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깡!!!!
“으악!!!!”
펑!!!!!
“으악!!!!”
검이 부러지는 소리와 암살자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경비원과 처음 나타난 암살자들은 이미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최한이 어둠 속에서 튀어나오는 암살자들을 주먹으로 날려 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펑!!!
펑!!!
펑!!!!
튀어나오던 암살자를 처치하다 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최한이었다.
“이런 전개면 거의 대부분 꼭대기 층에 잡혀 있겠지?”
더는 암살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민섭이 최한에게 다가갔다.
“국룰이지.”
최한이 로비에 있는 암살자들을 모두 쓰러트릴 동안 민섭과 백설은 그저 뒤에서 구경만 했다.
구경만 했다는 게 힘을 보태기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도와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한의 힘에 비하면 암살자들의 힘은 턱없이 약했고,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느낌도 없었으니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하… 이 새끼들, 이거 꺼 놨네.”
비상구를 발견한 백설이 문의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여기 열려 있군.”
최한이 한숨을 쉬며 백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귀찮게 걸어가야겠네.”
이 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최한과 아이들이 걸음을 옮겼다.
이 층.
삼 층.
사 층.
오 층….
십 층까지.
십 층까지 연결된 계단 통로에서 간간이 숨어 있던 암살자가 공격을 해오긴 했지만, 모두 최한의 주먹 한 방에 벽을 뚫고 들어가 기절해 버렸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최한이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어째 이상한데? 왜 이리 쉬워?”
로비에서의 전투를 제외하면 너무도 쉽게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로비에서도 그렇게 힘들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쉬우면 좋은 거 아니야?”
뒤따르던 민섭의 목소리가 최한에게 향했다.
“아니, 쉬워도 너무 쉬워. 적들도 우리를 막으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목적지를 알려주는 것처럼 튀어나오기만 하고….”
“에이. 그건 너무 갔다.”
민섭의 말에 최한이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눌렀다.
“뭐… 그렇겠지? 가자.”
십 층으로 연결된 문을 지나자, 긴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복도의 맨 끝.
유일하게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이 보였다.
최한과 아이들이 망설임 없이 문을 향해 나아갔다.
쾅!
최한이 강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뭐야… 여긴….”
새하얀 공간이 나타났다. 바닥과 벽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공간.
어쩌면 로비보다 더 큰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넓은 공간이었다.
“천장이 높아서 그런가… 엄청 커 보이네.”
새하얀 LED 조명이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 미터 남짓한 간격으로 붙어 있는 LED 등이었다.
넓은 공간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때.
“이거 손님이 오셨군.”
최한 일행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의 벽이 열리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최한이 벽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며 말했다.
“뭐야? 외국인?”
암살자와 같은 검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입과 코를 가리던 복면을 턱 아래로 내려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높게 솟은 콧날, 청록색에 가까운 눈동자.
동양인과 확연히 구별되는 서구적인 이목구비.
그저 외국인 정도로 알아본 최한과 달리 민섭은 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저 사람이 아드레아 카사노야. 이탈리아 마피아 보스이자 S급 능력자…. 그런데… 진짜 살아 있었네….”
민섭의 목소리에 카사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틀렸어. 아드레아 카사노는 죽었어. 이제 그 이름으로 살기 싫어졌거든? 매일 앉아서 지령이나 내리는 삶보다… 이 나라에서 사람들의 목을 자르는 이 생활이 더 흥미롭게 느껴졌거든.”
유창한 한국어 실력보다 진심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그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터벅터벅.
최한이 걸음을 옮겨 카사노와의 거리를 좁혔다.
“아… 너구나. 사람 목 자르는 게 취미인 새끼가…. 내가 너 보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참 다행이야….”
입 모양이 보일 정도까지 간격이 줄어든 최한과 카사노였다.
말을 마친 최한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작게 미소 지었다.
“기대해. 절대 편하게 죽이지 않을 거니까.”
오싹-.
그 미소를 눈에 담고 있던 아드레아 카사노의 몸이 떨려왔다.
S급인 자신이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이 느껴졌다.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할 때도 느껴지지 않던 그 긴장감이 처음으로 느껴졌다.
목숨을 앗아가겠다는 선전 포고보다 저 어린 동양인이 짓고 있는 미소가….
귀신의 탈을 쓴 것 같은 저 미소가….
더욱….
무서웠다.
마른침을 삼키던 카사노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대단해! 네가 SSS급인가 보군. 이렇게 겁에 질린 적은 처음이야. 하지만.”
순식간에 차갑게 식은 그의 얼굴 표정이었다.
카사노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딱!
카사노가 걸어 나왔던 벽이 완전히 열리기 시작했다.
벽 뒤에 숨겨져 있던 장소가 나타났다.
실험실처럼 보이는 연구 시설이 나타났고, 색색의 물이 담긴 수조와 처음 보는 기계 장치들이 나타났다.
“어! 저기! 선생님이 있어!”
민섭의 목소리와 손이 향한 곳으로 최한의 시선이 옮겨졌다.
분홍색 물이 가득 차 있는 수조 앞.
의자에 결박당해 있는 조일환 선생의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아직 기절해 있는 듯 아이들의 목소리에도 조일환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조일환의 모습이 가려졌다.
어느새 조일환의 앞으로 이동해 있는 카사노였다.
“오늘을 위해 4년이란 시간을 준비했는데, 겨우 너희들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지.”
최한의 기에 짓눌린 기색은 벌써 다 사라지고 여유로운 표정까지 짓고 있는 카사노였다.
최한이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대단해. 중압감에 얼어 버리는 X밥들이랑은 다르구나. 역시 조지는 맛이 있겠어.”
