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창식의 어깨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더니 바닥으로 꼬꾸라졌다.
쿵!
이창식이 쓰러지자 모여 있던 일행들 모두 전투태세를 취했다.
S급 최강이라 불리던 팔라딘의 눈으로도 보지 못했다.
팔라딘이 소리쳤다.
“성녀! 어서 상처 치료하고, 나머지는 이창식의 주위를 둘러싸 방어진을 만든다!”
팔라딘의 목소리에 최한을 포함한 아이들이 이창식의 주위를 빙 둘러쌌다.
서로에게 등을 맡김과 동시에 이창식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다.
팔라딘이 작은 목소리로 최한에게 물었다.
“너에겐 보였나? 나는 보지 못했다. S급의 스피드가 아니야.”
최한이 눈동자를 움직여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아니. 나도 못 봤어.”
최한의 목소리에 민섭과 성녀가 마른침을 삼켰다.
SSS급의 눈으로도 담지 못하는 스피드라면 이미 승산은 없다.
팔라딘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너의 눈으로도 좇지 못하는 스피드라니. 그럼 승산은….”
“아니. 스피드가 아닐 거야. 그렇지, 설아?”
최한의 목소리가 백설에게 향했다.
백설이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눈으로도 공격하는 걸 못 봤어. 이건 직접 몸으로 공격한 게 아니야. 보나 마나 희귀한 특성이겠지. 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최한이 턱을 매만지며 이창식을 공격한 특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카사노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내가 말했잖아. 너희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들을 이길 수는 없다고. 그럼… 소개하도록 하지. 우리 암살단의 간부들을.”
카사노의 앞으로 순식간에 다섯 명의 간부가 나타났다.
다른 암살자들과 다르게 하얀색 옷을 입고 있는 인원들.
간부들이 눈만 보이도록 제작된 복면을 아래로 내려 얼굴을 드러냈다.
“어! 저 사람들은….”
간부들의 얼굴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민섭이었다.
“뭐야? 아는 얼굴이야?”
최한의 목소리에 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O브에서 본 적 있어. 세계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 S급을 받은 능력자지만 헌터 협회에서 제명당하고 국가에서까지 추방당했다는 능력자.”
민섭의 뒤로 팔라딘 토티의 설명이 이어졌다.
“세네갈의 젬바바. 중국의 이레이. 스웨덴의 하삭. 이탈리아의 하투소. 한 명은 누군지 모르겠군. 저놈이 아마 이창식을 공격한 놈일 거야…. S급의 존재가 국력이라 칭할 만큼 중요해진 상황에서도 저들은 나라에서 버림받았어. 능력자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저들은 그저 살육을 위해 일반인들까지 죽였으니까.”
최한의 시선이 간부들의 얼굴로 향했다.
피부색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지만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이창식의 치료를 마친 성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킬을 썼어. 아마 모두와 대화가 통할 거야.”
최한이 간부들을 보며 말했다.
“범죄자 새끼들 다 모였네. 눈깔에 아주 훤히 쓰여 있어. 살인자라고.”
최한의 목소리에 간부들이 피식 웃음을 보이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는 게 신기하군. 성녀의 능력인가?”
“뭐든 상관없잖아? 우리는 사람만 죽이면 되니까.”
“대장이 성녀만 빼고는 다 죽여도 상관없다고 했지?”
“SSS급의 목은 내 거야. 건들지 마라.”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니 더 가관이었다.
최한이 깊은 한숨을 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분리수거도 안 될 쓰레기 놈들이네.”
“이봐! SSS급! 여길 봐라!”
카사노의 목소리에 최한의 시선이 움직였다.
카사노가 조일환 선생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기절해 있던 조일환 선생이 언제 깨어난 건지 눈을 뜨고 있었다.
“어! 쌤 일어났네요.”
최한의 목소리에도 조일환 선생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능력이 뭔지 아나, SSS급? 내 능력은 바로 스킬 봉인…. 정확히는 특성 지우기라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네가 말 안 해도 딱 보여. 선생님이었으면 중력 스킬만 사용해도 도망칠 수 있을 텐데. 아마 네 손이 닿아 있어서 스킬을 봉인당한 거겠지.”
