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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37화 (38/211)

37화

“아니야…… 저딴 놈이 이 점수를 낼 리가…… 내가 질 리 없어!”

춘식의 목소리가 환호성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들끓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지 춘식이 부기가 쓰러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사기꾼 새끼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부기의 얼굴로 춘식의 발이 날아들었다.

“그만. 거기서 더 움직이면 너 죽어.”

짧게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

온몸에 각인된 공포가 되살아나듯 빠르게 움직이던 춘식의 발이 공중에서 멈춰 있었다.

춘식을 향해 다가오는 목소리의 주인.

그가 부기의 앞을 막아섰다.

눈빛.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움직이면 진짜 죽는다는 것을…….

춘식의 앞에 최한이 서 있었다.

“공정하게 한 내기인데. 폭력을 행사하면 쓰나?”

춘식이 천천히 발을 제자리로 가져갔다.

“공정하긴 뭘 공정해! D급이 어떻게 이런 점수를 낼 수가 있어! 기계가 고장 난 걸 거야! 아니면 네가 뒤에서 도와줬거나! 저딴 D급 녀석이…… 집도 없는 거지새끼가…….”

“어이. 말로 경고하는 건 마지막이야.”

숨을 쉴 수 없었다.

공포, 불안, 초조.

그따위 감정이 아니었다.

이건…….

인간의 모든 기관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

죽음을 피하고픈 인간의 본능이었다.

춘식의 표정이 사라졌다.

“그래. 차라리 그 표정이 낫겠다. 내기는 우리가 이겼어. 너희가 졌으니 자퇴해야지?”

밝게 웃는 최한.

악마의 미소였다.

다리가 풀린 주한별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안 돼…. 안 돼……. 내가 어떻게 미림고에 들어왔는데…….”

받아들일 수 없는지 춘식이 멍하게 땅만 쳐다보았다.

그때.

최한의 뒤에 쓰러져 있던 부기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

최한이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부기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새어 나온 말 같았다.

“하하… 하하하하하!”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하는 춘식이었다.

최한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냐? 실성했냐?”

조금 전과 달리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는 춘식.

태도가 돌변한 춘식이 소리쳤다.

“자퇴? 그래, 졌으니까 자퇴하지. 근데 말이야…… 내가 저 새끼 아빠 가만 냅둘 거 같아? 실컷 괴롭히다, 쫓아낼 거야! 오갈 곳 없는 그 장애인 새끼를 누가 받아주겠어!”

부기의 약점.

춘식의 마지막 패.

태도가 돌변한 이유…….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난 세 번이나 기회를 줬어.”

최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겁에 질린 춘식이 두리번거리며 최한을 찾았다.

그때.

[깜짝이야! 언제 구령대에….]

중계진의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구령대로 향했다.

그곳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최한의 모습이 보였다.

“우선 말도 안 되는 내기로 염려 끼쳐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자퇴 얘기는 없던 것으로 할 테니… 내기 보상으로 저 녀석 꿀밤 한 대만 때려도 될까요?”

미림고 교장과 최수혁이 눈을 마주쳤다.

미림고 교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자… 자퇴보다는 꿀밤이 낫지요. 친구끼리 잠깐 의견 충돌이 있었…….”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최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직… 말이 안 끝났는데…….”

최수혁이 운동장을 찍고 있는 카메라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꿀밤이라……. ㅈ댔네…….”

최한의 모습이 다시 운동장에 나타났다.

춘식의 시선으로 최한의 손이 다가왔다.

“카메라 많아서 산 줄 알아.”

빡!!!!

좇을 수 없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도, 수십 대의 카메라도…….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최한.

춘식의 모습이 사라져 있었다.

구령대에 있던 ‘브로스 길드장’ 최수혁이 윤강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좀 가봐야겠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측에 초록색 타워 보이지?”

윤강산이 고개를 돌렸다.

“초록색 타워……. 저 멀리 보이는 거요?”

“그래. 거기 좀 가서 최한이 날려 보낸 학생 치료 좀 해줘.”

윤강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설마…….”

“그래…. 손가락 하나로 쳤을 뿐인데 족히 10km는 날아갔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윤강산의 시선으로 마수아와 학생회장 강진철의 얼굴이 들어왔다.

