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조일환의 고개가 떨어졌다.
“난 힘이 없었어. 무슨 짓을 해도 세상에 진실을 밝히지 못했지. 그래서 난 내 발로 협회를 나오고 헌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일 년 정도 폐인으로 지내다… 선생으로 지원해 미림고에 가게 된 거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사노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으아악!!!! 그럴 리가…. 난 대체 지금까지 뭐 한 거야! 네가 아니라… 네가 아니라 협회를 죽여야 했는데!!”
“아니에요. 지호를 죽인 건 저예요. 구해주지… 못했으니까.”
수조를 보고 있던 조일환이 무릎 꿇고 빌었다.
“미안해, 지호야. 미안해…. 내가 아무 힘도 없어서… 너를 살인자로 만들어서 미안하다.”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카사노가 몸을 돌려 당장이라도 협회로 쳐들어가려 했다.
“내가 이 협회 놈들을 그냥!!!”
최한이 카사노의 앞에 섰다.
“동생의 일은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사람을 죽인 너희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야. 동생의 복수는 내가 해줄게. 그러니 넌….”
최한이 카사노를 향해 오른손을 들었다.
최한의 오른손바닥 중앙에 검은 점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검은 점은 끝없는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네가 받아야 할 벌을 받아.”
카사노의 몸이 최한의 손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신의 권능(나락) - 풍혈 LV 100
신의 권능
우주의 있는 모든 공간과 단절된 어둠뿐인 공간에 가둬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간 동안 벌을 받게 된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Cool. 재사용 대기시간 24H]
# # #
최한이 카사노를 나락에 가둬 버렸다.
그렇게 최한과 아이들의 첫 임무가 끝이 났다.
* * *
다음날.
모든 뉴스 일면을 장식하는 기사가 하나가 뜬다.
협회 안에 암부가 있었다고.
임원의 지시를 받아 살인을 저지르고 죽이는 집단.
그리고 협회에 버림받아 살인자가 되었던 박지호의 누명이 벗겨졌다.
박지호는 암부 소속이었고, 그에게 살해당했다던 길드장은 암살자들의 뒷배였다고.
4년이 지나서야….
박지호의 살인 혐의가 벗겨졌다.
이창식이 길드장으로 있는 청룡 길드의 본사 건물 옥상.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하얀 헬기 한 대가 자리해 있었다.
그 앞으로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팔라딘을 배웅하기 위해 나온 이창식과 성녀의 모습이 보였고.
“넌 왜 여기 있냐?”
이창식의 시선이 옆에 있는 협회장 지경태에게 향했다.
“기사 봤잖아. 엄청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피신 왔지.”
이창식이 고개를 저었다.
“협회장이란 놈이 참….”
이창식이 헬기 출입문 앞에 서 있는 팔라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 수조 안에 있던 박지호라는 사람… 분명 죽었는데 그 수조에서 손톱도 길고 머리카락도 자라고 있었다고 하는군.”
“신기하군. 과학이 정말 발전하긴 했네. 죽었는데… 죽지 않은 상태라….”
이창식이 옆에 있는 성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왜 살려주지 않은 거야? 그 정도면 네 힘으로 살릴 수 있지 않아?”
“죽은 자를 살리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해요. 아마 제 수명이 10년은 단축될걸요? 그리고 무엇보다…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인간이 하면 안 되는… 신의 영역이잖아요….”
성녀의 목소리에 이창식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영역이라…. 뭐 그런가? 인간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 이거군.”
지경태가 붉은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신이란 게 정말 있어? 나쁜 놈들은 잘만 살잖아. 그 암부 대장 놈도 지금 협회 고문 의원하면 서 잘만 살잖아. 협회장인 내 힘으로도 뭘 할 수 없을 것 같던데? 경찰과 법이 개입한다고 해도 벌이나 받을까? 또 요리조리 피해 나갈 것 같은데, 인맥 들먹이면서….”
이창식이 의미 모를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인간의 법으로 하지 못한다면 더 높은 벌을 받아야지.”
이창식을 바라보고 있던 모두의 얼굴에 궁금증 가득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이창식의 마지막 말이 울렸다.
“그래서 악마가 갔어.”
* * *
서울의 명동.
한국 헌터 협회 본사 상층부.
[고문 의원실]
중년의 남자가 비서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당장 보안팀에 연락해서 누구도 올라오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해!”
“네….”
비서가 고개를 숙이고는 부리나케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젠장,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잘 덮어 두던 일을 갑자기 왜 끄집어내서는.”
세차게 혀를 차는 남자의 이름은 류정남.
암부를 관리하던 대장이었다.
류정남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이봐, 박 사장. 기사 뭐야? 우리 일 다 묻어주기로 한 거 아니야?”
류정남의 통화 상대는 유명 언론사 사장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인맥을 동원해 자신의 약점과 지난날의 과오를 덮으려고만 했다.
“내가 당신네한테만 알려준 기사가 몇 개인데. 알았으니까, 빨리 지워줘. 큰 데라도 막으면 괜찮을 거야. 어. 그리고 금방 잊히게 뭐 스캔들 기사나 그런 거 하나 터트려주….”
똑똑.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울렸다.
통화를 하고 있던 류정남의 얼굴이 구겨졌다.
“바빠 죽겠는데. 누구야?”
끼이익.
사무실의 문이 열렸다.
터벅.
