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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75화 (76/211)

75화

미림고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제주도의 어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줄지어 멈춰진 4대의 버스 중 가장 앞에 있던 버스에서 문이 열리며 최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멍하니 굳은 채 시선을 빼앗긴 최한의 곁으로 D반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우와….”

“여기가 숙소라고?”

김민섭, 장부기, 전지현, 성녀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최한과 같은 표정으로 감탄사만 내뱉고 있었다.

“자자! 제대로 줄 서라. 점심시간 전까지 얼른 방 배정하고, 짐 정리까지 끝내야 한다.”

조일환 선생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굳었던 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장 앞에 서 있던 전지현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저, 선생님? 진짜 여기가 저희 숙소예요?”

“그렇다. 왜 그러지? 호텔이 아니라 불만인가?”

지현이 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지현의 손이 무언가를 가리켰다.

지현의 손끝이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린 조일환 선생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적혀 있잖아. 뭐가 문제지?”

“…….”

지현이 아무 반응 없는 조일환 선생을 보며 눈만 깜빡였다.

옆에 있던 장부기가 나섰다.

“아니! 이런 말 없었잖아요! 숙소가 이렇게 대단한 곳이어도 되는 거예요?”

그렇다. 아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

지현의 손이 향한 곳.

건물의 입구 쪽 큰 명패가 붙어 있었다.

‘검성 길드 연수원.’

이곳은 대한민국 5대 길드인 검성 길드의 연수원이었다.

신입 길드원들이 일정 기간의 훈련과 교육을 받고 나가는 장소.

보안과 경비는 물론, 외관만으로도 최고급 호텔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최고의 시설이었다.

“너희가 일반 호텔에 묵는 것도 이상하잖아. 벌써 방송도 많이 탔고… 그리고….”

조일환 선생의 시선이 멈췄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이 정도 경비와 보안이 없으면 SSS급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 때문에 수학여행 진행도 안 된다고.”

최한이 자신에게 쏠린 시선을 확인하고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었으면 어서 들어가자.”

D반을 선두로 다른 반들이 줄지어 검성 길드 연수원으로 들어갔다.

자동으로 열린 문을 지나자 고급 호텔의 로비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큰 공간이 나타났다.

학생과 교직원을 포함한 100여 명의 미림고 인원들이 모두 들어와도 전혀 복잡하거나 비좁다 느껴지지 않았다.

“우와….”

D반뿐 아니라 2학년 학생 전체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렀다.

인솔 교사들도 국내 ‘톱’급의 시설을 갖춘 내부 경관을 보고 놀란 눈을 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어조에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저 사람은….”

“대박….”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허리춤에 찬 대검 ‘율도’가 가장 눈길을 끌었고, 고풍스러운 한복 재질의 옷이 차분한 분위기를 한층 더 드높였다.

검성 길드의 길드장이자,

천하제일 검.

검성 장왕윤이 학생들이 모인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들의 인솔을 위해 가장 앞에 서 있던 D반의 담임 조일환과 A반의 담임 김기덕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숙소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도 무상으로….”

잔잔한 미소를 보이며 장왕윤이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명문이라 불리는 미림고 학생들이 우리 연수원에 머물러 주니 저야말로 감사하죠.”

날카로운 인상과 무뚝뚝해 보이는 표정과 다르게 그의 인성은 그야말로 훌륭했다.

“와….”

“5대 길드장은 인성도 넘사벽인 건가….”

“얼굴도 너무 잘생겼어.”

여학생들이 몸을 배배 꼬며 장왕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교사들과 짧은 인사를 마친 장왕윤이 발걸음을 옮겨 누군가의 앞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이군…. SSS급.”

최한이 자신의 앞에 멈춰선 거구의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음….”

미간을 구긴 채 손가락으로 턱을 톡톡 치는 모습에, 장왕윤이 최한에게 물었다.

“뭐지? 그 반응은 설마….”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던 최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아무리 해도 생각이 안 나네. 아저씨 이름이 뭐였죠?”

윽!

차분함을 유지하던 장왕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난 표정을 숨기듯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풉….”

“역시 최한….”

“대단해 정말….”

아이들의 반응에 어이없는 웃음과 감탄이 뒤섞여 나왔다.

평정심을 되찾은 장왕윤이 다시 고개를 들며 최한을 바라보았다.

