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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88화 (89/211)

88화

“죽고 싶냐?”

있었다.

권력도 협회도 아니,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있는 남자가.

최한의 목소리에 정우철의 몸이 얼어붙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인간이 이 정도의 압박감을 줄 수 있는가.

“너… 너는 대체….”

앳되어 보이는 얼굴.

미림 고등학교 교복.

S급 능력자와 비교도 되지 않는 압박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학생을 바라보던 정우철이 무언가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SSS급이군.”

최한이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는 최수혁에게 물었다.

“이 재수 없게 생긴 새끼는 누구냐, 파랭아?”

평소 같았으면 ‘파랭이라고 부르지 말라고!’라며 노발대발했을 테지만.

본인 대신 시원하게 행동을 해주고 있는 최한이 고맙기도 하고, 개운하기도 해 자신도 모르게 코웃음이 새어 나왔다.

최한의 목소리에 정우철이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뭐! 재… 재수 없게 생긴 새끼? 내가 얼마나 깔끔하고 완벽하게 생겼는데! 너, 내가 누군지 알고 그딴 소리를….”

“누군데?”

최한이 정우철의 목소리를 잘랐다.

“뭐…?”

“네가 누구냐고. 네가 누군지 알면 달라져?”

그때.

최한의 뒤로 검사를 끝낸 한재석과 오지훈 박사가 들어왔다.

“뭐야. 왜 다들 서 있고 그래요?”

“어… 협회장님이 여긴 왜….”

오지훈의 목소리에 최한이 정우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자신의 직업이 밝혀지자, 정우철이 올백으로 된 머리를 두 손으로 쓸어 올리며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말이 없어진 최한을 보며 정우철이 코웃음을 쳤다.

“역시. SSS급이더라도 협회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나 보군. 협회장인 내 입김 한 방이면 너라도….”

“야.”

짧게 울리는 최한의 목소리.

아까 전 몸이 얼어붙었던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지금 정우철의 머릿속을 채우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죽는다.’

“한 번만 더 주둥이 놀리면… 대한민국에 협회는 없는 거야….”

최한의 목소리에 협회장은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풀려 버린 동공과 얼굴의 경련.

덜덜….

덜덜….

압박감에 눌려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정우철의 모습에 길드장들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지경태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소파에 있던 길드장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툭.

최한의 어깨에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여기까지만 하지.”

언제 이동했는지 최수혁이 최한의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다.

“명색이 협회장인데 다치게라도 했다간 골치 아파진다고.”

최수혁의 목소리에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에게서 느껴졌던 작은 분노와 압박감이 사라지자, 정우철의 눈빛이 돌아왔다.

악몽에서 깨어난 듯 숨을 몰아쉬던 정우철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이놈들….”

체력이 바닥난 듯 온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젠장….”

청룡 길드장 이창식과 검성 길드장 장왕윤이 다가가 정우철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최수혁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협회장님. 그리고 말씀하셨던 디스 길드에 관한 사항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방법을 찾아 저희가 찾아가겠습니다.”

최수혁의 단호한 목소리에 정우철의 얼굴에 분개한 표정이 지어졌다.

입술이 떨려왔지만, 말을 아끼는 건지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다.

턱!

정우철이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손을 뿌리쳤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방 안에 있는 얼굴들을 모두 눈에 담고는 몸을 돌려 문으로 나갔다.

분한 마음을 대변하듯 강하게 울리는 구두 소리가 이어졌다.

턱!

턱!

턱!

정우철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자….

“큭….”

“하하하하하!”

길드장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이창식이 최한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소리쳤다.

“역시! SSS급! 꼬맹이! 성깔 하나는 시원시원해서 좋다니까!”

검성 길드장 장왕윤도 최한의 곁으로 다가오며 웃음을 보였다.

“고맙다. 얼마나 통쾌하던지.”

아레나 길드장 이정은도 최한에게 박수를 보냈다.

“역시 대단해. 우리는 화가 나도 참을 수밖에 없었는데.”

최수혁이 최한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고맙다. 정말….”

뒤늦게 들어온 오지훈과 한재석만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멀뚱 서 있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최한이 길드장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협회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은 왜 온 거예요? 나 들어오기 전에 엄청 진지한 얘기 한 느낌이던데….”

길드장들의 표정이 다시 가라앉았다.

길드장들의 시선이 디스 길드장 지경태에게 향했다.

자신을 향한 눈빛을 알아챈 지경태가 작게 말했다.

“괜찮아. 얘기해 줘. 비밀로 할 필요도 없는 얘기인데.”

고개를 끄덕인 최수혁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저 녀석이 온 이유는….”

* * *

같은 시각.

시끌벅적한 2학년 D반 교실.

점심 식사 후 주어지는 자유 시간에 아이들이 제각각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나란히 앉아 우유를 마시고 있던 장부기와 김민섭.

“최한은 좋겠네. 오늘 하루 땡땡이 치고.”

“오지훈 센터장님이 부르셔서 브로스 길드 간 건가?”

“응. A반 한재석도 같이 갔다던데. 그러고 보니 넌 왜 안 갔냐?”

“나? 내가 왜?”

“한재석은 리미트 해제자인지 뭔지 때문에 간 거 아니야?”

“나는 모르지.”

“그래? 뭐… 암튼 합법적 땡땡이 부럽다.”