터벅.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과 눈이 마주친 류정남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너… 너는…. SSS급. 네가 왜 여기에….”
터벅.
터벅.
저승사자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최한이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류정남에게 다가갔다.
최한이 씩 웃음을 보였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라더라.”
류정남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자… 잠깐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오지 마. 더 이상… 다가오지….”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그렇게 여기저기 전화해서 도망가면 안 되지. 인간의 법을 그렇게 다 부수면 쓰나…. 남들은 다 잘못하면 벌을 받는데….”
류정남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인간의 법으로 벌을 받았으면 쉬웠을 텐데…. 넌 후회하게 될 거야.”
창에 가로막혀 더 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어진 류정남이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자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피해자야. 나도 암부를 맡으며 얼마나 더러운 꼴을….”
최한의 눈동자가 더는 류정남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숨이 턱 하고 막힌 류정남이 고통에 몸부림쳤다.
“인간의 법을 거부한다면 남은 건 하나뿐이지…. 지옥에 온 걸 환영해.”
류정남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분명 악마의 미소였다.
“으아아악!!!!”
류정남의 비명만이 계속 흘렀다.
* * *
최한과 민섭 그리고 백설이 힘을 합쳐 암살 집단을 무너트리고 일주일이란 시간이 지났다.
이른 아침 학교로 향하는 최한의 걸음이 다른 날과 달리 무거웠다.
“하… 능력자 학교에서 왜 영어 시험을 보냐….”
단어 수첩에 시선을 고정한 채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오늘은 미림 고등학교 기말고사가 있는 날이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영어 시험과 몬스터학개론 시험이 있는 날이었다.
SSS급인 최한이더라도 시험은 여느 학생들처럼 엄청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SSS급이면 미래가 창창한데 그까짓 시험 못 봐도 상관없지 않느냐고 물어본다면 뭐, 할 말은 없다만.
학생의 본분은 학교생활과 공부이고, 시험은 그것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지막 마침표 같은 것이었으니까.
잘 보진 않더라도 최소한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래도.
역시.
“하… 영어 공부를 왜 하는 거야. 한국어를 지들이 배우면 안 되나….”
최한의 깊은 한숨 소리가 학교를 향하는 내내 계속되었다.
최한이 D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요!”
“어서 와. 대마왕.”
“최한! 안녕!”
인사말과 함께 보이는 아이들의 밝은 미소에 최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땅이 꺼져라 내뱉던 한숨도 이제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요! 좋은 아침.”
최한이 손을 들어 보이며 교실로 들어갔다.
“최하아아아안!!!!!”
슈우우!!!!
성녀가 문을 열고 들어온 최한을 향해 날아왔다.
최한이 몸을 살짝 비틀어 성녀를 피했다.
쾅!!!!
성녀가 복도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하… 쟤는 아침부터 질리지도 않나 봐.”
고개를 저으며 최한이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대박! 그거 봤어? 남우 식품이 암살자들 회사였다며.”
“남우 식품이면 우리 매점에서 먹었던 냉동식품 만든 회사 아니야?”
“맞아. 와… 우리도 못 들어가는 대기업을 암살자들은 들어갔네.”
“뭔 소리 하는 거야, 얘는. 그것보다 그럼 이제 남우 식품 못 먹겠네?”
“당연한 소리를 하냐. 암살자들 회사 음식을 계속 사 먹으려고 했냐?”
아이들끼리 하는 소리가 최한의 귀에 들어왔다.
일주일 전에 조일환 선생을 구하러 갔던 그 대기업 이야기인 것 같았다.
‘협회장이 잘 마무리한 것 같군.’
최한이 자신의 자리로 가 짐을 내려놓았다.
툭.
“왔냐?”
최한의 팔뚝을 치며 장부기가 다가왔다.
“어, 부기야. 좋은 아침.”
“안 어울리게 웬 공부냐?”
장부기의 시선이 최한의 책상 위에 놓인 영단어 수첩을 향했다.
최한이 영단어 수첩을 보며 미소 지었다.
“뭐…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내일 세상이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어요.’처럼.”
“참나. 뭐… 학생이 시험공부 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
탁!
D반의 앞문이 열리며 조일환 선생이 들어왔다.
“자리에 앉아라.”
아이들이 모두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교탁에 선 조일환이 출석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빈자리 없는 거 보니 다 온 거 같군. 오늘 시험은 영어와 몬스터학개론인가?”
“네.”
“뭐,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긴 하지만, 학생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니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길 바란다. 절대 컨닝 하지 말고. 찍으려면 3번으로 찍어라.”
최한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 볼 때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밝아졌다더니. 아이들보다 선생님이 더 밝아지셨는데?”
최한뿐 아니라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 모두 조일환 선생의 농담에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다.
“내가 어릴 때 많이 했던 방법이다. 이상.”
조일환이 조례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웃고 있던 최한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최한의 시선으로만 보이는 상태창이 떠 있었다.
「튜토리얼 퀘스트 NO. 666
Last
미림고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선물해 줄 검집을 찾아내어 죽여라.
(time out - 38일)
보상
경험치 + 1,187,263,337
검집의 심장 (EX)
획득 칭호
인간의 왕(EX)」
[실패 시 페널티 부과]
- 이세계 강제 전송
- 멸망
최한이 아쉬움이 담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38일 남은 건가…. 내 학교생활이….’
띵동댕동-.
시험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