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그 녀석은… 내가 죽였을 텐데….”
조일환 선생의 입에서 나온 믿지 못할 소리에 최한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죽였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선생님…?”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조일환이 테이블에 얼굴을 묻은 채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최한과 아이들이 눈을 마주치며 조일환의 상태를 살폈다.
민섭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일환이 떨어트린 음료를 걸레로 닦았다.
뒤처리를 끝내고 민섭이 자리에 다시 돌아왔을 때.
조금은 진정이 된 조일환이 얼굴을 들어 보였다.
“미안하구나. 나한테는 꽤 충격적인 일이라서….”
최한이 차분한 목소리로 조일환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주세요. 대체 박지호라는 사람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민섭이 조일환 선생의 눈치를 보며 최한을 말렸다.
“최한.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선생님 이제야 조금 진정이….”
“괜찮다, 민섭아.”
민섭의 말허리를 자르는 조일환의 목소리였다.
아이들의 시선이 조일환 선생의 얼굴로 옮겨졌다.
아까와 달리 조금은 편안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조일환 선생의 눈빛이 흔들렸다.
허공이 아닌 기억 속 저편에 숨겨두었던 그것들을 꺼내려 많은 감정들과 싸우고 있는 듯했다.
“우선 박지호라는 사람부터 설명해줘야겠구나. 그는 나와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란 내 유일한 친구였다. 마을에 동갑인 녀석이 그 녀석뿐이라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때부터 쭉 붙어 다녔지.”
최한과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이미 결말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이 이야기의 분위기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서로 다른 대학교에 붙은 뒤에야 처음으로 떨어지게 되었었다. 그렇게 오 년 정도, 서로 사는 게 바빠 만나질 못했었지…. 그러다 그 녀석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능력자 검사소였다.”
조일환이 묵혀 왔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목이 메었는지 새로운 물을 뜯어 목을 축였다.
최한과 아이들은 질문을 하거나 보채지 않고, 차분히 조일환의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오 년 만에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거기다 그날 그 녀석과 나 둘 다 검사에서 A급을 받아 그날 밤은 정말… 축제였지. 오랜만에 만난 회포도 풀고 밤새 둘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지.”
최한의 시선에 비친 조일환 선생의 얼굴은 그야말로 어린아이 같았다.
좋아하는 것을….
즐거운 것을 얘기할 때의 표정.
조일환 선생에게는 그때가 얼굴도 모르는 박지호라는 사람과 함께했던 얼마 안 되는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날부터 우리는 다시 함께했다. 같은 길드에 들어가 활약했지. A급에 둘 다 자연계 특성. 그야말로 탄탄대로였지. 일 년도 안 돼서 우리는 대형 길드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올 정도로 유명해져 있었어.”
조일환 선생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지갑의 안쪽을 뒤적이던 조일환이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최한과 아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어? 이건… 사진?”
스티커 사진 덕분에 사진을 알아볼 수 있게 된 백설이 말했다.
“그럼 이 사람이… 박지호?”
“외국인처럼 생겼네요?”
조일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진을 바라보았다.
어깨동무하고 있는 두 명의 사내.
4년 전쯤 찍은 조일환과 박지호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조일환은 지금과 달리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사진이 되었어. 이 사진을 찍고 얼마 뒤 박지호는 우리의 길드장을 죽이고 행적을 감췄다.”
최한과 아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래서 복수… 때문에 죽인 건가요?”
최한의 목소리가 울리고 누구보다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던 조일환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 그것 때문은 아니었어. 우리 길드장은 소문이 안 좋은 놈이었거든. 뇌물은 기본이고, 치안 유지 명목으로 상인들에게 돈을 뜯기도 했지. 사업적으로도 여기저기 돈 되는 거는 다 하는, 한마디로 뒤가 구린 놈이었어. 그런 녀석의 복수 따위를 내가 할 리 없지.”
이번엔 민섭이 물었다.
