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S급 귀환자 학교가다-116화 (117/211)

116화

‘내가 너와 최한만은 살려주겠다.’

그 말이 민섭의 뇌리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시한부를 선고받아 한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사람은 죽음이 이미 정해져 있어도 계속해서 삶을 갈구한다.

민섭이 그랬다.

살고 싶다.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운 말이었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고 싶고.

성인이 되어 당당하게 술도 한잔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유명한 능력자가….

영웅이 되고 싶었다.

형용할 수 없는 뜨거운 그 무언가들이 복잡하게 얽혀 민섭의 몸을 달궜다.

복받쳐 오르는 그 감정들 때문에 민섭은 강하게 입술을 깨물어야 했다.

입술을 깨물지 않으면….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다고 소리칠 것 같았다.

왜 자신이어야 하냐고 하소연할 것 같았다.

하지만.

꿈에서 본 7일 후의 세계는….

신들이 쳐들어온 지구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함께 생활하던 친구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꽤 많은 것을 나누었던 브로스 길드의 사람들.

최한 때문에 새롭게 연을 맺게 된 모든 사람들….

본 적은 없지만, 같은 나라에….

같은 지구에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대의를 위해서 소수를 희생한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자신밖에 없었다.

자신만이….

지옥으로 변해 버린 세상을….

멸망하는 인간을….

구할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말한 거라면 사실이겠지. 나와 최한만은 살려준다는 네 말….”

파도 소리에 겹쳐진 민섭의 목소리가 다시 허공으로 사라져 갔다.

달빛에 훤하게 드러난 백설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사실이다. 그러니 네 확실한 대답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내가 너와 최한만은….”

“하지만 역시….”

백설의 미소를 지우는 민섭의 목소리였다.

민섭이 고개를 들어 백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너의 제안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

“어째서… 어째서냐…. 그렇게 두려움에 젖은 눈을 하고 있으면서….”

백설의 눈에 비치는 민섭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최한은 이 행동을 받아들이지 않을 거야. 그 녀석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친구를… 다른 사람들을 버리는 짓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빠득-.

분노에 백설의 몸이 떨려왔다.

“그깟! 친구가 뭐길래! 그저 몇 년 같은 공간에 있던 것뿐이지 않느냐! 가족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것이냐! 다른 인간들 따위를 왜 생각하는 것이냐! 너 자신만 생각하면 되는 거야! 네가 죽어서 다른 놈들을 살려도 아무도 너에게 고맙게 생각하지 않아! 인간 놈들은 이기적인 놈들이라 금방 까먹고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개 같은 말만 내뱉는 놈들이라고! 그딴… 그딴 인간들을 위해 죽고 싶은 거냐!”

몇 번의 파도가 해변에 부딪힐 동안 백설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렇게 크게 들렸던 파도 소리가 다 묻힐 만큼.

민섭이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달빛을 머금은 백설의 얼굴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백설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말했다.

“너도 최한도 대체 그깟 인간들이 뭐라고…. 학교가 뭐라고….”

민섭이 백설의 얼굴을 향하던 시선을 밤하늘로 옮기며 말했다.

“최한은… 세상에서 학교를 가장 좋아하는 놈이야. 그에 못지않게 사람을 좋아하는 놈이고. 그러니까 난… 마지막까지 인간을 좋아하는 최한의 편에 서다 죽을래.”

유난히 반짝이는 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는 민섭이었다.

백설이 자신의 바짓단을 잡고 비틀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떻게든 눌러 담고 있었다.

‘대체 왜…. 이렇게 쉬운 선택지가 있는데…. 대체 왜…. 바보 같은 놈들….’

“너 내 제안을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것이냐…? 네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최한에게 무슨 짓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내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냐!”

별을 눈에 담고 있던 민섭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가장 친한 친구.

지옥에서 꺼내준 유일한 사람.

태어나 처음 내게 마음을 열어준 사람.

최한.

그런 최한에게….

세상에서 가장 못된 짓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

세상에서 가장 나쁘고 더러운 짓을 해야 할 것이다.

“나쁜 놈이 돼도 어쩔 수 없어. 최한이 이 방법을 받아들이지 못해도 상관은 없어. 난 그저 최한이 살길 바랄 뿐이야.”

백설과 민섭은 알고 있었다.

인간이 신에게 패배하지 않을 단 하나의 방법을.

“너… 최한에게 평생 미움받을 것이다.”

백설의 목소리에 민섭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괜찮아. 그게 최한… 아니, 내 인생 첫 친구에게… 28번째 인간의 왕에게 줄 수 있는 내 마지막 선물이니까.”

웃고 있었지만, 민섭의 눈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드디어 그날이 오고 말았다.

최한에게 가장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

자신의 마지막 튜토리얼 퀘스트를 완료해야 할 날이자….

한 사람의 목숨과 전 세계 70억 인구의 목숨을 저울질해야 하는 날.

대의를 위해서라면 쉽게 고를 수 있는 답이었지만….

최한에게는 아니었다.

밤새 뒤척이던 최한이 몸을 일으켰다.

