴져 이름에 대한 의문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나약해서…….”
D반 아이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약해서.’
맞는 말이다. D급은 나약하다. 헌터라는 명칭은 몬스터를 사냥하고 던전을 클리어할 수 있는 존재에게나 붙는 이름이었다.
서번트가 되지 않은 D급의 프리랜서 헌터들은 모두…….
‘설거지 용병’이라 불리며 던전 관리 협회에서도 신경 쓰지 않는, 난이도가 떨어지는 D급 던전이나 등급도 붙지 않는 E급 던전을 전전하게 된다.
초반에는 D급 헌터가 돈을 더 잘 벌지만 경력이 쌓이면 상황이 역전되어 서번트가 더 돈을 잘 벌게 된다.
그럼에도 D급 헌터가 존재하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보기에 서번트라는 직업이 괜찮아 보인다 해도,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서번트라는 직업이 헌터라는 직업보다 인식이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D급 헌터들이 미래가 없음에도 서번트가 되기를 꺼리는 것이다.
손대영 서번트가 최한에게 되물었다.
“뭐, 맞긴 하죠. D급 능력자가 각성을 한다 해도 C급 미각성 능력자도 이기지 못할 만큼 약한 존재이긴….”
“아니요. 제가 말한 것은 무력에 관한 게 아니에요.”
최한의 목소리에 어떤 표정 변화도 없던 손대영 서번트의 얼굴에 처음으로 감정이 드러났다.
“무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왜 나약하다는 말을 한 거죠?”
“D반에 온 지 오래는 되지 않았지만, 이 반에는 서번트를 꿈으로 삼고 매일 같이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서번트라는 직업을 제대로 이해하고, 당신처럼 서번트를 하면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단단하고 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비하면……”
최한의 목소리에 구석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조일환 선생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나약한 겁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몬스터를 죽이고, 그깟 등급으로 사람의 높낮이를 정하고, 자기 맘대로 사람을 재단하는 놈들은. 그런 놈들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니까, 파티나 레이드를 돌면 피해나 주니까…… 길드 입장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거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뭐… 이건 D급 헌터 전체라기보다는 아까 말한 그 일부들에 대한 의견이긴 하지만….”
최한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자신의 의지를 표현한 최한이 교탁에 서 있는 손대영 서번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짝짝짝짝-.
박수 소리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오! 최한!”
“이번 거는 좀 멋졌다.”
“크으…… 지렸네.”
D반 아이들의 박수 세례에 최한이 부끄러운지 코를 긁적였다.
“뭐… 이 정도 가지고….”
하하하하하-.
D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딱하고 고지식하기로 소문난 손대영 서번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A급 헌터.
그들을 만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을 하찮게 내려다보는지를.
등급이 높다고 자만심이 넘치는 나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허나.
아무리 지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진동하는 냄새가 있다.
‘다르다.’
너와 나는 다르다는 그 특유의 냄새.
아무리 웃는 얼굴로 덮고, 착한 말투로 가려도 새어 나오는 그 냄새가….
나지 않았다.
SSS급.
현시점 지구에서 가장 강한 인간으로 추정되는 저 아이는…….
정말.
그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맞습니다. 아니…… 맞을 겁니다. 최한 학생의 답이…….”
한참을 최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손대영 서번트였다.
한바탕 아이들과 최한의 웃음소리가 지나가고 손대영 서번트가 다시 칠판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어서 마지막 주제인… 던전이 아닌 현실에 나타나게 된 몬스터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밝은 표정을 유지하던 최한의 얼굴이 진지할 정도로 차갑게 변했다.
“던전과 능력자가 처음 나타나게 된 건 5년 전입니다. 능력자와 던전이 나타나게 되어서 크게 인생이 변하거나 돈을 많이 벌게 된 사람은 있어도……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최한이 흐릿한 눈빛으로 작게 날숨을 내뱉었다.
손대영 서번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모두 알다시피 올해 초부터 어떤 이유에선지 던전에 있어야 할 몬스터가 현실 세계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죠.”
손대영 서번트가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들과 짧게 눈을 마주친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현재 몬스터가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포탈이라 불리는 차원 이동 기술을 통해 대부분 한 마리의 몬스터만이 나타나는 첫 번째 방식과…… 아직 몇 차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던전 자체가 폭발하듯이 현실 세계로 대량의 몬스터를 쏟아내는 던전 브레이크.”
아이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본 적 있어.”
“저번 주에 영국에서 A급 던전이 폭발해서 도시 하나가 사라졌다고 했는데.”
손대영 서번트가 말을 가로채듯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단 하루 만에 사망자가 1,000명이나 나온 재앙이었죠. 두 명의 S급 능력자가 겨우 몬스터들을 모두 처치하긴 했지만,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100명이 넘는 능력자와 서번트가 목숨을 잃었죠.”
교실에 정적이 찾아왔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하지만 이것은 이제 다른 나라의 얘기만은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경각심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작은 한숨과 함께 최한의 고개가 창밖을 향했다.
최한의 얼굴로 드러난 감정을 발견한 손대영 서번트의 시선이 최한의 얼굴에 조금 더 머물러 있었다.
몇 개의 질문이 이어졌고, 손대영 서번트의 대답을 끝으로 종이 울렸다.
“그럼… 부족하지만, 좋은 시간이 되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D반이라고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D반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으니까요.”
박수 소리와 감사 인사를 받으며 손대영 서번트가 D반을 나섰다.
쉬는 시간이 되었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최한의 곁으로 장부기와 민섭이가 다가왔다.
“생각이 많아 보이네?”
“서번트 얘기 듣고 왜 네가 진지해지냐?”
민섭의 목소리 뒤로 부기의 음성까지 얹어졌다.
최한이 빠르게 표정을 풀었다.
