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장장 3일 동안 진행된 검사를 마친 민섭과 한재석이었다.
브로스 길드 서울지부 연구소.
그 지하 깊은 곳에 있는 비밀 실험실.
3일 동안 수백 가지의 검사를 받느라 녹초가 된 그들의 모습이었다.
“아…… 드디어 끝이네…….”
마지막 검사를 끝낸 민섭이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이것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네!”
한재석이 가슴팍에 붙어 있는 패드를 땅바닥으로 던졌다.
짝짝짝-.
박수를 치며 다가오는 오지훈 센터장.
“모두 고생했어요. 3일 동안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수백 장에 달하는 자료를 끌어안으며 오지훈이 기쁨을 표출했다.
“두 분의 노력은 인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전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과 자료들이 많이 발견되었어요. 과학자로서 너무너무 행복하답니다!”
민섭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한재석이 짜증을 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힘들어 죽겠는데 사람 속 그만 긁어대요. 그것보다… 결과는 나왔어요?”
한재석의 목소리에 민섭과 오지훈 센터장의 얼굴에서 웃음이 지워졌다.
오지훈 센터장이 자료를 옆에 있는 책상에 내려두고, 주머니에 있는 리모컨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실험실 벽에 있던 화면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큰 화면 속으로 두 개의 인물 조형도가 나타났다.
“왼쪽이 민섭 군 오른쪽이 재석 군의 자료입니다.”
선으로 표현된 인간 모양의 조형도.
오른쪽에 있는 조형도 가슴 부근에 파란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파란 점이 우리가 부르는 마력입니다. 그리고 이 파란 점의 크기와 온몸으로 퍼졌을 때 차지하는 비율로 등급을 산정하죠. 이것은 처음 재석 군이 적합 검사를 받을 때의 자료입니다. 민섭 군은 당연히 능력자가 아니었으니 마력도 존재하지 않았죠.”
언제 짜증을 냈었냐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며 집중하고 있는 민섭과 한재석이었다.
오지훈이 리모컨의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그리고 이것이 이번에 새로 검사한 두 분의 자료입니다.”
민섭과 한재석의 눈이 두 배는 크게 떠졌다.
“이게… 뭐야…….”
“대체…….”
화면 속 파란빛이 보이지 않았다.
인간 조형도 가슴 부근.
선명한 붉은빛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새로운 마력의 발전일지…… 아니면 ‘리미터 해제자’들에게 모두 나타나는 현상인지는 더 조사해 봐야 알 수 있겠지만….”
오지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민섭 군은 예언에 나온 신을 끌어내릴 열쇠…. 그렇기에 민섭 군 혼자라면 지금까지 없던 이런 새로운 반응이 나왔다 해도 별로 놀라진 않았을 텐데….’
오지훈의 시선이 한재석에게 향했다.
‘문제는 재석 군이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민섭 군과 똑같은, 새로운 마력으로 바뀐 건지……. 현재 모든 리미트 해제자가 이럴 것 같다는 확신도 없고 무엇보다… 민섭 군이 열쇠인 것이 너무 걸리는데…….’
한참을 침묵하며 생각에 잠긴 오지훈이었다.
“뭐요! 다음 말이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요!”
한재석의 공격적인 목소리에 오지훈이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합니다. 잠시 정리 좀 하느라…. 뭐, 그래도 두 분에게는 좋은 일이라고요. 이것이 여러분들의 새로운 등급입니다.”
각각의 인물 조형도 위로 등급을 가리키는 영어 알파벳이 나타났다.
민섭과 한재석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 * *
D반 교실로 들어오는 한 남학생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안녕.”
D반에 있던 이들의 모든 시선이 앞문으로 향했다.
“어!”
“민섭아!”
“3일 동안 수업 째니 좋았냐?”
아이들이 오랜만에 등교한 민섭을 반겼다.
민섭의 시선이 창문 난간으로 옮겨졌다.
언제나 같은 곳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민섭에게 다가왔다.
“왔냐?”
최한의 미소가 보였다.
“응! 근데…… 너희 원래 그렇게 친했나?”
민섭의 시선으로 최한의 옆에 딱 붙어 있는 성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 제발 떨어지라고! 가뜩이나 좁아 죽겠는데!”
“싫어! 옆에 있을 거야!”
성녀가 최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최한의 옷을 강하게 쥐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이 모습이 익숙한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민섭이 볼을 긁적였다.
“대체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때.
앞문으로 조일환 선생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최한은 그제야 성녀를 떨어트릴 수 있게 되었다.
“자, 그럼…….”
조일환 선생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한곳에 시선을 멈췄다.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민섭이 아이들의 표정을 알아챘을 때, 조일환 선생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지현이 어머니와는 통화를 했다. 아무 문제 없다고 알아서 보낼 테니 연락하지 말라는 말만 하시더니… 어제부터는 전화도 받지 않으시는구나….”
민섭의 시선이 텅 빈 책상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까지 안 나오면 3일째인데….”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닌가?”
“X톡도 안보던데……”
“설마… 요새 우리 마을에서 젊은 여자들이 실종된다고…….”
아이들의 마지막 목소리.
그 목소리가 들리고 몸이 먼저 반응했다.
순간 민섭은 그런 생각을 했다.
왜 내가 이렇게 화내고 있지.
그저 작은 부탁이었는데.
그 사람의 책임도 아니었는데….
아니….
어쩌면…….
강해진 자신이 지금까지와 달라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쾅!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넘어간 의자가 바닥에 부딪혀 듣기 싫은 소리를 내었다.
“잘 부탁한다고 했잖아! 넌 알고 있었잖아! 분명 네가 걱정 말라고…… 걱정 말라고…….”