“검성길드의 길드장. 장왕윤이다. 이름 정도는 기억해라.”

최한이 코를 파며 대답했다.

“그러죠.”

끓어오르는 감정을 누르듯 입술을 꾹 깨문 장왕윤이었다.

“저 캐릭터는 진짜 SSS급이니까 가능한 거야….”

“그러니까….”

최한의 바로 뒤쪽에 서 있던 장부기와 김민섭이 작게 읊조렸다.

짝짝짝!

갑작스러운 박수 소리에 아이들뿐 아니라 최한도 놀라 눈이 크게 떠졌다.

“오호! 너구나!”

“SSS급. 최강의 능력자.”

“화면보다 왜소한걸?”

어느샌가 장왕윤의 바로 뒤쪽에 모여 있는 새로운 얼굴들.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와 검을 차고 있는 두 명의 남자.

잔뜩 신이 나 보이는 얼굴로 최한을 반겼다.

최한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적잖이 당황한 최한이 몸을 뒤로 뺐다.

“뭐야, 당신들은?”

새롭게 등장한 그들은 최한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더 얼굴을 들이밀었다.

“엄청 보고 싶었어!”

“우리 길드장님 구해줘서 고맙다.”

“길드장님이 너 온다고 며칠 전부터 얼마나 신이 나셨는지.”

최한이 마지막 말을 듣고 그대로 장왕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 그… 그만! 이것들이 없는 소리를!”

얼굴까지 빨개지며 장왕윤이 소리쳤다.

최한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뒤쪽에 있던 민섭과 부기는 그 미소의 의미를 단숨에 파악하고 고개를 저었다.

“생명의 은인이 온다고, 설레서 잠도 못 자고 기다리고 있던 거야?”

최한의 얼굴에 특유의 표정이 지어졌다.

장난을 칠 때의 그 표정이….

장왕윤이 몸까지 부르르 떨며 최한에게 소리쳤다.

“아니야! 아니라고!”

최한이 전혀 믿지 않는 표정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솔직하지 못하네, 아저씨.”

최한의 장난에 장왕윤이 앞머리를 강하게 쥐며 눈을 감았다.

당황하는 길드장의 모습에 가운을 입은 여성과 검을 차고 있는 남성 두 명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지어졌다.

“휴….”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진정이 됐는지, 장왕윤이 표정을 다잡으며 길드원들에게 말했다.

“여긴 왜 나왔어? 중요한 실험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얀 가운을 입은 검성 길드의 과학자 신세례가 손을 들어 최한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실험도 중요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신세례가 자신의 얼굴을 최한의 얼굴에 최대한 가까이 들이밀었다.

“우리 대장을 살려준 은인의 얼굴을.”

최한이 손을 휘휘 저으며 신세례를 밀어냈다.

“떨어지지?”

신세례가 살짝 미소 지으며 최한에게서 떨어졌다.

뒤쪽에 있던 남성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얼굴도 봤으니, 이제 가도록 하지.”

“그래. 오늘 실험을 마쳐야 내일 서울로 복귀할 수 있다고.”

신세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최한에게 손을 흔들며 몸을 돌렸다.

“또 보자.”

검을 차고 있던 남자들이 차례로 최한에게 묵례를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최한이 진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여기 길드도 이상한 사람들 많네….”

최한의 귀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어왔다.

“대박… 저 사람들도 엄청 유명한 헌터 맞지?”

“둘 다 A급 헌터야.”

“신속의 박영민과 마검사 차성윤.”

“마력과 특성이 생겨났어도 역시 멋있는 건 검을 든 사나이지.”

최한이 멀어져 가는 박영민과 차성윤의 뒷모습으로 시선을 옮겼다.

“검사라….”

그때, 아이들의 잡음을 지우는 장왕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너무 오래 뺏었군요. 점심 식사도 못 하셨을 텐데. 어서 방 배정하고 식당으로 이동하시죠.”

장왕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안내를 도와줄 직원들이 각 반의 앞쪽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안내원들과 교사들이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조일환 선생의 목소리가 D반에게 닿았다.

“우리 반은 2층이다. 나를 따라오도록.”

검성 길드의 안내원과 조일환 선생의 인솔 아래 D반 아이들이 열 맞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빠르게 방 배정을 마치고, 약 5분간의 개인 정비 시간이 주어졌다.

