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던전이랑 별다를 건 없구나?”
최한이 딱밤으로 고대 트롤의 머리를 터트리며 말했다.
빡!
빡!
빡!
소리와 함께 연신 트롤의 두개골이 터져 나갔다.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민섭이 바닥에 널브러진 고대 트롤의 사체들을 보며 대답했다.
“몬스터가 나타나고 던전처럼 컨셉이 있는 다른 공간이 있는 건 비슷하지만, 한 가지 큰 차이가 있어.”
“뭔데?”
“던전과 달리 탑은 각 층마다 보스 몬스터가 한 마리씩 있고, 탑마다 그 층의 수가 천차만별이야. 대체로 5층짜리랑 10층짜리가 제일 많고.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높은 게 아마 50층인가 그럴걸?”
최한의 뒤를 노리던 트롤 한 마리가 바람이 빠지듯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쪼인트다, 새꺄. 어딜 뒤에서 공격해. 그건 그렇고 50층이면 클리어하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탑이 던전보다 클리어하기 어렵다고 하는 거야. 진짜 며칠씩 걸리는 건 기본이고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최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아…. 몇 달이나 걸린다고? 괜히 구해준다 했나….”
“걱정 마. 그건 등급이 맞지 않는 클래스의 파티가 탑을 등반할 때나 그렇고. 요즘은 탑에 대한 정보가 다 있어서 빨리 클리어할 수 있게 어느 정도 대비를 다 하지.”
민섭이 메고 있던 가방을 ‘툭툭’ 치며 앞으로 내보였다.
“뭐야, 그건?”
“3일 동안의 식량이랑 침낭을 준비했어. 오지훈 박사님이 어찌나 잘 싸주셨는지. 아마 윤강산 힐러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준비해 주셨을 거야.”
“참나…. 나를 뭐로 보고. 다른 놈들이 3일 걸리면 난 하루면 되겠군.”
최한이 자신감 있게 웃어 보였다.
“네가 엄청 강하단 건 알지만, 그렇겐 안 될 거야, 최한.”
“왜?”
“아까 말한 거 기억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층의 탑?”
“50층이라며.”
민섭이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최한의 표정이 굳어졌다.
가늘게 떨리는 눈썹.
“설마….”
“맞아.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50층짜리 탑이야.”
“맙소사…. 그럼 납치당한 마수아도 꼭대기에….”
“아마 그건 국룰이겠지?”
최한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뭐야?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 그러면서 뭘 그리 똥폼을 잡은 거야.”
비수처럼 날아든 목소리에 최한의 눈이 도끼눈으로 변했다.
“뭐? 똥폼?”
손가락에서 전류를 총알처럼 발사해 트롤들을 학살하고 있는 한재석이 보였다.
“똥폼이 아니면 뭐야?”
“왜 갑자기 나한테 시비야? 아까처럼 학생회장이랑 싸워. 괜히 건드리지 말고.”
“기본적인 정보도 모르면서 설치긴. 힘만 세가지고.”
최한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한재석에게 소리쳤다.
“기본적인 정보 몰라도 너보다 빨리 클리어할 수 있거든?”
한재석이 코웃음 치며 최한을 자극했다.
“탑을 어떻게 클리어하는 줄도 모르는 주제에. 그리고 너 광역기 스킬도 없으면서 허세는.”
빠직!
최한이 자신을 둘러싼 10마리가 넘는 트롤의 머리를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모두 터트렸다.
최한이 손가락으로 칼을 가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난 광역기 스킬 따위 필요 없는데?”
“…….”
“넌 스킬을 써야 이깟 약한 몬스터들을 잡을 수 있나 보다?”
“…….”
“S급이 아깝다, 아까워.”
빠직-.
최한의 도발에 한재석의 얼굴 전체가 구겨졌다.
쾅콰과광!!!!!
좁은 공간에 번개가 내려치기 시작하더니 한재석의 주위에 있던 트롤 20마리가 검은 재가 되었다.
