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아이들과 함께 식당으로 향하는 최한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이들 틈에 섞여 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차분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곁에서 걸음을 맞추고 있던 부기와 민섭이 최한의 분위기가 지금까지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최한이 작은 날숨 속에 한숨을 뒤섞어 내쉬었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우울하기 때문은 아니었지만, 백설을 만나고 난 후부터 확연히 분위기가 가라앉은 최한이었다.
가장 가까이서 봐왔던 김민섭과 장부기만이 최한의 변화를 눈치챘지만, 어떤 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백설과 무슨 얘기를 한 거지…?’
그저 지금은 이대로 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뿐.
최한과 아이들이 식당에 도착했다.
“이게… 대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최한뿐 아니라, 장부기와 김민섭 아니, D반 아이들 전체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지어졌다.
“대박 맛있어!”
“학교 급식이랑은 비교도 안 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탄사.
먼저 식사를 시작한 다른 반 아이들의 얼굴에 행복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D반 아이들도 검성 길드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장부기가 식탁을 가득 채운 음식들을 보며 말했다.
“돔베 고기에 고기 국수. 대왕 갈치에… 해신탕…까지….”
제주도 특산물로 만든 음식들과 한눈에 보아도 값비싼 요리들이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다른 반 아이들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는지 알게 된 D반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먹자!”
“대박!!!!”
D반 아이들도 행복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대박. 이렇게 큰 갈치 처음 먹어봐.”
“이게 고기 국수구나.”
“문어 한 마리가 통째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아이들이었다.
기분 좋게 음식을 욱여넣고 있던 D반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
멍하니 앉아 있는 한 남학생.
“최한이 음식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니….”
“최한이… 숟가락도 들지 않았어….”
D반 아이들이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
최한의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왜 먹지 않는 거지? 입에 맞지 않는 건가?”
검성 길드의 길드장 장왕윤이 최한에게 다가왔다.
길드장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된 것을 알아챈 최한이 어색한 미소를 보이며 난감해했다.
“하하…. 아니에요. 이제 먹으려고 했어요.”
최한이 그제야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에 넣기 시작했다.
D반 아이들이 이제야 최한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즐겁게 식사를 이어갔다.
웃고 있는 아이들 중 장부기와 김민섭만이 쉽사리 어두운 표정을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한 사람.
검성 길드의 길드장 장왕윤도 얼굴에서 어두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장왕윤의 곁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음식은 입에 잘 맞으십니까?”
최한뿐 아니라 아이들의 시선이 한 곳을 향했다.
새하얀 옷과 모자. 한눈에 봐도 그가 요리사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는 외형.
“이쪽은 우리 연수원 총괄 셰프. 조수한.”
아이들의 박수가 울리고 총괄 셰프 조수한이 고개를 숙였다.
“입에 잘 맞았으면 좋겠네요. SSS급과 미림고 학생분들이 온다고 몇 주 전부터 길드장님이 얼마나 주방에 들락거리며 신경을 쓰시던지….”
조수한의 목소리에 장왕윤이 얼굴을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너까지….”
“그 대왕 갈치는 길드장님이 사비로 어제 구입해 온 겁니다. 최대한 좋은 걸 먹이고 싶다면서요.”
“오오!!!”
아이들의 함성과 박수가 이어졌지만, 정작 장왕윤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맞다. 일정 얘기 못 들으셨죠? 오후에는 돌고래 구경하려고 길드장님이 유람선까지 빌려 놓았습니다.”
아이들의 눈빛이 동심으로 돌아간 듯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쌓인 게 많았는지, 아니면 친한 것인지, 조수한이 장왕윤 길드장을 보며 씨익 한 번 웃고는 도망가듯 자리를 벗어났다.
“후….”
한숨을 깊게 내쉬던 장왕윤이 최한의 뒤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작은 귓속말이 들렸다.
“식사 끝나고 잠깐 보지. 진지하게 할 얘기도 있고….”
* * *
점심시간이 지나고 학생들에게 한 시간가량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빠르게 짐을 푼 최한이 문 앞으로 찾아온 검성 길드의 길드장 장왕윤을 따라 지하로 이동했다.
검성 길드 연수원 지하 3층.
“지하에 이런 장소가…. 설마 결투장인가요?”
최한의 물음에 장왕윤이 만족한 듯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바로 알아채는군. 이곳은 신입 길드원들이 마지막으로 거치는 장소다. 이곳에서 모두 나와 대련을 하고 실전에 투입되고 있지.”
스포츠 경기장을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장소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까마득한 높이의 천장과 강화 유리 뒤편으로 보이는 수많은 의자들.
그중 최한이 결투장이란 것을 단번에 알아챈 구조물은….
중앙에 자리한 넓은 케이지.
종합 격투기 대회에서나 보던 링이 몇 배는 더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저 안에서 싸우는 건가요?”
“그래. 나는 콜로세움을 상상하며 만들어 달라 했지만, 정작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종합격투기 링 같다고 하더군.”
최한이 다시 한번 중앙에 있는 결투장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한번 보겠나?”
장왕윤이 앞서 걸음을 옮겼다.
최한이 대답 없이 그의 뒤를 따랐다.
결투장이 가까워질수록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앞서 걷던 장왕윤의 어깨를 타고 목소리가 넘어왔다.
“무슨 안 좋은 일 있나? 식사할 때 보니 기분이 좀 안 좋은 것 같던데. 가짜 웃음도 보이고….”
급작스럽게 귀가 아닌 마음속으로 들어온 장왕윤의 목소리에 최한의 걸음이 멈췄다.
방심하다 망치로 머리를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
최한의 머릿속으로 점심 식사 전에 있던 백설과의 일이 떠올랐다.