일자로 길게 뻗은 복도 중앙.

조일환 선생이 열린 3개의 문을 향해 소리쳤다.

“시간이 촉박하니 짐 정리는 점심 식사 후에 하고, 지금부터는 사복을 입어도 되니,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5분 뒤에 계단 앞으로 모인다. 이상.”

“네!”

각 방에서 밝은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일환 선생이 작게 미소 지으며 복도 끝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이동했다.

‘2 – 1.’

이라고 써 있는 방에 배정된 최한이 캐리어를 방구석에 던져 버리고 침대로 점프했다.

“브로스 길드 연구소도 좋았지만, 여기도 대박인데?”

침대 위에서 통통 뛰며 기쁨을 표하고 있는 최한이었다.

같은 방에 배정된 장부기가 한숨을 내쉬며 최한의 건너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비행기에서도 그렇고 너무 텐션 올라간 거 아니냐? 최한 너….”

장부기의 목소리에도 최한은 침대에서 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냥 둬. 이번엔 훈련이 아니라 진짜 놀러 온 거잖아.”

구석에 쓰러져 있던 최한의 캐리어를 세우며 민섭이 말했다.

방 한편에 아이들의 캐리어를 보기 좋게 정리한 민섭이 부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걸 네가 왜 다 정리하냐? 하다못해 바닥에 냅다 던진 최한 거만이라도 그냥 두지.”

부기의 목소리에 민섭이 웃으며 답했다.

“에이, 그냥 세워만 두는 게 뭐가 힘들다고.”

부기가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저었다.

“넌 너무 착해서 탈이야….”

그때, 홍철이 테이블에 있던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켰다.

띠릿!

“오늘의 날씨 전해드립….”

아이들의 시선이 텔레비전으로 향했다.

“너희들 그거 아냐? 제주도는 방송도 다르다고!”

화면 오른쪽 상단에 적힌 지역 방송.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수도권 제외 일부 지역에는 개별 지역 방송국이 있다는 것쯤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니까.

그리 별거 아닌 것도 수학여행에서는 아니, 이 방에 있는 꼬맹이들에게는 신나는 일이었다.

“우와!!!!”

“진짜야. 원래 이 시간에 만화 하는데.”

“처음 보는 기상 캐스터야!”

방에 있는 남학생들이 모두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이어지겠습니다.”

캐스터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에서 뛰고 있던 최한도 아이들의 곁에서 텔레비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열린 문 사이로 붉은 머리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설….”

최한이 무언가 생각난 듯, 몸을 움직였다.

텔레비전에 고정된 아이들의 시선을 가로질러 문으로 향했다.

슬리퍼를 대충 신고 문을 나선 최한이 걸음을 옮기고 있는 백설을 불러 세웠다.

“야, 잠깐.”

백설이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몸을 돌렸다.

차가운 표정이 최한을 향했다.

“비행기 타기 전에, 노랭… 아니, 한재석한테 뭐라고 말한 거야?”

“노랭…. 아, 그 녀석? 그 녀석 이름이 한재석인가 보군.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최한의 미간이 구겨졌다.

“뭐?”

“못 들었나? 내가 왜 너한테 말해줘야 하냐고.”

맞는 말이었다. 타인과 타인의 대화를 알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궁금해서. 너, 자꾸 이해 안 되는 이상한 말 하니까. 걔한테도 이상한 말 했나 궁금해서. 그리고 내 기억 속….”

최한이 손가락을 들어 관자놀이를 툭툭 치자.

백설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백설의 머릿속으로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하렴, 설아.’

백설이 표정을 숨기듯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뭐야? 너 왜 그래?”

백설의 반응에 최한이 천천히 다가갔다.

백설이 다가오는 최한의 손을 치며 몸을 돌렸다.

“멍청한 놈. 제 할 일도 못 하고… 언제까지 놀기만 할 건지….”

“걱정해주니까 또 이해 안 되는 이상한 말만 하고 있….”

백설이 최한의 말을 신경질적으로 끊었다.

“얼마나 감이 없는 거야? 이렇게 가까이서 벌어지고 있는데….”

백설이 자리를 박차고 벗어났다.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최한의 몸을 굳게 만든 것은 백설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역시… 넌… 너무 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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