“뭐래! 나도 스킬 안 쓰고 있었거든! 기본 특성만 써도 너보다 훨씬 더 빨리 이깟 몬스터 잡을 수 있어!”
뜨거운 눈빛.
지기 싫어 작은 깜빡임도 없던 그들의 눈이 점점 가까워졌다.
쾅!
한재석과 최한이 이마를 부딪친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럼 내기할까?”
“좋아. 이 층을 클리어할 때까지 더 많은 몬스터를 잡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지고 딴말하기 없기다.”
“너나.”
최한과 한재석의 이마가 떨어짐과 동시에 굉음과 폭발음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쾅!
콰과광!
콰지직!
트롤의 몸이 터지는 소리와 벼락이 치는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저 멀리 사라진 최한과 한재석을 보며 민섭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마수아 헌터 구하러 온 게 목적 맞지? 그런데….”
김민섭의 시선으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수많은 트롤의 사체가 보였다.
민섭이 오지훈에게 받은 ‘서번트 워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손목에 찬 시계에서 전자창이 띄워졌다.
# # #
이름 : 고대 트롤
나이 : 2,000
성별 : 남
종족 : 거인족
능력치
근력 : A
민첩 : B
내구 : A
체력 : B
마력 : D
SKILL
패시브
[ 끈질긴 생명력 ]
몸이 잘려도 끊임없이 재생한다.
* 불에 약하다.
* 머리를 터트리면 재생하지 않는다.
최종 등급 : A
# # #
“A급 몬스터인 고대 트롤을 무슨 고블린 잡는 것처럼….”
너무도 쉽게 쓰러트려서 약한 몬스터처럼 보였지만.
‘고대 트롤’은 거인형 몬스터로 인간의 언어를 쓰지 못할 뿐, 동족끼리 무리 지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지능이 있는 강력한 몬스터이다.
“역시 오지훈 박사님이 3일 정도의 생필품만 싸주신 이유가 있구나…. 이 탑의 최단 클리어 시간은 레이드로 구성했을 때도 열흘은 걸렸다는데….”
“당연하지. 그깟 A급 100명이 모여 봤자, 최한의 발가락도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너무도 조용히 있어 기척도 느끼지 못했던 강진철이 민섭의 곁으로 다가왔다.
“학생회장님….”
“그건 그래도… 확실히 난이도가 높은 거 같군. 1층에서부터 A급 몬스터가 이렇게 많이 출몰하다니….”
강진철의 시선에 바닥에 쓰러진 고대 트롤의 사체가 보였다.
하나… 둘… 셋….
못해도 50구.
최한과 한재석이니 가능했던 것이다.
아무리 강한 파티를 짰다 해도 A급 몬스터 50마리를 한 번에, 그것도 탑의 입구에서 만난다면….
정비가 되지 않아, 당황하게 될 것이고,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다.
파티는 와해되고 얼마 못 가 전멸할 테지.
‘정말 히든 던전인 건가….’
“뭐… 그래도… SSS급과 S급 두 명이 한 팀이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
강진철이 고대 트롤의 사체를 밟고 나아갔다.
민섭이 양손에 주먹을 강하게 쥐며 자신을 다독였다.
“정신 바짝 차려. 네 꿈이었잖아. 세계 최강의 서번트. 지금 이 파티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파티야. 두 눈에 잘 담아 두자.”
민섭이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았다.
‘얼마 안 남았잖아….’
* * *
팍!
퍽!
콰지직!!!
창 하나 없는 어두운 통로에 선혈이 낭자했다.
둔탁한 소리와 전류 터지는 소리가 차례로 이어졌다.
“비켜!”
“뒈져 버려라!”
최한과 한재석이 지나간 자리에 머리가 터져 버린 트롤의 사체들이 즐비했다.
한 마리라도 더 많은 몬스터를 잡기 위해 미친 듯이 때리고 몸에서 번개를 뿜어댔다.
“60마리!”
“62마리!”