눈앞으로 나타난 상태창.

「튜토리얼 퀘스트 NO. 666

Last

미림고에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선물해 줄 검집을 찾아내어 죽여라.

(Time out – 11:11:11 )

보상

경험치 + 1,187,263,337

검집의 심장 (EX)

획득 칭호

인간의 왕 (EX)」

[실패 시 페널티 부과]

- 이세계 강제 전송

- 멸망

D-DAY 정도로 적혀져 있을 줄 알았지만, 타임아웃 날짜가 보이던 란에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11:11:08

퀘스트 창을 확인하고 있는 와중에도 줄어드는 시간.

최한은 이것이 남아 있는 시간임을 확신했다.

‘밤이 찾아올 때쯤인가….’

그러니까 11시간 안에 선택해야 한다.

꿈에서 본 것처럼 민섭이를 죽일지… 아니면… 쳐들어온 신을 모두 물리칠지….

아마 후자의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최한의 주먹이 떨려왔다.

두려움에 떨고 있다기보다는 참아왔던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떨리고 있다는 게 맞을 것이다.

“27번째 인간의 왕…. 당신에게도 이런 선택지가 있었나? 당신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왕이 된 거야?”

답이 돌아오지 않을 물음.

최한도 알고 있었다.

이 방에는 자신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묻고 싶었다.

천 년 전의 자신에게….

“대체 이 퀘스트를 완료하면 뭐가 기다리고 있는 거야….”

띠리리리-.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폰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알람을 맞춰 놓지 않는 최한이었기에, 단번에 그것이 전화가 온 것임을 알았다.

최한이 휴대폰을 들어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최한 군! 접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큰 목소리에 최한이 눈을 찡그렸다.

잠깐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다시 귀에 가져다 댄 최한이 말했다.

“오지훈 박사님?”

「최한 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를….”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킬 포탈!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한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입술이 위아래로 움직였지만, 어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포기하지 않고 있었구나.’

「검성 길드의 신세례 과학자의 도움으로 천사의 정보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지하에 사체를 숨기고 있었다는데… 계속해서 연구를….」

흥분해 있는 오지훈의 목소리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요점은 간단했다.

그러니까.

“아저씨! 지금 바로 갈게요! 이렇게 전화할 정도면… 금방 열 수 있는 거죠?”

오지훈의 목소리가 다시 수화기를 넘어오는 걸 기다리는 이 시간이 몇 배는 더 길게 느껴졌다.

「네. 바로… 열 수 있습니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다.

어쩌면 이 세계를 불바다로 만들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어쩌면….

허를 찔러 승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한의 시선이 다시 퀘스트창으로 옮겨졌다.

- 11:08:59

‘열한 시간 팔 분… 정도 남은 건가. 시간은….’

충분하다.

정확히 언제쯤 쳐들어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빠르게 오지훈을 만나 포탈을 열고 이세계로 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니면….

‘최상위 신들만이라도 움직일 수 없게 한다면….’

천사도 분명 S급들에게 버거운 상대지만, 그래도 신들보다는 나을 것이다.

어쨌거나 힘이 어느 정도는 통하는 레벨일 테니까.

‘백설이 도와줄 수도 있고….’

생각을 마친 최한이 의자에 걸려 있는 옷을 빠르게 입으며 문으로 나섰다.

아직 통화 중인 것을 깨달은 최한이 현관에서 슬리퍼를 신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갈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제… 인간이 이길 확률, 1퍼센트는 되겠죠?”

「아니요. 2퍼센트는 될 겁니다.」

“훗…… 이따 봬요.”

뚝-.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최한이 집을 나서기 위해 문을 열었다.

콰과과광!!!!!!!!!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최한의 시야로 들어오는 것은 파랗던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며 엄청난 불길이 치솟는 광경이었다.

순식간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일부러 찢어 놓은 듯 갈라진 균열에서 무언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본 하늘에 작은 점들이 깨알같이 나타났다.

균열의 틈에서 나온 그 점들이 최한이 보고 있던 하늘의 반을 가릴 정도로 많아지고 나서야….

최한은 그 점들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해골 병사.

갑옷을 입은 채 제각각의 무기를 들고 있는 해골 병사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꿈에서 본 그 장면이다.

만…. 십만…. 백만….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병력들이 서울 하늘에 쳐들어왔다.

불행은 예상하고 있을 때 오지 않는다.

아무도 관심을 주고 있지 않을 때.

평온할 때.

아니,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무도 모르게 등 뒤에서 칼을 찌르며….

해골 병사들이 튀어나왔던 균열에서… 금색의 검을 들고 있는 외팔의 거대한 인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툭.

최한이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최한의 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최한 정도 되기에 조금은 알 수 있었다.

SSS급 아니… 더 위에 등급이 있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최한이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티르 님이 왔는데 왜 아무도… 나와서 절을 안 하는 것이냐!”

외팔의 신이 들고 있던 금색의 검을 한 번 휘둘렀다.

그렇게 최한이 살고 있던… 미림동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