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협회의 지시로 최한과 아이들이 던전으로 향했다.
협회에서 보내준 차량을 타고 학교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경기도 외곽으로 이동했다.
“던전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던전 같네.”
최한과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경기도 외곽에서도 가장 구석에 있는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게, 던전이 나타나기 전에도 열 채도 되지 않는 집만 덩그러니 있던 곳이었다.
그 시골 마을에 던전까지 나타나니, 몇 가구 남아 있지 않은 거주민들에게 보상을 주고 아예 이사를 시킨 것 같았다.
낮이기에 망정이지, 밤에 왔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뿐인 마을일 것 같았다.
민섭이 던전의 게이트로 보이는 포탈로 다가갔다.
“어? 진짜 얼마 되지 않긴 했나 보네. 관리실도 보이지 않네.”
원래라면 있어야 할 던전 관리실이 없었다.
던전을 소유하고 있는 길드이건 협회건 출입부를 관리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인원을 지정해 관리하게 지키는데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출입을 기록하는 출입서도 없었고, 관리를 하는 능력자나, 직원들도 없었다.
“협회에서 이미 공문을 보냈으니, 우리가 들어가는 것은 기록해 두었겠지.”
민섭이 아무런 의심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 뒤를 백설이 따랐다.
최한이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예상이 틀리면 좋겠지만… 제발 아니길 빈다. 사람이길 포기하지 마, 협회장….’
민섭과 아이들이 게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게이트 입구에 검은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들이 나타났다.
“혹시 모르니. 작업이 끝날 때까지 출입을 통제한다.”
“그건 그렇고 SSS급이 목표물이었다니. 정우철 그 사람도 정말 제정신은 아니라니까.”
“쉿. 고객의 정보를 발설하지 말라고. 그리고 목표는 SSS급이 아니라 나머지 두 학생이다. 안에 있는 암살부원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를 하고 나오면 협회에서 보낸 기자들과 증인으로 선택된 몇 놈들에게 정보를 주고 우린 빠지면 돼.”
* * *
펑!
펑!!
펑!!!!!
던전 내부에 묵직한 폭발음이 울려댔다.
최한이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몬스터들의 몸이 터져 갔다.
“끼아악!”
“껙!”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개구리 몬스터들.
녹색 피와 개구리 몬스터의 내장들이 바닥으로 퍼져 나갔다.
민섭이 서번트워치를 눌러 개구리 몬스터의 정보를 보았다.
# # #
이름 : 늪구리
나이 : 100
성별 : 남
종족 : 개구리족
능력치
근력 : B
민첩 : B
내구 : B
체력 : B
마력 : B
SKILL
[ 개굴 최면파 ]
울음소리로 상대의 뇌파를 조종할 수 있다.
*와루미의 늪지대에서만 발견된 희귀 몬스터이다.
최종 등급 : B
# # #
“기존 ‘와루미의 늪지대’ 던전에서만 발견되었던 개구리 몬스터야. 아무리 봐도 이곳은 늪지대가 아닌 것 같으니, 발견된 적 없던 완전 새로운 던전인 것 같아.”
민섭의 목소리가 울렸다.
백설은 관심도 없는지 바닥에 굴러다니는 개구리 몬스터의 내장을 발로 툭툭 차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장을 거리낌 없이 가지고 놀고 있는 모습에 민섭이 옥상에서 보았던 백설의 본 모습을 떠올렸다.
“웁!”
황급히 입을 막는 민섭.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때, 늪구리를 모두 해치운 최한이 다가왔다.
“입은 왜 막고 있는 거야? 맞다. 그것보다, 야, 김민섭! 왜 저번에 매점 가자니까 도망쳤냐? 괜히 친하지도 않은 저 왕싸가지 팔짱이나 끼고 도망가고.”
빠직.
늪구리의 내장을 차고 있던 백설의 얼굴이 구겨졌다.
백설에게 최한에 관한 것을 들은 직후라 최한과 마주쳤을 때 너무 당황한 나머지 그런 행동을 취했던 민섭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민섭이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 미, 미안.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어? 그것보다 팔짱은 안 낀 거 같은데….”
“내가 얼마나 당황한 줄 알아?”
“미… 미안해.”
“너희 사귀는 것도 몰랐잖아.”
“…….”
최한의 목소리에 민섭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나란히 서 있던 민섭과 백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
“…….”
민섭과 백설의 얼굴이 붉어졌다.
“으아악!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최한! 왜 얘기가 그렇게 돼!”
“나를 왕싸가지라 부른 것도 모자라서! 이런 비리비리한 남자랑 엮는 것이냐!”
갑자기 날아든 고성에 최한이 당황한 듯 볼을 긁적였다.
“아… 아니야?”
백설과 민섭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울렸다.
“아니야!”
최한이 어색한 웃음을 보였다.
“하…하…. 오해했네. 그럼 앞으로 잘될 가능성은?”
민섭과 백설의 얼굴이 악귀가 낀 것처럼 성난 표정으로 바뀌었다.
“없거든?”
“절대 없어.”
최한이 두 손을 들어 사과했다.
“쏴리.”
백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정말 네 녀석은 맨날 농이구나. 남자가 그리도 가볍기만 하니…. 왜 내가 저런 것을….”
백설의 목소리에 최한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저런 것을 뭐?”
훅 들어온 최한의 얼굴 때문에 백설의 숨이 멈췄다.
숨을 내뱉지 못하고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근육이 경직된 것처럼 어떤 움직임도 취할 수 없었다.
두근두근.
또다시 들릴 리 없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심장은 분명 지옥에 두고 왔을 터인데.
온몸을 잠식한 감정 때문에 백설이 마네킹처럼 굳어 버렸다.
