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최한과 아이들이 A10 탑으로 들어간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음에도 최수혁은 탑의 입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관리실에서 마실 것을 들고 돌아온 오지훈 박사가 최수혁에게 음료를 건넸다.
“고맙군.”
“그런데 최한 군과 아이들에게 탑 내부에 대한 이야기를 못 한 게 좀 걸리네요.”
“거인족 몬스터만 출몰한다고 했나?”
“네. 윤강산 헌터의 말에 따르면 초반부에는 ‘고대 트롤’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트롤 기사, 정예병, 마지막으로 트롤 장군까지…….”
“8층이 마지막 클리어라 했나?”
“네. 8층에서 ‘고대 트롤 장군’을 클리어하고… 9층에서 마지막 전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걱정 어린 시선으로 탑을 보고 있던 최수혁이 많은 것이 담긴 날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마수아가 이기지 못하는 몬스터라…….”
“S급 던전에 나올 만한 보스 몬스터가 수백 마리씩 있다고 했으니까요.”
오지훈 박사의 시선이 탑으로 향했다.
“기본적인 몬스터와의 연관성은 모르겠지만, 이 탑에 있는 거인족 몬스터와 천사가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인 것은 확실합니다.”
“자네가 말한 그 ‘라그나로크’에 대한 예언들과 연관이 있는 건가?”
“네. 그렇기에 마수아 팀과의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도 천사가 이 탑을 클리어했던 것이겠지요.”
“마수아 팀이 쫓아오는 와중에도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인간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요.”
“‘천사’라는 존재를 실제로 본 적이 없어 그러는데, 그렇게 강한가? S급이 이기지 못할 만큼?”
“S급 최강이라 불리는 바티칸의 팔라딘도 모든 능력을 사용해 겨우 이겼다고 들었습니다.”
“최고 한계치에 다다른 S급 능력자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건가…….”
“네. SSS급인 최한 군은 아주 쉽게 해치웠으니, 그 정도 레벨이 맞을 겁니다.”
오지훈의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우렁찬 목소리가 최수혁의 귀에 내려앉았다.
“이상해! 아주 이상해!”
어느새인가 최수혁과 오지훈의 바로 뒤에 청룡 길드의 길드장 이창식이 서 있었다.
최수혁이 이창식에게 물었다.
“뭐가, 이상하단 거지?”
“마수아나 우리보다 강하다 해도 어차피 강한 S급 한 명 정도의 힘이잖아.”
“그렇지. 아무리 강해도 S급 파티의 효율은 낼 수 없…….”
이창식의 말에 최수혁의 표정이 금세 달라졌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낯빛
무언가를 알아차린 오지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천사도 혼자서 탑을 클리어하지 못할 거야….”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안감이 온몸을 덮쳐왔다.
그때.
“저… 저게 뭐야!”
“하… 하… 하늘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최수혁과 인원들의 시선이 모두 탑의 관리자들에게 향했다.
금색의 로브를 입고 있던 탑의 관리자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최수혁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맙소사…….”
순식간에 멈춰 버린 표정.
최수혁의 얼굴에 처음으로 절망이 내려앉았다.
같은 곳을 보고 있던 이창식 길드장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하늘이 갈라졌어….”
말 그대로 하늘이 칼로 자른 듯 양쪽으로 찢어지더니 틈새가 생겼다.
그리고.
“여기인가…. 무녀의 예언이 잠든 곳이….”
시공의 균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하늘을 발판 삼아 서 있는 존재를 유일하게 알아본 오지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 천사…. 그런데… 저 색은….”
예전에 봤던 천사는 보라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높은 상공에서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천사의 몸은 강렬한 붉은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천사를 눈에 담고 있던 최수혁의 팔이 떨려왔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어.’
“길드장이 겁먹으면 어쩌잔 거냐?”
“이창식….”
“분명 S급인 우리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청룡 길드의 길드장 이창식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
불길함을 감지한 최수혁이 이창식의 시선이 멈춰 있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젠장….”
시공의 균열에서 초록색과 파란색의 피부를 가진 천사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중간계도 많이 변했네. 원래 다 초록색밖에 보이지 않았었는데.”
“인간들은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도전하는 경향을 가졌지.”
새로운 천사의 등장에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 뒤쪽에 있던 시공의 균열에서 네 명의 천사가 더 나타났다.