“아니야, 그건 그렇고 쌀 뻔했네. 화장실이나 가자.”
민섭과 부기가 고개를 저으며 코웃음 쳤다.
최한이 걸음을 옮겨 앞문으로 향했다. 그 뒤를 부기와 민섭이 따랐다.
최한이 앞문을 나와 복도에 발을 딛자마자 고막을 강타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꺄아악!”
“우와!”
“마수아야!”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최한의 표정이 구겨졌다.
“아이씨…… 깜짝이야…….”
그때, 장부기가 최한의 어깨를 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 저기…….”
부기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는 최한이었다.
한눈에 봐도 튀는 분홍색 머리가 보였고, 그 옆으로 어째선지 낯이 익은 뒷모습을 한 아저씨가 보였다.
최한의 귀로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손대영!”
브로스 길드의 간판스타 마수아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는 주위의 있는 아이들의 시선 따위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하… 성질 좀 죽여라…… 애들도 보고 있는데……. 언제는 악플 때문에 이미지 관리한다더니…….”
이마에 손을 얹으며 윤강산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앞에 있는 이는 방금 D반 교실에서 나온 손대영 서번트였다.
“아니…. 방금 종 쳐서 나온 건데요?”
“아니! 꼬맹이들이랑 뭔 수다를 그렇게 떨어! 30분 정도 하고 나오면 되지! 10분이나 기다렸잖아!”
짜증이 익숙한지 손대영이 더는 대꾸하지 않고 윤강산을 바라보았다.
“빨리 돌아가자. 애들 더 모이기 전…. 어! 또 보네?”
윤강산의 손이 들리자, 마수아와 손대영의 시선이 동시에 움직였다.
마수아가 최한을 발견하고 물었다.
“뭐야? 네가 왜 D반에서 나와?”
최한이 코를 파며 마수아에게 대답했다.
“D반이니까 D반에서 나오겠지, 너야말로 왜 여기 있어? 핑크 대가리.”
빠직!
“여자한테 핑크 대가리가 뭐야! 이건 부모님이 물려주신…….”
최한이 마수아의 목소리를 잘랐다.
“됐고! 금방 또 보네요.”
최한이 윤강산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곁에 있던 민섭도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여기서 보니 새롭네. 그건 그렇고 표정이 훨씬 좋아졌는데, 민섭이는?”
“그런…가요?”
민섭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곁에 있던 장부기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야! 너 왜 내 말 잘라! 윤강산 넌 뭐가 좋다고 애들이랑 실실거리고 있어!”
마수아가 두 팔을 휘저으며 짜증을 부렸다.
복도를 가득 채우던 함성과 동경의 눈초리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눈으로 보고도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
브로스길드의 간판스타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딜러라 불리는 마수아를 쥐락펴락하는 것도 모자라 아주 대놓고 무시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A급 최고의 힐러라 불리는 윤강산 헌터와도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복도를 가득 채운 아이들이 멍한 표정으로 최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쥔 채 터질 것 같은 살의를 참아내고 있는 학생의 모습이 보였다.
“저 자식…… 감히 마수아 님에게……. 죽여 버리겠어…….”
B반의 짱 이한나가 화살촉처럼 변한 눈으로 최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녀석…… 어떻게 A-31 팀과 친분이 있는 거지….”
금발의 긴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한재석이 최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때.
모든 학생의 시선이 한곳으로 옮겨졌다.
터벅터벅-.
마수아를 구경하기 위해 우르르 몰려 있던 학생들이 복도의 벽면으로 밀착해 길을 터 주었다.
최한과 투덕거리고 있던 마수아의 눈빛이 변했다.
“오호… 저 녀석이야? 내 자리를 뺏으려는 놈이?”
마수아의 시선으로 학생들의 사이를 뚫고 다가오는 남학생이 보였다.
강진철.
미림 고등학교 학생회장의 등장이었다. 강진철의 한 발자국 뒤로 서기인 한민우가 걸음을 맞춰 걷고 있었다.
강진철을 발견한 윤강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해 보이는군. 그런데…… 저 노란 머리 녀석도 강해 보이는데?”
윤강산의 목소리에 마수아와 최한의 시선이 저 멀리 서 있는 한재석에게 향했다.
자신에게 시선이 향한 것을 알아챈 한재석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호오…… 저것도 물건인데?”
마수아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윽!
한재석의 옆에 있던 이한나가 가슴을 부여잡으며 휘청거렸다.
“마… 마수아 님이…. 나…… 나를 봐주셨어…. 이제 죽어도 여한이…….”
한재석이 이한나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때.
“우와!!!!”
“꺄아악!!”
“마…… 말이 안 나와!”
사라진 줄 알았던 환호 섞인 비명이 다시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는 좀 전 마수아팀을 향한 소리보다도 몇 배는 더 큰 소리였다.
“다 모여 있네?”
뒤쪽에서 들린 남성의 목소리에 마수아와 윤강산이 고개를 숙였다.
손대영 서번트가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뗐다.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날렵하게 뻗은 긴 손가락으로 파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나타난 최수혁이었다.
최수혁이 최한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오랜만이군. 바티칸은 잘 다녀왔나?”
최한이 코를 파며 대답했다.
“어.”
“하하…. 반말은 좀 심한 거 같은데? 내가 친히 전용기까지 빌려줬는데 말이야.”
순간 복도를 가득 채운 학생들의 사고가 정지했다.
어?
뭐라고?
잘못 들은 것이라.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헌터.
브로스길드의 길드장.
최강이라 불리는 S급 각성자에게 저런 태도를…….
강진철의 옆에 있던 한민우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녀석이 어떻게 길드장님을? 설마…… 진짜 브로스 길드 거절하고 온 거였어?”
학생회장 강진철의 얼굴에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저 녀석이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