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귀환자 학교가다-90화 (91/211)

90화

“나를요?”

놀란 목소리가 교장실을 채웠다.

“그래. 작년까지는 나나 여기 있는 다른 길드장들 중 한 명이 가는 것이 관례였지만, 올해는 우리가 직무 정지이니…. 거기다….”

최수혁의 옆에 앉아 있던 청룡 길드장 이창식이 말을 가로챘다.

“S급보다도 더 높은 SSS급이 나왔으니, 다른 나라 협회들 앞에서 허세 좀 떨고 싶나 보지.”

길드장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최한이 어제 봤던 협회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분해 보이는 표정과 치욕스러운 몰골.

“그 녀석 나 싫어하는 거 아니었나?”

차분히 앉아 있던 아레나 길드장 이정은이 최한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싫어할 거야. 싫어하겠지. 어제 그런 꼴을 당했으니. 아마 그래서 널 지목한 걸 거야. 협회와 행사의 힘을 빌려 자신의 마음대로 부리기 위해.”

“음…. 내가 거기 가면 말 잘 들을 줄 아나? 내가 깽판이라도 치면 어떡하려고. 난 큰 행사건 뭐건 하나도 상관없는데?”

최한의 말이 맞았다.

이곳에 있는 길드장들도 모두 알고 있다.

협회의 힘.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는 큰 행사.

수많은 카메라.

권력의 협박.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그것들의 무게에 짓눌려 버렸을 테지만.

최한은 다르다.

SSS급.

인간이 만들어 낸 상식과 힘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인간.

최한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아마 협회장도 그것을 모르고 있진 않을 것이다.

검성 길드장 장왕윤의 목소리가 울렸다.

“협회장도 알고 있을 거야. 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거란 걸. 그러니까… 이렇게 우리를 인질로 잡은 거지.”

최한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질이라니….”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다.

겨우 이 얘기를 전달하려고 이렇게 다 모여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땅을 쳐다보고 있던 최수혁이 얼굴을 쓸어 올리며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길드마다 있는 비밀들을 가지고 협박을 해 왔어.”

검성 길드장 장왕윤이 이어 말했다.

“뭐, 협회에 보고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도 있는 거지만… 타격이 너무 커.”

이정은이 잠자코 앉아 있는 디스 길드장 지경태를 보며 말했다.

“아직 디스 길드 살리려는 것도 해결 못 했는데…. 재판이랑 법률 최대한 알아보고 있었는데….”

이창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도 다 죽겠네. 하… 어제 진짜 심하게 삐졌나 보네, 협회장….”

최수혁이 최한에게 말했다.

“부담 가질 필요 없다, 최한. 넌 어차피 학생 신분이니 그냥 못한다고 하면 된다. 억지로 하지 않아도 돼. 협회장에게는 마수아를 보내면 된다.”

최한이 말없이 길드장들의 얼굴을 한 번 둘러보았다.

최수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이 상황도 아마 다 계산된 걸 거야. 우리를 인질로 삼아 너를 오게 하는…. 그럼 마음대로 너를 조종할 수 있을 테니까.”

길드장들의 고개가 숙여졌다.

이것이 최선이었다.

자신들의 길드만 지키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최한을 희생시킬 순 없을 테니까.

우울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조용히 앉아 있던 디스 길드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 한 것 같았다.

모두가 자신을 도우려다 이렇게까지 오게 된 거니까.

디스 길드장 지경태의 의지가 주먹에 모여들었다.

“모두 이제 그만….”

“아니에요. 제가 갈게요.”

지경태의 목소리를 지우는 최한의 밝은 미소.

길드장들의 시선이 최한에게 쏠렸다.

디스 길드장 지경태의 몸 전체가 떨려왔다.

“대체 왜…. 네가 왜….”

최한이 디스 길드장에게 다가갔다.

“저번에 들었던 이야기도 있고… 그 녀석,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길드장님한테 복수하고 있는 거잖아요. 제가 그런 새끼들 진짜 싫어하거든요.”

최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너란 녀석은 참….’