“훗…. 아까부터 느꼈지만 머리가 꽤 잘 돌아가는군. 그럼 지금 상황도 금방 이해하리라 믿네. 지금부터 어떤 일이 일어나도 움직이지 말게. 안 그러면… 이 녀석의 머리통이 터져 버릴 테니.”
조일환의 목숨으로 협박을 하는 카사노였다.
“어차피 죽일 거잖아. 그런데 지금 선생님의 목숨으로 내 움직임을 멈춰 놓겠다고?”
보기보다 강하게 나오는 최한의 태도에 카사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최한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들었다.
“뭐… 선생님을 죽일 수는 없으니까. 잠시 놀아나 주지.”
순순히 따르는 최한의 모습에 카사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럼… 가서 다 죽이고 성녀만 끌고 와!”
카사노의 목소리가 울리자 간부들이 순식간에 몸을 이동했다.
S급의 암살자 간부들이 최한을 제외한 인원 중 각각 한 명의 상대를 골라 공격했다.
최한이 모든 공격을 지켜보았다.
걱정되지 않았다.
S급의 암살자들도 강하긴 하겠지만, 팔라딘을 포함한 이창식과 성녀도 충분히 강했으니까.
거기다 백설은 SSS급인 자신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니 작은 걱정도 되진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명.
B급 능력자인 김민섭만은 예외였다.
최한의 시선이 김민섭을 향해 멈춰 있었다.
“윽….”
어찌어찌 첫 공격은 무사히 막아냈다.
하지만.
“젠장….”
S급의 공격을 막은 팔을 내리자 민섭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공격을 막았어도 S급과 B급의 차이는 극명했다.
가드한 팔을 뚫고 들어오는 충격.
민섭이 코피를 닦으며 심호흡을 했다.
‘정신 차리자. 도움이 되는 거야. 걸림돌이 될 수는 없어.’
자신 때문에 최한이 움직이게 되면 조일환 선생의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알기에 민섭은 더욱더 강하게 자신을 채찍질했다.
민섭의 상대는 세네갈의 젬바바.
2미터가 넘는 장신의 소유자로 자연계 특성인 바람을 다루는 능력자였다.
민섭도 젬바바의 특성은 알고 있었다.
상성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보와 약점을 알고 있다 해도 S급과 B급 사이에는 절대 메울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민섭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각을 다투는 전투로 인해 자신을 도와줄 인원은 없다.
그나마 도움을 기대할 만한 이는 악마의 힘을 가진 백설이었지만, 어째선지 백설이 땅만 보며 전투를 하고 있지 않아 그마저도 도움이 되긴 힘들었다.
‘내가 이겨 내야 해.’
민섭이 정신을 집중해 스킬을 발현했다.
전투에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이것은 실전.
학교에서 배우던 때와 달리….
진짜 목숨이 걸려 있는 전투였다.
민섭의 양손으로 작은 공만 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라색 불꽃.
시전자가 의지로 끄지 않으면 끝없이 타오르는 화염 스킬이었다.
보라색 불꽃을 확인한 젬바바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딱 보아도 낮은 등급 같은데. 희귀한 특성을 가지고 있구나. 보라색 불꽃이라니…. 최상위 화염계 특성인 것 같군. 등급만 높았으면 좋았을 것을….”
젬바바가 빠르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민섭의 코앞까지 당도한 젬바바가 주먹에 바람 특성을 주입해 토네이도를 만들어 냈다.
펑!!!!!
굉음이 울리고 민섭이 순식간에 벽 끝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전투를 하고 있던 인원들과 최한의 시선이 민섭에게 향했다.
모두 알고 있었다.
누구든 도와주지 않는 한 민섭은 승리는커녕 시간을 끌 수조차 없을 것이란 것을.
