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S급 꼬맹이….”
“이 녀석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최한을 발견한 파란색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카페에 있어야 할 네가 어떻게….”
“젠장. 그 기자 녀석, 우리를 속인 거야?”
“그럴 리 없어. 놓쳤으면 K에게 연락이 왔을 텐데….”
불안한 눈빛.
표정에 드러난 당혹감.
최한이 굳어 있는 킬러들을 보며 작게 웃어 보였다.
자신을 발견한 킬러들의 표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말까지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쓰바씨바 새끼들아!”
최한의 주먹이 가장 앞에 있던 중절모를 쓴 킬러의 얼굴에 명중했다.
펑!!!
인간을 때리는 소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
멍하니 굳어 있던 나머지 외국인의 시선이 뒤쪽을 향했다.
벽에 난 구멍.
“졸리가… 한 방에….”
“A급 능력자가 맨주먹에 이렇게 날아간다고…?”
동료가 뚫고 날아간 벽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킬러들이었다.
“사람 죽이러 온 놈들이 동료는 걱정돼?”
최한에게 시선을 옮긴 킬러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불안한 눈빛은 사라지고 피를 원하는 맹수의 눈빛으로 돌변했다.
분명 등급은 아래일 것이다.
끽해야 A급 능력자.
허나 그들의 눈빛에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소름 끼칠 정도의 차분함이 느껴졌다.
‘S급을 두려워하지 않는군.’
“어이, 꼬맹이. 능력자와 킬러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냐?”
목소리를 내던 킬러 한 명이 최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때.
최한의 귓가에 들리는 작은 목소리.
“킬러는 싸움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죽이기만 하면 되거든.”
최한의 시선으로 붉은 칼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A급이라 생각지 못할 정도의 스피드.
사각을 잘 이용해 본래의 스피드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붉은 칼날이 어느새 최한의 동공 앞까지 와 있었다.
“씨부려 봤자, 못 알아듣는다니까!”
쾅!!!!
“으악!”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천장으로 솟구치는 킬러였다.
이번에는 벽이 아니라 천장에 큰 구멍이 생겼다.
“젠장… K만 있었어도….”
홀로 남아 있던 킬러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간호사들과 경비가 모여들었다.
“이 외국인은 뭐… 뭐야!”
“벽이랑 천장에 웬 구멍이….”
“지나가는 사람 못 봤는데….”
간호사를 발견한 킬러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팟!
다리가 용수철처럼 변한 킬러가 빠르게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날아오른 킬러가 간호사 한 명을 붙잡았다.
“꺄악! 살려줘요!”
“닥쳐! 죽고 싶지 않으면!”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작은 단검이 간호사의 얼굴을 가렸다.
“…….”
잡혀 있는 간호사가 입을 다문 채 눈물을 흘렸다.
억지로 닫고 있는 입.
거친 숨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붉어진 눈에 담긴 본능….
킬러가 간호사에게 칼을 겨눈 채 소리쳤다.
“움직이지 마! S급! 움직이면 이 여자의 목숨은 없어!”
작게 미소 짓는 킬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최한의 시선으로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힌 간호사의 얼굴이 보였다.
“야.”
한마디.
단 한마디면 충분했다.
이곳의 공기를 바꿔 놓기에는.
킬러의 표정이 사라졌다.
위압감.
특별히 어떠한 행동을 취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위압감만으로… 이 정도의 공포를 줄 수 있다고… S급이…? 이 정도 위압감은 K도….”
턱.
턱.
턱.
통로를 울리는 발걸음.
최한이 킬러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도망칠 수 없었다.
킬러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 부위는….
사라진다.
“내가 말했지. 네가 씨부려 봤자, 난 러시아어 할 줄 모른다고. 내 친구들 죽이러 온 것도 모자라서… 간호사까지….”
최한이 돌처럼 굳어 버린 킬러의 앞에 멈춰 섰다.
짧은 노란 머리를 눈에 담고 시선을 내렸다.
파란 눈동자와 솟아오른 코를 지나 간호사를 감싸고 있던 팔에서 시선을 멈췄다.
