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서울 하늘을 가득 채운 해골 병사들.
곳곳으로 드래곤을 닮은 거대한 생명체들도 여럿 보였다.
수백만.
수천만.
정확히 가늠하기도 힘든 그 엄청난 숫자에 그야말로 지구에 종말이 온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보이십니까? 이건 영화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대한민국 서울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골 몬스터들이 서울 하늘을 뒤덮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이것은 영화가 아닙….”
기자의 잔뜩 상기된 얼굴을 담던 카메라가 무너진 건물들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 난 건물들.
불이 난 곳이 곳곳에 보였고, 도로였던 곳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자동차들이 보였다.
뒤집힌 차들과 건물에 깔려 있는 버스들.
출근 시간대에 일어난 참변에 미림동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다른 세상이 되어 버렸다.
마치 전쟁의 폐허를 보는 것 같았다.
거리에는 시체가 쌓여 있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이 건물 잔해에서 기어 나와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이미 구조를 펼치던 경찰관과 소방관들의 모습도 카메라에 잡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도 부족했다.
재앙.
말 그대로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지금의 상황.
천재지변과 던전브레이크 때에도 이렇게 도시 하나가 마비될 정도로 큰 사건이 벌어진 적은 없었다.
사람을 구조하고 있는 구조대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들도 사람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직업 정신으로 어떻게든 버티면 이겨낼 수 있었지만….
하늘에 있는 수천만의 몬스터들.
큰 움직임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하늘 전체를 가린 어마어마한 양의 몬스터 대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두려움이 되어 몸을 떨리게 하였다.
기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구조대가 무너진 건물의 잔해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있지만, 도시 전체가 무너져 버린 대재앙에 가까운 참혹한 상황에 한눈에 보아도 인력이 부족한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 말고도 지방과 다른 나라 전역에 이상 몬스터의 출현이 보고되고 있는 와중에….”
슈우웅-.
대기를 찢는 큰 소리에 기자를 찍던 카메라의 화면이 빠르게 하늘로 향했다.
흔들리는 카메라.
카메라맨의 비명이 화면을 뚫고 넘어왔다.
“괴… 괴물이!! 으아악!!”
해골 병사가 검을 휘두르며 카메라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꺄아악!!”
순식간에 날아든 여러 마리의 해골 병사들이 기자와 카메라맨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
“키에엑!!!”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해골 병사가 기자의 머리에 검을 내리쳤다.
절체절명의 순간.
찌릿!!!!!
콰과과광!!!!!!
검을 내리치던 해골 병사의 머리가 번쩍하더니 거대한 폭발음을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그것을 시작으로 주위를 가득 채우던 해골 병사들의 머리가 일제히 펑 하고 터져 버렸다.
두려움에 젖어 있던 기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늘을 가린 어둠 속 작은 빛.
그것을 발견한 기자가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입에 가져다 댔다.
“마… 마수아 헌터의 등장입니다. 현역 S급 최강이라 불리는 마수아 헌터가 나타났습니다!”
번개 부츠를 땅에 즈려밟으며 먼지를 털고 있는 마수아의 모습이 카메라 화면을 가득 채웠다.
화면을 응시하던 마수아가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파바박!
조금 전까지 마수아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팼다.
멍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기자와 카메라맨.
초점도 맞지 않는 화면에 불쑥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어이 기자 양반들, 당장 도망가요.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목숨이 먼저야.”
오 대 오 가르마를 길게 늘어트린 남성.
마수아팀의 힐러 윤강산이었다.
기자와 카메라맨이 혼이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가 생각이 난 윤강산이 카메라 화면을 보며 말했다.
“길드장님. 제때 도착했어요. 최대한 싸우고 있을 테니까… 얼른 지원 병력 보내줘요.”
윤강산의 말을 마지막으로 카메라 화면이 까맣게 변했다.
지지지직-.
이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 화면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
최수혁을 포함한 대한민국 대형 길드장들과 헌터 협회장 지경태 그리고 장관들과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수심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대통령이 말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도시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 것도 모자라… 저 정도 숫자의 몬스터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저건 신들이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보낸 병사들입니다. 영상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금색의 검을 들고 있는 신도 함께 온 듯합니다.”
최수혁의 목소리에 대통령의 얼굴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신…. 그런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더러 믿으라는 겁니까? 브로스 길드장….”
“믿기 어려우실지도 모르지만… 화면으로 보시지 않았습니까. 저건… 절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
최초 보고를 받고, 방금 화면으로 확인한 것까지.
이십 분도 안 되는 시간.
도시하나가 괴멸된 것을 자신의 눈으로 담을 때까지 이십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아마 실제로는 더 짧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1분.
아니, 몇 초.
그 짧은 시간에 도시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대통령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만큼 분위기도 어두워졌다.
“현재 확인된 사망자 수만 500명이 넘었습니다. 아마 구조를 진행하면 할수록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재난 대책 안전부 장관.
대통령의 옆에 앉아 있던 행정부 장관이 현재 상황을 보고 했다.
“어째서 갑자기 이런 일이….”
대통령이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정도가 있다.