눈으로 숫자를 세던 오지훈의 얼굴에 포기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왕께서 우리 일곱 대천사를 전부 보내는 건… 천 년 만이군.”
“그럴 만도 하지. 요툰헤임을 뒤져도 찾지 못했던 거인족의 요새가 이곳에 숨어 있었다니….”
“저 안에 들어가서 거인족들을 싹 쓸어버리면 되는 거야?”
“내려 올 때 뭐 들은 거야…. 그렇게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색만 다른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대천사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가장 먼저 나왔던 붉은 피부를 가진 대천사가 몸을 돌려 다른 천사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무녀의 예언이 잠든 저 탑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안에 예언의 반역자도 있는 거 같던데, 잘됐네. 그런데 탑 주위에 있는 저 인간들은 어떡하지, 대장?”
파란 피부를 가진 대천사의 물음에 대장이라 불린 붉은 피부를 가진 대천사의 입이 떨어졌다.
“예언의 반역자와 관련된 놈들이겠지. 탑과 함께… 잠들게 해라.”
최수혁을 포함한 그곳에 있던 인간들이 공포에 잡아먹혔다.
* * *
든든히 배를 채운 최한과 한재석이 빠르게 8층을 클리어하고 9층에서 ‘서리 거인의 후예’를 학살하고 있었다.
“400마리!”
“390마리!”
수십 마리에 달하는 ‘서리 거인의 후예’들이 최한과 한재석을 향해 아이스 볼트를 날렸다.
“웃짜!”
날카로운 창처럼 날아드는 아이스 볼트를 다리도 떼지 않은 채 고개만 까딱거리면서 피하는 최한.
“뭐야, 이것도 기술이라고 날리는 거냐?”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띤 최한이 강하게 점프했다.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낙하하던 최한이 몬스터가 날린 아이스 볼트를 발로 찼다.
“꾸에엑!!!!!”
몬스터들의 거친 비명이 울렸다.
최한의 발에 맞고 되돌아간 아이스 볼트가 나란히 서 있던 몬스터들의 배를 뚫었다.
“꼬치구이 완성이요.”
콰과과광!!!!!
대기를 찢는 강력한 소리.
최한의 시선이 한재석에게 향했다.
“너흰 나한테 상성으로 안 돼! 통구이나 돼라!”
한재석의 몸을 떠난 번개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몬스터를 공격했다.
콱!
콱!
콱!
날아드는 번개 세 방에 가슴이 뚫린 몬스터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갔다.
상황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마법을 쓰는 거인족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거인족은 원래 힘으로만 싸우는 몬스터인 줄 알았는데.”
김민섭이 ‘서번트 워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 # #
이름 : 서리 거인의 후예
나이 : 2,000
성별 : 남
종족 : 거인족
능력치
근력 : A+
민첩 : A
내구 : A+
체력 : A
마력 : B
SKILL
[ 아이스볼트 ]
아이스 계열 마법 중 가장 기본적인 마법.
콜드 데미지를 입히고 적을 얼려 움직임을 멈춘다.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최종 등급 : A+
# # #
뒤쪽에서 최한과 한재석의 전투를 지켜보던 강진철이 대답했다.
“기본 마법이긴 하지만, 거인족이 마법을 쓰는 건 나도 처음 보는군. 적을 얼려 움직임을 느리게 하고 근력으로 승부를 보는 건가? 몸집이 큰 거인족에게는 안성맞춤이군.”
고개를 끄덕이던 김민섭이 몬스터를 쓰러트리고 있는 최한과 한재석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데 최한이랑 한재석이 강하긴 강하네요. 벌써 9층이라니….”
최한과 한재석의 전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강진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니.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처럼 빠르게 클리어하지는 못할 거야.”
“네? 저렇게 한 방에 해치우고 있는데요?”
“한 방이라…. 최한은 그럴지도 모르지. 저길 봐라.”
강진철의 턱짓에 민섭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곳엔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한재석의 모습이 보였다.
빠른 전투를 위해 온몸에 전기를 두르고 있는 한재석이 아이스 볼트를 피하며 주먹을 내질러 번개를 날렸다.
쾅!
쾅!
쾅!!!!!
대기를 찢으며 발사된 번개가 몬스터에게 직격했다.
새하얀 몸통에 세 개의 구멍이 생기고 눈동자가 사라진 몬스터가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쿵!
강했다.
상성도 한재석에게 유리한 상황.
김민섭의 시선에는 너무도 쉽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압도적인 강함의 차이를 보여주며….