“이제 괜찮으니 나오세요.”
최한의 목소리에 잡혀 있던 간호사가 천천히 킬러의 팔을 풀고 옆으로 나왔다.
“감사….”
“…….”
인사를 마치지도 못한 간호사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간호사가 다리가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직도 눈을 마주친 순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인질로 잡혀 있을 때보다.
눈앞에 시퍼런 칼날이 자신을 향할 때보다.
더 강한 위험 신호가 머릿속에 울렸다.
떨어지라고.
사라지라고.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간호사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안도.
킬러의 손에서 벗어난 것보다.
교복을 입고 있는 저 아이의 관심에서 벗어난 것이.
더욱 안도감을 주었다.
간호사가 멀리 떨어지자, 최한이 다시 킬러에게 시선을 옮겼다.
잔뜩 경직되어 있는 킬러.
눈알만 굴려 최한을 바라보았다.
그때.
찌직! 찌지지지지!
작게 들리는 전자음.
최한의 시선이 킬러의 손으로 향했다.
통화가 연결된 채 들려진 휴대폰.
최한이 킬러의 손에 있던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
[스바! 라미아까 와나 뚜 제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러시아어.
“뭐라는 거야. 네가 K냐?”
[…….]
“아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네….”
[누구냐. 왜 제이의 휴대폰을….]
최한의 입가의 미소가 지어졌다.
최한이 앞에 있는 킬러의 얼굴을 눈에 담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이 녀석 이름이 제이구나?”
[너… 설마… S급….]
“맞아. 그 설마야.”
[카페에 있어야 할 네가 왜 거기에….]
“알려줘?”
[…….]
최한이 제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으아아아악!!!!!”
[제이! 제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내 동생 몸에 상처 하나라도 입히면 넌 죽을 줄 알아!]
“아… 동생이었어?”
푹!
“으아아아아악!”
[이 개자식. 그대로 있어라. 당장 가서 죽여….]
“아니, 안 와도 돼. 내가 갈 거거든. JJ 본사 꼭대기지?”
[…….]
“기대해. 내 작전은 이제 시작이니까. 이제….”
“으아아아아악!”
“너희들이 내 장난감이야.”
* * *
하루 전.
유영진 기자와 전화를 마친 최한이 입을 뗐다.
“유영진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내일 만나서 취재를 하고 싶다고….”
오지훈과 최수혁의 얼굴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납니다.”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도 그쪽의 계획이겠죠. 하지만 전 나갈 겁니다.”
한재석이 최한에게 소리쳤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네가 기자 회견 하는 동안 몰래 쳐들어온 녀석들이야. 분명 이번에도 똑같을….”
최한이 한재석에게 시선을 옮겼다.
“알아. 취재를 하는 동안 K나 다른 킬러들이 병원으로 쳐들어오겠지.”
“그걸 아는 놈이 간다고! 네가 K를 못 봐서 그래! 그놈이 여기에 온다면 네 친구들은 다 죽을 거야!”
“…….”
씩씩거리는 한재석과 달리 최한의 표정은 차분했다.
고조된 분위기에 오지훈이 둘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워… 워…. 재석 군 너무 흥분하지 말고, 최한 군도 재석 군의 마음을 좀 생각하라고. K를 눈앞에서 봤으니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아니까 이런 소리를 하는 거지 않겠나.”
분을 삭이지 못한 한재석이 고개를 돌렸다.
“짜증 나! 내가 왜 이딴 녀석들 걱정을….”
입 다물고 있던 최한이 다시 목소리를 내었다.
“놈들의 계획대로 움직이자는 게 아니야. 덫을 놓자는 거지.”
한재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지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슨 계획이라도?”
최한의 얼굴에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지어졌다.
“우선, 능력자 중에 얼굴을 복사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나요?”
오지훈이 미간을 두드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얼굴을 복사할 수 있는 능력자라…. 현역 중엔 없는 것도 같고… 전투형이 아니라 기억을 못 하는 건가…?”
옆에 있던 최수혁도 기억을 더듬었다.