민섭의 주먹을 맞고 날아간 부기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있었다.
잔뜩 흥분해 숨을 몰아쉬고 있는 민섭과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표정이 굳어 버린 부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D반 아이들이 이제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홍철과 종훈이 바닥에 쓰러진 부기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부기야?”
“이걸로 닦아.”
최한이 갑자기 벌어진 일에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조일환 선생의 날 선 목소리가 교실을 채웠다.
“이게 무슨 짓이야! 김민섭!”
자신의 주먹과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있는 부기를 눈에 담던 민섭이 고함을 지르고 뒷문으로 나가 버렸다.
“민섭아!”
뒷문까지 따라갔었던 이재민이 고개를 떨궜다.
조일환 선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러던 민섭이까지……. 이거 큰일이로군…….”
종훈이 자신의 손수건으로 부기의 입을 닦아주었다.
“민섭이가 갑자기 왜 그러지…. 부기 때문에 지현이가 학교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
“민섭이 잘못 아니야…….”
작게 들린 부기의 목소리.
교실의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다.
“민섭이 잘못 아니야……. 내 잘못이야…. 내가 지현이를 챙겼어야 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부기 때문에 아이들이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 한 번이라도 지현이 마음 생각해 본 적 있어? 반에 S급 힐러가 전학 왔는데… 너희는 우르르 몰려가서 웃기만 했지? 혼자 얼마나 열등감을 느꼈는지 너희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부기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아이들의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려왔다.
왜 알아채지 못했을까.
언제나 자신들도 느끼던 마음이었는데.
아이들의 고개가 하나둘씩 숙여졌다.
“나 때문에 미안합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왔는데…. 친구를 슬프게 해버렸습니다. 미안합니다.”
성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아니라고.
너 때문이 아니라고.
지현이가 그렇게 느끼긴 했지만.
너의 잘못은 아니라고….
아니라고…….
부기는 그 말을 입에서 꺼내지 못하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럼…… 제대로 사과하러 가야지. 얼굴 보며 미안하다고. 신경 써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앞으로도 D반으로서 강해지자고.”
최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밝게 미소 지었다.
조일환 선생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이잉-.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확인한 조일환 선생이 최한을 불렀다.
“최한. 따라 나와라.”
* * *
미림 고등학교 옥상.
구석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민섭의 모습이 보였다.
“부기의 잘못이 아닌데… 대체 왜… 왜 그런 거야, 못난 놈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짜증을 내뱉은 민섭의 어깨가 떨려왔다.
순간의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아니.
아무리 감정을 다스리지 못했다 해도 자신이 부기에게 그렇게까지 행동할 이유와 명분 따위 없었다.
부기가 신경 쓰지 않아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닐 텐데.
다른 이유가 분명 있을 텐데.
평소의 지현이라면 벌써 툴툴 털고 학교에 나왔을 텐데.
“젠장! 젠장! 젠장!”
전혀 강해지지 않았다.
이래서는 최한을 만나기 전의 자신보다 더욱 형편없는 남자였다.
그때.
옥상의 문이 열리며 발소리가 들렸다.
민섭이 고개만 빼꼼 들어 올렸다.
민섭의 시선으로 잔뜩 구겨진 인상의 남학생 얼굴이 보였다.
“뭐야. 찌질이 새끼처럼 왜 여기서 울고 지랄이야?”
거침없는 언사.
빛을 받은 노란 머리칼이 더욱 밝게 빛났다.
“하… 한재석?”
민섭이 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네가 왜 여기에…….”
재석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거거든? 여기 원래 내 지정석이거든?”
고개를 돌려 자신의 주위를 둘러본 민섭이 작게 물었다.
“여기… 의자 없는데……?”
한재석의 눈썹이 떨렸다.
“이 미친놈이! 나랑 개그하냐! 내 자리니까 꺼지라고!”
민섭이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숙였다.
한재석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무시하냐?”
민섭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이야기를 꺼냈다.
“나… 같은 반 친구한테 실수했어. 새로운 등급 보고 자만하고 있었나 봐. 내가 뭐라도 된 양. 친구의 잘못이 아닌데…… 내가 그랬으면 안 되는데….”
한재석이 자신의 머리를 때리며 화를 표출했다.
“으아악! 미친놈아! 그냥 저리 꺼지라고! 왜 나한테 갑자기 신세 한탄을….”
한재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재석의 머릿속으로 어제 오지훈 센터장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최강이 목표라 그랬죠? 학생회장도 최한 군도 이길 만큼 강해지고 싶죠? 그럼 민섭 군과 붙어 있으세요. 어떤 이유로 두 분이 리미터를 해제한 건지는 모르지만… 제가 세운 가설로 봤을 때는 두 분이 함께 있어야 힘이 증폭되고 더욱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최한을 이기려면…….
무시하는 학생회장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면…….
강해져야 한다.
한재석이 천천히 머리에 있던 손을 내렸다.
민섭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반 친구가 3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대. 난 분명 그 애가 힘들어하는 걸 알았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그런데… 그런데… 그 애는 이렇게 무책임한 학생이 아니야. 분명 큰일이 생긴 걸 거야…. 정말 납치당했을 수도…….”
“그렇게 친구를 때린 게 미안하면 네가 가서 해결하면 되잖아. 납치를 당했건 어디 숨어 있건! 네가 다시 교실로 찾아와서 네 행동에 책임을 지면 되잖아!”
한재석의 외침에 민섭의 고개가 들렸다.
“나… 나 혼자만 힘으로는…….”
한재석이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내가 도와주지. 같은 ‘리미터 해제자’이자 S급이 된 기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