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강진철의 메테오가 떨어짐과 동시에 14층으로 이동하게 된 최한과 아이들이었다.
숨을 한 번 들이마셨다 내쉴 정도의 그 짧은 시간.
아이들이 14층으로 순간이동 되었음을 인지하고 주변을 살폈다.
서번트 김민섭이 자세를 낮추고 지형 정찰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당연히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경우는 이렇게 할 수 없지만, 눈으로 슬쩍 스캔하면서 시야가 닿는 거리 내에 적이 없는 것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움직임을 취했다.
민섭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13층에 있던 얼음 동굴과는 확연히 다른 14층의 지형 때문이었다.
미로처럼 얽혀 있었지만, 동굴의 내부를 담고 있는 13층과 달리 14층은 아주 먼 곳까지 시야가 뻥 뚫려 있는 드넓은 초원이었다.
단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초원과 다른 것이라면….
“풀도 바위도….”
“하늘이 떠 있는 구름마저도….”
얼음이었다.
온통 얼음으로 만들어진 세상.
원래 있던 풀과 바위 위에 얼음이 뒤덮인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풀이 얼음으로 되어 있었다.
민섭이 ‘서번트 워치’를 눌러 정보를 끌어모으며 수색을 하고 있었다.
강진철과 한재석이 최대한 시선을 먼 곳에 두고 몬스터를 찾았다.
“몬스터는 보이지 않는군.”
“웬일이래, 층에 올라오자마자 그렇게 미친 듯이 달려들던 녀석들이.”
“그런데 너무 넓군. 이 정도면 이동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리겠어.”
그때.
“우와!!!!!!”
몸을 흠칫하게 만드는 큰 목소리.
수색을 하던 김민섭이 놀라 빠르게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윽….”
잔뜩 긴장하며 시선을 움직이던 김민섭의 얼굴에 허탈한 표정이 지어졌다.
“최한… 너….”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한이었다.
최한이 잔뜩 흥분된 표정과 몸짓으로 강진철에게 다가갔다.
“스킬 뭐야? 존나 멋있다!”
곁에 있던 한재석이 벙찐 얼굴로 굳어 있었다.
“내가 운석을 두 번째 보는데, 첫 번째는 좀 그랬지만. 방금은 진짜 완전 멋있었어. 나 진짜 이렇게 멋있는 스킬은 처음이야!”
진심.
눈에서 아주 레이저가 튀어나올 정도로 격양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당황해 얼떨떨한 표정을 짓던 강진철이 이내 냉정함을 되찾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 정도는 돼야 미림고 최강이란 타이틀을 가질 수 있지. 어떠냐, 최한. 내 뒤를 이어 학생회장이….”
“특성이 메테오야? 아닌가? 스킬인 것 같던데. 뭐야? 한 번에 하나만 날릴 수 있는 거야?”
“너 내 얘기를….”
극도로 흥분한 최한.
강진철의 말은 듣지도 않은 채 자신이 궁금한 것들만 계속해서 물어보고 있었다.
실망한 듯 깊은 한숨을 쉬던 강진철이 작게 코웃음 치더니, 살짝 미소 지었다.
“뭐… 이렇게라도 대화를 할 수 있다면….”
강진철이 최한에게 자신의 능력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최한.
지켜보고 있던 민섭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지어졌다.
“진짜 멋있긴 했나 보네….”
그때, 귀를 찌르는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야! 내 스킬 볼 때는 이런 반응 아니었잖아! 저딴 돌덩이 하나 날리는 게 뭐가 멋있다는 거야!”
한재석의 성난 목소리를 시작으로 삼총사의 말 안 통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탁….
“어째 셋이 안 싸운다 했다….”
김민섭이 이마에 손을 올린 채 고개를 저었다.
“아! 최한 내 말 듣고 있냐고! 내 스킬이 더 멋있다고!”
“시끄러워! 야, 메테오 열 개도 떨어트릴 수 있어?”
“번개보단 운석이 멋있지. 그건 그렇고, 우선 학생회에 들어오는 건 어때?”
싸움 아닌 싸움.
그냥 자기 말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있었다.
그때.
띠링!
순식간에 구겨지는 최한의 얼굴.
“뭐야? 왜 갑자기 인상 쓰고 지랄이냐?”
“네가 자꾸 번개 얘기해서 그런 거다.”
찌릿!
