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이 브로스 길드 본사 특별 홀에 모여 있었다.
브로스 길드 측에서 기자 회견을 할 때 주로 쓰던 장소였다.
“그럼 곧바로 기자 회견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멘트와 함께 수많은 카메라들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모든 렌즈와 기자들의 시선이 향한 곳에.
길게 늘어선 테이블과 카메라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최수혁.
오지훈.
그리고 최한.
최수혁이 먼저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브로스 길드의 길드장 최수혁 헌터의 입장 발표가 있겠습니다. 질의응답은 따로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길게 늘어선 테이블 정중앙에 자리한 최수혁의 모습.
양옆으로 최한과 오지훈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절대 입을 열면 안 됩니다. 최한 군.’
전국 생중계로 송출되고 있는 화면에 세 사람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최수혁이 오지훈이 써준 입장 발표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수혁입니다. 우선 인터넷에 퍼진 영상을 모두 보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브로스 길드 측과 미림 고등학교의 입장을 취합해서 말씀드리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빌딩의 광고판과 식당의 텔레비전, 그리고 개인의 스마트폰으로까지….
최수혁의 목소리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수많은 억측과 왜곡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부디 이 기자 회견이 끝난 후에는 그런 일들이 다시 벌어지지 않길 바라는 바입니다.”
수없이 터지는 플래시 세례와 기자들의 맹수 같은 눈빛에도 기죽지 않고 최수혁이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첫 번째로 3년 전 일산 모교에 있었던 전교생 실종 사건. 그리고 그 사건 중 돌아오지 못했던 단 한 명의 실종자…… 그것은 최한 학생이 맞습니다.”
타다닥!
탁탁!
타자기 소리가 요동쳤다.
“한 달 만에 돌아온 다른 아이들과 달리 긴 시간 만에 돌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피해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실종되었던 기간 동안의 기억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최한이 100년 동안 이세계에 있었던 일과 그곳에서 강한 힘을 얻은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 게 낫겠지.’
애초부터 싹을 자르는 것이.
물어뜯기지 않는 방법이었다.
“두 번째로 항간에 퍼진 루머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악마, 잔혹한 폭력성. 그리고 피를 좋아하는 정신병까지…. 아마 영상에 나온 최만식과의 장면 때문에 그런 말이 퍼진 것 같습니다. 해당 장면은 단편적으로만 본다면 충분히 잔혹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최수혁이 고개를 들어 중앙에 있는 방송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미 보도된 바와 같이 최만식은 세뇌 특성과 교주의 권한을 이용해 일반인을 납치하고, 신도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는 등,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흉악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최한 학생이 최만식에게 분노를 표출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최한의 같은 반 친구가 최만식에게 납치되어서였습니다. 다소 폭력성이 드러난 부분이 있긴 하나 최만식의 행동 때문에 벌을 가하는 거라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타닥!
탁탁탁!
또다시 바빠지는 타자 소리.
“마지막으로 모두 궁금해하시던… 최한 학생의 등급은….”
시끄럽던 타자기 소리도.
불빛을 뿜어내던 플래시도 터지지 않았다.
정적을 뚫고 최수혁의 마지막 한마디가 울려 퍼졌다.
“S급입니다.”
* * *
“우와! 전학생 녀석 S급이래!”
“어쩐지 D반이 그렇게 강할 리가 있나.”
“와…… 대박!”
2학년 A반 교실.
모두들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기자 회견을 보고 있었다.
“최한이 학생회장보다 강한 거 아니야?”
“그러고 보니 특성도 한 번도 안 쓴 거 같던데.”
A반 교실에 오랜만에 들뜬 목소리들이 여럿 들렸다.
“까고 있네.”
순식간에 가라앉은 분위기.
학재석의 목소리였다.
잔뜩 구겨진 얼굴.
쉬는 시간이었지만, 한재석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마디에.
A반 교실이 조용해졌다.
움직이던 아이들이 그대로 멈췄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최한이 S급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오지훈 센터장과 다시 한번 검사했을 때 한재석의 등급은 S급이었다.
그래서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최한이 S급일 리 없다는 것을.
S급보다 더 높은 등급이 현재 발견되지 않았기에 발표되지 않았을 뿐이지….
자신이 눈앞에서 본 최한의 힘은….
한재석의 머릿속에 최만식을 발견한 최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표정만으로.
느껴지는 기운만으로.
S급인 자신이 움직이지 못했다.
몸이 거부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을, 거스르는 것을….
더욱더 강해진 자신의 몸과 능력이 알려주었다.
도망가라고.
한재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왜 S급이라 발표한 거지….”
그때.
한재석이 표정이 순식간에 뒤바뀌며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창밖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표정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 느낌은… 분명 조금 전까지 누군가 있었어.”
잔뜩 긴장한 표정의 한재석이었다.
A반 아이들이 그런 재석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이를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재석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살기.
분명 살기였다.
S급이 되고 나서 누구보다 강해진 지금의 자신이라서 느낄 수 있는 감각.
강자의 기운.
최한과 비슷한 기운이었다.
한재석의 머릿속으로 오지훈 센터장이 남긴 한마디가 지나갔다.
‘혹시 모르니까. 만식교 사건 때 얼굴이 팔린 D반 아이들 좀 지켜주세요.’
한 귀로 흘렸던 말이 대체 왜 지금 떠오르는 건지.
왜 최한이 학교에 없을 때 이런 느낌이 든 건지.
어째서.
이렇게 타이밍이 딱딱 맞는 것인지.
우당탕탕!
