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이번 체육대회 최고의 이슈메이커 최한 학생이 1점을 낸 가운데, 지금 말도 안 되는 내기가 성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퇴 빵!!! 게임에 지는 쪽이 자퇴를 하는…….]
“진짜야? 자퇴 빵이라고?”
“내기가 되겠어? C반은 아직 두 명이나 점수가 남았는데?”
“그러니까, 최한이 치는 것도 아니고.”
“설마 이춘식이 그때 운동장에 처박힌 복수 하려고?”
“야야…. 최한이 먼저 내기 걸었거든?”
스탠드에 앉은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2학년 D반이 모여 있는 스탠드에만 어두운 표정들이 가득했다.
“또 무슨 일을 벌이는 거야…. 최한….”
“저 또라이 저거….”
민섭이 관자놀이를 누르며 말했다.
“아까 웃는 표정 봤을 때 바로 알아챘어야 했는데….”
조일환 선생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무슨 생각인 거냐…… 최한…….”
구령대 위에 있던 교장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자… 자퇴 빵이라니! 생방송 중인데 지금 무슨 소리를……. 학교 명성에 흠이…….”
하하하하하하하-.
최한의 목소리에 이춘식의 웃음소리가 운동장 전체를 크게 울렸다.
“최… 최한…… 지금 뭐 하는…….”
당황한 장부기의 어깨에 최한의 손이 얹어졌다.
“너… 우리 반 아이들을 괴롭힐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던 거지? 그 이유가…… 저 녀석이고.”
장부기의 시선이 떨렸다.
어깨에 있던 최한의 손이 미끄러지듯 떠나갔다.
최한의 걸음이 이춘식에게 향했다.
“함께 지내다 보니 알겠더라고. 네가 착한 학생까지는 아니지만…… 저 부류와는 다르다는 걸.”
부기를 뒤로한 채 이춘식의 앞에 도착한 최한이 고개를 높게 쳐올렸다.
“딴말하기 없기다. 지는 쪽이 학교 자퇴하는 거야.”
최한을 다 가릴 만큼 육중한 몸을 가진 이춘식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너야말로 딴말하기 없기다. 이 괴물 자식.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딴 D급 녀석한테 우리가 진다는 게 말이 안 되지.”
“그건 직접 해봐야 알지.”
“미친 자식. 후회하게 해주마. 저 녀석이 나를 이긴다고? 저 녀석은 단 한 번도 나를 이긴 적이 없어. 아니, 말을 잘 못 했군. 거스른 적이 없다고 해야 하나?”
비릿한 웃음을 보이는 이춘식이었다.
장부기의 주먹이 떨려왔다.
“지금까지와는 다를 거야. 난 내 친구를 믿어.”
부기의 움직임이 멈췄다. 최한의 목소리를 끝으로 그의 머릿속이 검게 칠해져 갔다.
“나… 나는…….”
* * *
이춘식과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를 가진 이춘식은 빠르게 학교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정점이란 표현이 초등학생들에게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봐왔던 이춘식에게는 딱 그 단어가 어울렸다.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1학년 전체의 위에 서게 되었고, 2학년이 되었을 때는 6학년마저 제압하고 학교의 짱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항상 이춘식의 곁에는 내가 있었다.
싸움을 잘해서? 친구라서?
아니.
내가 그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학교 다녀왔습니다.”
“오셨어요, 주인님?”
주인님.
아버지는 춘식이를 주인님이라 불렀다.
어째서…… 친구의 아들인데…….
“왜 주인님이라고 하는 거야! 우리가 거지야! 왜….”
짝!
둔탁한 소리가 울리고 귀에서 이상한 잡음이 들렸다.
이어서 날아오는 큰 손에 정신없이 얼굴을 가격당했다.
아프지 않았다. 얼굴과 귀가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내 시선에 보이는 한 남자의 표정 때문이었다.
멸시.
이춘식이 맞고 있는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초등학생이 지을 수 없는 표정으로….
그때.
“무슨 소란이야!”
남성의 목소리에 나를 때리던 아버지의 손이 멈췄다.
“아… 아닙니다. 부기가 잘못을 좀 해서 혼을 내고 있었습니다…… 주인님.”
