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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S급 귀환자 학교가다-115화 (116/211)

115화

그렇게 최한을 무작정 태운 버스가 세 시간을 내달렸다.

끼익.

목적지에 도착한 것인지 드디어 멈춘 버스였다.

앞문이 열림과 동시에 오지훈과 최한이 차례로 내렸다.

그 뒤로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 지경태와, 5대 길드 마스터가 차례로 내렸다.

브로스 길드 최수혁.

아레나 길드 이정은.

청룡 길드 이창식.

검성 길드 장왕윤.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한 번에 모이기 쉽지 않은 그들이 한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놀라운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선에서 뛰고 있는 헌터 중 언제나 인기 투표 1위를 놓치지 않는 S급 헌터 마수아와 그녀의 팀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라 불리는 미림고의 학생회장 강진철과 세계 첫 리미트 해제자인 김민섭과 한재석도 버스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오지훈의 다급한 전화에 낚인 협회의 차 비서와 최한의 담임인 조일환의 모습도 보였다.

백설이 버스에서 내릴 때쯤 최한이 오지훈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했다.

“아저씨, 갑자기 이게 무슨 짓이에요? 갑자기 길드로 부른 것도 모자라서 지금 3시간이나 버스에 갇혀서 이상한 곳으로 끌려오고….”

뒤쪽에 있던 브로스 길드장 최수혁이 최한의 말을 가로챘다.

“휴게소 한 번 안 들르는 게 말이 되냐? 너 진짜 무슨 생각이야, 오지훈? 결재할 서류가 얼마나 많이 쌓여 있는데 말도 없이 갑자기 끌고 오면 어떡하냐?”

비단 불평은 최한과 최수혁의 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 급한 일 생긴 줄 알고 회의도 미루고 왔는데. 이게 뭐야….”

“저… 오늘 당직입니다만….”

“아저씨, 이거 납치라고 납치! 방학도 일주일밖에 안 남아서 놀 시간도 부족한데…. 하….”

오지훈을 향한 불평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럼에도 오지훈은 당황한 기색이나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오지훈이 입을 열었다.

“모두 당황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세계적으로도 정말 중대한 일을 발표하기 위해 여러분을 부른 것입니다.”

헤벌쭉하던 평소의 모습이 아닌 진지하게 변한 오지훈의 얼굴에 원성을 쏟아내던 사람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마른침 넘기는 소리만이 울렸다.

세계적으로도 최고의 과학자라 불리는 그 오지훈이었다.

그런 그가 세계적으로 중대한 일이라고까지 말하는 거라면….

‘엄청난 발견이나, 정말 세계가 멸망할 수준의 일이 생긴 것이다.’

모든 인원이 숨죽이며 오지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가볍게 날숨을 내뱉은 오지훈이 준비가 되었는지 눈에 힘을 주었다.

“오늘은….”

너무도 집중한 나머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오지훈의 말을 따라 했다.

“오늘은….”

“제가 준비한 서프라이즈 여름휴가 대잔치 날입니다!”

오지훈이 두 팔을 높게 벌리며 소리쳤다.

엥?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으로 오지훈의 몸 뒤로 펼쳐진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멀리서 봐도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바닷물.

사람 북적이지 않는 조용한 해변.

휴가로 생각하면 최적의 3요소가 잘 배합된 최고의 장소였지만….

“미친 거 아니지?”

이 서프라이즈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바쁘고 하루가 소중한 유명인들이었다.

최수혁이 마수아를 보며 명령했다.

“저거 죽여.”

마수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손으로 무릎을 탁탁 쳤다.

찌직-.

순식간에 번개 부츠가 나타나 마수아의 다리를 감쌌다.

“자… 잠깐만요…. 자… 장난이었어요. 진짜 발표할 게 있긴 한데….”

죽음을 감지한 오지훈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최수혁이 손을 올리자 오지훈을 향해 다가가던 마수아의 걸음이 멈췄다.

“하하…. 죽을 뻔했네. 진짜 중대하게 발표할 일이 있습니다. 그건 진짜입니다.”

