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여기인가…….”
최한의 걸음이 멈췄다.
지현의 아버지가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다.
마을의 외곽.
번화가와 큰 대로를 사이에 두고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덩그러니 있는 낡은 4층 건물 하나.
“여기가 지현이 어머니가 다니셨던 교회라고?”
장부기가 건물의 외관을 눈에 담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마감된 오래된 상가.
여러 개 붙어 있어야 할 간판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일 층에 있는 입구 옆에 작은 나무명패가 하나 보였다.
「만식전 – 서울 00지부」
그때, 휑하던 거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최한과 아이들이 서 있던 건물로 들어갔다.
우두커니 서 있는 그들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곧장 건물로 들어가는 많은 사람들.
다시 한적해진 건물 주변…….
부기의 목소리가 흘렀다.
“근데… 사람들이 진짜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고 있네?”
방금 건물로 들어간 사람들을 떠올렸다.
마치 잠이 덜 깬 것처럼 모두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으아악! 진짜 아저씨가 말한 대로입니다! 무섭습니다!”
성녀가 자리에서 폴짝 뛰어 최한에게 팔짱을 끼었다.
최한이 팔로 성녀의 머리를 밀었다.
“네가 더 무섭거든? 바티칸에서는 안 그러더니 왜 이렇게 껌딱지가 된 거야!”
성녀가 팔을 저으며 저항했지만 최한의 힘에 뒤로 밀려났다.
“우선 여기까지 왔으니 들어가서 조사해 보자. 빨리 지현이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야 해.”
부기가 앞장서서 건물로 들어갔다.
최한과 성녀가 뒤따라 들어갔다.
.
.
.
“이게 뭐야…….”
건물 2층 예배당으로 보이는 곳에 들어온 아이들이 신도들에 섞여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양손을 맞잡고 이상한 소리를 내뱉고 있는 신도들.
“영원한 삶과 축복을 저에게도.”
“와다가나 사저애 감사합니다.”
“은혜를 아가다자난나아아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열과 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최한이 한숨과 함께 부기에게 시선을 옮겼다.
넋이 나간 표정의 부기.
신도들에게 양손을 붙잡힌 채 위아래로 팔이 흔들리고 있었다.
최한의 얼굴에 짜증이 올라왔다.
사고 치지 말라고.
큰 단서를 잡기 전까지는 조용히 동태를 살피자고…….
해서 참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해서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최한의 시선이 예배당의 단상으로 향했다.
검은 사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
신도들과 같은 거슴츠레한 눈을 갖고 있었다.
“간부 정도 되는 건가…. 저 녀석한테 물어보면 되겠군.”
상황을 타개하려 최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이… 이… 이단! 이건 주님의 가르침이 아니야!”
예배당을 울리는 얇은 목소리.
순식간에 공기가 가라앉았다.
단상으로 뛰쳐나가려던 최한이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성녀.
큰 눈망울을 더 크게 부릅뜨며 사제복을 입은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이거… 성스러운 예배당에 벌레가 들어왔군요.”
사제복을 입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 뒤.
탁! 탁! 탁! 탁!
문을 통해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들이 예배당으로 들이닥쳤다.
넋이 나가 있던 부기의 눈빛이 돌아왔다.
“이런….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부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은 정장 무리를 향해 돌아섰다.
부기의 손이 큰 바위 손으로 변했다.
사제복을 입고 있던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호오…… 능력자였나요? 그래도 바뀌는 건 없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각자의 특성을 발현시켰다.
손이 검처럼 변했고
온몸을 진흙처럼 변화시키기도 했다.
“저들도 모두 능력자거든요…. 보아하니 학생들 같은데……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난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린 것부터가 이미…….”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일제히 부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섯 놈 전부 빠르다.
피하지 못해…….
“죽어라……. 윽!”
“뭐야!”
“모…… 몸이….”
주먹을 날리려던 부기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남성들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뭐지…….”
“제 능력입니다.”
부기의 옆으로 성녀가 다가왔다.
“몸을 보호하는 특성의 기술을 조금 변형한 거지만, D급이나 일반인 정도의 움직임을 잠깐 멈출 수 있습니다.”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만 내었다.
“젠장!”
“어서 풀어!”
“감히 만식교에 대항하다니. 너희 모두 교주님에게 사형…….”
쾅!!!!!!!
폭발 소리가 들리고 조금 전까지 분노를 표출하던 검은 정장의 사내들이 사라져 있었다.
부기와 성녀의 시선이 조금 더 뒤쪽을 향했다.
입구였던 작은 문과 뒤쪽에 있던 벽이 통째로 뚫려 있었다.
멍한 표정 그대로 부기와 성녀의 시선이 움직였다.
최한의 모습이 보였고, 그 옆으로 주저앉아 있는 신도들의 모습이 보였다.
최한과 그들이 앉아 있던 긴 예배당 의자가 사라져 있었다.
“감히 예배당의 물품을 던진 것도 모자라! 신도들을 다치게…… 읍!”
소리치던 남성의 입이 가로막혔다.
순식간에 이동한 최한이 사제복을 입은 남성의 볼을 움켜쥐었다.
“내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서 힘 조절을 잘 못 해. 그러니까 살고 싶으면 대답 잘해. 납치한 여자들 어디 있냐?”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이동하는 것조차 보지 못했다.
자신의 입을 움켜쥐는 그 순간조차, 눈앞에 사람이 다가온 것조차 알지 못했다.
“네놈…… 악마인 것이냐…… 으아악!”
비명이 울려 퍼졌다.
딱 죽지 않을 정도의 고통.
