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어째서….”
멀쩡한 최한의 모습에 간부들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카사노의 능력으로 특성을 지웠을 터인데….
믿을 수 없었다.
버티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특성과 마력을 지웠어도 방어력이 높아서 죽음을 모면하고 고통을 버티는 정도라면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이건….
코를 파고 있는 최한의 모습.
“물었잖아. 뭘 쪼개 냐고!”
최한의 목소리에 간부들의 몸이 떨려왔다.
내질렀던 주먹을 천천히 다시 가져왔다.
등에 손을 대고 있던 카사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어째서냐! 특성은 지웠을 텐데. 아무리 방어력이 높더라고 S급 6명의 공격을 받고도 멀쩡하다니!”
최한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참나. 바보들 아니야? 나 아직 미각성자야.”
카사노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나 특성도 스킬도 없어. 그냥 몸뚱이 하나로 세계 최강이야.”
최한의 목소리가 울리자 암살단 간부들이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질질 끌며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카사노도 최한의 등에서 손을 떼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잔뜩 상기된 얼굴로 카사노가 말했다.
“젠장… 겨우 날파리 하나 때문에 일을 그르치게 생겼군….”
최한이 입꼬리를 쭉 찢어 올리며 크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은 피에로의 모습과 흡사했다.
최한이 어깨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너희 다 뒈졌어. 금방 끝내줄….”
콰과과광!!!!!
최한의 목소리를 지우는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간부들을 처리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던 최한이 움직임을 멈추고 눈만 껌뻑껌뻑 거렸다.
“뭐지…?”
최한의 시선이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벽으로 움직였다.
차츰 연기가 사라지고 벽이 드러났다.
벽에 박혀 있는 암살단 간부와 함께.
“뭐야…. 쟤 언제 날아갔어….”
최한이 다시 자신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간부들에게 시선을 옮겼을 때.
그가 왜 정신을 잃고 벽에 처박혀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백설의 모습이 보였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최한은 그녀가 이곳으로 이동한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깜짝이야. 언제 온 거야, 이 녀석! 아까는 가만히 멍만 때리고 있더니.”
간부인 중국의 S급 이레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설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시선이 백설에게 모여들었고, 백설의 손에 무언가 들려 있는 것을 알아채었다.
이레이가 사진을 보며 말했다.
“뭐야? 그 쓰레기를 다시 주은 거야?”
“쓰레기라고….”
“쓰레기지. 내가 몇 번이나 밟았는데. 그러게 누가 흘리라 그랬나? 자기 물건은 자기가 잘 간수해야 하는 거야.”
조금 뒤의 미래를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이레이가 더욱더 백설을 자극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자기 물건은 자기가 잘 간수해야지.”
백설이 너덜너덜해진 사진을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들었다.
백설의 얼굴에 한쪽 입꼬리만 말아 올리는 웃음이 지어졌다.
“아무도 살아서 나갈 생각하지 마라. 지금부터 목숨 잘 간수해 봐.”
오싹-.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박감이 온몸을 잠식해 왔다.
SSS급의 강한 힘에 놀랐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끝이 없었다.
아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개미가 아무리 물어도 악어의 가죽을 뚫지 못하는 것처럼.
종족이 다른 생물과 대치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미 눈이 돌아간 백설을 보고 있던 최한이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맞다. 말을 잘못했다, 정정할게. 나 최강 아니야. 쟤가 최강이야.”
최한의 목소리가 백설을 향하자.
암살자뿐 아니라 같은 편이었던 팔라딘과 이창식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민섭을 치료 하고 있던 성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배… 백설이가 최강이라고?”
어느 정도 회복한 민섭이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 어… 뭐냐…. 제대로 싸워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마… 백설이가 훨씬 센 거 같은데….”
민섭의 목소리에 팔라딘과 이창식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당연한 반응이다.
SSS급.
그 힘을 바로 코앞에서 봐 왔던 그들이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S급 6명이 힘을 모아도 이기지 못했던 드래곤을 순식간에 세상에서 지워 버리고.
전설급 아이템 엑스칼리버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릴 정도로 급이 다른 강함을 보여 주었던 최한이었다.
팔라딘과 이창식이 전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설에게 시선을 옮겼다.
터벅….
터벅….
백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암살자들을 데려가려 지옥에서 내려온 저승사자의 발걸음 소리 같았다.
암살자 간부 이레이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개의 검을 뽑아 백설에게 달려들었다.
“그딴 게 사실일 리 없어! 죽어라!!!”
수많은 사람의 피를 머금은 날카로운 검이 백설의 눈앞까지 당도했다.
이레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분명 동공 앞까지 검이 나아갔는데….’
우걱!
백설의 손이 뱀의 얼굴처럼 변하더니 아레이의 상체를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사선으로 몸이 잘린 이레이.
이제는 시체가 되어 버린 그 몸뚱어리가 땅으로 꼬꾸라졌다.
쿵!
지켜보고 있던 이들 모두 어떤 반응도 내뱉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거나 감탄을 하거나 분노를 표출하거나.
그 어떤 것이라도 표현을 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백설을 적으로 두고 있던 간부들과 카사노의 머릿속에 단 한 가지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온몸으로 보내는 신호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움직였다.
도망쳐야 한다.
남아 있던 간부들이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살아서 나갈 생각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백설의 목소리가 울리고.
“으아악!!!!”
우걱.
우걱.