다시 진지하게 변한 오지훈의 표정에 최수혁을 포함한 인원들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지금 바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녁쯤 말씀드릴 테니… 우선… 제가 준비한 여름휴가 대잔치부터….”

오지훈의 말허리를 자르는 최수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수아. 저 녀석 우선… 죽여.”

* * *

강원도 강릉 소재의 한 해변.

브로스 길드가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부지이자, 해변 앞쪽에 최고급 시설의 펜션까지 만들어 놓은 공간.

오지훈이 3년 전 매물이 나온 이곳을 사들였다. 몬스터가 사라지게 되는 날 꼭 다 같이 이곳에서 파티를 할 계획으로 구입해 놓았었다.

“원래는 몬스터가 사라지는 날, 이곳에서 축배를 들려고 사놓았었는데… 멸망을 앞두고 이곳을 찾게 되었네요….”

오지훈과 최한이 나란히 모래사장에 앉아 있었다.

“역시 그것 때문에 사람들을 다 모은 거군요. 아까 사실대로 말했으면 그런 험한 꼴 당하지 않았을 텐데….”

오지훈의 오른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하하… 이건 괜찮습니다. 후회하지 않아요. 우선 이 모습을 꼭 눈에 담고 싶었거든요.”

최한의 시선이 오지훈이 바라보고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받아라!”

“앗! 차가워!”

“어이! 차 비서! 이거 보라고 나 개구리 수영법 마스터했어!”

즐겁게 바다를 즐기고 있는 길드장들.

모래사장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 인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처음 오지훈에게 원성을 드높이던 모습과 달리 모두 바다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아마 다들 휴가 한 번 제대로 가 본 적 없을 테니까요. 밥 먹을 시간도 쪼개가며 업무를 보는 길드장님들은 물론이고 현역으로 아주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는 마수아 팀도…. 학교에 다니는 재석 군과 학생들…. 조일환 선생도 아마… 제대로 쉬어본 적 없을 테니까요.”

그 말이 맞다.

이곳의 인원들은 전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유명인이기 이전에 몬스터와 싸우는 능력자.

던전만 돌던 예전과 달리 포탈을 통해 나타난 몬스터들로 인해 몸이 두 개라도 견디기 힘든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조금은 오지훈이 이런 일을 벌인 것을 이해하고 있는 최한이었다.

“그런데… 민섭 군과는 얘기해 봤나요?”

최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리고 방학하고 처음 보는 거예요. 민섭이….”

“그렇군요. 뭐, 무슨 상황에 놓여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후회 없는 선택을 하세요. 선택 또한 최한 군의 인생이니까요.”

멸망을 코앞에 둔 사람의 표정이라기엔 너무도 즐거워 보였다.

아니, 어쩌면 멸망을 코앞에 두었기에 모든 것이….

아이처럼 뛰노는 이 시간이….

감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최한은 생각했다.

“네. 아까는 그렇게 뭐라 하더니 다들 즐겁나 보네요.”

“그러게요. 길드장님이 저렇게 즐거워하시는 것이 얼마 만인지….”

“파랭이 자식. 그렇게 뭐라 그랬으면서, 제일 신났네.”

최한과 오지훈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한참을 웃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럼… 7일 후면 신들이 쳐들어오는 건가요?”

오지훈의 목소리에 최한의 얼굴에 남아 있던 웃음이 사라졌다.

“네. 아마도요. 어떻게 해서든 이 세계가 피해 보지 않게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성공한 게 없네요.”

최한과 오지훈이 한 달여의 시간 동안 수많은 방법을 도모해 보았지만, 어떠한 결과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믿기지 않는군요. 석판을 발견했을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지만… 진짜 인간이 멸망한다니….”

“아직 멸망하지 않았어요.”

오지훈의 시선이 최한의 얼굴로 향했다.

듬직한 얼굴.

강한 햇볕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처럼 밝은 표정.

최한의 얼굴에 포기란 글자는 보이지 않았다.

“제가 지켜 보일게요.”

오지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군요. 역시 최강의 능력자답네요.”

“에이… 최강의 능력자라니 오글거리게…. 그것보다… 다 말하실 거죠?”

“그래야죠. 그게 진짜 모두를 모은 이유니까요.”