‘넌 너무 약해.’
최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SSS급이 약하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에 잠긴 거라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그것보다….
표정을 숨기고,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었다.
‘이 사람… 마음속이라도 보이는 걸까?’
최한이 장왕윤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신기하네요. 그런 것까지 다 알고.”
나아가던 걸음을 멈춘 장왕윤이 고개만 살짝 뒤로 돌려 대답했다.
“검사니까.”
짧지만 강렬했다.
최한은 진지하게 변한 그의 표정과 짧게 내뱉은 목소리에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기분을 느꼈다.
“검사…. 대체 검사가 뭐길래… 그런 것까지.”
장왕윤이 몸을 완전히 돌려 최한을 바라보았다.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수행한다고 해야 하나?”
“정신?”
장왕윤이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대검 ‘율도’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검사는 칼을 쥔 순간부터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니까. 한 호흡에 승부가 나고, 한 호흡에… 죽음이 결정되지.”
굳세어 보이는 의지가 느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최한은 장왕윤의 모습에서 이세계에서 만났던 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승님….’
최한이 무언가에 홀린 듯 마음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내 힘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SSS급. 다른 능력자들과 비교 불가할 정도로 강한 등급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너무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장왕윤이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눈에 봐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최한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몬스터라도 한 방에 해치우게 된 시점부터… 훈련도 하지 않고, 내가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 거 같아요.”
“음….”
섣불리 대답하지 않고 최한의 모든 말을 귀담아듣는 장왕윤이었다.
“지구에 돌아오고 나서는 더 심해졌어요. 나보다 강한 존재는커녕 나와 비슷한 힘을 가진 적수조차 없으니….”
차분히 말을 듣고 있던 장왕윤이 천천히 입을 뗐다.
“내 대답을 들려주기 전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얘기해 줄 수 있나? 무언가… 일이 있던 거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강자들은 그리 쉽게 그런 생각을 못 하거든.”
최한이 장왕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약하다… 들어서요.”
장왕윤의 미간이 구겨졌다.
SSS급.
세계에서 가장 강한 능력자.
존재 자체가 강함의 상징인 그 존재가….
충격에 구겨졌던 미간이 차츰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렇군. 인터넷에 떠도는 말도 안 되는 댓글이나, 질투에 눈먼 뻘 소리에 그러는 건 아닌 것 같군.”
장왕윤의 시선에 들어온 최한의 표정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진중한 표정.
장왕윤이 말을 이어갔다.
“너에 준하는 강자에게 들었거나… 너보다 강한 자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들은 것 같군.”
최한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그 고민에 대한 답은 내가 해줄 수 없다. 나는 너보다 한참이나 약하니까.”
최한도 알고 있었다.
답을 구하려 말한 것이 아니니까.
그저.
후련해지기 위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말하게 된 것이니까.
“그러나 능력자가 아니라 오랫동안 수행하고, 검에 목숨을 건 검사로서는 대답해 줄 수 있다.”
최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장왕윤이 손으로 최한의 허리 쪽을 가리켰다.
“최수혁에게 들었다. 너, 검을 가지고 있다지?”
최한이 허리춤에 넣어 뒀던 단검을 꺼내 보였다.
신화급 아이템.
‘마왕의 헬룬 단검.’
“이세계에서 돌아올 때 드워프에게 선물 받았어요.”
장왕윤이 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을 이어갔다.
“보석들은 처음 보는 광물이군. 단검인데도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그래도 역시… 너랑은 안 어울려.”
장왕윤의 목소리에 최한이 당황했다.
“안 어울린다고요? 그게 무슨….”
“내가 그랬지? 검사로서는 대답해줄 수가 있다고.”
최한이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너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최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한을 향해 장왕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넌 검사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이런 단검이 아니라… 좀 더 크고 날카로운 검이 어울리는.”
이 말, 들은 적 있었다.
‘넌 검사의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너는 검을 다루어야 해. 그래야….’
“스승님….”
“스승님이라고?”
최한이 당황해 자신의 입술 위에 손을 얹었다.
“내가 무슨 말을….”
“너에게도 스승이 있나 보군.”
장왕윤의 물음에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세히 얘기해 드릴 순 없지만, 기본적인 검술과 싸움에 필요한 기술을 알려준 스승님이 있습니다. 저번에 용들에게서 아저씨를 구할 때 쓰던 기술도 스승님이 알려주신 거죠.”
“자… 잠깐…. 나를 구해줄 때 쓰던 기술이라면… 그 메테오?”
“맞긴 한데… 정확히는 ‘스킬 복제’라는 기술이에요. 메테오 스킬은 미림고 학생회장인 강진철 거고.”
“잠깐, 잠깐, 잠깐….”
높아진 목소리 톤과 허둥대기까지 하는 장왕윤의 행동에 최한이 볼을 긁적였다.
“왜요? 뭐 문제라도?”
감정이 격해진 장왕윤이 손을 휘저으며 최한에게 물었다.
“그 메테오가 스킬이 아니라고? 그렇게 강력한데? 아니, 잠깐…. 네 말대로라면 다른 이의 스킬을 복제하는 게… 스킬이 아닌 건가?”
“네, 맞아요. 스킬이 아니라 스승님한테 배운 기술이에요. 이것 말고도 두 개 더….”
“잠깐. 네 말은 그럼….”
“네. 저 아직 각성 안 해서 특성이랑 스킬 부여 못 받았는데?”
멀어지는 정신을 겨우 붙잡았다.
장왕윤이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너에게 기술을 알려준 그 스승님이라는 사람, 설마….”
최한의 마지막 말이 울리고 장왕윤의 표정이 사라졌다.
“네. 강해요. 제가 한 번도 못 이겼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