최한이 소파에 있던 붉은색 모자를 들어 지경태에게 건넸다.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질근 깨물고 있던 지경태가 모자를 받아 자신의 머리 위에 썼다.

다른 길드장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저씨는 모자 쓴 게 잘 어울려요. 그리고… 아저씨의 길드 때문이 아니더라도 협회장을 만나 해야 할 말이 생겼거든요.”

최한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2021 헌터 동맹국 협회 정상회담.’

큼지막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넓은 홀.

서울에 있는 컨벤션센터 중앙 홀 전체를 빌려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능력자 시대에 맞게 각국 지도자들이 했던 정상회담이 이제는 각 나라의 협회장들과 그 나라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S급 능력자의 몫이 되어 있었다.

휘황찬란한 조명들과 곳곳에 장식된 얼음 조형물들이 기품을 더했다.

커다란 화면과 무대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작은 테이블이 여럿 놓여 있었다.

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각국 협회장들과 S급들.

내빈 소개가 진행되는 동안 연신 박수를 치고 있었다.

초청을 받지 못한 수많은 취재진들이 멀리서나마 각국의 협회장들과 대표 S급 능력자들을 찍기 위해 진행 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행사가 진행되는 내부에는 사전에 등록을 마친 소수의 기자들과 카메라만이 자리해 있었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리고 커다란 화면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인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게 넘겨주기 전 S급 최다 보유국이었던 중국의 협회장과 S급 능력자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짝짝짝-.

행사장을 가득 채우는 박수 소리.

옆 테이블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정우철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보는 눈이 많기에 이 정도지.

지금 그의 속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우철이 자신의 뒤에 대기하던 차 비서에게 말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된 거야?”

안경을 올리는 척하며 같은 테이블에 있는 내빈들을 흘끗 확인한 차 비서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분명 어제 응한다는 답을 받았습니다. 늦어도 10시까지는 도착할 거라고 했는데.”

정우철이 한숨과 함께 소매를 걷어 시계를 확인했다.

“10시 15분이 넘었는데. 이 녀석, 설마 날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정우철의 시선이 같은 테이블에 있던 오지훈 박사에게 향했다.

“SSS급 왜 안 오는 거야?”

헌터의 등급을 만든,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인 오지훈은 권위자의 자격으로 이곳에 자리했다.

“저는 모르죠. 최한 군이 애도 아니고.”

그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통역관의 목소리가 정우철에게 향했다.

“저… 협회장님. 그… SSS급 능력자는 안 오신 겁니까? 제 담당이신 프랑스 협회장님이 궁금해하셔서….”

통역관의 옆에 앉아 있던 푸른 눈동자의 협회장이 인심 좋은 얼굴로 눈인사를 건네 왔다.

정우철이 순식간에 표정을 풀고 능청스럽게 웃음을 보였다.

“아, 금방 올 겁니다. 지금은 잠시 화장실에 가 있느라. 아침에도 같이 식사했는데. 혼자만 참 유난이라니까요. 참 건강해요. 하하….”

오지훈 박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최한 군이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허세는….’

가식적인 연기.

하지만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그저 위트 있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었다.

통역관의 말을 듣고 표정이 밝아진 프랑스 협회장이 정우철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이에 화답하는 정우철.

협회장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움직이자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순식간에 지우고 짜증이 그대로 드러난 표정으로 차 비서에게 말했다.

“이미 다른 놈들도 SSS급이 오는 줄 알고 있다고. SSS급 이 개자식, 오고는 있는 건가?”

“전화도 문자도 확인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을 위해 대기 시켰던 A급 능력자라도 부를까요?”

차 비서의 목소리에 정우철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려다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입을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개망신당하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다들 SSS급을 기대하고 있는데. S급이 대신 나와도 실망할 텐데, 뭐? A급 능력자? 기자들과 사람들이 얼마나 날 무시하겠어.”

차분함을 유지하던 차 비서의 얼굴에도 심각한 표정이 지어졌다.