똑같이 변한 표정.

다물어지지 않는 입과, 미세하게 떨리는 동공의 움직임.

‘S급들은 봤나 보군.’

윤강산이 자리를 벗어났다.

최수혁이 최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것마저도…… 살살 때린 거겠지…….”

[곧바로 충격 소식입니다! 승리한 2학년 D반이…… 기권했습니다!]

“에?”

“대체 왜?”

“우승할 수 있을 텐데?”

“전학생 분명 2종목 이상 우승한다 했는데?”

스탠드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울렸다.

운동장 스탠드의 가장 구석.

조용히 앉아 있던 한재석의 주먹이 떨려왔다.

심판을 보던 학생회 서기 한민우가 최한에게 물었다.

“대체 왜 기권한 거지? 이 종목마저 우승한다면…… 너와 D반의 위신이 지금과 달라질 텐데…….”

쓰러진 장부기를 바라보며 최한이 미소 지었다.

“우승보다 더 값진 걸 얻었으니까요.”

한민우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최한이 쓰러진 장부기를 둘러업었다.

몸을 돌리던 최한이 고개만 살짝 돌려 한민우에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치면 다들 기죽어서 못 칠 테니까요.”

* * *

“건배!”

수많은 종이컵이 부딪쳤다.

“진짜 대단했어!”

“그런 기술은 언제 배웠대?”

“비록 3학년 A반이 우승했지만, 춘식이 코를 납작하게 해준 건 짜릿했어!”

“부기의 힘으로 C반을 이긴 거야.”

스탠드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D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치료를 받고 멀쩡해진 부기가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부끄럽게….”

눈빛이 바뀐 부기가 자세를 고쳐 잡더니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걸 말할 타이밍이 아닌 건 알지만, 그래도 꼭 지금 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해 얘들아. 아무리 춘식이가 시켰다 해도 너희에게 내가 한 행동은 잘못된 거야. 미안해…….”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단숨에 가라앉았다.

지금은 잘 지낸다 해도 최한이 오기 전까지는 모두…….

부기에게 당했으니까.

“괜찮아.”

민섭의 목소리였다.

부기가 고개를 들었다.

민섭의 주위로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생김새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민섭이 부기를 보며 말했다.

“많이 힘들었지?”

부기가 고개를 떨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사과를 더 했어야 했다.

아무리 시켜서 한 짓이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니까.

그렇기에 똑바로 눈을 보며 진심으로 모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개를 들지 못하는 부기였다.

아이들이 웃으며 부기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최한과 조일환 선생이 미소를 보였다.

“부기도 홀로 싸워왔던 거구나….”

“네. 아버지를 지키느라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교사로서 면목이 없구나. 고맙다, 최한.”

“에이…. 아니에요.”

밝은 웃음을 보이고 있는 최한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저…….”

최한이 몸을 돌렸다.

“누구?”

그곳엔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 두 명이 서 있었다.

불안한지 두 손을 모아 꼼지락거리며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저…… 그게… 팬이에요!”

얼굴이 붉어진 여학생들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최한을 향해 뻗었다.

“갑자기?”

상황 파악을 못 한 최한이 턱을 긁어 댔다.

조일환 선생이 최한의 어깨를 툭툭 치더니, 손가락으로 여학생들의 손을 가리켰다.

딸기우유와 파란 이온 음료…….

최한이 얼떨결에 딸기우유와 파란 이온 음료를 받아 들었다.

“고마워……. 잘 마실게…….”

여학생들이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부리나케 자리를 벗어났다.

“뭐야……. 갑자기 팬이라니…….”

“이…… 이…… 나쁜 놈!”

괴성과 함께 누군가 최한을 덮쳤다.

“감히! 핑크빛을 꿈꿔!”

“팬이라고!”

“죽여! 죽여!”

“솔로의 힘을 보여줘!”

D반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잠깐…….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최한이 자신의 목을 잡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장부기? 뭐야? 저기서 울고 있더니, 왜 이러고 있어?”

“왜 이러고 있기는! 우리 반을 대표해서 혼자 핑크빛 로맨스를 꿈꾸는 배신자를 처리하고 있지!”