어떤 반응도 대답도 돌아오지 않자, 최한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뒤로 뺐다.
“뭐야, 건전지라도 다 됐냐?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말지. 이런 연기나 하고. 암튼….”
최한이 백설의 이마를 손으로 톡 치며 미소를 보였다.
“옥상에서 못다 한 이야기는 여기 던전 다 클리어하면 이어 하자.”
자신의 말만 내뱉고 몸을 돌리는 최한.
백설의 턱 밑이 떨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1,000년 전의 기억.
언제나 어린애 취급하며 이마를 톡 두드리던 27번째 인간의 왕.
‘그건 내일 별을 보며 얘기하자. 밥 먹을 때는 일 얘기 하는 거 아니다, 설아.’
반달 모양이 되는 눈.
무표정일 때는 그렇게 날카로워 보일 수 없지만, 미소를 지을 때면 그 어떤 부드러운 빵보다도 촉촉하고 아름다운 향을 풍기는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은은한 미소를 지을 때면 언제나.
‘심장이 마치 새가 된 듯 날갯짓을 했습니다.’
백설이 멀어지는 최한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 *
최한과 아이들이 협회의 지시로 새로운 던전으로 들어간 직후.
디스 길드장 지경태가 이제는 업무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자신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처량한 모습.
잔뜩 쌓여 있어야 할 결제 서류들도 보이지 않았고, 이 시간이면 항상 차를 타오던 비서의 노크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깊은 수심이 한 줌의 숨이 되어 허공으로 흩어져 갔다.
그때.
똑똑!
들릴 리 없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에 앉아 있던 지경태가 놀라 몸을 일으켰다.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똑똑!
다시 들리는 노크 소리.
“누구….”
목소리가 문을 넘어가기도 전, 굳게 닫혔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끼이익.
작은 비명을 지르며 열린 문으로 단정한 차림의 여성이 들어왔다.
지경태가 문으로 들어온 여성을 보고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차이수….”
상상도 못 했던 인물이었다. 다시는 이곳에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인물.
어떤 일로 이곳에 온 건지는 알지 못했으나….
지경태의 얼굴에 누구보다 반가운 감정이 미소가 되어 드러났다.
“오랜…만이네…. 어쩐 일이야. 다시는 안 올 것 같았는데.”
차이수가 아직 어색한지 지경태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게요. 근데 아직도 나이에 안 어울리는 똥싼 바지 입고 다니시네요.”
“훗….”
많은 것이 담긴 웃음이 지경태의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우선 앉아서 이야기하지.”
사무실 중앙에 있던 손님맞이 소파로 안내했다.
지경태와 차이수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소파에 앉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감정이 피어오르는 것도 잠시.
협회장의 비서가 된 차이수의 등장에 지경태의 얼굴에 긴장감이 피어올랐다.
지경태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뗐다.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처럼 하고 나간 네가… 나를 보러 왔으니까.”
아직도 제대로 눈을 보지 못하고 있는 차이수였다.
차이수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고개를 들어 지경태를 바라보았다.
“대체 그때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저 대신 던전 공략을 갔던 재원이는 대체 어떻게 죽은 겁니까…?”
지경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몇 년을 꺼내지 않았던 기억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곳에 숨겨둔 그 기억에 심장이 조여 왔다.
“그걸 물어보려고 온 것이냐. 기사로 다 나간 그대로다. 내 부주의로, 내 잘못된 결단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고개를 돌리는 지경태 길드장이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A급이었던 재원이가… B급 던전에서 죽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지경태는 표정을 숨기려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을 이어갔다.
“분명 B급 던전이었지만, 그 안에서 이중 던전이라는 게 밝혀졌고… 그 안은 훨씬 더 강한 몬스터가 많았다. 탐사를 강행한 내 잘못이다. 이 얘기를 하러 온 거라면 당장 돌아….”
차분함을 유지하던 차이수의 목소리가 커졌다.
“거짓말하지 말고 제발 그때의 진실을 말해주세요! 시체도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팔 하나만… 다리 하나만 가져 나오는 게…. 다른 길드원들조차 무슨 일이 일어난 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길드장님이랑 협회장님만 그 자리에 있었잖아요!”
차이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적이 이어졌다.
차이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도 않으며 지경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지경태는 땅만을 바라보며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안경 속에 숨어 있던 차이수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길드장님의 말 한마디에 SSS급과 학생들의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땅을 바라보던 지경태의 고개가 들렸다.
“그게 무슨….”
“길드장님이 사실을 말씀해주셔야 저도… 말씀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직은 협회장의 직속 비서직을 맡고 있으니까요.”
“아이들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야!”
처음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낸 지경태의 모습이었다.
차이수가 고함에도 놀라지 않으며 작게 말했다.
“협회장이 SSS급에게 복수를 하려고 함정을 팠습니다. 아직 등록도 하지 않은 던전에 SSS급을 포함한 아이들을 보냈습니다. 저에게도 말하지 않은 작전이지만, 문밖에서 몰래 똑똑히 들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자나, 공간 단절 능력이 있는 킬러를 고용하는 것을요.”
지경태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어두워진 표정.
그러나.
그 얼굴에 담긴 감정은 공포도 분노도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세상을 잃은 표정이었다.
“똑같아…. 그때도… 이랬어. 재원이를 지키지 못했던 그때…. 그때도….”
“그게 무슨….”
지경태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게… 계획된 거였구나. 재원이와 떨어지게 된 이유가…. 분명 바로 옆에 있었는데…. 재원이가 보이지 않게 된 이유가…. 그거였구나….”
모든 것을 알게 된 차이수의 울음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지경태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켜주지 못했어. 나만 이상한 공간에 갇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에 갇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