“한재석은 S급이니 당연히 최한보다는….”
“그거 말고.”
단호하게 울린 강진철의 목소리에 김민섭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8층까지는 번개 하나로만 쓰러트렸었다.”
낮게 울리는 강진철의 목소리.
김민섭의 시선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는 한재석에게 옮겨졌다.
한재석이 몬스터를 향해 번개 창을 날렸다.
툭… 툭… 툭….
세 번 몸을 움찔하던 몬스터가 바닥에 꼬꾸라졌다.
분명 고대 트롤과 싸울 때는 번개 하나만으로 머리통을 날려 버렸었다.
표정이 굳어진 김민섭이 한재석의 얼굴로 시선을 옮겼다.
평소처럼 한재석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강한 번개 공격을 퍼붓고 있었지만, 이마의 맺힌 땀방울과 젖어 가는 앞머리를 발견했다.
“오버 페이스….”
“이미 너무도 많은 전투를 했어. 하지만 탑의 특성상 몬스터는 점점 많아지고 강해지고 있지.”
“…….”
“당연히 앞으로 나올 몬스터도 최한은 한 방에 모두 해치울 테지만… 최한도 지치긴 할 거야….”
“그럼 휴식을….”
강진철이 고개를 저었다.
“내기다 뭐다 해가지고 최한도, 한재석도 잔뜩 흥분해 있어.”
“그럼 어떻게….”
“우선 이대로 둬. 자기들이 느껴야 우리가 말릴 수 있을 거야.”
강진철과 김민섭의 얼굴에 심각한 표정이 지어졌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한과 한재석의 입에서는 자신감 넘치는 말이 흘러나왔다.
“3일 안 걸리겠는데?”
“3일은 무슨! 나 혼자 있어도 하루면 충분하다고!”
최한과 한재석의 외침을 끝으로 9층을 클리어했다.
.
.
.
10층은 9층과 비슷한 얼음 동굴이었다.
하지만 지형은 더욱더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기온은 더 낮았다.
게다가….
“왜 이렇게 몬스터가 많아! 죽여도, 죽여도 계속 나와!”
“지형은 왜 이렇게 넓어진 거야! 다리 아파 이제!”
바닥을 가득 채운 몬스터의 사체들. 그리고 그 사체 더미 위에 쓰러진 두 명의 학생이 보였다.
민섭이 대자로 뻗은 최한과 한재석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하… 하… 이렇게 빨리… 느낄 줄은 몰랐네요.”
허탈한 심정은 강진철도 마찬가지였다.
“뭐…… 나도 이 정도로 바로 우는소리 할 줄은 몰랐다….”
10층의 난이도는 지나온 다른 층의 난이도와는 확연히 달랐다.
입구에서부터 두 종류의 거인족 몬스터가 나타나 합을 이뤄 공격했고, 지형을 이용한 팀플레이까지 펼치는 몬스터들에 최한과 한재석은 은근히 고전했다.
“너무 빨리 덤벼와서 숫자 까먹었잖아! 짜증 나!”
최한의 외침에 한재석이 이때다 싶어 소리쳤다.
“숫자를 까먹었다고? 그럼 너 숫자 까먹었으니까, 내가 이긴 거지?”
“아니.”
한재석의 이런 행동을 예상했다는 듯이 최한이 살짝 미소 지었다.
“너도 아까 숫자 까먹어서 몬스터한테 욕한 거 들었거든?”
뜨끔….
한재석이 최한의 눈을 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칫.”
민섭이 뻗어 있는 최한과 한재석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툭.
“뭐냐.”
“이게 뭐야, 민섭아?”
민섭이 두꺼운 패딩을 입으면서 대답했다.
“패딩. 여기 온도가 갑자기 낮아졌잖아.”
“땡큐.”
최한과 한재석이 주섬주섬 패딩을 들어 걸쳤다.
“그런데 천사는 뭐 추위 안 타냐? 맨몸으로 여기 다 클리어하고 꼭대기에 있는 거야, 그럼?”
장난처럼 툭 내뱉은 한재석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한재석의 시선으로 잔뜩 심각해진 아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학생회장 강진철이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듣고 보니 이상해…. 설마….”
강진철의 시선이 최한에게 향했다.
“천사가 그렇게 강할 리 없어.”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최한에게 모였다.
“우리도 이렇게 지치고 힘든데… 천사 혼자서 다친 마수아 끌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