카사노가 비릿한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칭찬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군. 하나 네 말대로 되지는 않을 거야, SSS급. 우리는 네가 낮에 잡은 브로커 따위들하고는 비교가 안 되니까.”
낮에 있던 일까지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이야기가 전해질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빠르게 알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신기하네. 그 정도 알고 있으면 우리가 쳐들어올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을 텐데, 잘도 도망 안 가고 있었네?”
“당연히… 알고 있었지. 일부러 이곳으로 찾아올 수 있게 한 것도 내 계획이었으니까.”
카사노가 주머니에서 GPS 송신기를 꺼내 보였다.
“그건 선생님이 가지고 있던….”
최한의 미간이 구겨졌다.
너무도 쉽게 이곳으로 당도했다고 생각했다.
“너, 일부러 우리를 이곳에 들여놓은 거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나는 너희가 아니라 다른 놈들을 이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계속 정보를 흘렸거든. 전 협회장의 휴대폰에 있던 브로커 놈들의 아지트도 내가 일부러 흘린 거야.”
“다른 놈들이라고? 우리가 아니라?”
“뭐… 너희도 협회와 연관되어 있다면 그 녀석들도 이 위치를 알아냈겠지.”
“그게 무슨….”
그때.
뒤쪽에서 큰 폭발 소리가 들렸다.
쾅!!!!
최한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깜짝이야. 갑자기 공격해 와서 나도 모르게 힘을 썼잖아.”
“아저씨는 적당히라는 걸 몰라요?”
부서진 문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창식과 성녀가 보였다.
최한과 눈이 마주친 성녀가 반가움에 또다시 최한에게 몸을 던지려 했다.
최한이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씁! 지금은 아니야. 분위기 파악하자.”
용수철처럼 튀어 나갈 준비를 하던 성녀의 얼굴에 실망감이 가득 찼다.
최한의 시선으로 성녀의 뒤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팔라딘 토티의 모습이 보였다.
“아드레아 카사노. 역시… 살아 있었군.”
팔라딘 토티를 발견한 카사노가 손을 오므리는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며 팔라딘을 자극했다.
“오랜만이군, 팔라딘. 기다렸다네. 쥐암페.”
팔라딘 일행이 최한의 곁으로 다가왔다.
“뭐… 돌긴 했지만 결국, 도착지는 하나였군.”
팔라딘 토티의 목소리에 최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카사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 모두 저 녀석 손에서 놀아난 거야.”
자신이 생각한 인원들이 모두 모이자 카사노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원래 초대한 녀석들은 저 녀석들이야. 팔라딘과 성녀. 팔라딘이라면 목이 잘린 시체를 알아보고 나를 잡으러 올 줄 알았지.”
팔라딘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 녀석은 한국에 대해 모르니… 협회의 도움을 받을 거라 생각했지. 드디어… 드디어… 수년 동안 준비한 계획이 한 번에 이루어진다.”
카사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쪽에 있던 수조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작은 기계음을 내며 조명이 비치자 수조 속에 있던 물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창식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울렸다.
“뭐야…. 사람이잖아?”
분홍색 물이 가득 찬 수조 안에 알몸을 한 체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살아있는지 죽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눈을 감고 작은 움직임도 취하지 않은 채 물속에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 잠깐 저 사람은….”
민섭의 목소리에 최한도 수조 안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본 적 있는 얼굴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실물로는 처음이지만, 사진으로는 본 적 있던 인물이었다.
“박지호….”
최한의 입에서 박지호의 이름이 나오자.
카사노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네놈이 어떻게 내 동생의 이름을 알고 있는 거지?”
“뭐? 동생이라고? 설마….”
최한의 머릿속으로 작은 퍼즐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날짜가 지난 의뢰서.
성녀와 팔라딘을 유인한 이유.
카사노가 정보를 푼 이유.
조일환 선생을 산 채로 이곳에 잡아 놓은 이유.
암살 집단의 보스가 이렇게 쉽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
마지막으로.
왜 박지호가 죽은 오늘 이런 사건들이 모두 벌어진 것인지.
최한이 카사노를 보며 말했다.
“너… 박지호를 살리려고… 하는 거냐?”
최한의 목소리에 팔라딘을 포함한 모든 인원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최한의 목소리에 카사노의 얼굴에 큰 미소가 지어졌다.
“정답이야. 돈과 과학의 힘으로 죽었지만, 죽지 않은 상태로는 만들 수 있었지. 하지만 눈을 뜨게 하진 못했어. 그래서 성녀의 힘이 필요했지.”
카사노가 수조를 끌어안으며 얼굴을 묻었다.
“성녀의 힘으로 동생을 살리고, 언제나 나를 괴롭혔던 팔라딘을 죽이고. 내 동생을 이렇게 만든 조일환을 죽이는 것…. 모두 하루 만에 이루려고 내가 얼마나 머리를 썼는지 아느냐?”
“미친놈.”
작게 울린 목소리에 수조에 얼굴을 묻고 있던 카사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백설이었다.
그 장소에 있던 모든 시선이 백설에게 모였다.
“인간 주제에 이미 강을 건넌 망자를 살리려 하다니… 정신병자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지껄이는군.”
카사노가 험악한 표정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이내 백설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아니… 당연한 건가. 너 같은 꼬맹이가 이 원대한 마음을 이해할 수 없겠지.”
카사노의 시선이 최한을 향해 움직였다.
“파리가 꼬이긴 했지만, 상관없어. 네 녀석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우리의 능력이면 이길 수 있으니까.”
카사노의 말이 끝나자마자.
“으아악!!!”
이창식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