또 주인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를 그렇게 때리면 쓰냐. 내가 잘 말해 볼 테니까, 가서 비료나 뿌려. 그리고 주인님이라 부르지 좀 마.”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쩔뚝쩔뚝.
“부기야. 아저씨가 아빠한테 주인님이라 부르지 말라고 얘기…….”
차분하고 여유로운 목소리.
하지만 웃고 있는 표정은 이춘식과 너무도 닮아 있다.
사람을 낮잡아 보는 그 멸시 가득한 눈빛까지.
“이춘식. 너도 잘 들어. 부기 아빠는 우리 집에서 일을 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으며 지내고 있는 거야……. 단지…….”
쩔뚝대던 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저런 장애인을 일 시켜주고 먹여주는 아빠 같은 인간을 승리자라고 부른단다.”
씨발.
개새끼.
이놈이 제일 쓰레기다.
멀어지는 뒷모습이 보였다.
의족이 맞지 않아 쩔뚝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 때까지. 9년 동안이나 나와 아버지는 춘식이 아버지의 농장 한켠에 있던 비닐하우스에서 살아왔다.
아니.
버텨왔다.
그리고.
17살이 되던 해…….
능력자로 판별된 나와 춘식은 서울에 있는 미림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다.
“미안하다, 부기야……. 거기서도…… 주인님을 잘 돌봐드리렴.”
그게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아직도…….
아버지가 싫다.
아버지를 버린 엄마도 싫고.
아버지를 이용하는 춘식이 아빠도 싫다.
아빠와 나를 종 취급하는 춘식이도 싫다.
.
.
.
하지만.
아빠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 * *
“난…… 나는…… 절대 지지 않아. 질 수 없어. 인제를 떠나는 날 맹세했어!”
장부기의 외침에 춘식의 얼굴이 구겨졌다.
“거지 주제에……. 너 내 말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잊었어? 네 아빠 거리로 나앉게 해줘?”
최한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춘식의 말에 대충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자신의 차례가 아니라 생각했다.
한 방에 박살 내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최한이 주먹에 힘을 뺐다.
장부기가 천천히 춘식에게 다가왔다.
“내 힘으로 아빠를 구해줄 거야. 지금까지 네 말을 들으며… 아빠를 그곳에 살게 했지만…… 이젠 아니야. 아빠를 그곳에서… 그 지옥에서 꺼내 줄 거야.”
최한의 곁에 나란히 서서, 춘식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당당한 모습.
처음으로 최한의 눈에 장부기가 춘식보다 커 보였다.
‘짜식….’
이춘식의 어깨가 떨려왔다.
“주둥이 터는 것도 마지막이야. 이제 빌어도 안 봐주겠어. 어이, 너부터 나가.”
춘식의 뒤에 있던 남학생이 목을 풀며 펀치 머신 앞으로 걸어갔다.
펀치 머신 앞에 멈춰선 남학생이 기를 모으듯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읏짜!”
남학생의 눈빛이 변하더니 순식간에 그의 머리가 뒤쪽으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목이 늘어나 운동장 끝에 머리가 닿을 듯했다.
길게 늘어난 목이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반동을 제대로 받은 그의 머리가 빠르게 펀치 머신으로 향했다.
빡!!!!
이마가 펀치 머신을 강타하고.
0911
화면에 표시된 숫자.
[C반의 주한별 선수 911점!!!!]
주한별이 목을 돌리며 춘식의 곁으로 이동했다.
“좋아. 이 정도면 절대 질 일은 없겠군. 일반인이 죽을힘을 다해 때려도 10점이 안 나온다 했으니…. D급 나부랭이나 일반인이나 거기서 거기겠지.”
부기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부족하다거나 겁나서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이 자꾸 그의 몸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D급과 C급 능력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그것의 간격을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는 건 공격에 특화된 특성과 공격적인 스킬뿐…….
공격적인 특성 중에 가장 강하다 여겨지는 건 다름 아닌 자연계다.
불, 바람, 번개, 물…… 등등.
인간의 힘으로 자연의 힘을 다루는 그 특성을 부여받은 능력자는 등급이 낮아도 일거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 등급에서는 상위권에 군림할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셈이었다.