“전투형이 아닌 그런 이형계 능력자들은 솔직히 기억하기 쉽지 않으니까…. 나도 현역 중에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
“있어….”
나지막이 울리는 목소리.
세 사람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우리 반에 있어. 얼굴뿐 아니라 체형까지 복사할 수 있는 능력.”
한재석의 목소리에 최한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럼 이걸로 첫 단계는 클리어군.”
오지훈이 무언가 알아낸 듯 손뼉을 쳤다.
“아! 그렇군요. 최한 군과 똑같이 변한 사람을 기자에게 보내 취재를 받게 하고, 진짜 최한 군이 이곳에 남아 킬러들을 잡으면 되겠군요.”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그것으로 저들의 계획을 저지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진짜 계획은….”
이후, 최한의 입에서 나온 계획에 오지훈과 최수혁의 얼굴에 놀라움이 묻어났다.
“한재석.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한재석을 향한 최한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 * *
최한이 병원에서 K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그 시각.
“그런데 정말… 체육 대회 때 보던 모습과는 정말 딴판이군요.”
유영진 기자의 시선에 벌써 아이스 초코를 세 잔째 비우고 있는 최한의 모습이 보였다.
“그… 그런가요?”
어색한 웃음을 보이는 최한.
겉모습은 최한이지만, 그녀는 2학년 A반에 다니고 있는 A급 능력자 유미나였다.
한재석과 최한의 부탁으로 자신의 특성을 사용해 작전을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시간 끌기가 불가능해.’
최한이 써준 컨닝페이퍼 내용은 벌써 다 말해 버렸다.
십 분 정도면 충분할 거라더니….
벌써 삼십 분이나 지난 것 같았다.
최한의 모습을 한 유미나의 다리가 크게 떨렸다.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 초코를 마시고 있는 와중에도 근심과 짜증이 표정을 뚫고 나왔다.
“저…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지던 유영진 기자의 목소리가 그대로 멈췄다.
테이블 위에 있던 유영진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거 미안해요, 최한 학생. 중요한 전화라 좀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때.
덥석!
다짜고짜 자신의 휴대폰을 뺏어 드는 최한의 모습에 유영진 기자가 당황했다.
“뭐 하는 짓입니까?”
유영진 기자의 얼굴에 처음으로 날 선 표정이 지어졌다.
“병원 쪽 일이 끝난 것 같아서요.”
최한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유영진의 눈이 흔들렸다.
“대체… 어떻게….”
“뭘 그렇게 놀라요? 이제 시작인데.”
앉아 있던 최한의 얼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뚝뚝.
점성을 지닌 액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본래의 모습으로 변해 갔다.
“휴… 내 몸이 제일 편하긴 해….”
단발머리에 분홍 머리띠….
여자….
아니.
다른 사람이었다.
“최한이 아니잖아! 너… 설마….”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유영진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분노하는 와중에서도 조민성 이사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날 속인 거냐!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유영진의 손이 크게 들렸다.
탁!
강하게 내려치려던 손이 공중에 멈춰 있었다.
유영진의 시선이 움직였다.
“여자 때리는 데 거리낌이 없네.”
노란 머리의 남학생.
분명 본 적 있다.
아니, 똑똑히 알고 있었다.
미림 고등학교에서 봤던 한재석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한 남자.
“너는… 오… 오지훈…….”
유영진이 포위되자 다른 자리에 앉아 있던 K의 부하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카페가 전쟁터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찌지직!
콰과과광!!!!
“으악!”
짧은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K의 부하들이 전부 기절했다.
“후… 떨거지들은 잠이나 자라.”
한재석이 아직도 전류가 흐르는 손가락을 불고 있었다.
오지훈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 장정들이 차 트렁크에 다 실리려나…. 뭐… 그럼 시작할까요, 미나 학생?”
유미나의 손이 유영진의 몸에 닿았다.
웃고 있는 유미나의 얼굴 위로 하얀 점토가 다닥다닥 생겨났다.
마치 가면을 만들 듯 새로운 형태로 얼굴을 만들어갔다.
그리고.
유영진의 시선으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럼… 잘 쓸게요,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