“아니거든! 네가 자꾸 학생회 얘기 꺼내서 그러거든?”
“이것들이 자꾸 반말을…. 아무튼. 번개 얘기가 맞다.”
“아니라고!”
최한의 바로 앞에서 큰소리치고 있었지만, 최한은 그들에게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눈앞에 나타난 어떤 현상에 정신이 팔려 있을 뿐.
최한의 눈앞에 떠 있는 알림창.
[히든 퀘스트 도착]
처음 있는 일이었다.
튜토리얼 퀘스트만 진행 해오던 최한에게 새로운 퀘스트창이 나타난 것은.
최한이 마른침을 삼키자 퀘스트창이 나타났다.
「히든 퀘스트
거인족의 복수
14층에 숨어 있는 미미르의 샘을 찾아 그곳을 지키고 있는 현인 미미르를 만나시오.
보상
오딘의 눈 (EX)
세계수의 진실
획득 칭호
현자 (EX)」
갑자기 나타난 히든 퀘스트에 최한의 모든 감각이 차분하게 돌아섰다.
너무도 갑작스러웠지만, 최한에게 냉정을 유지 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두 가지.
첫 번째는 퀘스트의 보상.
‘오딘의 눈’과 ‘세계수의 진실’이라….
다른 이들이었다면 당연히 더 끌리는 쪽은 오딘의 눈이었겠지만, 최한은 아니었다.
‘세계수.’
그 단어를 보자마자 최한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이세계로 간 첫날 최한의 눈앞에 나타난 알림창.
[세계수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 퀘스트를 클리어하면… 내가 왜 그곳에 100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는지도 알 수 있는 건가…. 나를 가둔 놈들이 누군지도….”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입을 타고 나왔다.
“뭐라는 거야?”
“내 스킬이 너무 멋있어서 정신이 나갔나 보군.”
“아니거든….”
한재석과 강진철의 목소리에도 최한은 여전히 퀘스트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최한이 고개를 조금 내려 퀘스트창 아래로 시선을 옮겼다.
[문지기에게 입장권을 보여주시오.]
이것이 두 번째 이유.
아마 미미르의 샘인지 뭔지 하는 히든 장소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입장권도 찾아야 하는 건가….’
최한은 알고 있었다.
히든 퀘스트라는 것은 기본 퀘스트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는 것을.
튜토리얼 퀘스트만 666개째를 진행 하고 있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볼 때도 아마….
“여기서 시간 엄청 보내겠네…. 14층 내부가 왜 이렇게 넓은지 이제야 감이 오네….”
최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이게 뭐야?”
얼음 수풀을 헤치며 나아가던 김민섭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기 이상한 게 있어…. 어… 어!!!!”
갑자기 터진 비명에 최한과 아이들이 민섭에게 시선을 옮겼다.
“민섭아!”
“뭐냐!”
“적이냐!”
.
.
.
민섭이 있던 장소로 시선을 옮겼던 최한과 아이들이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말없이 눈만 깜빡이는 아이들.
최한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한재석의 볼을 꼬집었다.
“아야!”
한재석이 신경질적으로 최한의 손을 내쳤다.
“아파! 인마!”
“꿈이 아니네….”
“네 볼 꼬집어보면 되잖아! 왜 나한테!”
아이들의 시선에 비친 장소는 방금까지 있던 초원이 아니라 전혀 다른 장소였다.
“층을 클리어하지도 않았는데….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이중 던전인가…?”
한곳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강진철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건 그렇고….”
“민섭이… 어쩌지….”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모인 곳.
기어가는 자세로 멈춰 있는 민섭의 모습이 보였다.
뒷모습에서도 느껴지는 그의 감정들.
민섭의 엉덩이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쿵!
쿵!
땅을 울리는 발소리.
민섭의 바로 앞에 거대한 외눈박이 거인이 서 있었다.
기존에 보았던 거인 몬스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
학교… 아니, 10층 정도 되는 아파트의 높이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거인의 뒤로 보이는 황금 문.
최한은 그 문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어이없게 찾는다고? 이럴 거면 14층은 왜 그렇게 넓게 만들어 놓은 거야…?’
너무도 쉽고, 어이없게(?) 찾긴 했지만, 아직 클리어한 것이 아니다.
[문지기에게 입장권을 보여주시오.]
최한이 민섭의 앞에 서 있는 외눈박이 거인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문지기인 거 같고. 역시 입장권이 문제인가….’
