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기자 회견이 끝나고 방송 장비와 기자들이 모두 나간 회견장에 최한이 들어왔다.
최수혁과 오지훈이 최한을 반겼다.
“왔군.”
“어서 와요, 최한 군.”
살짝 고개를 숙이며 다가가는 최한.
“감사합니다. 이 정도로 터트리면 그 머리 좋은 놈도 꽤나 마음이 복잡할 거예요.”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그 대상이 선망과 부러움에 대상이면 더더욱.
앞서 터진 사이비 종교 사건의 흑막과 고등학생들을 암살하려 한 인물이 동일 인물이라면….
이보다 더 물어뜯기 좋은 대상이 어디 있을까.
국내 최정상의 대기업.
JJ의 차기 회장의 스캔들.
최한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하나….
푸른 머리칼을 넘기는 최수혁의 얼굴이 어두웠다.
“이 정도까지 몰아붙였지만… K가 지키고 있어서 가서 잡는 것은 여전히 어려워.”
오지훈이 이어 말했다.
“만약 잡힌다 해도 돈을 써서, 얼마 안 가 풀려날지도 모릅니다.”
맞는 말이었다.
매스컴을 조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이다.
지금의 기사가 자극적이어서 몇몇의 기자들과 이를 본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일 뿐.
시간이 지나면 그 잘난 돈의 힘으로 풀려날 것이 틀림없었다.
“흠….”
최한이 한숨과 함께 고뇌에 빠졌다.
얼마나 생각에 잠겨 있었을까.
최한이 뜨거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어? 어…… 뭘 그렇게 보냐?”
“몰라서 묻는 거냐?”
한재석이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노려보고 있었다.
기자회견 때문임을 깨달은 최한이 오히려 더 당당히 나갔다.
“그래서 먼저 사과했잖아.”
“뭐? 이게 사과로 끝날 일이냐?”
“그럼?”
“…….”
전국에 얼굴이 팔린 것으로 욕지거리라도 내뱉으려 했지만, 너무도 담담한 최한의 표정을 보니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 한재석이었다.
잔뜩 구겨져 있던 한재석의 미간이 한숨과 함께 조금씩 펴졌다.
“휴…… 뭐, 지금이 아니라도 어차피 하긴 했겠지. 그것보다 어쩔 거야? 생각이 있던 거 아니었어?”
한재석의 목소리에 최수혁과 오지훈도 같은 눈빛을 보냈다.
“있어.”
최한의 목소리에 단번에 표정이 밝아졌다.
“역시 생각이 있었던 거군요, 최한 군.”
“네. 가령 K를 건너뛰고라도 조민성 상무를 경찰에 넘겨봤자, 사람들이 잊을 만하면 돈으로든 권력으로든 밖으로 나오겠죠.”
오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지금도 자신에게 유리한 계획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조민성 상무의 자택 앞에 기자들이 쫙 깔렸을 테니까요.”
한재석이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한 자세로 소리쳤다.
“이것들 도망가는 거 아니야? K 정도면 어디로든!”
“걱정 마.”
낮게 울리는 최한의 목소리.
“도망갈 시간도 없을 테니까. 저 녀석들이 한 것처럼 우리도 때린 데 한 번 더 때려줘야지.”
오지훈이 최한에게 물었다.
“그런 방법이 있을까요? S급 능력자 발표 기자 회견에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차기 회장의 살인 교사 내용을 터트린 걸 이길 만한….”
“있어. 어떤 기자도 그 녀석에게 붙지 못할 만큼 큰 한 방.”
오지훈과 최수혁이 무언가를 알아차렸는지 표정이 사라졌다.
혼자만 이해하지 못한 한재석을 뒤로 한 채 최한의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지금 다시 기자 회견 열어주세요, 오지훈 박사님. 그리고 딱 한 가지만 발표해주세요.”
* * *
서울 평창동.
조민성 상무의 자택 앞.
기자 회견장에 있던 몇몇의 기자들과 생방송을 보고 취재를 위해 모여든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보시는 봐야 같이 JJ 그룹의 차기 회장 조민성 상무의 자택 앞에는 취재를 위해 모인 기자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조민성 상무는 현재 자택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모습을 보이지도, 어떠한 입장을 발표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세간을 들썩이게 하던 사이비 종교의 교주인 최만식의 뒤를 봐주고 있던 인물로 확인된 JJ 그룹 차기 총재 조민성 상무의 자택 앞에 나와 있습니다.”
“국제적 범죄자이자 100억이 넘는 현상금이 걸린 러시아 S급 헌터 K를 보디가드로 고용했다는 정보가….”
“능력자 육성 고등학교인 미림 고등학교 학생들을 중태에 빠트린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많은 방송 카메라와 기자들의 목소리가 전국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철옹성 같은 대문을 가운데 둔 채 2층으로 된 조민성 상무의 집 내부에서는 큰 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쨍그랑.
“완전 뒤통수 맞았어. 생방송 중에 큰 걸 터트려 버리다니.”
조민성 상무가 유리잔을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던 K가 말했다.
“그 꼬맹이가 S급이었다니.”
창밖으로 대문 앞에 모여든 기자들을 확인한 비서가 천천히 돌아서며 말했다.
“이건 딴 사건을 터트려 기사를 덮거나 할 정도가 아닙니다. 나가서 제대로 대응을 하고 사과를….”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서가 쓰러졌다.
비서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목발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 놔. 이 쓸모없는 새끼가 또 주둥이 놀리네.”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조민성 상무가 바닥에 쓰러진 비서를 향해 발길질을 계속했다.
퍽!
“악!”
퍽!
“으악!”
타격음과 비서의 비명이 번갈아 가며 이어졌다.