학살 수준으로 맥없이 당하는 트롤들이 이제는 겁에 질려 도망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길게 늘어진 단 하나의 통로에 트롤의 사체만이 쌓여 갔다.
괴성이 난무하던 통로에 소리가 사라졌다.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던 강진철이 의아해 고개를 쭉 빼고 시선을 멀리 두었다.
방금까지 사냥을 하던 최한과 한재석이 움직임을 멈춘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뭐야? 다 잡은 거야?”
바닥에 쌓인 트롤의 사체에서 아이템을 줍던 민섭이 소리쳤다.
민섭에 옆에 붙어 있던 강진철이 무언가 발견하고 민섭의 앞을 막아섰다.
“온다.”
최한과 한재석의 눈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쾅!!!!!!
최한과 한재석이 서 있던 자리가 폭발이 일어난 듯 굉음과 함께 흙먼지로 뒤덮였다.
“최한!”
민섭이 튀어 나갈 듯 몸을 앞으로 이끌었다.
툭.
민섭의 어깨를 잡은 손. 민섭이 튀어 나가지 못했다.
“학생회장님….”
“서번트의 임무를 잊은 거냐? 넌 전투를 하러 이곳에 온 게 아니야.”
“하… 하지만….”
가늘게 떨리는 눈빛이 흙먼지를 바라보았다.
분함에 민섭이 입술을 깨물었다.
“걱정하지 마라.”
“…….”
민섭이 고개를 들어 강진철의 얼굴에 시선을 두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평소의 무뚝뚝한 표정.
그러나 이어지는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최한과 한재석이 겨우 저딴 공격에 죽을 것 같나?”
강진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야를 모두 가린 흙먼지 사이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어떤 새끼야!”
찌직!
흙먼지 사이로 작은 불빛이 깜빡하더니, 이내….
콰과과광!!!!!!!
천둥소리와 함께 눈에 보일 정도의 강력한 전류가 뻗어 나와 흙먼지를 날려 버렸다.
“나와! 어떤 새끼야!”
“입에 흙 들어갔잖아!”
한재석과 최한이 잔뜩 열받은 모습으로 소리치고 있었다.
“다행이다…. 근데… 저건….”
마음을 쓸어내린 민섭의 눈으로 이제야 보였다.
지금까지 지나온 통로와 달리 더 나아갈 길 없는 광장의 모습이.
벽을 아무리 보아도 창문이나 작은 문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일 층의 보스 방인가 보군.”
강진철이 교복에 묻은 흙을 털며 앞으로 나아갔다.
민섭이 뒤따라 광장으로 들어갔다.
큰 폭발이 일어난 것과 다르게 보스 몬스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숨지 말고 나와!”
“보스고 나바리고 넌 뒈졌다. 아직도 흙 씹히잖아!”
한재석과 최한이 짜증을 내며 보스를 찾았다.
하지만 민섭이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스 몬스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일 층에 트롤만 나온 걸로 봐서는 아무리 보스 몬스터라도, 모습을 지우는 스킬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골똘히 고민하고 있는 민섭.
잔뜩 흥분해 있는 최한과 한재석.
창하나 없는 막다른 광장을 둘러보는 강진철의 얼굴에 의구심이 들었다.
‘민섭이 말대로 투명 스킬을 가진 보스 몬스터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온 통로를 빼고는 거의 밀실에 가까운…. 젠장.’
일순간에 강진철의 얼굴이 굳어졌다.
“위다!”
좀처럼 듣기 힘든 강진철의 큰 목소리.
최한과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천장으로 향했다.
박쥐처럼 천장에 매달려 있는 트롤이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조금 전까지 학살당하던 트롤과는 전혀 달랐다.
기본적인 트롤과 두 배가 넘게 차이 나는 몸집.
가장 큰 차이는….
“끄아아악!”
“꽤에에엥!”
“죽어라…… 인간!”
각기 다른 자아를 가진 세 개의 얼굴이었다.
거꾸로 매달려 있던 보스 몬스터가 빠르게 민섭을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