오지훈이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희도 준비해야죠. 신에… 대항할 방법을….”

오지훈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아마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머리가 좋은 천재이기에 더욱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계산해 봐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란 것을….

* * *

그날 저녁.

“뭐? 무슨 멸망하는 얘기를 고기 올리는데 말해!”

이창식의 목소리가 울리고 은은한 불꽃을 머금은 숯처럼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 생각한 오지훈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라고?”

마수아가 낮에 했던 것처럼 번개 부츠를 소환했다.

윤강산과 손대영이 마수아를 붙들어 제지하며 말했다.

“우선 좀 들어보자.”

“누나. 좀 참아요.”

오지훈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7일 후. 신들이 쳐들어와 인간을 모두 죽일 겁니다. 그동안 보았던 천사들을 이끌고 있는 자들입니다. 정확히 신의 힘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 온 천사들을 조종할 수 있을 정도의 존재들이라면 아마… 저희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확률은 제로.”

제로.

인간이란 희망적인 존재였기에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도전을 하는 이상한 생물들이었다.

하지만.

제로는 그 희망조차 싹틔우는 것을 허락지 않는 숫자였다.

치지직-.

고기 위로 까만 연기가 피어올랐다.

“나머지는 최한이 설명해 줄 겁니다.”

오지훈의 바통을 건네받아 최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신을 끌어내릴 열쇠인 민섭을 죽이기 위해 신들이 쳐들어올 것이라고.

민섭을 죽이고도 신들은 인간들을 살려주지 않을 것이다. 이미 신들은 인간들의 휴거를 결정했을 것이라고.

이제 민섭을 지키는 싸움이 아니라, 인간의 멸망을 피해야 하는 싸움이 된 것이라고.

전 세계가 불바다가 될 것이라고.

자신의 퀘스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최한의 기본적인 설명이 마무리되자 오지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는 길에 전 세계의 협회 본부에 공문을 전달해 놨습니다. 7일 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요. 각국에 있는 능력자들이 합심하여 대비를 하고 있으라고요. 외국은 이 정도면 되었고….”

오지훈이 최한을 향해 시선을 옮기자 최한이 알았다는 듯이 뒷말을 이어갔다.

“아마 전쟁의 중심지는 한국이 될 거예요. 그중에서도 저와 민섭이가 있는 미림고. 그곳이 아마… 전쟁의 핵이 될 것입니다.”

한 번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석판에 대해서 대충 들었던 최수혁도 아주 먼 전설 같은 이야기 정도로 치부했었는데….

다른 이들은 더욱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하나.

받아들이기 어려워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이야기.

최한이 타들어 가는 고기를 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민섭이와 제가 있는 곳으로… 오딘이라는 가장 강력한 신이 올 거예요. 아마….”

오지훈의 고개가 떨어지고 최한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인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전 그곳에서 죽을 거예요. 그러니… 민섭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 * *

모두가 잠든 새벽.

한참을 대책 회의란 명목으로 이야기를 하던 인원들이 모두 곯아떨어지기를 기다리던 한 사람.

백설이 누워 있는 민섭에게 다가갔다.

“나와라.”

조용히 몸을 일으켜 백설의 뒤를 따르는 민섭.

별이 쏟아지고 있다.

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릴 정도로.

서울과 달리 강원도의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보였다.

촤라락-.

밤에도 쉬지 않고 몰아치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생각해 보았나?”

백설의 목소리에 민섭의 표정이 검은 바다보다도 더 어두워졌다.

“이건 강제로 할 수 없다. 내 마음 같아서는 처붙잡아 널 끌고 가고 싶지만… 그러면 영혼이 넘어가는 동안 그것이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민섭이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았다.

“네 말대로 하면 살 수 있겠지. 네가 천년이 넘게 살아 있으니까.”

바다를 눈에 담던 백설이 민섭을 향해 몸을 돌렸다.

“최한의 마지막 말, 너도 들어서 알고 있겠지? 인간 중에서 가장 강한 저 녀석이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어. 이 전쟁은 절대 인간이 이길 수 없다. 그러니 선택해라. 내가 너와… 최한만은… 살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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