남아 있던 암살단 간부들이 살아 있는 채로 뼈까지 씹혀 잡아먹혔다.
“와….”
“맙소사…. 저런 특성은 처음 봐….”
순식간에 S급 4명을 해치운 백설의 모습에 팔라딘과 이창식이 멍한 표정으로 백설을 바라보았다.
손에 묻은 피를 털던 백설이 몸을 돌려 카사노를 바라보았다.
“이제 너만 남았다.”
터벅.
터벅.
백설이 카사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카사노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
4년 동안 준비했던 계획조차 머릿속에서 떠난 지 오래다.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처참히 잡아먹히는 부하들을 본 순간.
남아 있던 일말의 희망조차 함께 죽어 갔다.
뒷걸음질 치던 카사노의 등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더는 뒤로 가지 못했다.
이미 벽 끝까지 도착한 카사노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떨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설이 카사노의 앞에 멈춰 섰다.
“그럼… 죽어.”
백설의 오른손이 거대한 뱀의 얼굴로 변해 크게 입을 벌렸다.
“키야악!!!!”
“안 돼!!! 살려줘!!!!”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던 뱀이 카사노를 덮쳤다.
그때.
툭.
무언가 백설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그리고.
“잠깐만, 백설아.”
그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반쯤 카사노를 입에 넣었던 뱀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 녀석은 잠시만…. 물어봐야 할 게 있어서.”
최한이었다.
어느새 백설의 바로 뒤에 다가와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이미 소중한 것을 잃은 분노 때문에 아무리 최한의 부탁이더라도 백설은 멈출 수가 없었다.
“싫어. 죽일 거다.”
움직임을 멈췄던 뱀이 다시 카사노를 잡아먹기 위해 움직였다.
“다시 찍어줄게.”
최한의 목소리에 뱀의 움직임이 멈췄다.
“사진 다시 찍어줄게. 이번엔 제대로 찍자. 웃으면서.”
최한의 목소리에 뱀이 반쯤 입에 넣었던 카사노를 살려 주었다.
백설의 손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백설이 고개도 들지 못하고 구석으로 이동해 벽을 보고 쪼그려 앉았다.
최한이 그런 백설의 모습이 귀여운지 작게 미소 지었다.
카사노는 이미 겁에 질려 어떤 움직임도 보이고 있지 않았다.
최한이 조일환에게 다가가 몸을 결박하고 있던 것을 풀어주었다.
“고맙구나.”
조일환을 바라보고 있는 최한의 표정이 다른 날과 달랐다.
그것을 발견한 조일환이 무언가를 느끼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최한의 입에 떨어졌다.
“이제 진짜 진실을 밝혀주세요. 선생님.”
“알고 있었구나.”
“이상한 게 너무 많았거든요.”
고개를 끄덕이던 조일환이 뒤쪽에 있던 수조로 시선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지호는… 살인자가 아니야. S급 길드장을 죽인 이는 나다. 우리는 협회의… 암부 소속이었지.”
조일환이 수조에 손을 대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의 임무는 암살단의 본부를 알아내고 리더를 죽이는 거였지.”
“설마….”
“그래. 4년 전, 7월 5일. 박지호가 나를 죽이려 의뢰한 것은 작전이었다.”
충격 때문에 온몸이 굳어 있던 카사노가 정신을 차렸다.
놀란 이는 카사노뿐만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최한과 민섭… 팔라딘의 일행까지 모두, 드디어 마주한 진실에 귀를 더 크게 열었다.
“나를 죽이는 의뢰를 보낸 지호는 우선 브로커를 만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당일 밤. 내가 있는 장소에 숨어 있었다. 협회에서 지원이 오길 기다리며….”
가만히 듣고 있던 최한이 물었다.
“협회에서 지원이 왔다면, 저분은 왜 죽은 거죠…?”
수조 안에 있는 박지호를 바라보던 조일환의 눈동자에 슬픔이 차올랐다.
“안 왔으니까. 지원이 오면 함께 암살 집단을 잡아 본거지를 알아내려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협회에서 지원은 오지 않았어. 그래서… 숨어 있던 지호가 나를 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지.”
어느새 카사노가 조일환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카사노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한 조일환이 그때를 회상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희생양이었어. 그때가 막 협회 개혁이 있었을 때지. 암부의 존재를 지우고 싶던 협회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어. 도우러 올 줄 알았던 지원 부대는 오지 않고… 암살자들을 생포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는 와중에… 암살자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지호가 대신 죽었다.”
카사노의 입술 밑이 떨리고 있었다.
조일환이 눈을 감고 깊은 날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갔다.
“협회로 가니 이미 암부의 간부였던 자는 승진해서 고문 의원이 되어 버렸고, 협회 안에 암부가 조직되어 있었다는 정보도 모두 파기되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화나는 것은… 협회가 모든 책임을 지호에게 떠넘겼다는 거였지.”
조일환의 말을 듣고 있던 성녀와 이창식이 입술을 깨물었다.
“맙소사….”
“인간들이 어떻게 그런 짓을….”
“암살단의 뒷배였던 우리 길드장. 길드장에 대한 정보는 쏙 빼고. 지호가 S급 길드장을 죽이고 도망갔다. 그리고 그것을 복수하기 위해 내가 죽였다…. 이렇게 사건은 정리되었지. 우리에게 시킨 임무 자료도 모두 없애 버리고… 모두 지호에게 떠넘긴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