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전지현이 더는 입술을 움직이지 못했다.
장미의 시선이 민섭에게로 향했다.
“최한은? 당연히 너를 지키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모든 시선이 민섭에게로 쏠렸다.
“모르겠어. 학교에 있을 줄 알았는데. 전화도 받지 않아….”
민섭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불안감은 더더욱 심해졌다.
“성녀랑 백설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아….”
“다들 어디에 있는 거지… 미림동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으로 피난했을 텐데….”
“설마… 폭발의 중심에 있어서… 말려든 건 아닐까…?”
미림 고등학교와 D반 아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미림동의 외곽. 정확히 말하면 미림동과 주림동의 경계선이었다.
최한과 백설 그리고 성녀는 브로스 길드에서 마련해준 미림동의 중앙, 그러니까 신시가지에 모두 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겨우 이런 폭발에 최한이랑 S급 성녀가 죽겠냐? 아마 조금 있으면 웃는 얼굴로 이곳으로 올 거야. 그러니 최한이 올 때까지 내가 지켜줄게.”
민섭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장부기가 말했다.
유일하게 웃고 있는 얼굴.
장부기가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왜 그렇게 무거운 표정들 짓고 있어? 이런 일 한두 번 아니잖아? 어차피 최한이 오면 다 해결될 거야.”
두려움에 떨리는 다리와 다르게 장부기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그렇게라도 큰소리쳐야 했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다독여야 했다.
자신까지 두려움에 잡아먹힌다면….
‘민섭이를 지킬 수 없어.’
최한과의 대화가 떠오른 장부기였다.
지구를 멸망시켜서라도 민섭이를 구한다던 그 말.
반대로 생각하면….
오늘 지구가 망하거나 민섭이가 죽거나.
둘 중 하나의 사건은 무조건 일어날 것이다.
장부기의 고개가 하늘로 들렸다.
하늘을 가린 수많은 병력들.
움직이고 있지는 않지만 하늘에 떠 있는 해골 병사들의 모습에 부기의 다리가 더욱 세차게 떨려왔다.
짝!
찰진 소리와 함께 장부기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야! 뭐야….”
“그렇게 다리를 떨면서 큰 소리는.”
부기의 시야로 홍철의 얼굴이 가득 찼다.
“이… 이건!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니야! 배… 배고파서 떠는 거라고!”
자신이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변명이었지만, 아이들의 걱정을 더욱 키울 수는 없었기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툭.
부기의 어깨로 홍철의 손이 얹어졌다.
“혼자서 너무 애쓸 필요 없어. 최한에게 배웠잖아. 친구를 믿는 방법을.”
장난만 치던 평소의 얼굴이 아니었다. 홍철의 눈빛에 깃든 그것을 발견한 부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배려.
믿음.
긴장을 풀기 위해 홍철은 일부러 장난을 친 것이다.
누구보다 더욱 긴장하고 있던 건 장부기 자신이었다.
“홍철이 너….”
장부기의 주위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억지로 센 척할 필요 없어, 부기야.”
“그래. 네가 말 안 해도 다들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다고.”
“D반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최한이 올 때까지 함께 민섭이를 지키는 거야.”
자신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았다.
아이들의 목소리에 장부기가 더는 얼굴을 들고 있을 수 없었다.
“너희들….”
많이 바뀌었다.
D급이라 무시 받던 그때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여전히 일반인과 D급뿐이었지만… 이제는 충분히 자신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료였다.
미소 짓고 있는 아이들 속 혼자 다른 곳을 바라보던 장미가 소리쳤다.
“온다!”
짧은 단어였지만, 아이들 모두 그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하늘로 향했다.
하늘을 수놓았던 해골 병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때가 된 것인지,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던 해골 병사들이 모두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심판.
거대한 검이 지구를 박살 내기 위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수가 많아 작은 점으로 보이던 해골 병사들이 땅으로 하강하고 있었다.
현역이 아닌, 학생의 신분인 D반 아이들조차 알 수 있었다.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게 현실인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지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살아남아야 한다.
곳곳에 있는 능력자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전투를 벌일 것이다.
그러니.
장부기가 아이들보다 한 발자국 앞에 나서며 소리쳤다.
“최한이 올 때까지… 살아남는 거야!”
장부기가 빠르게 특성을 발현해 주먹을 크게 성질 변환 시켰다.
돌로 된 거대한 주먹을 내지를 준비를 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해골 병사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실전.
이런 실전은 처음이었다.
D급의 힘이 통할지도 미지수였다.
해골 병사가 학교로 점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외침과 다르게 심장의 요동침이 더욱 크게 울려왔다.
‘겁먹지 마…. 도망칠 곳 따위는 없어. 어딜 가도 저 해골 병사와 싸워야 해….’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밖에 없으니까.
장부기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어느새인가 운동장에도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교복을 입은 다른 반 학생들과 어른들의 모습.
능력자들일 것이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깨닫고 살아남기 위해, 이곳에 피난 중인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혹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부나 길드에서 이곳으로 인원을 보내지 못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장부기가 크게 날숨을 내뱉었다.
그의 시선으로 학교에 가까워진 해골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얼굴과 손에 들고 있는 검까지 보일 정도.
숫자를 셀 수도 없이, 시야를 가리고 있는 해골 병사의 모습에 장부기의 다리가 다시 떨려왔다.