“그렇지만… 이제 일본 협회장만 소개하면 저희 차례입니다. 협회장님 혼자만 인사하는 게 더 많은 말이 나올 것입니다.”

차 비서의 걱정스러운 마음과 달리 차례는 너무도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사회자의 멘트가 울렸다.

“일본 헌터 협회 마모루 협회장님과 S급 능력자 센도입니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거세질수록 정우철과 차 비서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져 갔다.

정우철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분노와 불안감에 휩싸여 다리만 세차게 떨었다.

“젠장….”

“어쩔 수 없습니다. 협회장님. A급이라도….”

정우철에게 향하던 차 비서의 목소리가 멈췄다.

동시에 조용해진 행사장.

정우철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인사를 하던 일본 협회장과 S급 능력자가 고개를 반쯤 숙인 채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고.

박수를 치던 내빈들이 손을 허공에 그대로 멈춘 채 한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식간에 소리가 사라진 행사장….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에 단 하나의 소리만이 들리기 시작했다.

턱.

턱.

턱.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정우철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새하얀 교복.

조명을 받아 빛이 반사되는 머리칼.

입꼬리만 살짝 끌어 올린 작은 웃음.

앳돼 보이는 남학생이 행사장 중앙을 뚫고 걸어오고 있었다.

분명 평범한 걸음걸이였다.

하나.

그곳에 있던 모든 생명체들은 느낄 수 있었다.

포식자.

마치 토끼만 살고 있던 세상에 호랑이가 처음 나타난 순간처럼.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살던 인류가 처음 하늘을 나는 인간을 보았을 때처럼….

전세계에서 모여든 S급 강자들.

그들이기에 더더욱….

느낄 수 있었다.

저 남자가 SSS급이라고.

찰칵!

어디서 난 소리인지도, 실수인지도 모를 그 카메라의 플래시 소리를 시작으로….

“와아아아아!!!!”

소리가 사라졌던 행사장에 함성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사회자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멘트를 쳤다.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SSS급 능력자 최한 군이 등장합니다.”

짝짝짝.

“SSS급이야!”

“대박!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오… 저 아이가 그 유명한 SSS급인가 보군요.”

“나라 하나를 통째로 사라지게 했다고도 하던데….”

“이 나라는 정말 복 받았군.”

전 세계의 언어가 뒤섞여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언어는 달랐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긴 감정은 한 가지뿐이었다.

부러움.

능력자의 강함은 곧 국력이다.

S급을 보유한 것만으로도 강대국의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데.

SSS급이 있다면….

‘마음만 먹는다면 세계 통일도 가능할 것이다.’

부러움과 경외심.

작게 피어나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공포.

공포의 감정만큼 확실한 강함의 증거는 없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던 정우철의 얼굴에 짜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SSS급을 향하는 경외감과 부러움은 곧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기다리며 느꼈던 분노가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전 세계에 내 위치를 보여줄 중요한 순간이야.’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분이 한국 헌터 협회 협회장 정우철 협회장님입니다.”

정우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살짝 숙인 뒤 환한 미소로 최한을 반겼다.

“오! 이제야 왔군, 최한 군. 하하하. 화장실을 너무 오래 갔다 온 거 아니야? 하하하.”

두 팔까지 벌리며 최한을 반기던 정우철이 최한이 다가오자 어깨를 두드리며 친한 척했다.

모두 계산된 행동이었다.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부드러우면서도 부하를 이끌어주는 존재.

요즘 시대가 원하는 리더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정우철의 가식적인 모습에도 주위에 있던 수많은 내빈들과 기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반응을 살피던 정우철의 입가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길드장들을 협박한 보람이 있군.’

자신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을 만끽하는 정우철이었다.

목적을 달성한 정우철이 최한의 어깨를 다시 한번 툭툭 치며 말했다.

“인사는 이 정도로 마치고, 우선 앉지.”

정우철이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소리가 사라졌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에 이상함을 감지한 정우철이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최한이 고개를 반쯤 기울인 채 인상을 쓰고 있었다.

“왜 친한 척이야, 미친놈이.”

최한의 목소리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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