아주 조금만 더 힘을 가한다면 볼이 찢겨 나갈 고통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마지막이야. 최만식의 부인을 구한다 어쩌고 하면서…… 납치해간 내 친구 어디로 끌고 갔어!”
최한의 손으로 사제복을 입은 남자의 피가 흘러내렸다.
얼굴에 반이 가려진 남자가 눈으로 웃었다.
섬뜩하기까지 한 그 느낌에 지켜보고 있던 부기와 성녀의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교주님을 배반할 행동을 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 신도들이여!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지 말고 모두 나와 같이 영생을 얻으러 가자!”
예배당에 있던 신도들이 자신의 경전에 붙어 있는 작은 칼을 뽑아 들었다.
최한에게 잡혀 있던 사제복을 입은 남자도 옷 안에 지니고 있던 작을 칼을 꺼내 들었다.
남자가 최한을 보며 소리 내 웃었다.
“넌 교주님에게 닿지 못해.”
칼이 남자의 목을 향했다.
“아…… 놔…….”
쾅!
콰과과광!!
툭…….
툭……….
펑!!!!!!!!!!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예배당이 있던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큰 폭발이 일어난 듯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해로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흙먼지들 가운데 한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최한의 시선이 자신의 발아래로 향했다.
기절해 있는 남성.
칼이 목에 닿기 전 기절해 버린 것 같았다.
“다행히 죽진 않았군.”
그때.
쌓여 있는 돌 틈을 뚫고 누군가 솟아올랐다.
“으아! 죽을 뻔했네.”
장부기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위처럼 변한 손을 되돌려 놓았다.
바로 옆에서 또다시 건물의 잔해를 뚫고 누군가 솟아올랐다.
“으아아! 할머니 만나러 갈 뻔했습니다!”
성녀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휘청거렸다.
최한을 발견한 부기와 성녀가 천천히 다가갔다.
놓지 못하고 손에 들려진 칼.
최한의 발아래 기절해 있는 남성을 눈에 담은 부기와 성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한이 성녀에게 말했다.
“건물에 깔린 다른 신도들 좀 꺼내서 치료해줘.”
성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건물을 부쉈다는 것을 깨달은 성녀가 군말 없이 최한의 부탁을 들어줬다.
부기가 최한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쩌려고…… 이렇게 전부 기절시키면… 지현이가 있는 장소를…….”
“찾을 수 있어. 처음부터 제일 빠른 방법을 알고 있었어. 단지…… 이번엔 쓰고 싶지 않았는데…….”
최한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 *
“제가 왜 도와드려야 되죠? 최한 군은 우리 길드도 아닌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고성.
그러나.
브로스 길드장 최수혁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쳐났다.
“지금까지 저희가 최한 군을 몇 번이나 도와줬는지 아십니까? 전용기에… 센터 출입에… 금전적인 문제도 얼마나 끌어안았는지….”
브로스 길드 본사.
길드장의 사무실.
언제나 업무 처리와 사고 보고 때문에 어두운 표정만 보이던 그의 사무실에…….
처음으로 밝은 표정을 한 최수혁이 보였다.
“무엇 때문에 최만식 헌터의 위치를 알고 싶어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건 저희 쪽에서도 큰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는 일입니다. 후에 큰 책임이 따를 수도….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최수혁이 던진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던 고성이 잦아들고 침묵이 흘렀다.
“뭐… 아셨으면… 다른 곳을….”
여유로운 표정을 고수하던 최수혁의 얼굴에 다른 표정이 지어졌다.
“그 말… 진심이겠지요? 구두로 한 약속이라도… 효력이….”
최수혁의 얼굴에 큰 웃음이 지어졌다.
“약속한 겁니다. 최한 군. 그럼 최대한 빨리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폰을 내려놓은 최수혁이 의자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높이 점프했다.
마치.
아이가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저…… 길드장님? 갑자기 왜 이렇게 신나셨는지…….”
최수혁의 움직임을 멈추는 남자의 목소리.
최수혁이 민망한지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뭐…… 좋은 일이 좀 있어서……. 검사 보고는 여기서 마치고, 빠르게 해줘야 할 일이 생겼어.”
오지훈 센터장이 책상에 펼쳐 놓았던 민섭과 재석의 검사 자료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죠? 최한 군과 통화하시는 것 같던데?”
“최만식 헌터 알지? 그 녀석 위치 좀 알아봐 줘.”
“최만식 헌터라면… 사이비 종교?”
“그래. 최한이 그놈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아.”
“설마… 싸우기라도 하는 걸까요?”
“이유가 뭐든 상관없어. 최한 군과 거래를 했거든.”
오지훈이 턱을 만지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A급이라면 모르겠지만, 최만식은 10만 명이 넘는 신도를 가진 사이비 종교의 교주입니다. 적으로 만들면 골치 아파질 텐데…. 거기다 소문으로는 뒤를 봐주는….”
최수혁이 오지훈 센터장의 눈을 보며 말했다.
“자네 지금 대한민국 아니, 이 지구 전체를 통틀어서 절대 적으로 삼으면 안 되는 사람이 누군지 잊었나?”
오지훈 센터장이 단번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만식의 위치를 알아내는 대로… 최한 군의 휴대폰으로 보내겠습니다.”
오지훈 센터장이 길드장에게 인사한 뒤 방을 나왔다.
“대체 최한 군과 무슨 거래를 했길래…. 최만식의 위치를 알려주면… 우리에게도 피해가 올 수도 있는데…. 얼마나 큰 거래를 하신 거지?”
그때.
지이잉.
지이잉.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오지훈 센터장이 휴대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했다.
“민섭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