의자가 넘어지고….
한재석이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교실을 뛰쳐나가 빠르게 D반 교실로 달렸다.
일반인은 눈으로 좇지도 못할 만큼 빠르게.
마음속에 퍼지는 불안감을 끌어안으며.
그렇게 달렸다.
콰과과광!!!!!!
귀를 먹게 하는.
폭발 소리.
학생들의 비명이 학교를 울려댔다.
그리고.
D반 앞에 도착한 한재석의 시선으로.
피를 흘린 채 바닥에 기절해 있는 D반 아이들이 보였다.
장부기…. 이름도 모를 녀석들….
S급 성녀까지….
한재석의 심장이 요동쳤다.
창가에 서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반듯한 포마드 헤어스타일.
파란 눈동자.
정확한 키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
한재석은 단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유O브에서 많이 봐왔으니까.
양지에서 바티칸에 있는 팔라딘이 S급 최강이라 불린다면.
어둠의 세계.
음지에서는 러시아의 이 남자가 S급 최강이라 불린다는 것을….
킬러…… K.
한재석을 발견한 K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한재석의 시선이 K의 팔로 향했다.
누군가의 목을 움켜쥔 채 공중으로 들고 있었다.
한재석의 목소리가 D반에 울려 퍼졌다.
“김민섭!”
K의 손에 들려진 민섭은 이미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얼굴을 가득 채운 피.
부서진 안경.
찢어진 교복….
한재석의 시선이 민섭을 담고 있을 때 누군가가 교실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
이곳의 학생이 아니었다.
“대체 왜 아이들에게 이런 짓을!”
“이게 무슨 짓이야!”
민섭을 감시하기 위해 브로스 길드에서 심어 놓은 두 명의 사내가 K를 향해 전투 태세를 취했다.
뒤이어 학교의 선생님들이 D반 교실로 모여들었다.
K가 손에 힘을 풀어 민섭을 떨어트렸다.
“뭐… 오늘은 경고하러 온 거니까.”
K의 시선이 한재석에게 향했다.
흥미를 보이는 미소.
“너는 좀 다른 것 같군.”
마지막 말을 남긴 채.
K의 모습이 사라졌다.
한재석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한재석만이 그의 힘을 가늠할 수 있었으니까.
온몸에 긴장이 풀린 한재석이 풀썩 주저앉았다.
“어서 구급대를! 119에 전화해!”
“힐러! 이곳에 있는 힐러들 다 불러! 응급조치라도 해야 해!”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 미림고였다.
선생들이 부리나케 움직였고
교직원과 학생 상관없이 힐을 쓸 수 있는 능력자들이 모두 D반 아이들에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와중에도
주저앉은 한재석의 머릿속에 K의 웃고 있는 미소만이 떠올랐다.
‘괴물이야…. 최한이 이길 수 있을까…?’
* * *
같은 시각.
기자 회견을 마무리하던 오지훈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거절을 눌러도 계속되는 전화에 오지훈이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여 전화를 받았다.
“기자 회견 중이니까, 조금만 있다…….”
오지훈의 표정이 사라졌다.
서둘러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는 오지훈.
사진 한 장이 전송되어 있었다.
진행자의 마지막 멘트가 울렸다.
“자… 그럼 이것으로 기자 회견을 모두….”
말을 끝맺지 못하는 진행자.
어느새 벌떡 일어난 오지훈이 최한에게 다가갔다.
“오지훈 너 뭐 하는 거야?”
최수혁의 당황한 목소리가 울리고.
최한이 멍하게 오지훈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이래요….”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최한의 얼굴에 가져다 대는 오지훈.
“나한테 조용히 있으라더니 갑자기 왜…….”
최한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최한의 표정이 사라졌다.
쑥대밭이 된 교실과 온몸에 피를 흘린 채 바닥에 기절해 있는 D반 아이들.
“모두… 의식이 없답니다….”
사진을 눈에 담은 최한의 사고가 정지했다.
두근….
두근….
언제나 생각했었다.
‘내가 이성을 잃을 만큼 진짜로 화낸 적이 있었나?’
엘프의 팔다리를 찢었을 때?
600개의 퀘스트를 깨도 돌아가지 못했을 때?
100년을 이유도 모르고 갇혀 있었을 때?
친구가 맞았을 때?
민섭이의 팔이 잘렸을 때?
최만식에게 벌줄 때?
그때도 분명 화가 났었다.
들끓는 분노를, 목이 타버릴 것 같은 고통을.
그때도 분명 느꼈었다.
인간은.
부당한 것을 보면 화가 난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보면 화가 나고.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화가 난다.
그리고.
인간이 가장 크게 느끼는 부당함은…….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이다.
마무리되려던 기자 회견장이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최한과 브로스 길드 관계자들 때문에 시간이 멈춘 듯 작은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굳이 지금을 노린 거라면… 어딘가에서 보고 있겠지?”
노트북을 접고 있던 기자들과 카메라를 내리려던 기자들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반쯤 접혀 있던 노트북이 빠르게 펴지고.
카메라의 플래시가 빠르게 터지기 시작했다.
최한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네가 누구인지 몰라. 왜 이런 일을 벌인 건지도 모르겠고…. 그런데 말이야….”
최한의 표정이 변했다.
순식간에 기자 회견장의 소리가 사라졌다.
눈을 깜빡일 수도 없었다.
타자를 칠 수도 없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도 없었다.
모든 감각을 뺏긴 사람들….
“기다려. 금방 찾아갈 테니까. 그리고 보여줄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