부기가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그럼… 다음은 재미를 위해 내가 하지. 네가 911점도 못 넘어서 내가 칠 기회도 없으면 너무 비참하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춘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기의 시선이 춘식에게 향했다.
펀치 머신 앞에 자리 잡아 허리의 반동으로 주먹을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미각성자.
춘식은 미각성자였다.
특성과 스킬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
그래서.
작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앞뒤로 왔다갔다 거리던 춘식의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펀치 머신의 미트를 정확히 맞혔다.
쾅!!!!
큰 소리와 함께 넘어간 미트.
1,100
[C반의 이춘식 선수 1,100점!!!]
“와아아아!!!!”
학생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목소리.
자극적일수록 아이들은 열광한다.
자퇴.
미림고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사건.
제삼자인 아이들은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심장의 박동을 즐거움으로 착각하고 운동장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다.
C반의 점수 총합은 2,011점.
D반의 점수는 1점.
뒤집으려면 최소 2,011점이 필요한 상황.
C급도 2,000점을 넘기지 못했는데… D급이….
부기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젠장.’
조금은 희망을 품고 있던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미각성자인 것은 상관없었다.
C반의 짱은 이춘식.
미각성자인 채로도 C반의 학생들을 무릎 꿇리고 위에 선 자니까.
각성도 하지 않았는데 저런 강함을…….
더러워.
불공평해.
어째서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이…….
“불공평……해…….”
입술을 짓이기며 혼잣말을 내뱉는 부기의 귀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한 거야. 알고 있었잖아. D반에 들어왔을 때부터.”
부기의 시선이 움직였다.
최한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알려줬잖아. 그 불공평한 것들을 이기는 방법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최한의 얼굴을 타고 온 그 바람이 부기의 눈을 감겼다.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최한이 전학 온 날.
춘식에게서 자신을 구해준 날.
S급 던전을 없앤 날.
민섭이를 지켜준 날.
D반을 하나로 모은 날…….
부기의 눈이 떠졌다.
그의 표정엔 더 이상 걱정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았다.
장부기가 최한을 지나쳐 펀치 머신으로 향했다.
펀치 머신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춘식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병신 새끼. 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C급 두 명의 힘을 D급 주제에 이기겠다고?”
맞는 말이었다.
C급 한 명의 힘도 이기지 못하는데 두 명의 힘을 이긴다니…….
하지만.
펀치 머신은 순수한 강함의 척도다.
그러니까…….
뒷일 생각하지 않고 한 방에 모든 걸 걸면 된다.
장부기의 팔이 거대한 바위처럼 변해 갔다.
“웅. 이길 거야. 남자는 목숨보다 소중한 게 생기면 지지 않거든. 스킬 발동.”
미림고 운동장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땅이 갈라지고, 흙먼지가 일어났다.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모든 시선이 운동장 중앙으로 쏠렸다.
“저길 봐!”
“저게 대체….”
운동장 바닥에 있던 흙과 돌멩이가 부기의 주먹으로 몰려들었다.
‘아버지…….’
인제를 떠나기 전날 밤.
부기는 처음으로 술에 취해 울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부기가 잠든 줄 알고.
지켜주지 못해서….
어미에게 버림받게 해서….
다리 없는 놈의 아들이어서….
돈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작게 흐느끼는 그 뒷모습을 모른 척해서 죄송합니다!”
다리 허리 어깨 팔.
부기가 온몸의 반동을 이용해 주먹을 날렸다.
운동장 전체를 가릴 만큼 거대해진 부기의 주먹이 펀치 머신을 강타했다.
쾅!!!!!!!
폭발음과 함께 거인의 주먹에 균열이 일어나며 무너져 내렸다.
쿵! 쿵! 쿵!!!!
운동장 전체가 흙먼지로 뒤덮였다.
정적.
고요했다.
작은 바람이 불어와 흙먼지를 하늘로 날려 버렸다.
그리고.
펀치 머신 앞에 쓰러져 있는 장부기의 모습이 보였다.
[D……D반의 장부기 선수…… 2,100점!]
우와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