“그러면 왜…. 혹시 다른 이유가 있어서….”
조일환이 테이블에 내려놓았던 사진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를 죽이게 된 이유는 협회에서 내려온 임무 때문이었어.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만든 녀석을 협회에서 가만히 놔둘 순 없었지. 그래도 난 대화를 해보고 싶었어. 이유가 있었겠지… 하면서….”
최한과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이미 내가 알던 녀석이 아니었어. 마치 정신이 개조당한 것처럼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죽였어…. 아무리 임무였다고 해도 사람을 죽인 것은 분명 잘못된 거야. 그래서 난 매년 7월 5일이면… 하루라도 단식을 한단다. 조금이라도… 벌을 받기 위해….”
“7월 5일? 오늘이네요?”
민섭의 물음에 조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한의 시선이 조일환에게 향했다.
중간중간 많은 것이 잘리긴 했지만, 의미는 모두 전달됐다.
최한은 문득 예전에 조일환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D반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체육관에서 했던 그 말이.
‘자신이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언제나 자신보다 강한 존재는 어디엔가 꼭 있단다. 그러니, 내 제자는 자신의 힘에 취하는 어리석은 학생이 되질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상이 악으로 치부했더라도, 그것의 생명을 뺏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너희의 눈으로 판단해라, 너희의 눈으로 선택해서 행동하길 바란다. 그것이 몬스터가 되었건, 자신보다 약한 친구가 되었건….’
그때의 말이 떠오른 최한이 조일환 선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슬픔 아래로 무언가 억울함이 느껴지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있다. 우리에게 말하지 못한 그 말이….’
조일환의 표정을 보니 억지로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마 숨기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일환이 고개를 들어 최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부탁이 하나 있다. 만나고 싶다. 지호를….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꼭….”
절실함.
그런 것이 보였다.
눈에도 목소리에도 손짓에도.
그것을 확인한 최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선생님을 죽이러 올 거예요. 그럼 그때 암살단들 잡아서 만나러 가죠.”
“그래….”
조일환 선생이 들고 있는 사진을 한참을 바라보았다.
* * *
팔라딘과 성녀가 헌터 협회 건물에서 나온 직후.
성녀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협회 정문으로 바로 와요.”
뚝.
통화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팔라딘 토티가 성녀에게 물었다.
“누구와 통화한 거지? 우리는 이제 카사노의 정보를 모으러 가야 하는데?”
성녀가 손을 들어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였다.
까딱까딱!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성녀가 말했다.
“토티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달랑 사진 하나 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사해서 언제 카사노를 찾으려 하는 거죠?”
팔라딘 토티가 성녀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렇군.”
“그리고 한국 지리도 모르면서 무작정 돌아다니는 건 아주 바보 같은 짓이라고요. 한국 길이 얼마나 미로 같은지 알아요? 학교 가는 길에 내가 얼마나 길을 잃어버렸는지…. 어느 날은 점심이 돼서야 학교에 도착했었다고요.”
팔라딘 토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 점심이라고! 이런 무서운 나라였군. 밥때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길이 어려운 건가….”
“그것만이 아니라고요. 우리 같이 한눈에 봐도 외국에서 온 것 같은 사람들이 멍한 표정으로 길을 걸으면 이상한 사람들이 붙어 이것저것 물어본다고요! 저번에 잠깐만 말 좀 묻겠다는 사람한테 붙잡혀서 두 시간이나 땡볕에서 이상한 말을 들어줬다고요.”
“뭐! 두 시간이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이거… 귀가 남아나지 않겠구만. 역시 SSS급의 나라. 한국은 무서운 곳이었어….”
“그뿐만이 아니에요.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한 종이를 나눠주는데. 집에 도착하니 백 장이 넘는 종이를 들고 있었….”
빵빵!
성녀의 목소리를 지우는 경적이 들렸다.
성녀와 얼굴이 파랗게 질린 팔라딘 토티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그들이 서 있는 정문 바로 앞 도로에 검은 승합차 한 대가 보였다.