장소는 찾았지만, 입장권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도 파악을 하지 못했다.
최한이 손톱을 물어뜯었다.
“아…. 어떻게 한담….”
찌직!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번쩍임과 대기를 찢는 소리.
순식간에 튀어 나간 한재석이 민섭의 엉덩이를 밟고 높게 점프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이중 던전이든 뭐든! 어차피 올라가려면 이 녀석을 쓰러트리면 그만이잖아!”
한재석이 온몸에서 전기를 뿜어내며 공중에 떠 있었다.
정확히는 문지기 거인의 얼굴 바로 앞까지 날아오른 한재석이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죽어라!”
한재석이 주먹을 내지름과 동시에 대기를 찢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콰과과광!!!!!!
주먹에서 뻗어 나간 번개가 문지기 거인의 눈에 명중했다.
쾅! 쾅! 쾅!
문지기 거인의 얼굴에서 전류가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자신의 공격이 명중하자 한재석의 얼굴에 한껏 들뜬 웃음이 지어졌다.
“어차피 한 방짜리 몬스터인데 뭘 쫄고….”
쾅!!!!!!
한재석이 문지기 거인의 외눈과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거대한 손바닥에 맞아 바닥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너무도 빠른 속도로 떨어진 곳에 아직도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저렇게 되는 건가……”
최한이 상태창을 열어 문지기의 정보를 확인했다.
# # #
이름 : 외눈박이 트로이스
나이 : 100,000
성별 : 남
종족 : 거인족 (EX)
칭호 : 통곡의 문지기
능력치
근력 : (EX) D - 1100
민첩 : (EX) D - 1000
내구 : (EX) D - 1150
체력 : (EX) D - 1111
마력 : (EX) D - 1000
SKILL
[ 순혈의 피 ]
고대부터 존재해 온 거인족. 혈통의 힘을 가지고 있다.
혈계 특성
얼음 내성 100%
화염 내성 50%
전기 내성 50%
포이즌 내성 50%
물리 내성 50%
[ 거인족의 후예 ]
거인족은 둔기 아이템을 쓰면 근력이 200% 향상된다.
[ 위미르의 축복 ]
거인의 왕 위미르의 축복이 깃든 고대의 전사.
상급 얼음 마법으로 온몸을 강화한다.
마법 데미지 –50%
물리 데미지 30% 반사
[####]
정보 권한 없음.
스킬을 열람할 수 없습니다.
최종 등급 : (EX) D
# # #
최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보던 것과 다르군.’
능력치뿐 아니라 최종 등급조차 자신이 알고 있는 등급과 차이가 있었다.
(EX).
등급 앞에 붙어 있는 이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내 마지막 튜토리얼 퀘스트 보상에도 이 단어가 있었는데….’
그때.
문 앞에 서 있던 문지기 거인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이곳의 문지기 ‘트로이스’. 미미르의 샘에 출입하고자 한다면 입장권을 보여라.”
땅을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
어느새 빠르게 도망쳐 최한의 뒤로 숨은 민섭이었다.
“최한, 이거 뭐야…. 갑자기 왜 이런 곳에 오게 된 거지….”
“걱정 마. 우리가 공격하지 않으면 저쪽도 공격하지 않을 거야. 문지기니까.”
최한이 고개를 들어 문지기 거인에게 소리쳤다.
“입장권이 어떤 건지 알려줄 수 있어?”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눈동자가 깜빡거리며 최한에게 향했다.
“넌… 신기하군. 미드가르드의 꼬맹이가 이런 힘을…. 응?”
거인이 얼굴을 쑥 내려 최한에게 최대한 가까이 다가갔다.
“너… 그 허리춤에 있는 것은 뭐냐?”
“어? 이거?”
최한이 허리춤에 숨겨 두었던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이건 그 이세계에 갔을 때 드워프들이….”
최한이 말을 끝내지 못했다.
“그… 그건! 니다벨리르의 보물!”
최한과 아이들이 거인의 큰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
“으… 시끄러….”
“뭐? 니다벨?”
문지기 거인이 자세를 고쳐 잡더니 고개를 숙였다.
“입장권 확인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럼….”
최한의 입에서 허탈한 날숨이 튀어나왔다.
“또…. 설마… 이렇게 쉽게….”
“미미르의 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지기 거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거대한 황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X발…. 만능키냐?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