JJ 본사 유리창이 깨질 때 입은 상처가 조민성 상무의 발길질에 다시 터져 버리고 있었다.
“후….”
숨이 가빠올 때가 돼서야 발길질이 멈췄다.
조민성의 시선으로 창밖에 모여 있는 기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좋은 생각이 났어. 야. 야!”
바닥에 쓰러져 있던 비서가 조민성의 부름에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네….상무님….”
“JBS 쪽 기자들도 와 있지?”
“아마 와 있을 겁니다.”
“좋아. 그쪽 애들한테는 많이 먹여 놨으니 알아서 내 뜻대로 따라와 주겠지.”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뒤집어야지. 영상보다 더 큰 가짜 뉴스로.”
“…….”
조민성 상무의 표정을 본 순간 비서는 생각했다.
늦었다.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할 기회마저 날아갔다.
이제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가짜 뉴스로 이기거나, 아니면 영원히 매장당할 것이다.
“나가지, K.”
조민성 상무와 K가 현관문으로 이동했다.
잠시 뒤.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조민성 상무 자택 대문이 열렸다.
모습을 드러낸 조민성 상무와 K.
보기 힘든 투샷에 카메라 플래시가 빠르게 터졌다.
대형 방송국 카메라가 일제히 조민성에게 향했다.
취재진과 기자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퍼져 갔다.
“어떻게 된 겁니까?”
“영상의 내용이 사실입니까?”
“범죄자 최만식의 뒤를 봐주신 게 맞습니까?”
“영상을 보셨습니까?”
“영상은 진짜가 맞습니까?”
공격적인 취재진의 목소리에도 조민성의 표정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조민성의 입이 떨어졌다.
“우선 영상은 진짜입니다. 영상에서 한 말들도 모두 사실이고요.”
담담한 조민성의 표정과 다르게 특종을 잡은 기자들의 얼굴에는 묘한 기쁨의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플래시 세례가 이어지고
기자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지기 전, 조민성이 손을 들어 주도권을 가져왔다.
“사실… 최한에게 협박당하고 있었습니다.”
에?
기자들의 표정이 일순간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범죄자의 뒤를 봐주고, 학생들을 죽이려 했다는 것을 인정한 지 일 분도 되지 않아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꺼내니 자신들도 모르게 당황한 기색이 드러난 것.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자극적인 것에 끌리는 법.
이미 터진 사건도 큰데 그 당사자의 입에서 나온 말에 훨씬 더 큰 후폭풍이 일어날 정도의 사건이라면….
JBS 기자가 소리쳤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최한 군이 어떤 것으로 협박을 한 겁니까?”
조민성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너희들이 물 줄 알았어.’
JBS.
대한민국 3대 미디어 중 하나.
그리고 조민성이 가장 많은 뒷돈을 준 방송국이기도 했다.
“최만식과 저는 친구였습니다. 최만식의 뒤를 봐주고 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제가 범죄자의 뒤를 봐줬다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하나… 저와 최만식의 사이를 알게 된 최한이 사실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의외로 쉽게 옮겨간다.
선보다 악이 더 자극적이니까.
JBS기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최한 군이 어떤 식으로 조민성 상무를 협박했습니까?”
“처음에는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을 요구했습니다. 돈 같은 물질적인 여러 가지를…. 하나 그의 요구는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마지막엔 JJ 그룹까지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조민성이 살짝 고개를 숙여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혼자 감내한 깊은 고민의 시간들과 고통의 시간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짓.
어차피 연기였지만.
목청을 가다듬으며 조민성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얼마 전 그가 S급인 것이 밝혀졌더군요. 전 그의 엄청난 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K를 고용한 겁니다. 제 보디가드 역할로….”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기자들 사이에서 날 선 목소리가 하나 튀어나왔다.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학생들의 일은 어떻게 된 겁니까! 미림고 학생들은 병원에 아직까지도 누워 있습니다!”
조민성이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최한이 강한 힘으로 아이들을 협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K를 이용해 잠깐 기절만 시켜 놓은 겁니다. 오히려 그러는 쪽이 아이들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병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한 말은 최한을 자극하기 위한 작전이었을 뿐입니다.”
믿지 못했다.
어찌 믿을 수 있을까.
한쪽의 입장만 가지고는 진실이 입증되지 않으니까.
JBS 기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게 모두 사실입니까?”
정적 사이에서 쏘아 올린 기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하나의 도화선이 되어 조민성의 목소리를 만나 큰 빛으로 터져 나갔다.
“네. 모두 사실입니다.”
찰칵!
찰칵!
한쪽의 입장만으로 진실이 입증되진 않지만….
한쪽의 입장만으로도 기사는 쓸 수 있다.
어차피 사실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대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벤트.
씹고.
욕하고.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고.
감정을 오르락내리락.
하게만 하면 되니까.
기자들이 순식간에 조민성의 편으로 돌아섰다.
이어지는 질문들.
“그동안 어떻게 참으셨습니까?”
“JJ의 간부들은 이 상황을 모르고 있었나요?”
“다른 재계 인사들에게 도움은 청하지 않았나요?”
“정부나 브로스 길드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은….”
이미.
그는 피의자가 아니라.
말 한마디에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매스컴의 힘은 무섭다.
의심은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세상은 모두 조민성의 편이 될 것이다.
.
.
.
슈우우웅-.
바람 소리가 일었다.
취재를 하고 있던 기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어… 저거….”
“설마….”
쾅!!!!!!!!
폭발음과 함께 강한 바람이 피어났다.
기자들뿐 아니라 대문 앞에 있던 조민성과 K도 바람을 막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슈우우….
바람이 잦아들자 하나둘 떠지는 눈.
모든 시선이 향한 곳에 최한이 서 있었다.
“더 씨부려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