지이익!
검게 선팅된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며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에 난 상처.
매서운 눈매.
거대한 얼굴.
“뭐 하고 있어? 사람 불러 놓고. 얼른 타!”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청룡 길드의 길드장 이창식이었다.
“뭐지? 한국의 마피아 같이 생긴 사람은?”
성녀가 미소 지으며 팔라딘을 잡아끌었다.
“내가 부른 사람이에요. 우선 타서 이야기해요.”
성녀와 팔라딘 토티가 승합차의 뒷문을 열어 차에 탑승했다.
“야, 꼬맹이.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 줄 알고 부른 거야?”
자리에 앉기 무섭게 운전석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넘어왔다.
성녀가 신경 쓰지도 않고 차분하게 안전벨트를 맸다.
아무 반응이 없자 이창식이 고개를 뒤로 쑥 내밀며 소리쳤다.
“이봐. 꼬맹이! 어른이 말을 했으면 대답을…. 윽!”
이창식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후….”
성녀가 이창식의 얼굴을 때린 오른손에 바람을 불어 식히는 시늉을 했다.
“한 번만 더 꼬맹이라 부르면 다음에는 진짜 코 박살 낼 거예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팔라딘이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연신 입 모양으로 ‘주여’를 연발했다.
깊은 한숨을 내쉰 성녀가 코를 부여잡고 있는 이창식을 보며 말했다.
“저번에 구해준 거 보답한다고 했잖아요. A10 탑 앞에서.”
룸미러로 코의 상태를 보던 이창식이 천천히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언제? 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너무도 빨리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이창식이었다.
‘생각났다. 그 파란 용 새끼랑 싸울 때….’
이창식이 꿍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암튼. 그건 그렇고 대체 뭐 때문에 나를 부른 거야? 길드원 보낸다니까, 싫다고만 하고.”
“극비로 조사를 좀 하고 있어서요. 사람들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되는 사항이라….”
순식간에 바뀐 목소리와 분위기에 이창식이 얼굴에서 손을 내렸다.
“굉장히 큰일인가 보지? 바티칸을 지켜야 할 팔라딘도 동행한 것을 보니.”
팔라딘의 존재를 알아챈 이창식이었다.
성녀와 팔라딘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고 있었군요.”
“내가 어디 어중이떠중이 능력자인 줄 알아? 대한민국 5개 대형 길드의 마스터라고. 그건 그렇고… 대체 무슨 일이지?”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사람?”
“네. 안드레아 카사노라고….”
이창식의 얼굴이 구겨졌다.
“어? 그 녀석은 죽은 걸로 기억하는데….”
“살아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벌어진 미제 살인 사건 중에 목이 잘린 채 얼굴을 찾을 수 없는 시체가 발견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건… 안드레아 카사노의 수법입니다.”
차분히 성녀의 말을 듣고 있던 이창식이 눈을 감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완전 큰 사건에 말려든 기분이군.”
성녀가 이창식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이창식의 입장에서만 보면 너무도 강압적으로 사건에 휘말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미 발을 담그게 된 것이니까.
“뭐… 괜찮아. 네 말대로 사람이 도움을 받았으면 갚아야지. 내 목숨 살려줬는데 이 정도 일 하나 같이 못 해줄까.”
이창식의 목소리에 성녀와 팔라딘 토티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창식이 성녀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뭘 도와주면 되지? 인력으로 정보를 끌어모아 줘? 아니면, 길드원들을 풀어서 피해자들 조사부터 할까?”
이창식은 생각했다.
이렇게 큰 사건에 자신을 부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대한민국 5대 길드장.
인력이든 무력이든 자금력이든….
연고지도 없는 성녀가 보았을 때 자신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 테니까….
성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운전! 운전을 해주시면 됩니다!”
“뭐…라고?”
“운전만 해주시면 됩니다! 한국은… 길이 너무 헷갈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