지금껏 나라를 뒤흔드는 사건과 사고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큰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현재 많은 인력들이 구조 작업을 벌이는 중이고, 사고 발생 지점인 미림동에서 살아남은 인원들은 모두 미림 고등학교로 대피 중에 있습니다.”
미림 고등학교.
브로스 길드와 정부에서 막대한 예산으로 만들어낸 능력자 조기 육성 학교.
그 명성에 맞게 많은 자금과 첨단의 기술력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피해가 완전 없지는 않았지만, 폐허처럼 변한 다른 건물들과 다르게 피해를 최소화하고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었다.
“현재 사고의 중심인 미림동을 제외하고도 서울 전역이 해골 병사들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지방도 곳곳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보고가….”
보고를 듣고 있던 대통령이 손을 들어 목소리를 잘랐다.
불안한 표정은 여전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무언가 결심한 듯 단단해진 눈빛을 보이며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신을 믿지 않지만, 쳐들어온 저것들이 신의 사자인 것도… 그 신이 인간을 멸망하게 하려는 것도 믿겠소. 그럼… 방법은 있습니까? 아니… 능력자인 당신들이라면… 알고 있겠죠?”
대통령의 시선이 향한 곳에 협회장과 길드장들이 있었다.
모두 대통령의 다음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날숨을 내뱉으며 진지하게 표정을 다잡고 있었다.
“이길 수 있습니까?”
대통령의 간절한 눈빛이 길드장들에게 닿았다.
최수혁이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대통령의 눈을 마주했다.
“아니요. 이기지 못할 겁니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대통령의 눈동자가 세차게 움직였다.
“이 나라의 중심인 당신이 그렇게 말하면…. 어! SSS급. 그가 있잖소. 그 학생의 힘이라면….”
유일한 희망.
그렇게 느낀 대통령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수혁을 바라보았다.
“네. 최한 군이라면 아마… 유일하게 신과 싸울 수 있을 겁니다.”
담담하게 울렸지만, 대통령에게는 지금껏 들었던 어떤 이야기보다 희망찬 이야기였다.
“그럼 당장…SSS급에게 연락을….”
“최한 군이 살고 있는 곳은 미림동의 한 오피스텔입니다.”
최수혁의 목소리에 대통령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미림동 전체가 폭발하고 나서… 최한 군과 연락이 닿고 있지 않습니다….”
최수혁과 길드장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당연히 최한이 죽지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피어오르는 기분 나쁜 느낌과 지금까지와 달리 상대가 신이라는 것이 그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걱정 마십시오, 대통령님. 아마 SSS급은 괜찮을 겁니다. 현재의 상황은 아마 전대미문의 대사건일 테지만… 잠자코 당할 수만은 없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최수혁을 포함한 길드장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늠름한 모습.
죽음을 각오하고 전장에 나가는 수장들의 모습이었다.
대통령의 얼굴에도 지금까지와 다른 비장한 표정이 깃들었다.
“고맙소. 우리도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 보겠소. 당신들은 일선에서 최선을 다해주시오. 만약… 이 재앙을 이겨내고 운이 좋게 모두 살게 된다면… 내가 영웅들을 위해 나라를 대표해 절이라도 하겠소.”
최수혁과 길드장들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최수혁과 길드장들이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백만 대군이 넘는 해골 병사들과의 전투를 위해 당당히 걸음을 옮기는 길드장들을 보며 대통령이 고개를 숙였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시….”
대통령의 목소리가 길드장들의 뒷모습에 닿기도 전.
쾅!!!!!!!
건물 천장이 무너져 내렸다.
길드장들이 모여 있는 곳 위로 정확히 무언가 떨어지는 것처럼….
투두둑….
떨어지는 돌들과 피어나는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대통령님!”
“대통령님을 지켜!”
주위에 있던 장관과 경호원들이 대통령의 주위를 감쌌다.
“이게 대체….”
연기가 차츰 사라지고 대통령의 온몸이 떨려왔다.
대통령의 시선으로 피를 뒤집어쓴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길드장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까꿍. 감히 티르 님이 행차했는데 마중도 안 나와? 백성들의 잘못은 왕의 잘못이니, 너… 죽음으로 사죄해라.”
외팔의 신이 대통령을 향해 금색의 검을 들어 올렸다.
* * *
전국에 비상령이 떨어지고.
그 중심에 있는 미림동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거리 곳곳에 불길이 솟아오르고, 길거리에는 일반인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미림동의 대피 시설로 선택된 미림 고등학교에는 피난민들과 부상자들의 치료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원래라면 오늘이 개학식이었지만, 이 상황에 개학식이나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교실은 부상자들의 병상으로 채워져 있어 D반 아이들은 교실이 아닌 옥상에 모여 있었다.
“그래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중에 사상자는 없는 것 같네….”
장미의 목소리에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던 아이들이 고개만 끄덕였다.
“장미야… 설마 이게….”
전지현의 물음에 장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웅. 맞아. 예전에 브로스 길드 연구소에서 봤던 석판에 새겨진 예언. 아마 오늘이 예언의 날…. 그러니까 인류가 멸망하는 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