눈앞에서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마음을 다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던 장부기의 어깨가 힘을 잃고 축 늘어졌다.
전투를 준비 중이던 D반 아이들도 기세 좋게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능력자들도….
해골 병사들이 학교와 가까워지자, 현실을 마주하고 모두 싸울 의지를 잃어버렸다.
못해도 천 마리.
그 정도의 숫자가 학교에 도착했다.
“끝이야….”
공포에 사로잡힌 장부기의 눈이 감겼다.
“쓰레기들은 빠져. 너희가 나설 곳이 아니야.”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
옥상에 있던 D반 아이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길게 늘어진 노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그리고.
“떨어져라. 뇌전.”
하늘에서 한 줄기의 번개가 내리쳤다.
콰과과광!!!!!!!
팍!
남자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미림고를 뒤덮고 있던 해골 병사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포기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를 뒤덮었던 수 천마리의 해골 병사들이 팍! 소리와 함께 세상에서 지워졌다.
탁….
탁….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장부기의 시선으로 한재석의 모습이 보였다.
“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S급으로 등급이 올랐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이 정도로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이 정도의 임팩트는 최한에게서밖에 느껴보지 못했었다.
살려줘서 고맙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믿을 수 없는 강함에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재석이 민섭의 앞에 멈춰 서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 내가 왜 이놈이랑 학교를 지켜야 하는 건지….”
천 마리의 해골 병사를 순식간에 해치우고도 감흥조차 없는 표정이었다.
겨우 귀찮은 심부름을 떠맡은 정도의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민섭이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한재석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살려줘서…. 그런데 네가 왜…. 대체 누구한테 부탁받고 나랑 학교를 지키는 거야…?”
얼굴 가득 짜증을 표출하고 있던 한재석이 대답했다.
“오지훈 박사가… 최한이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면서, 너랑 학교 좀 지켜달라고. 능력자들은 다 자기 담당 지역이 있어서 지원을 보내줄 수가 없을 거 같다면서.”
민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훈 박사가 길드장들 이리로 온다고 했었는데. 무슨 일 생긴 건가.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한재석의 목소리에 민섭이 물었다.
“길드장님들이 학교로 온다고?”
“원래는 그랬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거겠지. 적에게 공격받았거나. 그것보다 최한은 아직도 연락 안 되는 거야?”
“어….”
민섭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 이렇게 중요한 때에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자식은. 바다에서 널 지킨다고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일주일 전 기억이 떠오른 민섭이었다.
‘내가 죽으면 민섭이를 부탁합니다.’
민섭의 주먹이 떨려왔다.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최한이 죽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해골 병사들에게 인간들이 멸망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이 이 지옥을 타개할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
민섭이 한재석에게 말했다.
“부탁이 하나 있어. 최한이 올 때까지 나를 지켜줘.”
“뭐?”
“최한은 꼭 이곳으로 올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나를 지켜줘. 그럼… 이 전쟁… 막을 수 있어.”
진지하게 변한 민섭의 표정에 한재석의 얼굴에도 짜증이 지워졌다.
그때와 같은 표정.
한재석의 머릿속으로 옥상에서 민섭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날… 너와 나는 최한의 손에 죽게 될 거야.’
자신과 민섭이 최한의 손에 죽게 된다는 이야기.
믿기지 않지만,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녀석 무슨 생각인 거지. 최한이 오면 자신이 죽을 텐데….’
“너…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한재석의 목소리에 민섭의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미안. 말해 줄 수 없어. 내가 다 떠안을게. 그러니까… 최한이 올 때까지만… 날 지켜줘.”
민섭이 한재석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한재석이 시선을 피하며 입술을 비틀었다.
“참나…. 넌 정말… 이상한 놈이야. 처음 봤을 때부터….”
한재석이 몸을 돌렸다.
‘이 녀석 말대로라면 나도… 오늘 죽는 건가….’
한재석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놈한테 죽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민섭과 한재석을 지켜보던 D반 아이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또 온다!”
“아까보다 더 많아!”
남아 있던 해골 병사들이 또다시 학교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욱 많은 숫자.
또다시 학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재석이 손을 높게 들어 올렸다.
“실컷 발버둥 치다 뒤져야지. 쳐라… 뇌전.”
찌직-.
학교를 뒤덮은 해골 병사를 뚫고 작은 번개가 한재석의 주먹을 향해 내리쳤다.
콰과과광!!!!!
팟!
천둥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방울이 터지듯 학교를 뒤덮었던 해골 병사들이 재가 되었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한재석의 늠름한 뒷모습이 보였다.
S급.
그보다 더욱 강한 것 같았다.
몇천 마리의 몬스터를 손쉽게 해치우는 저 모습은… 분명 최한을 연상케 하기까지 했다.
한재석이 고개만 살짝 돌려 민섭과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나서지 말고 구경이나 해. 여긴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최한이 올 때까지 내가….”
픽-.
한재석의 음성을 지우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마치 세상이 멈춘 듯 모든 감각을 지우고 생각을 멈추게 했다.
한재석을 바라보고 있던 모든 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째서.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순식간에 당한 것이지?
“한재석!!!!”
김민섭의 목소리가 학교에 울려 퍼졌다.
한재석의 가슴 중앙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다.
“X발… 말도 안 돼….”
한재석이 중심을 잃고 앞으로 꼬꾸라지고 있었다.