장부기와 김민섭이 동시에 우유를 들이마셨다.

“김민섭. 잠깐 얘기 좀 하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던 장부기와 김민섭이 눈알만 굴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풉!”

“켁켁!!!”

사레가 들린 듯 고통을 호소하는 장부기와 김민섭.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인물의 등장에 아직까지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김민섭이 숨을 고르며 앞에 있는 여성에게 말했다.

“백설…. 네가 나를 왜….”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설이었다.

“가면 알게 돼. 옥상으로 따라와.”

자신의 말만 내뱉고 몸을 돌리는 백설.

“가… 같이 가….”

민섭이 마시던 우유를 책상에 그대로 놓고 백설의 뒤를 따랐다.

“…….”

장부기가 백설과 김민섭이 나간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탕!

철제문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옥상 문이 열렸다.

백설이 먼저 옥상으로 나온 뒤, 바로 민섭이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옮기던 백설이 옥상 정중앙에 멈춰 섰다.

백설이 몸을 돌리자, 민섭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이렇게 여자와 단둘이 마주 보고 있는 상황이 생에 몇 번이나 있었을까.

왠지 모르게 부끄러운 감정이 빠르게 몸을 잠식해갔다.

민섭이 쭈뼛쭈뼛거리자, 백설이 말했다.

“왜 그러지? 어디 아픈 거냐?”

“아… 아니. 아니야. 그런데 할 얘기란 게 뭐야?”

백설이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어제 나랑 최한 옥상에 있을 때… 왜 숨어 있었지?”

사선으로 움직인 고개.

째려보는 것처럼 한층 더 날카로워진 눈매.

민섭의 시야를 가득 채운 백설의 얼굴은 그야말로….

사자 같았다.

마른침을 삼킴과 동시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 아… 미안. 훔쳐보려고 한 건 아니야. 재석이랑 먼저 옥상에 있었는데… 갑자기 너랑 최한이 나타나서… 그… 나도 모르게 숨어 버렸는데… 어… 어….”

당황해 손짓 발짓 하며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는 민섭이었다.

백설이 차가운 표정으로 민섭의 얼굴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민섭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진짜 미안해. 근데 진짜 둘이 하는 이야기 하나도 못 들었어. 진짜야. 진짜로….”

허벅지 옆에 딱 붙어 있는 민섭의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군.’

그것을 발견한 백설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변했다.

“알았다. 믿어주도록 하지. 어차피 너를 부른 이유는 이게 아니었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드는 민섭.

“이게… 아니라고? 그럼….”

백설의 고개가 살짝 아래를 향했다.

민섭의 몸쪽을 바라보며 백설이 말했다.

“드디어… 각성했구나.”

백설의 목소리에 민섭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떻게…. 너… 설마 보이는 거야?”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백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도 이제 자신이 28번째 인간의 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백설의 목소리에 민섭의 얼굴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너,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모두 다. 55일 후에 휴거가 진행되는 것도. 그리고 그날… 네가 최한에게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도.”

너무도 뜬금없이 나타난 존재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최한에게마저 들키지 않으려 최대한 애써 왔는데….

착하게만 보였던 민섭의 눈매가 매섭게 찢어졌다.

“너, 정체가 뭐야….”

“정체라…. 난 헬헤임의 9개의 권좌 중 한 명. 헬헤임의 바다를 다스리는 레비아탄이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며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를 하는 백설이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민섭이었다.

“무슨 말이야. 헬헤임이라니… 레비아탄은 또 뭐고….”

“설명보다는 직접 보는 게 빠르겠지.”

백설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더니, 민섭의 이마를 톡 쳤다.

동시에 민섭의 눈이 검게 변했다.

눈동자와 흰자위의 경계가 사라지고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졌다.

온통 암흑으로 가득 찼던 민섭의 시야에 영화를 튼 것처럼 화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기어 다니는 사람들.

몸의 반이 썩어 해골이 된 모습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 사람들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는 이름 모를 검은 애벌레.

그 옆으로 붉은 호수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백설이 보였다.

한오라기의 옷도 걸치지 않고 있던 백설의 몸이 기형적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징그럽게 생긴 애벌레와 반쯤 해골이 된 사람들을 모두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쿠에에엑!!!”

민섭이 앞으로 꼬꾸라지며 토악질을 해댔다.

“이게… 뭐야…. 저게 정말… 너라고…?”

검게 칠해진 눈 때문에 앞에 있는 백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민섭은 그녀를 향해 목소리를 내었다.

그런 민섭을 내려다보며 백설이 차분히 이어 말했다.

“그래. 그게 나야. 헬헤임…. 그러니까 너희들의 언어로는 ‘지옥’이라고 하지. 난 그곳에서 왔어.”

반쯤 엎드려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던 민섭의 온몸이 떨려왔다.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그 참혹한 현장을 눈에 담고 있으면서도 민섭은 전혀 믿기지 않았다.

백설이 자세를 낮추며 민섭의 이마를 다시 한번 톡 쳤다.

검게 변했던 민섭의 눈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민섭의 시야로 교복을 입고 있는 백설의 모습이 들어왔다.

“너에게 제안 하나 하지.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 그럼 넌 최한에게 죽지 않아도 돼.”

“죽지 않아도 된다고…?”

“그래. 너도 죽지 않아도 돼…. 그리고 최한도… 죽지 않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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