최한이 당황해하고 있는 가운데 누군가 또 최한의 목에 매달렸다.

“아악! 또 누구…….”

민섭의 얼굴이 보였다.

“솔로 탈출 방지 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커플 지옥!”

“민섭이 너까지……. 풉!”

하하하하하하하-.

최한의 입에서 시작된 웃음이 D반 전체로 물들어 갔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던 최한의 움직임이 멈췄다.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구령대 쪽을 향한 시선.

최수혁이 마수아팀에게 비밀스럽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마수아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식사를 끝마치자마자 그대로 몸을 옮기는 마수아팀.

‘무슨 일 생겼나?’

[20분 뒤, 체육 대회 2부 단체전 경기가 있겠습니다. 각반 대표 5명을 선발해 구령대 앞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최한에게 매달렸던 부기와 민섭이 손을 풀었다.

조일환 선생이 아이들을 보며 물었다.

“장애물 달리기에 참여할 5명. 우선 참여하고 싶은 사람?”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한에게 쏠렸다.

“최한, 참여할 거냐?”

최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빠질게요.”

최한의 거절에 아이들이 놀라 되물었다.

“왜?”

“마지막 종목인데?”

“2종목 우승하려면…….”

아이들의 얼굴에 점점 더 그늘이 져갔다.

“마지막까지 내가 나간다면 정말 춘식이 말처럼 돼버리는 거야. 다른 반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야 해. 처음 전지 훈련 가기 전부터 말했잖아. 내가 아닌 D반의 힘으로 A반을 꺾어 준다고. 그래야 이 차별이…… 학교에서 사라질 거야.”

최한의 시선이 반 아이들에게 향했다.

“나 없이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체육 대회는 우리의 축제이자 평생 기억에 남을 추억이야. 꼭 이기지 않아도 돼. 난 결과보다 너희들의 진심을 보고 싶어. 이번엔 참여 안 한 사람 위주로 해보자!”

어찌나 밝게 웃는지.

자신이 전교생 앞에서 한 말을 까먹기라도 한 건지.

지게 된다면 뒤에서 말하는 무리가 분명 나올 텐데…….

모두 마음속에선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대답은 반대로 나왔다.

“그래! 일등도 중요하지만, 우리 반의 추억이 더 중요하니까!”

“맞아! 그래도 다 한 번씩은 참여해봐야지!”

“혹시 몰라? 최한 없이도 일등 할지도!”

“야야… 그건 상식적으로 무리야. 하지만…… 그래도 일등을 목표로 해보자!”

조일환 선생이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최한이 오기 전에는 절대 이런 말을 내뱉지 못할 것 같았는데. D급을…… 자신들을…… 믿지 않았던 아이들이, A급을 A반을 진심으로 이기려 하고 있다니.’

중계진의 공지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럼 지금 당장 장애물 계주에 참여할 선수들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잘 다녀와. 자신 있게 하고 와!”

최한이 D반을 대표해 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각 반의 대표가 구령대로 모여들었다.

[그럼 경기에 앞서 간단하게 장애물 달리기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학년 상관없이 12개의 반이 한 번에 경기에 참여합니다. 5개의 장애물이 운동장에 나타날 겁니다. 각 장애물 지점에 주자들이 서 있고, 장애물을 통과해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건네면 되는 아주 간단한 게임입니다.]

중계진의 목소리와 다르게 출발선에 서 있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그럼 선수들 모두 각자의 위치로 이동해 주시고요. 바로 레이스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

박수와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채웠다.

[그럼 준비하시고…….]

삑!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타트 라인에 서 있던 첫 주자들이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다.

출발선을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닥이 꺼지며 학생 한 명이 하얀 가루가 가득한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땡큐!”

“먼저 갑니다, 선배.”

다른 학생들이 비웃으며 점프해 함정을 피해 갔다.

[시작하자마자 3학년 D반 학생이 함정에 빠집니다. 하지만 놀라운 건 현재 꼴찌가 3학년 D반이 아닌 2학년 D반이란 겁니다!]

“아니! 난 능력자도 아닌데! 왜 나를 대표로 뽑은 거야! 그것도 첫 주자로!”

장미.

D반의 첫 주자는 장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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