몸이 축 늘어진 채 기절을 한 것인지 벽에 처박혀 있는 민섭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주먹을 날린 젬바바의 얼굴에 아쉬운 표정이 지어졌다.
“나만 너무 쉽게 끝났잖아? 난 전투를 하고 싶었는데. 한 방에 죽어 버리다니. 뭐, 이 허탈한 마음은 SSS급을 상대하면서 풀어야… 으악! 이게 뭐야!!!”
젬바바가 자신의 배에서 타고 있는 보라색 불꽃에 놀라 소리쳤다.
손으로 불길을 잡으려 때려 봤지만 전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런! 언제 붙여 놓은 거야, 저 자식!”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민섭이었다.
민섭은 기절하기 전, 첫 한 방을 맞을 때부터 이미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공격당하는 동시에 불꽃을 젬바바의 배에 던져 넣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최소한 다른 이들에게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이거 왜 안 꺼져!”
젬바바가 바람 특성을 사용해 불꽃을 끄려 해봤지만, 아무리 강한 바람을 사용해도 불꽃은 전혀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전자가 기절하면 당연히 사라져야 하는 거 아니야? 대체 왜 안 꺼지는….”
젬바바의 시선이 벽에 박혀 있는 민섭에게로 옮겨졌다.
분명 작은 움직임도 없었다.
몸은 축 처져 있고, 고개도 땅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민섭의 오른 주먹이 강하게 쥐어져 있었다.
기절한 게 아니었다.
버티고 있었다.
정식이 아득해지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최대한 버티고 있었다.
불꽃이….
자신의 특성이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불꽃 때문에 젬바바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피부로 느껴지는 뜨거운 고통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빨리 불꽃을 꺼야 한다.
젬바바가 빠르게 민섭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 개자식! 정신력은 인정하마. 그러니 이제 죽어!!!”
젬바바의 주먹이 쓰러져 있는 민섭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절체절명의 순간.
“하… 포기할게. 역시 안 되겠다.”
최한의 작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콰과과광!!!!!
다른 타격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굉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한쪽 벽면이 완전 움푹 파일 정도로 박살 나 있었다.
그 잘게 부서진 벽면으로 젬바바가 처박혀 있었다.
그 앞으로 최한의 모습이 보였다.
“어이, 카사노. 미안하다. 약속 못 지켜서. 난 너희 같은 놈들이랑 달리 눈앞에서 친구 죽는 꼴은 못 보겠다.”
조일환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넌…. 윽….”
조일환의 머리를 쥐고 있던 카사노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뭐… 필요 없어. 어차피 네놈까지 싹 다 죽여 버리려 했으니까.”
카사노의 모습이 사라졌다.
조일환 선생이 고개를 움직여 사라진 카사노를 찾았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조일환이 최한을 향해 소리쳤다.
“최한! 위험해!”
조일환의 목소리에 최한이 반응하려 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워프!”
암살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순식간에 카사노와 암살자들 전원이 최한의 주위로 나타났다.
카사노의 손이 최한의 등에 닿고….
암살자들의 손이 사신의 낫이 되어 최한의 목숨을 뺏으려 했다.
쿵!!!!!!
동시에 울리는 타격음이 하나로 합쳐져 최한의 주먹에 버금가는 울림을 만들어 냈다.
팔라딘을 포함한, 전투를 벌이던 인원들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과 싸우던 암살자들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갑자기 최한이 공격당했다.
카사노를 포함한 암살자들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다.
확실히 감촉이 있었다.
특성을 주먹에 담아 제대로 급소를 찔렀다.
카사노의 능력으로 특성과 마력을 동시에 봉인했으니.
온전하게 순수한 방어력으로만 공격을 받아 냈을 터였다.
아무리 강한 SSS급이더라도.
S급 네 명의 특성 공격을 받고 살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암살자들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뭐야? 왜 쪼개고 있어, 너희?”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담담한 목소리.
아니, 작은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암살자들의 시선으로 코를 파고 있는 최한의 얼굴이 보였다.
“물었잖아, 뭘 쪼개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